장옥정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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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우
작품등록일 :
2019.02.0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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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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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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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대왕대비 조씨와 대비 김씨

DUMMY

옥정이 절을 올리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는 만백성의 주인이시온데, 소녀가 어찌 전하께서 하신 일에 왈가왈부할수 있겠나이까? 다만, 소녀의 종백부께서 죄없이 억울한 누명을 쓴 것오니, 방면하여 주시오면, 여한이 없겠나이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구나! 이미 처결한 일이라 과인의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옥정은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했다.


"전하......"


숙종은 눈물이 흘러내리는 옥정의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명백한 증좌가 없는 한, 네 종백부의 무고함을 증명할 수는 없는 터, 내, 의금부에 다시 조사하라 이르겠다."


옥정은 눈물을 쏟으며 일어나 큰절을 올렸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아침 무렵에야 숙종의 처소에서 나온 옥정은 궁인들의 시선이 느껴지자 무안하여 고개를 숙이고 대왕대비전으로 종종걸음치며 걸어갔다.


이때 멀리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옥정아!"


같은 방 처소 궁인 시영이 손을 흔들며 걸어오고 있었다.


시영이 옥정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승은을 입은 것을 축하한다. 네가 참으로 부럽구나. 나도 전하의 승은을 입는다면 좋으련만......"


벌써 옥정이 승은을 입었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옥정은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 채 손으로 입을 가리고 침묵하였다.


시영이 뭔가 생각난 듯 손뼉을 쳤다.


"아, 참! 대왕대비마마께서 부르시니, 속히 가 보거라."


옥정이 승은을 입었다는 소식을 들은 대왕대비 조씨(장렬왕후)가 진상을 확인하고자 옥정을 불렀던 것이다.


옥정이 대왕대비전에 들어서자, 대왕대비 조씨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옥정에게 물었다.


"승은을 입었다는 것이 사실이냐?"


"그러하옵니다."


대왕대비 조씨가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흥, 대비의 표정이 볼만하겠구나."


42년 전, 열다섯의 어린 나이로 곤위에 올라 한점의 혈육도 없이 스물여섯의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대왕대비 조씨에게 지난 30여년은 회한의 세월이었다.


아무 힘없이 효종비인 인선왕후와 현종비인 대비 김씨, 두 중전의 눈치만 보며 살아왔던 지난 시절을 돌이켜보면 서러움이 복받쳐 왔다.


더욱이 두 차례의 예송 논쟁(장렬왕후가 상복을 얼마나 입느냐 하는 복상 기간을 둘러싸고 남인과 서인이 벌인 당파싸움)에서 아무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채 가까운 친척 여러 명을 잃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이러한 대왕대비 조씨에게 자신을 모시는 궁인인 옥정이 인경왕후가 승하한 후 가장 먼저 임금의 승은을 입었다는 소식은 내전 뒷방의 늙은이 신세를 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기실, 며느리 인경왕후를 딸처럼 아낀 대비 김씨로서는 왕후의 상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숙종이 대왕대비전의 궁인과 합궁했다는 사실을 알면 속이 뒤집힐 노릇이었다.


숙종이 대왕대비전의 궁인과 합궁했다는 소문을 들은 대비 김씨가 크게 노하여 그 궁인이 누구인지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을 때, 오라비 김석주가 대비전을 찾아왔다.


"대비마마, 주상께서 의금부에 장현의 죄목을 재조사하라는 명을 내리셨다 하온데, 이는 우리 서인들을 무너뜨리려는 남인의 계략이 틀림없사오니, 속히 대책을 세우심이 좋을 듯하옵니다."


김석주의 말에 대비 김씨가 깜짝 놀랐다.


"장현의 처결은 이미 끝난 일이 아닙니까? 허견과 함께 역모를 꾸민 장현의 죄상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졌거늘, 주상께서 어찌......"


국중 거부였던 장현이 역모의 주동자 허견과 함께 복선군을 왕위에 추대하려 했다는 서인들의 말만 철썩처럼 믿고 있는 대비 김씨로서는 숙종이 어째서 끝난 처결을 재조사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김석주가 말했다.


"주상께서 친히 의금부에 재조사하라 명을 내리신 것을 보면, 필시 남인들이 꾸민 일이 분명할 터이니, 배후를 알아내 일이 커지기 전에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대비 김씨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내가 주상께 장현의 일을 재조사하시려는 연유를 여쭈어봐야겠습니다. 오라버니께선 남인들의 동태를 주시하여 또 다시 불순한 역모가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만반의 대비를 하세요."


병조판서인 김석주는 금위대장(궁궐을 지키는 임무를 맡은 벼슬), 총융사(도성을 지키는 임무를 맡은 벼슬), 어영사(북벌을 목적으로 만든 조선시대 정예병 어영군의 대장)를 자신의 휘하에 두어 병권을 한손에 장악하고 있었다.


지난 봄에 역모에 연루되어 조정에서 쫒겨난 남인들이 반정이라도 일으킬까 노심초사하고 있던 대비 김씨로서는 이러한 오라비 김석주가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것이다.


김석주가 대비전을 떠나자마자, 한상궁이 안으로 들어와 아뢰었다.


"대비마마, 그 궁인의 정체를 알아냈사옵니다."


"어느 가문의 여식이더냐?"


"장현의 종질녀라 하옵니다."


대비 김씨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장현의 종질녀라? 확실한 사실이냐?"


"그러하옵니다."


순간, 흥분한 대비 김씨가 손으로 탁자를 쳤다.


"역적 가문의 계집이 어찌 입궁하였단 말이냐?"


"대왕대비께서 친히 들인 계집이라 하옵니다."


대비 김씨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대왕대비께서, 노망이 나신 게 아니라면, 어찌......"


대비 김씨는 숙종이 하필 대왕대비전의 궁인과 합궁한 것이 몹시 못마땅했을 뿐더러 무엇보다 역적 가문인 장현의 종질녀라는 점이 참을 수 없었다.


이미 역적으로 판명난 장현을 재조사하라는 명을 내린 숙종의 의도가 짐작되자, 대비는 끓어오르는 분을 삭히며 숙종의 처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상께 드릴 말씀이 있어 왔습니다."


숙종은 대비 김씨의 목소리에 노기가 서려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말씀하소서."


"역적 장현의 죄가 이미 명명백백하게 밝혀졌거늘, 어찌 의금부에 재조사하라는 명을 내리셨습니까?"


아무리 아들이라지만 남녀 관계를 묻기는 쑥스러운 일이라 장현에 대해 먼저 물어본 것이다. 숙종이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이전부터 조사석이 장현의 무고함을 여러 차례 상주한 바가 있어, 이번 기회에 재조사하는 것이니, 어마마마께서는 심려치 마옵소서."


"주상! 장현이 누구이옵니까? 역모의 주동 복선군의 자금줄이 아니옵니까? 설령 역심을 품지 아니하였다 하여도 역모에 가담한 것이나 매한가지이거늘, 어찌 이제와서 재조사를 운운하시는지, 이 어미는 알다가도 모르겠소."


"소자가 아는 바로는 장현은 조왕(효종)께서 청의 선양에 인질로 계실 때부터 충성을 바친 자로, 만약 역모에 가담한 바가 없다면 방면하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이미 주상께서 처결한 일입니다. 죄를 준 자에게 죄가 없다 방면한다면, 어찌 이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설 수 있겠습니까? 이 어미의 뜻을 따르세요."


대비 김씨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속뜻은 단호했다.


이런 식으로 대비 김씨가 말하면, 숙종은 항상 따라왔지만, 옥정을 이미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숙종으로서는 이번만큼은 한치도 물러설 수 없었다.


숙종은 대비 김씨의 시선을 외면하며 말했다.


"소자가 이미 처결한 일이라 할지라도, 잘못된 처결이라면 바로 잡는 것이 임금의 도리가 아니겠사옵니까? 어마마마, 이번 일은 소자에게 맡겨 두시고, 심려를 거두소서."


"이 어미는 주상께서 잘 알아서 하시리라 믿고 이만 가보겠습니다."


단단히 벼르고 온 대비 김씨였지만, 숙종의 단호한 태도에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대비전으로 돌아온 대비 김씨는 분노를 삭히지 못하고 두손을 부르르 떨었다.


"참으로 요망한 것이 아닌가! 하룻밤 만에 주상의 마음을 저리도 휘어잡다니, 필시 나라의 화근이 될 터, 내, 기필코 그 요망한 계집을 궁밖으로 쫒아내고 말겠다!"


공무를 마친 숙종은 곧장 옥정을 처소로 불렀다.


"내, 아침에 경황이 없어, 너의 인적 사항도 모른 채 보냈구나. 어미는 살아있느냐?"


숙종의 진심을 느낀 옥정은 수줍어하며 말했다.


"소녀의 어미는 건강히 계시옵니다."


"다른 가족은 없느냐?"


"오라비가 하나 있사온데, 어미와 함께 외삼촌 댁에 살고 있사옵니다."


"의지할 친지가 있어 참으로 다행이구나."


숙종이 가락지 하나를 내밀었다.


한눈에 봐도 귀한 옥가락지였다.


숙종이 천천히 옥정의 손가락에 옥가락지를 끼워주자, 옥정의 손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렸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내 진심을 알겠느냐?"


옥정은 목이 메어 겨우 말했다.


"소녀...... 주상의 하해같은 은총에,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숙종이 옥정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옥정아, 언젠가는 너를 후궁에 책봉할 생각이다. 허나,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대행왕후의 상이 끝나야 하고......"


숙종의 말꼬리가 흐려졌다.


중전이 먼저 간택되어야만 후궁을 들일 수 있었다.


옥정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 소녀는 전하를 곁에서 모시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행복하오니, 아무 것도 바라지 아니하나이다. 소녀의 뜻을 살펴주소서."


숙종은 옥정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옥정아,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너의 마음, 참으로 갸륵하구나!"


"전하께서 소녀를 아껴주시는 은혜, 갚을 길이 없사온데, 어찌 다른 것을 더 바라겠사옵니까?"


"나 또한 네가 내 옆에만 있어도 더이상 바랄게 없을 것이다."


"전하...... 소녀의 청을 하나 들어주옵소서."


"무엇이든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해보거라."


"소녀, 전하의 곁을 영원히 지키고 싶사옵니다. 부디, 윤허하여 주옵소서."


"과인 또한 너와 영원히 함께 하고 싶구나."


숙종은 옥정을 가만히 껴안았다.


옥정은 두눈을 감은 채 숙종의 가슴에 안겼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임금의 총애를 받는 일이 이처럼 빨리 이루어질 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가.


옥정은 총애가 너무 일찍 다가온 것이 오히려 걱정이 되었다.


빨리 끓인 솥이 빨리 식는 법, 옥정은 숙종의 총애가 빨리 식을까 염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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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4화 소문 22.12.03 44 0 11쪽
33 33화 숙원이 된 옥정 22.12.03 51 1 11쪽
32 32화 오해 22.12.03 49 1 11쪽
31 31화 우연의 일치 22.12.03 48 0 10쪽
30 30화 인현왕후에게 현신을 올린 옥정 22.12.03 71 0 10쪽
29 29화 재입궁 22.12.03 79 1 10쪽
28 28화 과인을 기다리지 말거라! 22.12.03 55 0 11쪽
27 27화 물벌을 받고 쓰러진 대비 22.12.02 58 0 10쪽
26 26화 태자방을 부른 대비 22.12.02 50 0 11쪽
25 25화 잠행 22.12.02 50 0 10쪽
24 24화 어머님, 숙정을 첩실로 받아들이소서 22.12.02 59 0 11쪽
23 23화 희롱당하는 숙정을 구하기 위해 나선 희재 22.12.02 73 0 11쪽
22 22화 임술년 반정 회갑연 22.12.02 77 0 10쪽
21 21화 장희재를 포도부장에 임명하다 22.12.02 62 1 11쪽
20 20화 허울 뿐인 중전의 자리 22.12.02 64 0 10쪽
19 19화 숙종의 근심 22.12.02 52 0 11쪽
18 18화 가례식 22.12.02 58 0 11쪽
17 17화 옥정을 찾아온 대왕대비 22.12.02 51 1 11쪽
16 16화 복순을 데려가기로 결심하다 22.12.02 60 0 10쪽
15 15화 중전에 간택되다 22.12.02 63 0 11쪽
14 14화 민유중의 여식 인현 22.12.01 60 0 11쪽
13 13화 희망이 솟구치다 22.12.01 62 0 11쪽
12 12화 과인을 용서해다오 22.12.01 68 1 10쪽
11 11화 궁에 당도한 숙종 22.12.01 62 1 10쪽
10 10화 궁밖으로 쫓겨나다 22.12.01 7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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