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펜 국제 마법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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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기
작품등록일 :
2014.01.22 21:19
최근연재일 :
2014.06.07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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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2.19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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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학기 초(6)

DUMMY

헐렁한 셔츠와 바지, 까치집이 돼있는 머리, 그리고 며칠이나 세수를 안 한 걸까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눈곱 낀 두 눈.

맨 앞에 앉아있던 여학생이 볼멘소리로 불평했다.

"선생님, 평범함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어요. 적어도 세수는 하고 오시면 안될까요?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게요."

"시끄러워. 사람은 탐욕의 동물이라 하나를 얻으면 둘을 얻고 싶고, 둘을 얻으면 셋을 얻고 싶은 법이야. 생각해 봐라. 내가 지금 네 말대로 세수를 하고 오면 그 다음엔 뭘 원하겠어? 옷을 제대로 입고 오기를 바라겠지. 그 다음엔? 내가 잘생겨지기를 바라겠지.

"그래서 선생님 말씀은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원천 봉쇄한다는 거예요?"

"그래. 슬슬 수업을 시작할까?"

"말 돌리지 마세요! 그게 무슨 궤변이에요?"

"궤변이라니, 내 말이 어디 한 군데라도 틀린 부분이 있나? 아니지? 너야말로 논리적으로 날 이길 말이나 생각해오라고."

선생님인데도 불구하고 학생에게 져주는 일 없이 이겨버리고 하벤은 크흠 헛기침을 했다.

"오늘은 첫 시간이니 가볍게 자기소개라도 할까...라고 말하고 싶지만 우리 학원이 좀 빡빡해서 바로 수업 진행해야겠다. 아, 나한테 따지지 마. 난 아무 힘없는 일개 선생님일 뿐이니까. 따지려면 너희들이 직접 따져. 알았지? 그럼 잡담은 여기까지! 이제 수업 시작하자."

하벤이 들고 온 회초리로 교탁을 두 번 땅땅 쳤다. 화 내려던 몇 명의 학생이 그 기세에 눌려 입을 다물었다.

"좋아, 좋아. 아주 잘했어. 그럼 모두들 12쪽을 펴. 다 폈어? 그러면 저기 학생, 이름이 뭐지?"

하벤이 손가락으로 한 학생을 지목했다. 공교롭게도 그 학생은 로린이었다. 잠시 두리번거리던 로린은 당황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요?"

"응. 학생 이름이 뭐야?"

"로린 디 필리나입니다."

"좋은 이름이네. 로린, 12쪽 좀 읽어주지 않겠어? 일어서서 읽어주면 고맙겠는데."

로린이 옆의 에렌은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에렌은 뭐라 대답할 말도 없어 그저 활짝 웃어 주었다.

로린은 평소의 그녀와는 달리 눈에 띄게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책 읽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가? 문득 의문이 들었지만 로린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일어서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비전투 마법이란 전투 외에 우리 실상활에 쓰이는 마법으로, 치유 마법부터 청소 마법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현재까지 발견된 비전투 마법은 총 226개이며, 지금도 새로운 마법이 발견되고 있다. 평화력 15년에 개정된 본 하급 비전투 마법 교과서에서는 134개의 비전투 마법을 다룰 것이다."

"고마워. 이제 앉아도 돼."

긴장으로 굳어졌던 로린의 얼굴이 풀렸다. 하벤은 양 손바닥을 비비면서 알아보기 힘든 글씨체로 칠판에 글을 썼다. 다섯 살 먹은 어린애 마냥 어지러운 글씨에 에렌은 몸을 앞을 내밀고서야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첫 번째 비전투 마법-설거지 마법'

에렌은 글씨를 다 읽고 한숨을 푹 쉬었다. 그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네펜 학원도 딴 학원이랑 똑같네."

"뭐예요, 네펜 학원까지 와서 설거지 마법이나 배워야되요?"

"짜증나."

"이딴 마법이나 배울려구 제가 여기까지 온 줄 알아요?"

"조용!"

하벤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소리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커졌다. 결국 하벤은 귀를 손가락으로 꽉 막고 소란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대략 3분 뒤, 소리가 잦아들었다. 하벤은 손가락을 빼고 학생들을 달랬다.

"애들아, 나도 설거지 마법 가르치기 싫어. 근데 어쩌냐? 교과서가 이런 것을. 그러니까 우리 좀만 참자, 응? 2학기 때는 내가 재밌는 마법도 가르쳐줄게, 응?"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학생들은 설거지 마법을 배우는 것을 받아들였다. 하벤은 한결 밝아진 얼굴로 수업을 재개했다.

"설거지 마법을 쓰려면 뭐가 필요할까? 그래, 일단은 물과 씻을 그릇이 필요하겠지? 물과 씻을 그릇이 있으면 또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의지지. 설거지를 하겠다는 의지. 그게 무엇보다도 중요해......"







1교시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티엘은 책상에 엎어져 버렸다. 1교시 이론 마법 수업은 너무 어려웠다.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어쩌구저쩌구. 게다가 이름 그대로 이론밖에 없어서 굉장히 지루한 수업이었다.

에렌으로부터 단편적인 지식을 얻을 때는 재미있었는데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니 따라가기 힘들었다. 지금까지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야. 기초부터 가르쳐주는 것 같았어. 설마 내가 머리가 나빠서?"

"네 머리가 나쁜 게 아냐. 이론 마법이 기본적으로 어려운 수업이라서 기초라도 어려운 것 뿐이지. 여기 있는 애들 중 선생님 말씀을 절반이라도 이해한 건 몇 명밖에 없을걸?"

무심코 한 혼잣말에 누군가 대답했다. 티엘은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봤다. 티엘의 앞자리에 앉아있던 남학생이었다.

의자 등받이에 턱을 올리고 앉은 남학생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남학생은 오른쪽 눈은 녹색, 왼쪽 눈은 갈색인 오드 아이(odd eye)였다.

오드 아이를 처음 본 티엘은 실례라는 것도 잊고 손으로 남학생의 눈을 만지려했다. 남학생은 얼른 몸을 뒤로 젖혀서 티엘의 손을 피하고 말했다.

"오드 아이가 신기한 건 알겠는데 허락도 안 받고 만지는 건 예의가 아니야."

"오드 아이? 그게 뭐야?"

"어라, 너 오드 아이가 뭔지 몰라?"

남학생은 그런 간단한 것도 모르냐는 듯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부끄러워진 티엘은 눈을 내리깔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게..내가 좀 상식이 없거든."

"괜찮아. 모를 수도 있지 뭐."

생각 외로 남학생은 다정하게 위로해줬다. 에렌이었다면 위로해주기는 커녕 오히려 비아냥거리면서 자신을 놀렸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든 티엘은 풋 웃음 소리를 냈다. 남학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궁금하단 표정을 지었지만 티엘은 말해주지 않고 오드 아이에 대해서 물었다.

"그래서 오드 아이란 게 뭐야?"

"음, 오드 아이란 건 나처럼 양 눈 색깔이 다른 눈을 말하는 거야."

"그래? 그렇구나. 알려줘서 고마워. 맞다, 좀 늦은 감이 없잖아 있는 것 같지만 너 이름이 뭐야?"

"내 이름은 레이 틸스. 너는?"







1교시에 이어 2교시, 3교시, 4교시도 순식간에 지나가고 점심 시간이 다가왔다. 점심은 식당에서 모여 다같이 먹는다고 한다.

좋은 점이라면 에렌과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거고, 나쁜 점이라면...

"우리 1학년은 밥을 늦게 먹는다는 거지. 규칙인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1학년은 2, 3학년 눈치를 볼 수밖에 없으니까."

마음이라도 읽은 것처럼 레이가 말했다. 몇 번 대화를 나눠보니 레이는 자신의 생각대로 온순하고 마음 약한 녀석이었다. 에렌과는 정반대로.

"그런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거야? 너도 1학년 아냐?"

"난 1학년이긴 하지만 입학생은 아니기 때문이지."

"진짜? 어떻게 그럴수가 있어?"

"내가 아까도 말했지? 이론 마법 엄청 어렵다고. 내가 시험 때 다른 건 다 통과했는데 이론 마법 시험만 통과 못 해서 2년째 1학년 하고 있다."

"그렇게 어려워?"

"응. 과목 자체가 어렵다보니까 자연스레 시험도 어려워지고, 시험이 어려워지니까 학생들만 죽어나고..통과 기준이 낮기는 한데 통과하는 사람은 얼마 안 돼."

그렇게 말하는 레이의 옆얼굴은 꽤 진지해보였다. 하지만 손님인 티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있잖아, 레이. 너는 내가 베네스 사람인 줄 어떻게 안 거야?"

실은 처음 만날 때부터 줄곧 궁금하던 것이었다. 자신은 단 한 번도 베네스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레이는 어떻게 알고 말을 걸었던 걸까? 아니면 레이는 그런 거랑 상관없이 자신에게 말을 건 걸까?

그러나 레이의 대답은 간단했다.

"네가 베네스어를 썼으니까."

"..그, 그렇네. 내가 뭘 물어본 건지.."

네펜 학원에서는 각 나라의 말을 써서는 안 되고 대륙 공용어를 써야 한다. 하지만 티엘은 혼잣말할 때 무의식적으로 베네스어를 썼고, 그걸 들은 레이는 자신과 같은 베네스 사람인 것을 알고 말을 건 것이다.

"아무튼 친구는 빨리 만들면 만들수록 좋으니까."

레이는 눈을 찡긋해 보이며 덧붙였다. 그러는 사이 그들은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에는 열 명은 앉을 수 있는 긴 식탁 몇 십개가 줄지어 있었다. 식당의 한쪽에서는 학생들이 급식판을 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티엘과 레이는 줄의 맨 끝으로 가 섰다. 티엘은 에렌과 로린을 찾으려 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누구 찾는 사람이라도 있어?"

티엘이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는 것을 보고 레이가 물었다. 티엘은 어깨를 으쓱 올리며 대답했다.

"응. 내 친구들. 베네스에서 사귄 친구들인데 만나면 너한테도 소개해줄게."

"나야 고맙지."

레이가 대답한 순간, 앞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티엘과 레이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본능적으로 소리가 들린 쪽으로 달려갔다.

소리가 들린 쪽은 이미 몇 십명의 학생들로 둥글게 둘러쌓여있었다. 학생들을 헤치고 지나가면서 티엘은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입학생이 3학년한테 대들었대."

"입학생 다친 거야?"

"3학년도 다쳤어. 상처는 3학년이 더 심하던데?"

"아니야. 3학년은 뺨에 생치기만 좀 있고, 입학생은 눈을 크게 다쳤대."

"야, 그게 문제가 아냐. 그 3학년이 파즌이라니까? 입학생도 불쌍하지. 하필이면 파즌한테 대들다니. 걘 이제 죽었다."

마침내 레이와 티엘은 안쪽으로 들어가 그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티엘은 놀라서 굳어버렸다. 레이 역시 그 못지않게 놀라 숨을 헉 내뱉었다.

원의 중앙에는 에렌이 서 있었다.

그는 왼손으로 눈을 감싸고 있었다. 손가락 틈새로 흘러나와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자신의 피를 보면서.


작가의말

레이에 대해서 더 알고 싶으신 분은 16화 입학(6)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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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껍질 편 수정했습니다. 14.05.10 343 0 -
33 의혹 +3 14.06.07 652 10 8쪽
32 나름의 노력 +2 14.05.31 533 6 9쪽
31 껍질 +14 14.03.23 798 20 9쪽
30 움직임 +8 14.03.22 525 10 11쪽
29 거리 +6 14.03.09 683 14 9쪽
28 누군가의 마음 +10 14.03.08 552 8 16쪽
27 학원장과의 대화 +10 14.02.26 468 17 11쪽
26 학기 초(8) +8 14.02.24 465 8 10쪽
25 학기 초(7) +6 14.02.21 522 10 9쪽
» 학기 초(6) +2 14.02.19 338 8 11쪽
23 학기 초(5) +4 14.02.17 545 8 9쪽
22 학기 초(4) +2 14.02.12 549 9 12쪽
21 학기 초(3) +2 14.02.10 483 7 26쪽
20 학기 초(2) +2 14.02.07 454 11 13쪽
19 학기 초 +2 14.02.05 528 11 11쪽
18 입학(9) +2 14.02.03 499 10 11쪽
17 입학(8) +2 14.02.02 656 8 13쪽
16 입학(7) +2 14.02.02 490 8 8쪽
15 입학(6) +2 14.01.24 412 10 11쪽
14 입학(5) +2 14.01.22 701 8 8쪽
13 입학(4) +2 14.01.22 663 13 9쪽
12 입학(3) +4 14.01.22 884 15 10쪽
11 입학(2) +4 14.01.22 733 12 11쪽
10 입학(1) +4 14.01.22 607 15 6쪽
9 만남(5) +4 14.01.22 695 17 7쪽
8 만남(4) +4 14.01.22 727 17 8쪽
7 만남(3) +4 14.01.22 721 15 5쪽
6 만남(2) +6 14.01.22 839 19 11쪽
5 만남 +2 14.01.22 1,142 2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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