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펜 국제 마법학원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믹기
작품등록일 :
2014.01.22 21:19
최근연재일 :
2014.06.07 22:18
연재수 :
33 회
조회수 :
24,118
추천수 :
458
글자수 :
151,548

작성
14.06.07 22:18
조회
652
추천
10
글자
8쪽

의혹

DUMMY

지난 며칠간 에렌의 심리 상태는 그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는 일부러 티엘과 레이에게 벽을 세우고 있었고 그들도 어렴풋하게나마 그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또한 에렌 역시 그들이 그 사실을 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랬다. 마음 한 구석이 시큰하게 달아오르는 것도 같았다. 미묘한 감정이었다.


그렇더라도 반란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돌이켜보면 자신의 잘못은 아니었다. 자신은 최선을 다했고 모든 것을 망쳐놓은 것은 왕이었다. 절대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 자신이 책임을 질 필요도,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도 없었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그 역시 피해자였다.


하지만 그 일이 자신 때문에 일어났음은 부인할 수 없다.


비록 그의 잘못은 아니더라도 그가 단초가 되었으니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어딘가에 호소할수도 없고 복수할수도 없는 순수한 피해자들을 위해서.


피의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내가 책임을 져야만 한다.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저기, 에렌."


끝없이 이어지던 에렌의 생각을 티엘이 끊었다. 에렌은 더 이상 고민할 필요 없다는 사실에 약간의 기쁨을 느끼며 대답했다.


"응?"


"에렌은 좋아하는 색이 뭐야?"


에렌은 티엘의 얼굴, 정확히는 눈을 빤히 쳐다봤다. 새삼 티엘의 순수함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아마 티엘은 어려움이나 곤경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한 눈에 알 수 있다. 티엘에게는 오직 좋은 것, 예쁜 것, 기쁜 것만을 보고 자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천진함이 있었다.


자신이나 레이와는 다르게.


레이도 자신과 비슷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이번만 해도 그렇다. 이런 배려는 타인을 돌보며 산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레이의 인생 역시 자신처럼 그리 녹록치 않은 인생이었을 것이다.


그 순수함이 부러웠다.


그래서였을까, 괜한 심술이 나서 짓궃게 말했다.


"너는 어때?"


"내가 먼저 물어봤는데."


"그러니까 먼저 말해야지. 모르는 사람한테 이름을 물어볼 때도 자기 이름을 먼저 밝히는 게 예의잖아."


말해놓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심하게 말할 필요는 없었는데.


다행히 티엘은 마음 상한 눈치가 아니였다.


"하하, 그래. 나는 파란색이 제일 좋아."


색깔마저도 너무나 잘 어울렸다.


"파란색? 왜?"


"그냥? 파란 걸 보면 뭔가 마음이 진정되는 기분이거든. 그래서 에렌은?"


"나는 검은색이나 하얀색."


"잘 어울리네."


에렌은 멈춰 섰다. 언젠가, 딱 한 번 저 말을 들은 적 있었다.


잠시 후에 나온 목소리는 자신도 놀랄 정도로 메말라 있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


티엘은 손가락을 꼬물거렸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에 빠진 에렌은 그 모습을 보지 못 했다.


"에렌은 어른스러우니까 말이지. 무채색은 보통 어른스럽게 느껴지잖아?"


침이 말랐다. 기억도 안 날만큼 오래 전이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대화가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에렌, 너는 무슨 색이 제일 좋으냐?'


'색이요? 색은...검은색이나 하얀색이요.'


'잘 어울리는구나.'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너는 어른스러우니까. 무채색은 보통 어른스럽게 느껴지지 않느냐.'


'음? 정말이네요.'


설마, 설마 티엘이?


에렌은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우연일거야. 무채색이 어른스럽다는 건 다들 하는 생각이잖아.


"...그래."


절대 그럴 리가 없어.


에렌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불편한 의혹은 마음 한 켠에 접어두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우연이 일어날 리 없다는 생각이었다.


매점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이란 것이 있는 법이니까. 만약을 대비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너희들."


뭔가 굉장히 귀찮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단 말이지.


그렇게 실체없는 불안감을 느끼면서 에렌은 서서히 돌아섰다. 거기에는 처음 보는 학생 둘이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넥타이를 확인했다. 빨간색. 2학년이었다.


불안감이 현실이 되려는 순간이었다.


"무슨 일이시죠?"


질문하는 한편 에렌은 머리를 굴렸다. 여기는 매점이다. 선생님도 버젓이 있고 다른 학생들도 있다. 이곳에서 무슨 일을 벌이려 하지는 않겠지.


"네가 그 에렌이냐?"


2학년의 말투에는 가시가 뾰족하게 돋아 있었다.


"그렇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래. 너 우리 좀 따라와야겠다."


"어째서요?"


2학년의 얼굴에 짧은 당혹의 빛이 스쳤다. 1학년이 자신의 말을 거역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으리라.


"이유는 알 거 없어. 조용히 입 다물고 따라 와."


에렌은 숨을 들이켰다. 2학년이 자신을 부르는 이유는 뻔했다. 파즌의 일로 경고하려는 것이겠지. 어쩌면 몇 대 맞을지도 모른다.


에렌은 선배에게 대들면 학원 생활이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며, 맞더라도 이 정도 선에서 끝내는 것이 좋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여기서 거절했다간 학원 내의 자신의 입지가 위태로워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티엘 문제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졌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쓸데없는 치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이유는 확실치 않았다. 그래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단호하게 대답했다.


"싫습니다."


2학년의 이마에 겹겹이 층이 잡혔다. 그는 선생님의 눈치를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네가 미쳤구나."


"아니요. 미친 건 선배 같은데요. 제가 왜 선배를 따라가야 하는 거죠? 규칙으로 정해져 있기라도 하나요? 정해져 있다 해도 싫습니다. 저 지금 기분 안 좋으니까 웬만하면 건들지 마시죠."


2학년의 머리에서 희뿌연 연기가 솟아나는 환영이 보이는 듯 했다. 에렌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2학년을 노려봤고, 티엘은 주먹을 긴장시켰다.


2학년이 입술을 깨물며 발을 앞으로 내딛으려는 찰나였다.


티엘이 2학년에게 달려들었다.


"!"


마법에 대한 지식은 적을지라도 몸쓰는 일은 누구보다도 자신있는 티엘이었다. 아니, 마법은 안 배웠지만 검술만큼은 깊게 파고들었다. 마법을 익히느라 몸 쓰는 일은 영 아닌 2학년이 당해낼만할 것이 아니었다.


티엘은 계속해서 2학년의 얼굴을 내리쳤다. 몸싸움에는 익숙하지 않은 2학년은 손 하나 까딱하지 못 했다. 코에 핏방울이 맺히더니 물처럼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학생 몇 명이 다가와서 둘의 싸움-이미 싸움이라고 부를 수도 없지만-을 구경했다. 곧이어 선생님도 달려와 그 둘을 떼어놓으려 했다.


그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보며 에렌은 마음 속으로 느꼈다.


티엘은 내 친구구나. 내 친구였어.


그 단 하나의 행동만으로 모든 게 설명됐다. 순수하고 구김없는 아이지만, 나와는 다른 세계에 있는 아이지만, 내 친구였다. 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는 친구였다.


선생님의 제지에도 티엘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2학년을 때리기만 했다. 에렌은 자신이 나서야 할 때임을 깨달았다.


"그만해."


티엘의 행동이 멈췄다. 에렌은 다가가서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제 됐어. 그만해도 돼. 더 이상 하면 네가 곤란해질 거야."


티엘이 순순히 일어섰다. 선생님은 티엘의 손목을 마법으로 구속하고 다른 학생에게 2학년을 치료실로 데려가라고 지시했다.


"잠시만요, 선생님. 잠깐 말 좀 해도 되죠?"


선생님은 망설이는 듯 했으나 결국 허락했다.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은 범죄자도 아닌데 잠깐 말하는 것 정도야 괜찮았다.


"너 바보지?"


에렌이 티엘에게 한 첫 번째 말이었다.


"응."


부정하거나 되물을 줄 알았건만, 티엘이 해맑은 눈으로 대답하자 에렌은 말문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난 바보야. 그래서 무조건 감정 끌리는 대로 해. 그러니까 머리쓰는 일은 에렌이 해."


에렌은 웃었다. 오랜만의 웃음이었다.


"그러네."


너는 내 친구지. 그럼 됐어.


아마 우리는, 다시 허물없이 지내게 될 것이다.


작가의말

폭력은 나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네펜 국제 마법학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껍질 편 수정했습니다. 14.05.10 343 0 -
» 의혹 +3 14.06.07 653 10 8쪽
32 나름의 노력 +2 14.05.31 533 6 9쪽
31 껍질 +14 14.03.23 798 20 9쪽
30 움직임 +8 14.03.22 525 10 11쪽
29 거리 +6 14.03.09 683 14 9쪽
28 누군가의 마음 +10 14.03.08 552 8 16쪽
27 학원장과의 대화 +10 14.02.26 468 17 11쪽
26 학기 초(8) +8 14.02.24 465 8 10쪽
25 학기 초(7) +6 14.02.21 522 10 9쪽
24 학기 초(6) +2 14.02.19 338 8 11쪽
23 학기 초(5) +4 14.02.17 545 8 9쪽
22 학기 초(4) +2 14.02.12 549 9 12쪽
21 학기 초(3) +2 14.02.10 483 7 26쪽
20 학기 초(2) +2 14.02.07 454 11 13쪽
19 학기 초 +2 14.02.05 528 11 11쪽
18 입학(9) +2 14.02.03 499 10 11쪽
17 입학(8) +2 14.02.02 656 8 13쪽
16 입학(7) +2 14.02.02 490 8 8쪽
15 입학(6) +2 14.01.24 412 10 11쪽
14 입학(5) +2 14.01.22 701 8 8쪽
13 입학(4) +2 14.01.22 663 13 9쪽
12 입학(3) +4 14.01.22 884 15 10쪽
11 입학(2) +4 14.01.22 733 12 11쪽
10 입학(1) +4 14.01.22 607 15 6쪽
9 만남(5) +4 14.01.22 695 17 7쪽
8 만남(4) +4 14.01.22 728 17 8쪽
7 만남(3) +4 14.01.22 721 15 5쪽
6 만남(2) +6 14.01.22 839 19 11쪽
5 만남 +2 14.01.22 1,142 28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