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상흔의 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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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최근연재일 :
2023.02.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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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9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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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6화_ 거점 투입

DUMMY

동트 기 전부터 시작된 설표 군단의 상승 행군은 동이 트기 시작하자 경이로운 자연 관경으로 탈바꿈 되었다.

1만의 무장한 월영군이 오열을 완벽하게 맞춘 채 일정한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고, 각종 병기구로 무장된 병사들 머리 위로 햇빛이 비치자, 마치 거대한 강물이 물비늘을 일으키며 흘러가는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끊임없이 병사들이 강물이 되어 흘러갔지만, 그 수원인 사령부 연병장에는 아직도 출발하지 못한 설표 군단 병력들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카니엘은 연병장 한켠에 군장을 내려 놓고는 아침부터 부동 자세로 서있는 설표 부대원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보았다.

자신도 저 오열에 끼여 있을 수 있다면, 적어도 옆에서 깐죽거리는 행정병의 말 따위는 듣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여.. 잠정 후보 3위. 이번 작전 이후에는 2위로 올라서는거야?”


“헛소리 좀 그만해. 가끔 떠도는 소문일 뿐이잖아.”


“잘해보라고. 그래서 제발 날 여기서 탈출시켜 줘.”


“에스트.. 좀!”


하루 아침에 퍼진 벨로나 단장의 연애 소문. 그 소문의 시작점이 아닐까 의심이 되는 에스트가 카니엘 근처를 날파리처럼 맴돌고 있었다.


일단 평소의 벨로나 행실로는 연애라는 단어가 상존할 수 없기에 염문이 만들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한번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 모든 월영군이 아침, 점심, 저녁 인사 대신 그간 수정된 소문을 이야기 할 정도로 뜨거운 주제가 되곤 했다.


그러나 이렇게 공공연하게, 그리고 연인 후보자라는 명단이 포함 된 소문이 퍼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고, 그 후보자 중 카니엘이 3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에스트의 말이었다.


“야.. 생각해보니 아무리 네가 노력해도 1위 자리는 힘들긴 하겠다.”


“······”


“피를로니아 부단장이라니, 적수가 너무 쎄잖아. 안그래?”


벨로나 단장보다 4살 위긴 했지만, 그녀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자.

그나마 비슷한 계급에서 가장 나이 차가 적어 항상 입방아에 오르긴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벨로나의 흑표 군단 귀환 요청 공문이 사실은 먼곳으로 떠나보낸 애인을 향한 그리움의 표현이었다는 내용으로 포장되어 그를 부동의 1위로 만들고 있었다.


“2위인 세드릭 단장도 1위한테는 안되겠네. 그러니 너무 기죽지 말자 카니엘.”


“그냥... 단장님과 업무적으로 만난 빈도수 순서일거라고.."


그 뒤 순위는 카니엘의 말대로 사실상 억측에 불과했다. 원체 사적인 만남이 없는 벨로나였기 때문에 공적인 자리에서의 만남이 잦았던 이들이 순위에 오른 상태였고, 그래서인지 인형 처분과 관련해서 항상 독대 보고를 했던 카니엘이 3위에 위치해 있었다.


“그치만.. 그치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네가 왜 부인솔자로 같이 가는지 모르겠는걸.”


일부러 엥엥거리는 목소리를 내는 에스트에게 주먹이 나가지 않았던 것은 카니엘도 그 명령이 이해가 가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귀하가 검을 잡아야 할 때면, 제가 옆에 있겠습니다.’


그것이 이런 의미였을까?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던 카니엘의 시야에 사령부에서 걸어 나오는 벨로나 단장의 모습이 들어왔다. 전투를 위한 여정은 아니었기에 그녀는 찰갑 형식의 상판 갑옷에 목을 보호하는 경갑만 착용한 채였고, 몸에 딱맞는 바지에 무릎까지 오는 연갈색 가죽 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리고 허리춤에는 늑대털로 된 방한용 두건을 말아 묶고, 주검인 한 자루 월첨검과 단검 두 자루를 찬 채였고, 그렇게 떠날 준비를 모두 마친듯한 벨로나는 주변을 둘러보다 카니엘을 발견하자 손짓을 했다.


“가랏! 3호! 조심히 다녀오고, 무슨일 있음 꼭 같이 공유하기!”


“아. 시끄러워 좀!”


카니엘은 처음으로 인형이외 사람에게 칼을 뽑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그렇게 부인솔자로서 벨로나와의 여정을 시작했다.



월영시는 외각 성벽에 전투사제를 배치하여 그들의 마력 감지 능력으로 인형의 침입을 사전에 감지하는 방어 체계를 운용했다.

‘취약시점 거점 방어’는 이러한 마력 감지와 더불어 수색대를 활용하는 방법으로 감지만으로 그치지 않고 즉각적인 적 분쇄를 목표로 했다. 따라서 빠른 기동을 위해서는 상승 행군 기간동안 수색대가 머무를 소초가 필요 했고, 수색대는 주로 북쪽 국경선 방면의 4개의 소초를 거점으로 활용했다.

그리고 이러한 각 소초까지 수색대를 안내하는 것이 인솔자의 역할이었고, 벨로나와 카니엘은 인솔자로서 수색대 1개 중대와 거점 방어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4개의 소초가 월영시 북쪽 외곽 지역을 모두 담당해야 했음으로 서북쪽에 위치한 1소초에서 최종 목적지인 동북쪽 4소초까지의 거리는 거의 월영시 외곽 둘레 절반에 이르렀다. 때문에 정오께 1소초에 도착을 한 뒤, 신체 향상을 2번이나 하면서까지 빠르게 이동했음에도 4소초로 향할 때는 이미 해가 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동거리도 거리였지만 앞선 2번의 신체향상으로 마지막 투입조는 이미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고, 땅거미까지 내리자 그들의 경계 태세는 급속도로 흐트러졌다. 그렇게 눈으로 인형을 감지하기 힘든 상황이 되자, 자연스레 사제의 마력 감지에 의지하게 되었고, 모두는 앞사람의 발걸음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자신의 거친 호흡만을 신경 쓰고 있었다.


그때, 최선두에 있던 벨로나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자세를 낮췄다.

깜짝 놀란 수색대원들은 뒤늦게 긴장을 하며 주위를 살폈으나 이동이 중지된 이유를 단번에 찾긴 힘들었다. 벨로나 바로 뒤에 위치해 그녀의 시선을 쫓을 수 있었던 카니엘 또한 특별한 움직임을 발견 하지 못한 건 마차가지였다. 그러다 벨로나가 천천히 손을 들어 한 방향을 가리켰고, 그때서야 저멀리 수색로 방책 위에서 느릿하게 움직이는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방랑자’였다.


복잡한 사고 체계가 이식되지 않아, 단순한 목표만 입력 된채 움직이는 인형. 주변 환경에 맞춰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이 거의 없어 위험도는 낮았지만, 동시에 격정적인 마력 움직임도 없어 마력 감지가 잘 되지 않는 존재였다.


투입로를 따라 일렬로 줄지어 이동했던터라, 벨로나 다음으로 인형에 가까운 것은 카니엘이었다. 그리고 방랑자는 정처 없이 돌아다닐 뿐, 다른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때문에 카니엘은 당연히 자신이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오른손으로는 검 손잡이를 붙잡고, 왼손으로는 신체향상 마법구슬 즉, 신향구를 꺼내어 체흡 준비를 마친 카니엘은 벨로나의 명령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그러나 카니엘과 눈이 마주친 벨로나는 검을 쥔 그의 손을 붙잡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더니 누가 뭐라 할 틈도없이 투입로 방책 위로 올라서더니 가볍게 내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마치 사슴이 풀떡 뛰듯이 방책 이곳 저곳을 밟으며 소리 없이 이동한 그녀의 실루엣은 방랑자의 뒤편에서 갑자기 속도를 냈다. 그때서야 눈치를 챈 그 인형이 뒤늦게 손을 내뻗었지만 그것은 너무 늦은 뒤였다.

돌격 속도와 함께 내뻗친 벨로나의 검은 사선으로 솟구친 뒤 그대로 횡으로 그어졌고, 그러자 땅거미가 내린 회색빛 하늘에 먹물이 떨어지듯 검은 비가 후두둑 떨어졌다.


신체 향상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에 너무나 간결하면서도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돌아오는 발걸음 또한 인형을 처리한 뒤라기보다 길가에 떨어진 도토리를 줍고 오는 것 마냥 가벼웠다.


“이동 재개하겠습니다.”


수색대가 모여있는 투입로에 도착한 벨로나는 검에 묻은 인형의 피를 한번에 털어내며 명령을 내렸다.

그 깔끔한 대처에 모두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운 채 이동을 재개했으나, 이상하게도 카니엘은 아직도 검 손잡이를 강하게 붙잡고 있는 자신의 오른손을 물끄러미 보게 되는 것이었다.


///////////////////////


“고생하셨습니다. 불침번 초번초를 제외하고 모두 휴식을 취하시기 바라며, 이 시간부로 모든 명령 권한은 시거드 4소초장에게 맡기겠습니다.”


해가 완전히 진 뒤에서야 마침내 소초에 도착한 벨로나는 그렇게 명령함으로 인솔자로서의 임무를 마쳤다. 그러자 수색대원 모두는 소초 앞에 군장을 내려 놓고 잠시 숨을 돌렸고, 카니엘 또한 오랜만에 방문한 수색 소초를 올려다 보며, 자리에 주저 앉았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한동으로 된 소초 건물은 애초에 공격이나 방어 목적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얼핏 보면 숙소와 같은 느낌이었고, 실제로도 수색 대원들의 생활 공간 이외 특별한 장치나 시설은 없긴 했다.


“단장님, 이제 저희한테 맡기시고 어서 쉬어보십시요. 마법 축적구를 이용해서 물도 데워 놓을 테니 세면도 하시구요.”


덩치가 크고 덥숙한 수염을 기른 시거드 이십인장, 현재는 4소초장은 군장을 아직 멘 채로 벨로나에 다가가 그렇게 제안을 했다.


“어짜피 저희는 내일 날이 밝는대로 떠날 겁니다. 그러니 부하들 먼저 휴식을 취하게 하십시요. 그 뒤에 개인 세면을 하던지 하겠습니다.”


“아이참. 사제들을 설득해서 마법 축적구 사용하게 해준게 누굽니까? 이 겨울날 따뜻한 물로 샤워 하는 기쁨을 제일 먼저 누려 보셔야지요.”


“이래뵈도 군단장 이전에 여자인지라 씻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입니다. 맘편히, 그리고 깨끗하게 씻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으하하핫. 잘 알겠습니다, 단장님. 그럼 머무실 방만 먼저 정리토록 하겠습니다.”


서스럼없는 벨로나의 말에 시거드는 호탕하게 웃고서는 짧막 짧막한 명령을 여기저기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뒤를 따라 벨로나 또한 경갑을 벗어 옆구리에 끼며, 소초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였다.


“고생하셨습니다, 카니엘. 내일도 바삐 움직여야 하니 어서 쉬어보도록 하지요.”


고개를 돌려 짧막한 인사를 하는 벨로나의 모습에 카니엘은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복수의 화신, 루진의 여왕이라는 소문과는 사뭇 다른 그녀의 모습에 잠시 적응이 안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곧 화법만 상황에 맞게 바뀌었지 본질적인 그녀의 모습은 변함이 없음을 깨달았다.


예의 바르며, 상대를 배려할 줄 알면서도 지킬 것은 지키는 그런 사람.


그래서인지 벨로나와 오랫동안 함께한 선임들이 종종 했던 말이 이제는 이해가 되는 카니엘 이었다.


완벽한 동반자. 단, 월첨검이 아닌 부엌칼만 쥐게 할 수 있다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카니엘은 문득 자신이 어쩌다 이런 생각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것이었다. 그러다 그 원인이 아침부터 쓸데 없는 소리를 해댄 에스트 때문이라 단정 짓고는 그를 저주하며 자신도 서둘러 소초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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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장 - 효시(嚆矢)_4화_구금소 (2) 20.06.02 60 3 7쪽
31 3장 - 효시(嚆矢)_4화_구금소 (1) 20.06.02 65 3 9쪽
30 3장 - 효시(嚆矢)_3화_만인의 적이 지나가는 길(3.끝) +2 20.06.01 64 3 9쪽
29 3장 - 효시(嚆矢)_3화_만인의 적이 지나가는 길(2) 20.06.01 64 3 11쪽
28 3장 - 효시(嚆矢)_3화_만인의 적이 지나가는 길(1) +2 20.05.31 68 4 8쪽
27 3장 - 효시(嚆矢)_2화_하늘층 회의(2) +1 20.05.29 74 4 12쪽
26 3장 - 효시(嚆矢)_2화_하늘층 회의(1) 20.05.29 76 4 7쪽
25 3장 - 효시(嚆矢)_1화_무언 마법사의 조우 20.05.28 80 4 10쪽
24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끝) 20.05.28 84 3 11쪽
23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4) +1 20.05.25 90 5 10쪽
22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3) 20.05.25 88 4 9쪽
21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2) +2 20.05.22 92 6 7쪽
20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1) 20.05.22 99 5 8쪽
19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7화_ 별빛과 망루(2) 20.05.21 112 5 10쪽
18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7화_ 별빛과 망루(1) +1 20.05.21 106 7 7쪽
»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6화_ 거점 투입 20.05.19 118 5 11쪽
16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5화_담소 (談笑) +1 20.05.18 134 6 10쪽
15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4화_월몰 기도식 20.05.18 123 6 9쪽
14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3화_스승과 제자(2) 20.05.16 134 5 10쪽
13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3화_스승과 제자 20.05.15 178 8 9쪽
12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2화_흠결 20.05.15 178 6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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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장 - 악몽(5) +2 20.05.12 403 1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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