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상흔의 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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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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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9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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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 효시(嚆矢)_2화_하늘층 회의(2)

DUMMY

무혼 반란 직전의 월연방국.

일리오스 제국의 마지막 침략을 막아내고, 본격적으로 체제를 확립해 나가는 과정에서 트리스트란 사제가 들어왔었다. 처음에는 단지 재빠른 업무 처리 능력을 지닌 사제란 평가를 받던 인물이었으나 그가 두각을 띈 것은 월영군 체제 개편 업무를 맡으면서 였다.

지금에 비하면 형편 없는 수준의 각인진을 완벽하게 체계화 시키고, 신체향상 구슬을 도입해 마법사 없이도 신체향상이 가능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유지되는 월영군 체제의 근간을 짧은 시간내 완성을 시킨 것이었다.


그 업적은 무혼 반란 때, 자칫 존명을 달리할 뻔한 국가를 구해낸 기반이 되었다고 평가 되어, 트리스트는 들어온지 6년 만에 정보부국장이라는, 어쩌면 벨로나가 월영군 단장 자리를 차지한 것 보다 더 파격적인 승진을 이뤄냈다.


그렇게 모두가 칭찬만을 늘어 놓으며 트리스트의 고위 사제 임명을 축하 할 때, 샤즐 노리탄은 그러지 못했다.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트리스터라는 괴물 같은 사제가 왜 월연방국이 세워지기 이전부터 나타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점을 가진 채 의심해 왔었다. 그리고 그 의심의 끝자락에는 항상 그가 완벽한 제정론자가 아니라는 점에 있었다.


그때의 직감이 샤즐 노리탄로 하여금 이 상황이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제정론자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동시에 벨로나를 처형, 강등, 추방 등의 징벌에 대해 열띤 논의만 하고 있었다. 샤즐 노리탄은 이러한 의견 분열 속에서 만장일치로만 이루어지는 고위사제 회의가 아무런 결론도 못내릴 것이라 쉽게 예측했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가장 이익을 볼 자는 트리스트라 생각했다.


“강등이 답이라니까. 벨로나 같은 인재를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깝지 않소!”


“어허. 그렇다면 제정론이 그토록 가벼운 것인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똑같은 의견을 두 번이상 듣게 되자 샤즐 노리탄은 참지 못하고 일어섰다.


“이런 탁상공론을 펼칠 것이 아니외다. 일단 이번 모든 일이 벨로나로부터 시작된 일이니 그녀를 심문을 한 이후에, 형벌을 결정하는 것도 늦지 않소. 문제는 벨로나 단장을 체포함에서 생긴 월영군내 혼란이오.”


병부사가 갑작스럽게 외치자 모든 사제들은 일제히 한던 말을 중단하고 그의 말에 집중했다.


“알다시피 벨로나는 우리 월연방국의 총사령관이자, 월영시의 월영군의 단장을 맡을 만큼 위대한 인물이었소. 하지만 그만큼 월영군이 그녀를 의지했던 것이 컸던 바, 지금 군안은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일 것이오. 우선 그들을 안정화하고 명령 체계를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오만.”


“나 또한 샤즐 사제의 말에 동의하오. 그리고 경솔한 말로 회의장을 소란스럽게 한점 사죄하지. 해당 안건에 대해서 병부사의 의견을 우선적으로 듣고 싶소만.”


다름 아닌 트리스트가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자 일종의 도발로 받아들인 샤즐이었고, 그래서 아낌없이 공격을 퍼부어주기로 했다.


“지금 당장 급한건 월영시에 남아있는 흑표 군단을 누가 이끄냐는 거겠지. 누구 덕분에 부단장 자리마저 공석이니. 우선 병부사에서 통솔권을 갖도록 하겠소. 그나마 사제들 중에 군과 밀접한 부서이니 월영군 또한 반발은 심하지 않겠지. 이후 검치호 군단이 하강 행군 이후 복귀하는 즉시 월영시 방위는 다시 검치호 군단에게 위임토록 하고, 최고 군단장 자리는 12개 군단장을 후보로, 흑표 군단의 경우 피롤로니아 부단장을 포함해서 적임자를 검토하도록 하겠소.”


월영군을 이용하여 그 어떤 물리적인 사태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는 방법이었고, 샤즐은 속으로 트리스트에게 한방 먹였다고 생각했다.


“좋은 방안이군. 정보부에서는 찬성이오.”


그러나 트리스트는 제대로 듣고 말을 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재빨리 찬성을 했고, 때문에 샤즐은 당황과 동시에 짜증스러움을 느꼈다. 벨로나와 접촉해 군을 이용해서 무슨 짓을 하려는 자의 행동은 아니었기 때문에 되려 그에게 다른 계획이 있는지 불안해진 샤즐 노리탄은 또 다른 공격 수단을 던져 보기로 했다.


“아. 한가지 더, 나, 병부사 샤즐 노리탄은 벨로나 세라트너의 감시 및 일시적인 월영군 명령 체계 양도를 위하여 병부사의 권한으로 주어질 수 있는 최대 규모의 야별사를 이끌고 싶으니, 그 임명권을 허락해 주시오.”


병부사의 자격으로 움직일 수 있는 야별사는 20명. 진월대를 수호하는 최후의 병사들이라고 자부하는 야별사 총원이 100명인 점을 감안할 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치였다.


“정보부는 병부사의 두 가지 제안 모두 동의하는 바이오.”


또 다시 가장 먼저 트리스트가 동의 의견을 내자, 오기가 생긴 샤즐이었다. 만장일치로 자신의 의견이 동의 되는 가운데, 샤즐은 트리스트가 꾸미는 그 어떤 일이든 막아내고, 기회가 되면 직접적인 압박까지 하겠다는 생각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럼, 우선적으로 야별사들 모집부터 시작 하겠소.”


그런 그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트리스트는 화로의 불길만 주시하고 있었고, 샤즐 노리탄은 그 말을 남긴 채 폭풍처럼 회의장에서 나갔다.


/////////////////////////


무언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페니탈은 새삼스럽게 미지의 두려움, 혹은 공포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인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얼마나 무서운지 몸으로 철저하게 느끼고 있었다.

샤즐의 집무실에서 고위사제 회의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던 페니탈은 샤즐이 돌아오자마자 자신은 잘 알지 못하는 마법 능력으로 온갖 분노를 표현 하는 것에 기겁을 하게된 것이었다.


“트리스트...”


샤즐 노리탄은 낮으막하게 트리스트 사제의 이름을 부르며 공기를 팽창과 수축시키기를 반복했고, 그 때마다 들리는 굉음과 바람으로 페니탈은 자신의 귀가 찢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완벽하게 가지지 못한 그 섬세한 마법능력을 보면서, 페니탈은 과연 병부사의 최고자리에 있는 사제라고 새삼스럽게 느꼈다.


“왜.. 그러십니까, 스승님?”


씩씩거리는 숨을 고르느라 잠시 멈추었던 샤즐을 향해 페니탈은 한 참 뒤에야 그렇게 물어볼 수 있었다.


“뭔가가 있어.. 항상 그렇게 생각을 해왔었지. 항상...”


“무엇이 말입니까?”


혼잣말 하는 샤즐을 향해서 페니탈이 한 번 더 묻자 그때서야 샤즐이 고개를 돌려 페니탈을 바라보았다.


“트리스트를 두고 하는 말이다.”

처음보다는 나아졌지만, 분노가 담겨있는 채로 샤즐이 답했다.


“고위사제회의에서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암.. 있다마다. 트리스트가 제정론에 직격탄을 날렸지. 벨로나를 두고 우리에게 이렇게 묻더군. 제정론대로 처형할 것이냐? 그게 효율적인 방안이겠느냐라고. 제기랄. 제정론은 제정론이야. 양보 따위는...”


“...어려운 결정이군요.”


페니탈에게는 원칙이냐, 아니면 타협이냐. 이 두 가지 싸움으로 보였고, 어느 한 결정도 쉽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처형하지 않는다면 하나의 예외가 생기는 것이었고, 예외가 생기면 다른 예외도 생겨 그렇게 제정론은 분열될 것이다. 그러나 처형한다면, 군부의 혼란과 전선의 혼란, 나아가 국정의 혼란까지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아는 사람이다, 트리스트는..”


“예?”

뜬금없는 말에 페니탈은 그렇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트리스트가 그렇게 묻더군. 세상의 변화하는 힘을 막는 방법 자체를 검토해야할 때가 아니냐고. 제기랄. 백번 옳은 말이지. 벨로나가 시작일 뿐, 이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야. 그런데 그 첫 단추를 끼우는 시점에 트리스트란 자식이 있다는게 문제인거다. 마치.. 이런 시작을 기다렸다는 듯이 세력 싸움을 걸고 있어.”


“세력.. 싸움이라니요?”


“당연히 제정론에 대한 도전이지. 왜냐고? 제정론은 하나의 지배 수단이니까. 알겠느냐 페니탈? 지배 수단이란 말이다.”


“지배 수단...말입니까?”


여태껏 신앙처럼 제정론을 지키던 샤즐의 입에서 그런 현실적인 말이 나오자 페니탈은 도통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페니탈의 의중을 읽은 샤즐은 한숨을 내쉬면서 몸을 돌려 창문 밖 월영시를 바라보았다.


“제정론의 가장 본질적인 것이 무엇이더냐? 그 규율로 마법 가용자들을 사제로 만든다, 이거 아니더냐. 때마침 구실도 좋았지, 무혼 반란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마법 가용자들을 우리 지배 아래로 놔두면 일리오스 제국에서 있었던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일리오스 제국 일이라니요?”


“지금 내가 이 대륙의 역사까지 다 가르쳐줘야 한다는 것이냐? 당연히 마법사들을 주축으로 한 월연방국 독립 운동을 말하는 것 아니냐.”


그때서야 페니탈은 모든 것을 다 이해했다. 결국.. 샤즐 노리탄이 신념처럼 지키고자 했던 것은 지배수단, 즉 마법에 대한 통제권, 그것이 바로 제정론이었던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세력을 가진 자에 대한 비세력자의 도전이다. 심지어 사랑도 그렇게 해석 할 수 있어. 마음을 얻기 위한 도전. 그것이 세력을 얻기 위한 도전과 무엇이 다르더냐. 아무튼, 내가 보기에 트리스트는 제정론에 대한 도전을 원하는 듯 보인다. 물론 놈 뒤에 무엇이 있는지, 그 꿍꿍이를 모르겠지만, 그것만은 확실해. 그런데 머저리 같은 고위 사제들은 그 큰 움직임을 읽지 못하고, 서로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눈앞 문제만 해결하려고 난리를 벌이고 있지. 빌어먹을. 하필 꺼내든 카드가 벨로나 세라트너라니... 가장 현란한 눈속임 아닌가.”


“.....”

페니탈은 샤즐이 쏟아내는 말에 잠자코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눈속임으로 분열을 시켜놓고, 제정론의 변화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변화하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일이 커지게 될 것이 뻔하지. 어떤 기준으로 마법 가용자들을 가려내야 하지? 그렇게 시작된 변화는 사제들에 대한 마법 가용자들의 반발을 초래할 것이 뻔해. 아니, 당장이라도 초입사제들의 마음에 불 지필 것이 뻔하지. 마법을 사용하면서도 월영군 단장에 오른 예가 있는데 누구든 동요하지 않겠는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확한 말이긴 했다.


“후.....”

샤즐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등을 돌려 다시 페니탈을 바라보았다.


“명심해라, 페니탈. 그의 말대로 변화하는 힘을 제도로 막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 변화하는 힘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를 파악한다면, 제도로서 막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변화하는 힘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분열되고 만다. 기득권에 도전하는 자들의 가장 큰 약점은 분열이다. 힘이 없기에 서로를 믿지 못하는 것이지. 그러니 그들을 모아주는 그 구심체를 제거하면, 충분히 세력을 지켜낼 수 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애써 침착하고 냉정하게 페니탈은 샤즐 노리탄에게 물었다.


“야별사를 동원했다. 총 20명. 그 중 대부분을 월영군 사령부내로 보내었다. 급진적인 변화를 꾀한다면, 군부 장악이 가장 큰 목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지. 따라서 나 또한 당분간 월영군 사령부에 머무를 생각이니 그렇게 알고, 그리고 아마 내일 벨로나에 대한 2차 심문이 있을 것이다. 거기에 나 대신 참석해라. 트리스트도 온다고 하니 혹시 관계를 은폐하려거나 한다면 야별사를 통해 바로 보고 될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스승님. 그럼 곧바로 시행 하겠습니다.”


페니탈이 그렇게 말하자 샤즐은 고개를 끄덕이며, 페니탈 보고 물러나라는 신호를 보내었다.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페니탈이 샤즐의 집무실을 빠져나가자, 홀로 남은 샤즐은 숨을 크게 내쉬며 창밖 월영시를 바라보았다.

어둑어둑 지고 있는 노을 하늘이 불길하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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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장 - 효시(嚆矢)_5화_전조_(2) +2 20.06.04 69 4 12쪽
33 3장 - 효시(嚆矢)_5화_전조_(1) 20.06.03 66 3 12쪽
32 3장 - 효시(嚆矢)_4화_구금소 (2) 20.06.02 60 3 7쪽
31 3장 - 효시(嚆矢)_4화_구금소 (1) 20.06.02 65 3 9쪽
30 3장 - 효시(嚆矢)_3화_만인의 적이 지나가는 길(3.끝) +2 20.06.01 63 3 9쪽
29 3장 - 효시(嚆矢)_3화_만인의 적이 지나가는 길(2) 20.06.01 64 3 11쪽
28 3장 - 효시(嚆矢)_3화_만인의 적이 지나가는 길(1) +2 20.05.31 68 4 8쪽
» 3장 - 효시(嚆矢)_2화_하늘층 회의(2) +1 20.05.29 74 4 12쪽
26 3장 - 효시(嚆矢)_2화_하늘층 회의(1) 20.05.29 75 4 7쪽
25 3장 - 효시(嚆矢)_1화_무언 마법사의 조우 20.05.28 79 4 10쪽
24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끝) 20.05.28 84 3 11쪽
23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4) +1 20.05.25 90 5 10쪽
22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3) 20.05.25 88 4 9쪽
21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2) +2 20.05.22 92 6 7쪽
20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1) 20.05.22 99 5 8쪽
19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7화_ 별빛과 망루(2) 20.05.21 111 5 10쪽
18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7화_ 별빛과 망루(1) +1 20.05.21 106 7 7쪽
17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6화_ 거점 투입 20.05.19 117 5 11쪽
16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5화_담소 (談笑) +1 20.05.18 134 6 10쪽
15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4화_월몰 기도식 20.05.18 123 6 9쪽
14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3화_스승과 제자(2) 20.05.16 134 5 10쪽
13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3화_스승과 제자 20.05.15 178 8 9쪽
12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2화_흠결 20.05.15 178 6 7쪽
11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1화_만인의 죄인 20.05.14 284 7 12쪽
10 1장 - 악몽(9) 20.05.14 250 6 12쪽
9 1장 - 악몽(8) 20.05.13 261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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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장 - 악몽(6) 20.05.12 302 7 7쪽
6 1장 - 악몽(5) +2 20.05.12 403 1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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