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상흔의 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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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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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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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7장 -조우_ 1화_ 기억 속의 만남(1)

DUMMY

어둠속에서 한가지 물체를 주시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물체가 어둠에 동화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졸린 상태에서 이런 현상은 빈번히 발생했고, 따라서 몇일 간의 살인적인 행군 뒤, 불침번을 서던 카니엘의 시야에서 벨로나의 모습이 어둠속에서 사라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저.... 벨로나 단장님?”


일행의 처지상 불을 피우지 못한 상황이었고,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도 많아 단번에 사라진 벨로나의 행방을 찾기 어려워 가슴이 덜컥하던 찰나였다.


“왜 그러십니까, 카니엘?”


그러나 다행히도 벨로나의 대답 덕분에 그녀의 위치를 찾은 카니엘은 안도감과 함께 죄송한 마음으로 재빨리 사과를 건네야 했다.


“아닙니다. 잠시 단장님이 자리를 뜨신 줄 알았습니다. 수면 중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피곤하신 모양이군요. 어짜피 다음 불침번이 제 차례이기도 하니, 교대해 드릴까요?”


“감히 어떻게 그럴수 있겠습니까, 단장님. 오히려 제가 단장님 차례까지 불침번을 서야하는건 아닌지 생각하는데...”


“같은 도망자 신분인데 그런 배려는 불요 합니다. 게다각 머리가 좀 복잡하여 잠이 오지 않던 참이라 지금 교대해도 크게 상관없습니다.”


“아.. 그렇다면 그럼 잠시 이야기를 나눠보는건 어떠신가요?”


벨로나의 말을 거듭 사양하기 애매했던 카니엘은 절충안을 냈고, 벨로나는 행동으로서 그에 대한 대답을 해주었다.

그렇게 벨로나는 대화 소리를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원래 자리에서 일어나 카니엘 옆에 앉았고, 그 이유를 알턱이 없는 카니엘은 갑작스러운 벨로나의 그 행동에 당황하고 말았다.


“······”


고고한 늑대가 사람의 모습을 하면 이러한 느낌일까?


늑대털로 된 두건을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그 사이로 드러난 그녀의 오똑한 코와 날카로운 눈매는 달빛을 받아 충분히 고혹스러웠다.


“특별히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벨로나가 나직히 물어오자, 카니엘은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머리속에 있던 평이한 질문을 꺼내었다.


“아, 저희 최종 목적지가 카릿치오스 지방에 위치한 어떤 고대 도시인 것은 알겠습니다만, 그곳까지 가는 일정이 대략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대로 동쪽으로 이동해 렌소 협곡을 지나 도시 연합의 최북단 도시, 노빌리스크로 향할 예정입니다. 그 곳에서 카릿치오스 지방까지 내려갈 채비를 하는 것이 현재까지의 계획입니다.”


“도시 연합 국경선을 넘더라도 큰 일은 없겠지요?”


월 연방국을 한번도 벗어난적이 없는 카니엘로서는 국경선 넘어는 미지의 세계인지라 걱정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월영군이 쫓아올 수 없으니 오히려 더 안전할 겁니다. 게다가 노빌리스크 도시 위치가 일리오스 제국 국경과도 가까워 별의 별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희 같이 신분이 불확실한 사람들에 대한 제재도 없다고 하여,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늘 그렇듯 필요 이상으로 완벽한 벨로나의 대답에 카니엘은 다음 이어갈 말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침묵의 시간이 이어지려든 찰나, 고개를 들어 달빛과 별빛을 한번 바라본 카니엘이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8소초 망루에서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고, 그래서인지 조금더 서스럼 없이 벨로나에게 다가가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 그였다.


“실례되는 질문일 수 있지만.. 단장님께서는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잠을 못 이루셨던 겁니까?”


“······”


벨로나의 즉각적인 대답이 이어지지 않자, 역시나 주제넘는 질문이었다고 생각한 카니엘이었다. 그래서 재빨리 벨로나의 표정을 살폈으나, 애매한 미소를 짓고 있을 뿐 별다른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그녀는 이내 뭔가 결심했다는 듯이 숨을 크게 들여 내쉰 뒤, 말문을 여는 것이었다.


“원래 이런 말은 하는 것은 상관의 도리가 아니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상황을 헤쳐나가지 못할까 두려워 과거의 무게를 되새기는 중이었습니다.”


벨로나의 말에 카니엘은 놀란 눈으로 벨로나를 바라보았다.

가장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내뱉은 그녀는 그러나 카니엘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은채 말을 이어갔다.


“여태껏 제가 월영군 최고 단장이라는 자리에 오르면서 담보로 했던 그 수많은 죽음과 약속들. 그것들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 감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던 카니엘이었다.

아직도 시거든 이십인장의 죽음이 눈에 선선했고, 자신의 계획에 휘말려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소한 벨로나만큼은 그 죽음들 앞에서 떳떳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얼마나 많은 죽음을 등지고 있는지는 몰랐어도, 분명 그 죽음 이상으로 다른 이의 목숨과 삶을 구제해줬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분명 과거에 남은 사람들도 단장님께서 이렇게 고뇌해주시는 것만으로 고맙게 생각할겁니다.”


“그래도 아직 지키지 못한 수많은 약속들이...”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단장님. 스스로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누군가 함께 신경 써줬다는 것으로 충분했으니까요. 예를 들어, 제 각인진 문제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해결할 생각도 못했던 일을 단장님과 함께라서 최소한의 노력은 해봤기에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지 못했어도 만족할 수 있었으니까요.”


바로 오늘 오후에 카니엘의 각인진 부작용에 대해 샤즐에 물었었고, 그로부터 대륙 최고 수준의 실력이 필요하다고 들었기 때문에 그 문제는 당분간 해결하기 힘든 것으로 결론 났었다.


그럼에도 오히려 확실히 결론이 나서 다행이란 생각과 이 결과를 함께해준 벨로나에 대한 고마움이 들었던 것이었다.


“아무튼 단장님께서는 조금 이기적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기적인 마음을 품는 것도 결국 살아남은 자의 권리이니까요.”


“··· 그럼에도 그 약속 또한 잊지 않겠습니다.”


카니엘은 역시나 벨로나답다라고 생각하며 낮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샤즐 사제께서 대륙의 공적도 해결하기 힘들거라 하셨지 않습니까? 그러니 크게 신경 써주시지 않아도..”


“아뇨. 분명 방법이 있을 테니, 그전까지 무탈하시어 제가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 잘 알겠습니다, 단장님. 그리고 약속하니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단장님을 구금소에서 탈출할 때 사령부의 에스트 미호크란 병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대가로 모든 것이 잘되면 보직 이동을 부탁하긴 했었는데 그 약속 또한 큰 문제는 없겠지요?”


심각하게 듣던 벨로나는 이내 미소를 띄우며 잔잔한 웃음소리를 냈고, 카니엘 또한 무거운 분위기를 바꿀 겸 장난스레 건넨 말이었기에 그녀와 함께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카니엘과 얼굴을 마주보며 웃음을 짓던 벨로나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 보았다.


“···저번 망루에서도 그랬고, 당신과 이야기하다 보면 항상 예상 외의 말을 나누게 되는군요.”


“저 또한 불침번 때 나눌법한 이야기는 전투 무용담 정도가 일반적이라 생각했는데, 진솔한 대화를 나눌수 있어 좋았습니다.”


“음? 그런 것을 원하셨다면, 제 미천한 무용담 하나 정도는 드려드릴 시간은 있을 것 같습니다만.”


“정말이십니까?”


갑작스러운 벨로나의 말에 귀가 솔깃해진 카니엘이었다.

다른 월영군과 불침번을 서더라도, 결국 대화 주제는 결국 벨로나 단장에 대한 무용담으로 종결되곤 했는데, 그 본인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니 흥미가 돋은 것이었다.


“기밀을 유지하는 선에서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어진 벨로나의 말에 잠시 고민에 빠진 카니엘이었다.

이보다 화려할 수 없는 벨로나의 전적 가운데 월영군 사이에서 가장 많은 억측과 소문이 존재하는 작전은 두가지 있었다.


그러나 하나는 벨로나 동생의 죽음과 관련한 작전이었기에 감히 입밖으로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았고, 따라서 카니엘의 남은 선택지는 하나였다.


“단장님. 그렇다면 대륙의 공적의 체포 작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어려울 것 전혀 없지요.”


미소와 함께 이어진 벨로나의 대답에 카니엘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이번 기회가 아니면 듣지 못할 그 이야기에 집중키로 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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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2권] 8장 -여정_ 1화_ 수식어 (1) +2 20.09.23 48 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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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2권] 7장 -조우_ 4화_ 전투의 잔향 (2) +2 20.09.15 41 3 10쪽
85 [2권] 7장 -조우_ 4화_ 전투의 잔향 (1) +1 20.09.15 55 2 11쪽
84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7) +1 20.09.11 42 2 8쪽
83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6) +1 20.09.10 43 2 7쪽
82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5) +1 20.09.10 45 2 10쪽
81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4) +1 20.09.03 45 2 8쪽
80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3) +1 20.09.03 38 2 11쪽
79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2) +1 20.09.03 41 2 10쪽
78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1) +1 20.09.03 36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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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2권] 7장 -조우_ 1화_ 기억 속의 만남(3) +1 20.07.29 41 2 7쪽
73 [2권] 7장 -조우_ 1화_ 기억 속의 만남(2) +1 20.07.29 38 2 8쪽
» [2권] 7장 -조우_ 1화_ 기억 속의 만남(1) +1 20.07.28 35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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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2권] 6장 - 변곡점_ 2화_ 창조자와 피조물(3) +1 20.07.16 44 2 10쪽
68 [2권] 6장 - 변곡점_ 2화_ 창조자와 피조물(2) +1 20.07.14 40 2 9쪽
67 [2권] 6장 - 변곡점_ 2화_ 창조자와 피조물(1) +1 20.07.14 43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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