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상흔의 잔향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최근연재일 :
2023.02.28 15:54
연재수 :
182 회
조회수 :
18,333
추천수 :
478
글자수 :
747,868

작성
20.10.15 16:43
조회
59
추천
2
글자
8쪽

[2권] 8장 -여정_ 3화_ 달무리 작전 (1)

DUMMY

월영시의 수많은 별명 가운데 ‘원의 도시’라는 별명이 있었다.


원통형의 진월대를 중심으로 동심원을 그리듯 세워진 건물들. 그리고 도시를 둥글게 두르는 외각 성벽까지.

도시 외관의 주요 요소들이 원형이었기에 붙은 그 별명은 달의 여신의 힘이 충만한 보름달처럼 도시가 번성하길 바랬던 최초 건립자들의 소망이 담겨있었다.


그 소망을 잇기 위해서인지, 외부 침입 관측을 위한 외각숲 벌목 작업 시에도 원 모양이 유지되도록 신경썼고, 그 결과 월영시는 숲과 벌목지로 이뤄진 천연의 원형 테두리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외각 숲에 위치한 벌목지가 ‘원의 도시’의 마지막 원이 되었고, 최극단에 위치한 특성 때문에 ‘달무리’라 부르는 그곳에 바르나프가 서있었다.


월연방국에서 손꼽히는 재산가인 그가 도심에서 벗어나 월영시 최극단을 배회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장면은 아니었지만, 곧 그 이유를 설명해 줄법한 자가 숲속에서 나타났다.


“의원님.. 이라고 부르면 되겠습니까?”


울창한 숲이 이어지다 뜬금없이 나타나는 ‘달무리’ 의 황량함을 아무말 없이 바라보던 바르나프는 그렇게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편하실대로 하십시요, 세드릭 군단장님.”


큰 몸집과 중간만 짧게 남긴 머리 때문에 남성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자를 한번 올려본 바르나프는 이내 고개를 숙이며 목례를 했다.


“군생활을 하면서 당신과 같이 유명한 재력가와 만나게 될 일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군요.”


“이또한 월연방국이 급변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군인이야 명령에만 복종하면 되는 존재라지만, 부디 그 변화의 방향이 올바르길 바라겠습니다.”


어색한 첫 인사와 격식상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서로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한 미묘한 신경전이 펼쳐지는 듯했으나, 대화 상대방이 군인이었기 때문에 그 신경전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래서? 무슨일 때문에 저를 찾으셨습니까?”


“.. 어떻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으나, 저희측 사람들을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할 겸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을 잘못 찾으신 것 같습니다만. 이번 작전의 모든 지휘권은 제가 아니라 어떤 한 사제에게 집중되어 있으니까요.”


그랬다.

이 황량한 공간에서 전혀 다른길을 걷는 두사람이 만나게 된 이유..


아직 세드릭 군단장은 그 이름을 모르는 듯했으나 그 어떤 사제란 다름 아닌 트리스트였고, 그의 주관하에 이곳 ‘달무리’ 에서 군사작전이 벌어지고 있었기에 이 만남이 성사된 것이었다.


물론 민간인인 바르나프가 군사작전에 참여할 이유는 전혀 없어 보이긴 했다.


그러나 무슨 이유 때문인지 트리스트는 이번 작전에 바르나프의 용병들을 투입할 것을 명령했고, 바르나프는 그 책임자의 명분으로서 작전에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명분에 불과 했고, 실제로 바르나프가 위험을 무릎쓰고 작전현장에 직접 참여하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월연방국 고위사제 회의』를 빌미로하는 매복 작전.


이번 작전을 그렇게 요약 가능했고, 그 목표는 아직 온전히 접수하지 못한 월광국의 고위 사제들을 제거하는데 있었다.


즉, 이번 작전의 성공 여부에 따라 월 연방국이 일체주의자 손아귀에 들어갈지가 판가름 되는 것이었고, 바르나프는 그 순간을 직접 눈으로 확인코자 했던 것이었다.


“허허. 아무리 이번 작전을 사제가 지휘한다고해도 단장님께서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적어도 3백명의 인원이 차출되고도 어디에 그들이 배치되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저보단 현황을 잘 아시겠지요.”


바르나프의 볼멘 소리를 들으며, 세드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곧, 자신 또한 바르나프를 통해 확인할 것이 있어 그의 만남 요청에 응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서는 일부 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


“현재 2,000여 명이 역 쐐기 형태로 매복해있고, 용병단은 쐐기 양끝에 위치해 목표물 접근시 퇴로를 닫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뭔가 찝찝한 것이 있는지 뒷말을 흐렸던 세드릭은, 이내 바르나프의 되물음에 말을 이어갔다.


“보병 숫자는 그렇다치더라도 전투 사제 숫자가 턱없이 부족한 점이 의아스럽습니다. 제 이해가 맞다면 목표물은 월광국의 고위 사제들인데 아시다시피, 마법사는 보병과 그 마법사와 동등한 아군 마법사가 있어야 잡을 수 있는법이니까요.”


“··· 고위 사제들을 상대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숫자입니까? 군단장으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마법 전투는 마법사의 능력에 따라 천차만별인지라. 대륙 공적 정도의 마법 실력을 가진이가 있다면 숫자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다만, 평균적인 전투사제 역량을 기준으로 봤을때, 이번 작전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


그 말에 애써 억누르고 있던 불안감이 되살아는 듯했으나, 동시에 그토록 철두철미한 트리스트가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 고려하지 않았을리 없다고 생각한 바르나프였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트리스트의 의중을 파악하기란 불가능했고, 그렇게 머리속이 복잡해질 무렵, 문득 너무나 태연하게 작전의 실패를 말하는 세드릭의 태도가 되려 신경 쓰이는 것이었다.


“뭐.. 작전이 실패한다고 한들 의원님께서 큰 손해가 있으시겠습니까? 용병단보단 주로 월영군이 전면에 나설 테니.”


“..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어떻게 단장님께서는 이번 작전을 지휘하는 자로서 실패에 대해 크게 개이치 않으신 것 같습니다?”


“저는 명령에만 복종하는 군인이니까요. 게다가 사제가 벌이는 일에 괜히 휘말렸다 피해를 본 월영군 사례가 유명하니 조심할 수밖에요.”


그의 마지막 말에 바르나프는 뒤늦게서야 세드릭이 순순히 이 만남에 응해준 이유를 파악했다.

그리고는 지금 상황에서 굳이 벨로나의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추측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사건이긴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웠던터라 더욱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남아있는 사람이라도 떠난 자의 몫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남은 자가 떠난 자의 이상향을 따르는 것만큼 그 사람을 위해주는 것도 없겠지요.”


“······”


순간, 빈 공터를 따라 늦겨울 추위를 간직한 바람이 두사람을 가르며 무거운 침묵을 끌고왔다.


그 사이 바르나프는 예상외로 날카로운 세드릭의 말에 대응하기 위해서 에스트란 자가 알려줬던 정보 몇 가지를 떠올려야 했다.


‘세드릭 단장은 벨로나와 직접 만났으며, 그녀의 생존 사실을 알기 때문에 흑표 군단의 임시 단장으로 있길 자처했다.’


‘자처해서 일을 벌리는 성격은 아니지만, 맡은바 임무는 반드시 해내는 사람이다.’


그런 사실들이 떠오르자 문득 그가 벨로나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혹시 어떤 임무를 부여받은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 바르나프였다.


“혹시.. 무슨 이야기를 들으신 것이 있습니까?”


그 물음에 세드릭은 뜬금없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는 것이었다.


“군인에게 이야기가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계속 말씀드리는 것 같은데 군인에게 중요한 것은 명령밖에 없습니다.”


그 때였다.

그가 말하는 명령이라는 것이 누구의 명령인지 물어보려던 찰나, 어디선가 희미한 뿔피리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이런..실례하겠습니다, 의원님. 아무래도 작전이 시작될 모양이네요.”


그 말과 함께 다시금 숲속으로 성큼 성큼 돌아가는 세드릭의 뒷모습을 바르나프는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깊은 상흔의 잔향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5 [2권] 8장 -여정_ 3화_ 달무리 작전 (2) +1 20.10.19 56 2 7쪽
» [2권] 8장 -여정_ 3화_ 달무리 작전 (1) +1 20.10.15 60 2 8쪽
93 [2권] 8장 -여정_ 2화_ 암행(暗行) (3) +2 20.10.07 58 3 8쪽
92 [2권] 8장 -여정_ 2화_ 암행(暗行) (2) +2 20.10.06 59 3 8쪽
91 [2권] 8장 -여정_ 2화_ 암행(暗行) (1) +2 20.10.05 71 3 12쪽
90 [2권] 8장 -여정_ 1화_ 수식어 (3) +1 20.09.29 44 2 11쪽
89 [2권] 8장 -여정_ 1화_ 수식어 (2) +1 20.09.28 40 2 10쪽
88 [2권] 8장 -여정_ 1화_ 수식어 (1) +2 20.09.23 48 3 9쪽
87 [2권] 7장 -조우_ 4화_ 전투의 잔향 (3) +1 20.09.16 63 2 9쪽
86 [2권] 7장 -조우_ 4화_ 전투의 잔향 (2) +2 20.09.15 41 3 10쪽
85 [2권] 7장 -조우_ 4화_ 전투의 잔향 (1) +1 20.09.15 55 2 11쪽
84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7) +1 20.09.11 42 2 8쪽
83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6) +1 20.09.10 43 2 7쪽
82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5) +1 20.09.10 45 2 10쪽
81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 (4) +1 20.09.03 45 2 8쪽
80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3) +1 20.09.03 38 2 11쪽
79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2) +1 20.09.03 41 2 10쪽
78 [2권] 7장 -조우_ 3화_ 렌소협곡 전투(1) +1 20.09.03 36 2 8쪽
77 [2권] 7장 -조우_ 2화_ 신념을 가진 자 (3) +1 20.08.11 38 2 12쪽
76 [2권] 7장 -조우_ 2화_ 신념을 가진 자 (2) +1 20.08.05 42 2 11쪽
75 [2권] 7장 -조우_ 2화_ 신념을 가진 자 (1) +1 20.08.05 39 2 11쪽
74 [2권] 7장 -조우_ 1화_ 기억 속의 만남(3) +1 20.07.29 41 2 7쪽
73 [2권] 7장 -조우_ 1화_ 기억 속의 만남(2) +1 20.07.29 38 2 8쪽
72 [2권] 7장 -조우_ 1화_ 기억 속의 만남(1) +1 20.07.28 35 2 9쪽
71 [2권] 6장 - 변곡점_ 2화_ 창조자와 피조물(5) +1 20.07.24 41 2 7쪽
70 [2권] 6장 - 변곡점_ 2화_ 창조자와 피조물(4) +1 20.07.24 41 2 8쪽
69 [2권] 6장 - 변곡점_ 2화_ 창조자와 피조물(3) +1 20.07.16 44 2 10쪽
68 [2권] 6장 - 변곡점_ 2화_ 창조자와 피조물(2) +1 20.07.14 40 2 9쪽
67 [2권] 6장 - 변곡점_ 2화_ 창조자와 피조물(1) +1 20.07.14 43 2 8쪽
66 [2권] 6장 - 변곡점_ 1화_ 변화의 바람(3) +1 20.07.13 40 2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