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대회(3)
<무림대회(3)>
하림의 첫 비무 상대는 성화권 전이열이란 자로, 하남성내에 있는 군소문파의 소장주였는데, 비무는 싱겁게 끝이 나고 말았다.
전이열이 상대가 적혈마도임을 알고 초반부터 전의를 상실하고 비무를 포기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하림의 비무는 이 같은 현상이 계속되었는데, 세 번째 비무까지 상대의 포기로 부전승으로 올라야했다.
그리고 네 번째 비무차례가 돌아오고 그의 상대로 나선 표화검 손광표라는 점창의 제자가 올라오면서, 드디어 하림도 비무대 단위를 밟아보게 되었다.
“장소협, 반갑소, 점창의 표화검 손광표라고 하오.”
나이는 하림보다 조금더 들어보였으나 이십대를 넘지 않아보였고, 그는 정광이 번뜩이는 눈으로 하림을 향해 포권을 들어보였다.
하림 또한 눈빛을 빛내면서 마주 포권을 하며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점창파 분이시군요.”
“그렇소, 요즘 장소협의 명성이 떠오르는 태양과 같이 천지를 진동하기에 이렇게 친분이라도 쌓아 볼까하고 올라왔소이다.”
“하하...과찬의 말씀이십니다,”
하림은 자신을 배척하는 문파 중에 하나가 점창파로 알고 있었는데, 손광표의 표정과 자세는 한 치의 가식도 보이지 않는 점이 상당한 의외였다.
그러나 다시 손광표를 세세히 훑어보아도 그의 얼굴에서는, 하림에 대한 어떤 열망만 엿 보였을 뿐 비호감같은 어떤 감정들은 들어다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이때 그의 귀를 간지럽히는 가느다란 전음이 들려왔다.
(이 사제, 대사형의 명이다. 그 어떤 수법을 써서라도 저놈에게 부상을 입혀 전력을 떨어트려놓으라는 지시다.)
(허어...사형, 대체 그게 아까부터 무슨 말이오. 어찌 정파의 제자가 입에 담지 못할 말을 서슴지 않는 것이오.)
(이 사제, 이건 대사형의 말이라 전하기는 하는 것이지만, 사실 나도 탐탁지 않다. 하지만 화산에서 이번 일만 잘 성사된다면, 무림맹에서 우리 점창의 위치를 확실하게 책임져 준다 했다는구나.)
(사형,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소, 더욱이 상대는 적혈마도요, 내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소이다.)
(이 사제....그러니까 암수를 쓰라하잖느냐.)
(사형, 실망이오, 어떻게 그런 말을....아무튼 난 할 수 없소.)
(이 사제, 이것이 사부님의 명이라도 거절 할 테냐?)
(헉! 사형, 그것이 사실이오?)
(믿어도 된다, 이미 대사형이 사부님께 받아온 명일지니......)
(............?)
(이 사제, 명심해야할 것이야. 사부님께서 보고 계시다.....)
(..........?)
손광표의 안색이 흑색으로 변해갔다.
하림은 그의 눈길을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단상아래 가까운 곳에 있는 청삼의 삼십대 장한이 눈에 들어왔다.
하림의 선입견 때문인지 그의 안색이 음침하게 비쳐졌다.
하림은 고개를 돌려 손광표를 바라본다.
“손소협, 더 기다려야 합니까?”
“아.........이거 실례가 많았소, 장소협, 사죄의 의미로 일초를 양보 드리겠소.”
“하하.....굳이 사양하지 않겠어요.”
하림은 적아를 서서히 빼들었다.
그리고 손광표를 향해 도를 내뻗었다.
느릿하게 뻗어나간 하림의 도를 손광표가 우측으로 돌면서 그 기류를 손쉽게 파훼하자 하림의 입에서 대소가 터져 나왔다.
“하하하....약속했던 일초요, 자, 손소협 오시오!”
“손에 사정을 두었군요, 감사하오, 그럼 사양하지 않겠소. 하....압!”
그의 손에서 점창파라면 당연히 뻗어 나와야 될 사일검법이 시전 되지 않았다.
대신 부드러운 표화검법이 하림의 전신을 향해 떨어져 내린다.
그 초식은 한없이 부드러웠지만 아무래도 사일검법에는 약간의 손색이 있어 보였다.
점창의 제자라면 당연히 나와야할 사일검법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여제자들 위주로 수련하는 표화검법이 자연스레 흘러나오고 있다?
뭐 표화검법이 안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사일검법에 비하면 한수 아래인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이 사실을 하림은 몰랐었다.
그러나 개방의 운령이 전음을 통해서 손광표라는 인물에 대해 낱낱이 전해왔기 때문에, 현재 손광표가 점창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 자세히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챙!
-챙!
적아와 손광표의 검이 매섭게 부딪혔으나 하림은 시종일관 여유가 있었다.
그들의 검과 도과 스무 합을 넘어갔을 때, 하림의 도가 번개같이 손광표의 목젖 바로 앞에 멈추어 섰다.
“와아아아아.....!”
“적혈마도가 이겼다.”
“마지막 한수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어.....굉장하다!”
“와아아아!”
관중들의 함성이 우뢰와 같이 일어났을 때, 손광표의 안색은 눈에 띠게 어두워졌다.
예상은 했지만 제대로 된 공격한번 해보지 못하고 패해버렸다.
이제는 사문의 징계만 남아 있을 뿐이다.
더욱이 언젠가부터 무섭도록 변해버린 사문의 사람들의 눈초리가, 이제는 노골적으로 자신을 따돌림 시키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이다.
설상가상으로 오늘 전음으로 받은 명령을 귓전으로 흘려버렸으니, 어쩌면 사부의 대노가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는 암암리에 한숨을 내쉬면서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장소협, 역시 명불허전이오, 불초가 한수 잘 배웠습니다.”
“별말씀을...”
하림이 포권으로 인사하자 그도 마주 포권하고 등을 돌려 비무대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올라왔을 때는 활기차게 올라왔었으나 비무대를 내려갈 때는 사뭇 달랐다.
멀어져가는 그의 어깨가 한없이 좁아보였다.
“손소협!”
하림은 그의 등에 대고 조용히 그를 불렀다.
땅위로 막 발을 내려놓던 그가 힘없이 고개를 돌린다.
“아, 무슨 말씀이 더 남아 있소? 장소협!”
“아...그런 건 아니고, 혹시라도 언제든지 힘들다 여겨질 때 날 찾아오실 수 있나요?”
“..........?”
손광표의 눈에 잔 떨림이 일어났다.
그 떨림은 곧 어깨선까지 떨게 만들었고, 하지만 끝내 곧 격동을 참아내면서 그 떨림들은 서서히 사라져 갔다.
그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리고 관중 속으로 사라져 갈 때까지 하림은 그의 등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가 사문의 명대로 암수를 전개할 수 있도록 비무 틈틈이 허점을 노출했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암수를 펼쳐내지 않았었다.
점창파, 이제는 아예 화산파의 주구가 되어 반듯한 젊은 제자를 내칠 것인가?
하림은 말없이 단상을 내려왔다.
관중들은 적혈마도를 연호했지만, 하림은 아무행동도 취하지 않고 자리로 들어가 버렸다.
대회가 열린지 하루가 지나가고 이틀째 오후가 되면서 서서히 강자들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각파의 유망주들과 심산유곡에 파묻혀 지내던 은거기인들의 제자들이 대거 출현하면서 대결의 양상은 추호도 양보 없이 치열하게 맞붙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어느 누구보다 많이 회자되고 있는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하림이었다.
하오문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던 그가, 이제는 어느새 많은 이들이 응원하고 있는 무림의 젊은 영웅으로 부각되고 있었다.
오늘도 칠 인의 도전자들을 무혈로 제압하고 비무대를 내려왔고, 사람들은 그의 비무를 보기위해 어느 조의 비무대 보다도 이조의 비무대를 더 많이 찾아다녔다.
하림은 오늘하루의 비무를 모두 마치고 숙소롤 향해 나갔다.
그가 움직이는 동선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응원하며 뒤따랐고, 그만큼 나가는 속도도 더디고 늦었다.
그러나 하림은 입가에 미소를 잃지 않고 사람들의 성원에 일일이 손을 들어 화답을 하며 비무대에서 멀어져갔다.
바로 그때였다.
-피....쑹!
“앗......! 위험.....!”
많은 사람 틈에서 은빛의 빛이 찰라간 번뜩이며 하림의 후두부를 향해 빛살같이 날았다.
단궁이었다.
잔뜩 힘을 실은 짧은 화살이 하림의 뒤통수로 파고들고, 방금 쏘아져 나온 쪽의 한 무인이 경악성을 발한 것이었다.
-퍼억!
“으음.....!”
“도림.....!”
하림을 향해 거의 박혀들던 화살을 향해 몸을 던지는 팽도림의 어깨에 깊숙이 박혀들었던 것이다.
하림은 대경해서 쓰러지는 팽도림을 안아들고 화살이 날아오는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면포로 얼굴의 반을 가린 흑의인이 다급한 눈빛으로 몸을 돌리는 것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의 두 눈에서 번갯불 같은 신광이 이글거렸다.
“감히.......!”
팽도림을 눕힌 하림이 몸을 띄워 올린다.
-찰칵!
어느새 그의 손에는 도룡비가 요요한 빛을 띠며 살기가 흐르고 있다.
“하아아아압!”
그의 신형이 번개처럼 흑의인의 신형을 막아섰고, 일순간 멈칫거리던 흑의인이 돌연 고개를 좌로 꺾으며 땅위로 쓰러져버렸다.
“헛....!”
하림이 다가서 면포를 잡아채 벗겨버리자, 그자의 입가에 흐르는 새카만 피는, 이미 이자가 독을 씹어 자살을 해버린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숨을 내려 쉬는 하림의 앞으로 포화검 사마갈이 앞으로 나오며 하림을 향해 손을 들었다.
“장소협, 큰일 날 뻔 했군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암습이라니요?”
“혹시 사대협께서 아는 놈입니까?”
“아니오, 알 수 없지요, 하지만 시도하는 수법으로 봐서는 살수들임이 틀림없을 것 같습니다.”
“흐음.....”
“주...주군..괜찮으십니까?”
하림의 앞으로 팽도림이 어깨를 감싸 쥐고 앞으로 나온다.
그의 손가락사이로 흘러내리는 선혈의 색깔이 검은빛을 띠고 있는 것을 보니, 화살에는 이미 독이 발라져 있었던 것 같다.
팽도림의 얼굴 또한 흑색의 빛이 얼핏 띠기 시작한 것으로 봐서, 한시가 급하게 손을 써야 될 것 같았다.
하림은 품에서 청린대두어로 만들어놓은 환단을 꺼내서 팽도림의 입속에 넣어주었다.
“얼른 숙소로 가서 운기 하도록 해. 운령,!”
“예, 공자님!”
인파를 헤치며 개방의 운령이 앞으로 나선다.
“부탁해!”
“염려 놓으십시오, 공자. 가시지요, 팽공자....!”
“죄송합니다. 주군, 못난 꼴을 보여드려서.....”
하림이 고개를 흔들고 눈짓으로 채근하자, 팽도림이 어쩔 수 없이 운령을 따라 몸을 돌린다.
하림은 이미 죽어 있는 살수의 품을 뒤지고 있는 사마갈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품속에서는 단서가 될 아무런 증거들은 나오지 않고 있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의 음성과 온갖 소란스러움 속에서, 유독 그의 귀를 간지럽히는 소리가 나직이 들려온 것은 우연이었다.
(제기랄....실패다. 사 사제, 어서 사부님께 보고해라.)
(예, 사형.....!)
소리가 난 곳으로 급하게 고개를 돌리는 하림의 눈에, 백의를 입은 두 사람이 몸을 날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하림이 곧 몸을 날리려하다가 무엇을 보았는지 그 자리에 우뚝 멈추어 섰다.
‘매화.....? 역시 화산이라는 건가? 후후.....그렇지 가만히 있을 그들이 아니지.....’
급하게 몸을 돌리던 그들의 장삼 옷깃에 수놓아져있던 매화를 하림이 똑똑히 본 것이다.
하림은 아직도 살수의 몸을 뒤지고 있는 사마갈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사대협, 대충하셔도 될 것 같네요.”
“흉수의 정체를 아직 알 수가 없는데 뭔가 짚이는 것이 있는 것이오? 장소협.”
“예, 맞습니다.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대협.”
“아...아....! 장소협과 나 사이에 그 무슨 섭섭한 소리요.”
“하하....어째든 고마워요.”
적혈마도가 암습을 당했다.
무림맹이 오늘 저녁에 저것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사람들은 적혈마도의 맹 입성을 반대하는 자들이 저지른 일이라 떠들고 다녔고, 구대문파와 오대세가는 이에 대해서 입을 꾸욱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저들은 오늘일은 그저 일의 서막을 알리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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