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월장에 돌아오다(2)
<해월장에 돌아오다(2)>
“전호법, 들어오면서 공사가 진행 중인걸 보았죠, 고생이 많았더군요.”
“문주님, 당연히 해야 될 일입니다. 하하....”
전횡은 검은 사각모가 떨리도록 웃었다.
그는 예전보다 많이 밝아져 있었다.
아마 가슴 깊이 내재되어 있던 무거운 짐을 훌훌 벗어버렸으니 어쩌면 그럴 수도....
그는 하림에게 포권을 하며 야윈 얼굴에 웃음을 드러낸다.
원래 웃음이란 단어 자체가 남들 일처럼 생소하던 그가 아니던가?
그가 하림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무한한 존경과 애정이 가득해보였다.
“문주님, 무려 천년입니다, 본문이 이렇게 대오를 갖추는 것이 말입니다. 속하는 요즘 자주 볼을 꼬집어보는 버릇이 생긴 것 같습니다. 믿을 수가 있어야지요, 더욱 고무적인 것은 요즘 본문의 변화에 따른 강호인들의 생각입니다.”
“계속 들어보죠.”
“문주께서 무림대회 무장원을 거두신후, 본문의 명성이 하늘을 찌를 태세로 오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천년 역사동안에 한 번도 없었던 일로 이제는 하오문하면, 모두들 엄지를 치켜 올리고 있는 추세입니다, 문주님.”
“그래요? 나쁜 일은 아니군요. 그것은 전호법이 노력한 결과도 충분히 있으니, 기뻐만 하지 말고 그 기분을 충분히 즐기세요.”
“감사합니다, 문주님, 지금 이곳 해월장 앞에 있는 수향루를 반대쪽으로 이전했습니다.”
“어쩐지 조용하더군.”
하림이 끄덕이는 고개를 본 전횡이 물을 한잔 마시고 계속 말을 이어간다.
“수향루 전각들하고 이곳 해월장의 전각들을 보수하고 여유가 있는 땅에는 전각을 짓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공사기일이 많이 단축될 걸로 사료됩니다.”
“음, 좋아요. 전에 말해두었던 뒷산에 암동들은 그대로 두었지요?”
“이를 말씀이십니까? 커다란 야산이 돌산이라 돌들을 옮겨 경계석을 둘렀으니 이전보다 더욱 은밀하다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잘 됐군요. 그곳은 앞으로도 매우 중요한 수련장이 될 겁니다. 중원 어디를보아도 그런 개인 연무장처럼 만들어진 동굴들은 보기 힘들 거예요. 그리고 가우량?”
뚱뚱한 비돈 가우량이 앞으로 나서며 고개를 숙인다.
“예, 문주님.”
“전에 내가 명했던 일들은?”
가우량은 지금의 실내 기온이 그렇게 덥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이마에서 구슬땀 흘러 내렸다.
“문주님 명대로 강호전역에 수해와 가뭄으로 인한 기근이 있는 곳에는, 무조건 본문의 재물을 풀었습니다. 이것이 실제로 양민들에게 엄청난 도움이 되었고, 조정에서 조차 본문의 협행에 감사를 전해 올 정도였습니다. 구체적인 액수를 전할까요?”
“됐어, 어차피 그런 재물들은 그렇게 쓰이는 것이 당연한 것이야, 잘했군.”
“문주님, 문제는 이제 본문의 곳간이 거의 비어간다는 사실이지요.”
심각하게 말하는 가우량에 비해 하림은 피식 웃었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말하지, 본문은 앞으로 각 문도들에게 개인적으로 상납금을 착취하지 않는다.”
“예? 그럼 이 커다란 문파의 운영은 불가능합니다. 문주님.”
“흥, 가우량. 그렇게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어, 본문은 애초에 하오대제께서 설립하실 적에, 문도들의 상납금으로 운영하라 명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오로지 헐벗고 가난한 사람들을 문도로 받아들여, 비참하게 굶어죽는 아사를 면하고 사람답게 살기위해, 이하오문을 만들었다는 것을 명심해야해.”
가우량의 얼굴에 얼핏 탄복의 빛이 떠올랐다 사라진다.
“문주님, 이제야 어째서 본문의 문주자리가 지금까지 비워져 내려올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갑니다.”
“가우량, 잊지 마라! 본문은 사사로이 문도들에게서 착취하지 않고, 열악한 환경을 가진 직업에서 오는 위험에서까지도 막아주고 보호해야한다는 것을 말이야.”
“옛! 문주님, 명심하겠습니다.”
가우량의 고개가 진심에서 우러난 모습으로 깊이 숙여졌다.
하림은 전면에 앉아있는 봉천검객 명운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명대협, 더 좋아 보이세요.”
“허허....이게 모두 문주님 덕분 아니겠소.”
하림은 두 손을 들어 포권을 한다.
“이곳을 든든하게 지키고 계셔주셔서, 불초가 마음먹고 나다니는 것 아니겠어요. 감사드려요.”
“허허허....그 무슨 겸양의 말을....이미 내 제자들이 문주의 사람들인데 당연한 일이지요.”
“하하....그럼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될 런지요?”
“무슨 부탁이오, 문주?”
호기심은 반백의 무인도 두 눈을 반짝거리게 만든다.
“명대협께서 본문의 무룡대를 이끌어주시지요?”
“무룡대? 못 들어 본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리는 명운성을 바라보며 하림이 웃는다.
“당연하지요, 지금 막 만들어졌으니 아실 턱이 없지요.”
하림은 말을 마치고 전횡등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앞으로 본문은 문도들의 안위만을 위해 움직이는 타격대를 만들 작정이야, 그들의 이름은 하오문 타격전문 무룡대,”
“타격전문 무룡대?”
“무룡대.....?”
한마디씩 읊조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하림이 진지하게 눈빛을 굳힌다.
“예를 들지, 본문의 여문도인 기녀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는 자, 또는 육체를 상하게 하는 자나 목숨을 빼앗는 자, 이런 자들을 목격하거나 해당 당사자인 여문도가 알려온다면 즉시 출동, 범인을 잡아 그에 합당한 금전을 받아내서 일부는 피해 여문도에게 배상하고, 나머지는 본문의 주 수입원으로 삼는다.”
“아......!”
“아....그런...!”
중인들은 하림의 말을 이해하고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그런 치졸하고 나쁜 짓들을 하는 자들이 순순히 재물을 내놓을 리 없지, 하지만 우리가 가진 정보와 관(官)을 이용해서라도 강제로 탈탈 털어버리고, 소문이 돌면, 본문의 문도들을 건드리는 자들이 나타나지 않을 거야.”
“관까지 이용합니까, 문주님?”
전횡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하림에게 묻는다.
“본문의 문도로 관에 진출해 있는 자들이 꽤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닌가요?”
“맞습니다, 더구나 이번 저희들의 선행으로 관에서 보는 시선도 많이 우호적이니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마침, 잘 됐군요. 기녀를 찾아 추잡한 갑질을 하는 자들 중에는 벼슬아치들도 상당히 많을 거예요, 적극 활용한다면 거기서 나오는 수익이 충분할겁니다. 그리고 전에 본문에도 약을 제조하는 약왕단이 존재 한다고요?”
“예, 문주님, 명하신 영단이 오늘 내일 중에 모두 완성될 걸로 보여 집니다.”
하림이 그의 말에 크게 반색한다.
“그래요? 마침 잘되었군요. 자, 그럼, 전호법은 약왕단을 이용해서 제약을 만드는 사업을 추진하세요.”
“제약요? 약장사 말이십니까?”
하림이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요, 작게는 소화제부터 시작해서 크게는 해독약까지, 하류층에서 상류층까지 쓰지 않으면 안 될 효과가 좋은 단약들을 만들어 파는 겁니다. 양민들은 싸게 공급하고 부유층은 비싸게 받아내는 겁니다.”
전횡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하림의 말이 끝나자 바로 묻는다.
“과연 잘될까요? 문주님.”
하림의 얼굴에 미소가 어린다.
“아마 잘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나에겐 아무도 가지지 못한 보물이 있으니까요. 하핫...”
“예....?”
“아무튼 그렇게 추진해서 본문의 운영자금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아셨죠? 가우량?”
“예, 문주님.”
“방금 내가 말한 제약의견을 어떻게 생각해?”
가우량은 하림의 말을 듣고 이마에 땀을 쓸어낸다.
“문주님, 할 수만 있으면 대박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문주님이 가지신 보물이 만약에 영초 같은 것이라면 의도하신대로 이루어지실겁니다, 이 비돈은 확신합니다. 문주님!”
“음...좋군! 자, 그럼, 명대협께서 저의 부탁을 들어주실 차례 같습니다만.....?”
하림의 시선을 받은 명운성이 미소를 떠올렸다.
“문주, 그런 일이라면 오히려 노부가 먼저 부탁을 해야지요, 문주님의 명을 기필코 따르겠습니다.”
마지막에는 그의 고개가 깊이 숙여진다.
흡족한 미소를 띤 하림은 그에게 두 손을 들어 포권을 하고, 명운성의 옆에서 미소 짓고 서있는 설노인을 바라본다.
설노인은 삼비 중 설예주의 조부로 예전 귀영살막의 문주였다.
“설노?”
“예, 주공....!”
그는 하림의 부름에 두 손을 맞잡고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명대협, 아니 이제는 무룡대 노사 명대협과 더불어 설노는 은룡대를 맡아줘야겠어.”
“예, 알겠습니다, 주공.”
그는 잔잔히 미소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하림은 씽긋 웃음을 머금는다.
“설노는 은룡대가 궁금하지 않아?”
“허허허...주공의 명이신데 속하는 따를 뿐이랍니다.”
“하핫, 설노도 참, 은룡대는 일종의 잠행을 전문으로 하는 부대야, 설노의 무공특색을 살려 만든 부대이니 적극적으로 가르쳐봐!”
“아하...그렇군요. 늙은 속하에게 일할 수 있는 힘을 주시니, 역시 주공께서는 저의 은공이 확실하십니다요. 허허....!”
“은룡대는 문도들이 각지에서 보내주는 정보를 바탕으로 사실을 파악하는 한편 상부에서 내려오는 명을 은밀히 수행하는 아주 중요한 단체야.”
“허허....제가 맡기에는 아주 적격이군요.”
주름진 설양의 얼굴이 환하게 밝은 미소가 떠오른다.
하림은 가우량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우량은 무룡대와 은룡대에 적절하게 인원을 배속하고, 전적으로 지원을 하는 것을 소홀히 하면 안 돼. 이 두 곳은 앞으로 본문을 이끌고 나갈 주 특수자원들이니, 인원수에 제한을 두지 말고 자질이 있는 자들은 모두 받도록 해.”
“알겠습니다, 문주님!”
“그리고 내가 전에 얼핏 들은 바로는 본문이 가진 기루와 객잔이, 상당히 많이 있었던 것으로 보았는데, 맞지?”
“예, 좀 많이 있습니다.”
“잘됐군, 그럼 각 분타에 하나 정도씩만 남겨 놓고 나머지는 심성이 좋은 문도들에게 임대를 하는 걸, 적극 생각해 봐.”
“예? 임대요?”
“그래, 문도들도 자신들이 열심히만 한다면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어떤 그런 자신감을 심어 줘야하지 않겠어, 그리고 들어오는 임대료도 본방의 고정 수입원이 될 테니, 굳이 나쁘지 않을 것 같고 말이야.”
“문주님, 장사는 본단의 주 수입원이라 할 수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하림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바로 말을 잇는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연구해서 점차 실행에 옮겨보겠습니다. 문주님.”
가우량이 고개를 크게 숙이고 뒤로 물러난다.
뭔가 달라도 한참 다르다.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자신의 문주는 그 생각을 뒤엎을 정도로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다.
가우량의 입 꼬리가 하늘로 살짝 올라간다.
어쩌면....어쩌면 이제 그동안 펼치지 못했던 하오문의 영광이 드디어 찾아온 것인지도...
광대가 승천하는 기적을 보여주는 가우량의 두 눈이 밝게 빛이 났다.
하림은 전횡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전호법!”
“예, 문주님.”
전횡은 하림을 바라보며 그가 또 무슨 말을 내놓을지 기대에 찬 눈으로 쳐다본다.
“여기 있는 나의 네 분 의형들, 그리고 남궁대형도 본문에 들어 왔으면 싶은데.....?”
“아....문주님의 형님들과 그동안 여러 차례 봐왔는데 역시 비범하신 분들이시더군요, 속하는 크게 반기고 환영합니다, 문주님.”
“좋아요, 그럼 이 자리에서 보직을 정하도록하지, 먼저 가우량은 총관으로 본문의 총괄 제정회계를 맡도록!”
“예, 문주님, 감사합니다.
뜻밖에 자신의 호명에 깜짝 놀랐으나 가우량이 두 손을 맞잡고 흔들었다.
하림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의형들을 쳐다보면 말을 잇는다.
“우선, 네 분 형 중에 성혁 형은 정책을 세우는 군사를 맡아주고, 금성형은 앞으로 늘어날 본문의 사업장을 관리하는 외향대 대주, 복상형은 무룡대 대주를, 무쌍형은 은룡대 대주를 맡도록 해.”
하림의 말이 떨어지자, 네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으로 포권을 한다.
“문주의 명을 받듭니다.”
그들의 웃는 모습에 하림도 마주 포권으로 응수하고 이내 남궁필도를 바라본다.
“대형은 아무래도 전호법아래 모든 것을 총괄하는 하오단의 단주자리를 맡아줘야겠어요.”
“하하하....아우, 아니, 문주는 이형이 노는 꼴은 죽어도 용납이 안 되는 모양이야.”
“하하핫...대형이 절 만난 그 순간부터 이미 정해진 운명 아닐까요?‘
“그런가? 하하하하......!”
두 사람은 이내 두 손을 잡고 크게 웃는다.
남궁필도는 한참을 웃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정색을 한다.
“참, 문주, 큰일 났네...”
“예. 무슨.....?”
“아...글쎄, 이 우형의 부친이 세가로 돌아가지 않고, 굳이 자네를 보고 가겠다고 지금 이곳에 와서 기다리고 있는지 며칠이나 지났다네.”
“예...에? 무슨 일로 그러시는 건지....?”
“글쎄, 나도 잘은 모르네만, 아무튼 예부터 자네에게 호기심이 많았던 분이 아니셨는가.”
“끄응........당연히 만나 봬야겠죠.”
하림은 남궁세가 가주인 남궁일백에게 많은 고마움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오늘의 하림이 있는 것도 그의 도움이 적지 않았다 볼 수 있었다.
그가 남궁필도 뒤에서 물적으로 많은 지원을 해주지 않았던가.
비록 무림맹에서는 보는 눈들이 많아 자세한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는지라, 하림도 언젠가는 필히 고마움을 전할 마음을 지니고 있었으니.....
- 작가의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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