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교혈전(1).
마교혈전(1).
하림의 가벼운 손놀림 한 번에 순식간에 바스라지면서, 무너져 내리는 유체는 가루가 되어 바닥에 흩날린다.
예상하지 못했던 두 사람의 안색은 급변하고, 바닥을 덮은 회색 가루들은 그들의 안색을 당혹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휴우...본의는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구나, 이렇게 된 이상 깨끗하게 보내드려야지, 동대협께서도 이해하시겠지......!”
소접이 희미하게 미소를 짓자, 하림은 손수 동호관의 흔적들을 쓸어 모아 두 손 가득한 가루를 들어올렸다.
-화르르륵......!
그의 손바닥에 화염이 일면서 회색빛 유해가루는 연기가 되어 허공으로 사라졌다.
두 사람은 잠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연기를 바라보다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바닥을 내려다본다.
“아.....있다..!”
조그만 구멍이 바닥에 뚫려있는 것을 확인하고,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빙긋이 미소를 짓는다.
“역시...오라버니 생각이 맞았어요. 저 조그마한 구멍이 밖으로 나가는 기관장치가 맞겠지요?”
“아마도 그렇겠지...!”
하림은 몸을 낮춰서 깊게 뚫린 엄지손가락만한 구멍을 헤집다가 낮선 이물질에 흠칫했다.
“이 구멍 안에 무언가 있는 것 같은데.....?”
“어머....정말요, 얼른 꺼내보세요.”
“잠시만.....!”
하림은 장을 들어 흡자결을 운용하고 가볍게 손을 들어 올린다.
-턱...!
이내 그의 손바닥을 따라 올라오는 돌돌 말아진 양피지 한 장이 두 사람의 눈앞에 나타난다.
“음....대협께서 무슨 할 말씀이 있었던 것 같구나.”
“오라버니, 어서 읽어보세요.”
“그래....!”
세필로 적어진 깨알 같은 글씨가 작은 양피지 한 장에 가득하다.
오랜 세월이 흘러 많은 부분이 희미해지면서 알 수없는 공백이 있었지만, 하림의 안력은 그것을 용케도 해석해 내었다.
<연자여, 짐작했겠지만, 이곳이 바로 밖으로 나가는 출구이다. 물론 밖에서도 이곳으로 들어오는 장치는 은밀하지만 숨겨져 있다, 다른 이들은 전혀 알 수 없겠지만, 아마도 연자라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노부가 마지막에 부탁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섬에 펼쳐져있는 절진을 해체하라는 것이다. 마옥음양사십팔진, 섬의 바위 속에 숨겨진 마흔여덟 개의 암석기둥들을 뽑아낸다면, 이 섬에서 자연현상처럼 보이는 모든 결계는 멈추게 될 것이다. 높은 파도가 일고 산더미 같은 격랑이 가라앉을 것이며, 곳곳의 암초들이 소리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예전의 평범한 호수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제 본문은 그 뿌리조차 연자에게 맡길 수밖에 없으니, 부디 천양문이란 세 글자만은 잊지 말아주길 바라노라. 연자의 앞날에 행운을 비노라.>
짧지만 동호관의 마음이 담긴 짧은 당부에 두 사람은 가슴이 숙연해 옴을 느낀다.
“동대협님, 천양문이라는 이름은 길이 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성껏 정리해 주신 무공들은 본 대하오문의 진산절예들이 될 것 입니다. 모든 무공들의 앞 글자에는 천양이라는 글자가 필히 들어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림의 낮은 목소리에 소접도 두 손으로 포권을 하며, 이내 허공으로 사라진 동호관의 그림자를 찾는다.
-크르르르릉.......!
두 사람의 앞쪽으로 벽이 열리면서 커다란 암동이 그 입을 크게 벌렸다.
밖에서 본다면 아마도 커다란 바위두개가 좌우로 갈라지는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쿵....!
완전히 열린 바위길 사이로 두 사람이 각기 자신의 신장보다 더 커 보이는 봇짐을 메고 걸어 나온다.
“아....! 바깥공기......너무 좋아요, 오라버니....!”
“그렇구나...!”
하림과 소접은 한낮의 해가 내려쬐는 시각이라 잠시 눈이 부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불어오는 호수바람의 맑은 공기에 가슴을 한껏 부풀렸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으응.....이건.....?”
“피....피 냄새....오라버니, 이건 분명 혈 향이네요.”
“아무래도 마교와 군웅들이 기어코 맞붙은 모양이구나.”
“어서 가 봐요, 오라버니....!”
“그래.....그런데 이 봇짐을 메고 가면.....아마도....?”
“아.......그렇겠군요.”
두 사람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난색을 표한다.
아마도 봇짐을 발견하는 순간 또다시 살육이 시작되고 말 것이다.
잠시 할 말을 잃은 사이 허공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두 사람 사이를 가르며 들려온다.
-까아아아악....!
-휘이이익.......!
“아....금아...?”
-까아아아악......!
두 사람의 시선이 절벽 위를 올려다볼 때 작은 점하나가 이내 커다랗게 확대되어 들어온다.
-푸득.......!
(어린주인, 역시 살아 있었구나)
집채만 한 몸집에 휘황한 금빛을 온몸에 두른 금아가 하림을 내려다본다.
하림 또한 반가운 마음으로 반색하며 금아의 부리를 쓰다듬고, 소접은 환하게 웃으면서 금아의 날개를 부드럽게 쓸어내린다.
(왜 죽기를 바랐어...? 별로 반갑지 않는 표정이구나, 금아는...?)
(큭큭....우리 둘은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서로의 생사를 인지하지 못한다면 바보지, 이 곰같이 어린주인아...)
(하하....! 역시 한마디도 안 지는구나, 금아! 그건 그렇고 지금 밖의 상황이 알고 싶다. 이 혈 향 섞인 바람은 뭐지?)
(혈향? 그러니까 지금 서로 죽이고 있는 저 말 종들 말하는 거야?)
(뭐....? 지금도 싸우고 있다고....?)
하림은 놀라서 입을 크게 벌리고 금아는 한심하다는 듯 내려다본다.
(하여간 인간들은 한심하다, 지금 이 섬에 들어온 자들 수가 아마도 삼천은 넘을걸...?)
(뭣이...? 그렇게나 많이...?)
(이틀을 꼬박 싸우고 지금은 소강상태야, 섬 끝 쪽에서 서로 대치하고 있지.)
하림은 할 말이 잃고 멍하게 금아를 올려다본다.
소접은 하림이 금아와 영이 통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 그녀가 멍한 표정을 짓는 하림을 바라보며 채근하듯 묻는다.
“오라버니, 금아가 뭐래요?”
“으응...? 아....! 이 섬에서 지금 많은 자들이 싸우고 있다는구나.”
“지금도 싸워요? 이틀이나 지났는데도?”
“그렇다는데....?”
“헐......! 그럼 적어도 일방적인 살육은 아니 다는 것이네요?”
“아....! 그렇구나! 우리가 봤을 때는 일방적인 살육을 당하고도 남을 전력인데, 지금까지 대치하면서 싸우고 있다는 말은...?”
“서로 비슷한 전력으로 맞부딪치고 있다는 말이겠지요, 오라버니.....?”
“누군가 군웅들 쪽에 가세했어, 물론 곤륜오자 도장들은 봤지만 그들만 가지고는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없어.”
“그....그렇겠지요.”
“그렇다면 누구일까?”
“글...글쎄...요.......?”
이번에는 소접이 멍한 표정으로 할 말을 잃어버린다.
그 틈을 뚫고 금아의 소리가 하림의 머리 속으로 들어온다.
(어린주인아! 아까 금아가 멀리까지 돌아보다가 뭘 봤는지 알아...?)
(금아....내가 알리가 없잖아...!)
(크큭....그럴 줄 알았지...지금 아이들이 여기로 오고 있다.)
(아이들....?)
(아....도림이 애들 말이야!)
(도림이....애들이야....? 아...! 하긴.....금아 너한테는 그럴수도.....그런데 왜...그들이 이곳에 온다고?)
(모르지, 아까 호수에 뗏목을 날리는 것을 봤으니 아마 곧 도착할거야!....아....마침 저기 오는군.)
금아의 말에 하림의 시선이 호수 먼 곳을 바라본다.
이내 그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몇 개의 뗏목이 나타나더니 그 위에 범상치 않는 위용을 보이는 자들이 이쪽을 향해 장을 날리며 험한 파도와 싸우고 있지 않은가?
하림은 그들이 바로 도림과 더불어 나머지 이십 웅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 저들이 이곳에 오는 것이지? 제갈총사와 있지 않고.....?”
“예? 뭐가요..오라버니..?”
“저기 보이느냐? 도림과 형제들이 오는구나.”
“어...정말이네...?”
그녀의 시선에도 물을 향해 연신 장을 내려치는 한 무리의 무림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때,
-까아아악.......!
금아가 허공을 향해 날카롭게 소리를 내자, 뗏목에 몸을 의지하고 있던 자들의 시선이 금방 금아를 찾아낸다.
“금...금아....닷...!”
“그렇다면 저곳에 주공이 계신다...모두 힘을 내자....!”
일신의 경지가 남다른 그들도, 수면에서 일어나는 격랑과 불쑥불쑥 나타나는 암초에 혼신의 힘으로 대항해야했다.
하림은 소접과 함께 팔짱을 끼고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그들은 드디어 섬 안으로 발을 들여 놓을 수 있었다.
잠시 후, 허공을 격하며 유유히 날아 내리는 그림자들은 모두 하림의 앞에 부복을 한다.
“주공....!”
“주공....!”
“주공을 뵙니다.”
하림은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가볍게 손짓해서 그들을 일으켜 세운다.
“아니 왜 총사와 움직이지 않고 이곳으로 돌아 온 거야?”
격랑과 싸우면서 패도적인 기운을 흘리는 그들의 기복이 심한 가슴들을 바라보며, 하림이 의아해서 묻는다.
그의 말에 팽도림이 앞으로 나서며 고개를 숙이다.
“그것이 총사께서 이곳의 상황을 보고 받고, 아무래도 마교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셨던 거 같습니다. 저희들보고 주공을 도와드리는 것이 어떠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럼...혈마는 어떡하고...?”
“혈마의 종적은 아직 모릅니다. 다만 중원 안으로 숨어 든 것은 확실하고요.”
“음.....! 혈마의 종적을 놓치다니......잘못하면 무림맹이 위태로운데....?”
하림이 턱을 쓰다듬으며 심각하게 말한다.
그의 말에 팽도림이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총사께 그 말씀을 드렸더니. 무림맹에 속한 모든 문파에게 연판장을 돌렸으니 지금쯤이면 맹으로 오고 않겠냐고, 그러니 당분간 염려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공.”
“글쎄....그래도 상대가 혈마인데.......혈마가 어디 만만한 놈이던가?”
하림의 말에 모두가 침묵을 한다.
하림이 염려하는 바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들이기 때문이리라.
하림은 눈빛을 빛내면서 모두의 얼굴을 하나씩 바라보며 눈을 마주친다.
그는 마주하는 시선 속에는 수많은 의미를 내 품고 있었다.
하림의 눈과 마주친 그들은 모두 입가에 미소를 피워 올렸다.
자신들 주군의 마음을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지금 이곳 상황을 이야기 해주지, 그러나 나도 이제 막 이 동굴에서 나온 터라서 잘은 모르지만, 금아의 말에 의하면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이 섬에 들어와 있는 것은 사실이야.”
“주공, 우리도 오면서 들은 말인데요, 이 섬에 나타난 보물 때문에 들어온 자들이 약 이천 여명이고, 그들을 잡으려고 마교에서 천 명 정도가 들어갔다고 들었습니다. 주공.”
“마교에서.....? 음...역시 그랬구나. 그럼 마교와 군웅들이 지난 이틀 동안 치열하게 싸웠을 것이고....”
“주공, 그렇게 되는군요. 그런데 지금은 의외로 조용한 것 같습니다.”
운령의 말에 하림이 빙긋 웃는다.
“금아의 말에 의하면 지금 섬의 동쪽 끝에서 서로 대치중이라는군.”
“속하가 한번 가볼까요.”
“운령, 굳이 그럴 필요 없어, 이따가 싸우는 소리가 들리면 그때 나서도 늦지 않을 것이니.....”
하림의 말에 운령이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자, 그 자리를 비집고 사마갈이 들어선다.
“주공, 그럼 이 섬에 있다던 백천신검의 보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하...과연 마갈은 잿밥에 관심이 있었구나!”
“헉...아닙니다, 주공, 다만 궁금해서 그러지요. 헤헤....!”
사마갈이 무슨 소리냐는 듯 손 사례를 치며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보고 모두가 크게 웃는다.
하림 또한 미소를 멈추지 않고 손을 들어 두개의 커다란 봇짐을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 끝을 따라가던 이십 웅의 눈 속에 격한 파랑이 일어난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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