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도를 쫓아서(1)
장진도를 쫓아서(1).
“으음....!”
봉서를 읽어 내려가는 하림의 입가로 나직한 침음이 흘러 나왔다.
이십일웅을 비롯해서 무림맹의 사람들조차도 숨을 죽이며 하림에게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휴우,,,,,!”
이윽고 봉서를 끝까지 읽은 하림이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치켜세웠다.
사람들은 모두 기대에 찬 얼굴로 그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
“장진도가 움직이고 있는 흐름이 이상하다고 제갈군사가 말하는군요.”
“성혁이 그놈의 판단이라면 팔 할 정도의 신빙성이 있을 것이오, 문주.”
제갈성곡이 조카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하림의 말을 받는다.
“장진도가 처음 발견 되었던 곳이 산동성 하구라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점점 서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서쪽이라고....? 가만, 산동에 서쪽이면 이쪽 아니오?”
“이미 우리가 있는 감숙을 지나쳐서 이미 청해로 들어섰다는군요.”
“흠....속도가 빠르군요. 그래 성혁이 놈 이야기는 어떻소, 장문주.”
“제갈군사는 그 속도를 이상하게 보는 것이 아니고, 장진도가 나타나는 곳에는 어김없이 마교의 그림자가 깊게 배여 있다고 합니다. 장진도를 취하는 자들은 수시로 바뀌면서도 이상하게 신강 쪽이 있는 서쪽으로 움직이는 것은 동일하다고 하는군요.”
“헛...마교라니요.”
제갈성곡은 대경해서 눈을 크게 뜨고 반문한다.
하림은 그와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고 또렷하게 말한다.
“장진도를 둘러싸고 혈겁이 일어나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마교의 인물들이 나타나서, 한바탕 피바다를 만들어놓고 장진도를 들고 사라진다는 것이지요. 그 후에는 마교도가 아닌 전혀 다른 자가 장진도를 들고 신강 쪽으로 움직이고 있고요.”
“흠.....!”
“제갈군사의 생각은 장진도는 허위 미끼이거나 아마도 마교가 깊이 계획되어져있는 함정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그럴 수도.....있...있겠군요.”
“짐작하시겠지만 중원을 전격적으로 침공하기에는 부담이 되어서, 장진도에 몰려드는 군웅들을 손쉽게 함정에 빠트린 후, 제거하려는 술수가 분명해 보인다는 군요.”
“으음.....! 일리가 있는 추리요, 아무래도 마교의 함정이 분명해 보이오.”
제갈성곡도 이마에 내천 자를 그리며 하림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총사께서는 어쩌실 생각이신가요?”“흐음.....! 글쎄요...심히 난감하군요.”
말을 흐리는 제갈성곡을 바라보며 하림은 이십일웅을 둘러본다.
“도림!”
“옛, 주공...!”
팽도림이 앞으로 나서면서 하림에게 읍을 한다.
“당분간 나대신 형제들을 이끌고 혈마를 쫓도록 해!”
“예? 그럼 주공께서는......?”
“난 아무래도 장진도를 쫒아야 되겠어, 군웅들이 구름같이 몰려든다는데 저들이 지옥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것을 구경만 할 수는 없잖아!”
“아....안됩니다. 저희를 빼고 단신으로 가신다니요, 절대 안 될 말입니다.”
“누가 혼자 간데...? 소접과 같이 가겠어. 그러니 걱정하지 마....!”
팽도림은 하림의 말에 눈을 반짝이는 조소접을 일별하고, 다시 하림을 바라보며 고개를 흔든다.
“안됩니다, 적어도 운령아우라도 더 데리고 가시지요,”
“허...사람, 누굴 어린애로 아나, 괜찮대도 그래, 지금 한사람의 정예가 얼마나 귀중하지 모르고 하는 소리인가?”
“그래도 두 분만으로는 도저히 안심이 안 됩니다, 그러니 운령아우라도 꼭 데리고 가셔야 합니다.”
“허어.....사람....참!”
팽도림의 얼굴에 떠올라있는 고집스런 표정을 읽고 하림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는다.
팽도림처럼 과묵하던 사람이 한번 고집을 내세우면 방법이 없다.
그와 반대로 조소접은 양 볼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기쁨에 찬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곁에서 하림과 그녀를 바라보는 다른 두 여인의 표정은 하얗게 질려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채...
제갈성곡은 하림의 말을 들으면서 그가 장진도를 홀로 쫓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장문주, 그럼 우리 무림맹은 장진도를 방관해도 되겠소?”
“총사님, 아무래도 장진도는 음모의 냄새가 너무 진하게 흘러나오고 있어요. 그런데 이 많은 인원이 장진도를 쫓는다면 혈마는 무주공산이 돼버린 강호를 손쉽게 분탕질치고 다닐 거예요.”“문주의 말이 충분이 마땅하오, 그런데 문주 혼자 간다고 하니 어쩐지 걱정이 앞서서 그런 것이지요.”
제갈성곡의 말에 하림이 고개를 끄덕이며 뒤쪽에 서있는 법송과 방호상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본다.
“하하......총사님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데 더러는 제가 장진도를 혼자서 꿀꺽하겠다는 심사라고 보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 같군요.”
“헛....! 아니 누가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는 것이오. 누구요, 그런 사람이....?”
제갈성곡은 정말로 화가 났는지 노기서린 얼굴로 하림을 향해 크게 말한다.
하림은 그의 시선을 받으며 묘한 얼굴로 법송과 방호상을 슬그머니 돌아본다.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던 제갈성곡이 참혹하게 일그러져가는 방호상의 얼굴과,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치켜뜬 눈으로 하림을 바라보는 법송을 쳐다보고, 이내 이맛살을 짙게 찌푸렸다.
“설마, 두 대주들이 그런 불손한 마음을 품었던 것이오.....?”
“아....아니.....어떻게 전음을........?”
방호상은 제갈성곡의 말을 들으면서도 하림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넋이라도 나간사람처럼 더듬거리며 중얼거렸다.
물론 법송 또한 여전히 귀신에게 홀린 표정으로 하림을 멍하게 바라보며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이다.
“방대주! 본 총사가 지금 묻지 않소! 그대는 정녕 장문주에게 그런 말을 하였는가?”
“저....저는.......전음을.....했을 뿐인데.....!”
제갈성곡의 고함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방호상이 이마에 구슬땀을 흘리며 말을 흐리고 있다.
“이....못난 사람들,,,,! 법송대주가 말해보시오!”
방호상은 고개를 푹 수그리고, 반면에 법송은 화살이 본인에게 돌아오자, 화들짝 놀라서 뒤로 한발 짝 물러선다.
“총...총사님....전...전 그...저 방대주의 전음을 듣기만 해서.......”
그 또한 말을 흐리자 제갈성곡은 내심 적지 않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하림이 남들이 나누는 은밀한 전음까지 엿들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끄응......장문주는 항상 사람을 놀라게 하는 제주가 비상한 것 같소.”
“하하....총사님, 오해하지 마세요, 전 그저 누가 저를 음해하면 바로 느낄 수 있는 촉이 좀 뛰어난 것뿐이랍니다.”
하림은 두 손을 내저으면서 밝게 웃는다.
제갈성곡은 이미 하림이 가진 무위가 천하를 아우를 정도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기에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럼 우리는 계속 혈마의 뒤를 쫓아야 되겠소?”
“그렇지요, 혈마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태이니 신경을 바짝 써주셔야 할 것 입니다.”
하림의 말에 제갈성곡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하림은 시선을 팽도림에게 돌리며 지시를 한다.
“도림, 뒤에 따르는 제자들에게 전서를 날려서 전해! 이곳에서 수거한 재물과 식량, 무기등은 모두 본문으로 옮기도록 해!”
“존명!”
팽도림이 읍을 하는 것을 쳐다보고 하림은 제갈성곡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렇게 해도 되겠지요. 총사님?”
하오문으로 모든 전리품을 옮긴다고 일방적으로 말해버렸으니, 어쩌면 하림이 제갈성곡에게 큰 실례를 저질러버린 것과 같았으나, 어떻게든 하림에게 한 발짝이라도 더 다가서려하는 제갈성곡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럼요, 별 문제 없소이다. 이미 하오문이 강호에 내놓은 것이 얼마인데, 이런 사소한 것에 감정을 싣겠소.”
“하하...역시, 감사합니다. 총사님.”
하림과 제갈성곡은 서로를 바라보며 큰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
하림은 운령까지 붙여주는 팽도림을 겨우 만류해서 조소접만 데리고 청해성 경계를 넘었다.
그와 단둘이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들떠있는 조소접은, 만개해서 한껏 그 자태를 뽐내는 백합과 같은 아름다움으로 주위를 환하게 비춰주고 있다.
쉬지 않고 조잘거리는 그녀를 바라보며 여러 차례 실소를 터트린 하림 또한, 항상 대부대로 옮겨 다니다가 그녀와 단둘이서 떠나오니, 이것 또한 나쁘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다.지금도 말을 바짝 붙여 두 어깨가 거의 닿을 정도로 가까이 가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다정한 연인의 모습 그대로 보였다.
“소접, 그렇게 좋으냐?”
계속 듣고만 있던 하림이 불쑥 꺼내는 말에 소접이 두 눈을 하얗게 흘긴다.
“오라버니는 그럼 좋지 않은가 봐요?”
“아니...뭐, 좋지 않는다기보다......”
말끝을 흘기는 그를 바라보며 소접이 배시시 웃는다.
그 바람에 양 볼에 쏘옥 들어가는 볼우물이 하림의 눈을 흔들리게 했다.
“험.....!”
“호호....쑥맥 오라버니한테 내가 뭔 대답을 기대하겠어요. 오늘은 소접이 무척 기쁜 날이니 봐주겠어요, 그나저나 오라버니, 시장하지 않아요? 때가 한참 지난 것 같은데...?”
“아...그렇구나, 좀 빨리 달려서 저쪽 마을로 들어가 우선 쉬자.”
“오라버니! 그럼 누가 늦나 내기해서 그 사람이 밥 사기로.......이럇!”
“야야......너....그거 반칙이야......! 이럇!”
말도 채 끝내기도 전에 소접의 말이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치고 나간다.
하림은 여유 있게 그녀의 말을 듣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소접은 한참을 튀어나가고 있었다.
“이럇......!”
-두두두두두두..........!
두필의 말이 만들어내는 먼지구름이 길게 성도를 향해 이어지고 있다.
두 사람이 청해성 서녕(西寧)으로 들어선 것은 어느덧 해가 떨어져가는 초저녁 무렵이었다.
청해성은 분지와 사막이 주루를 이루고 지금 그들이 도착한 서녕이야말로, 어쩌면 제일 번화한 성도의 마지막 성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기 때문에 이곳은 항상 많은 인파로 넘쳐났다.
사막을 건너기 위해서는 낙타도 구입해야하고 나름 준비를 해야 될 조건이 상당수였다.
하림과 소접은 많은 사람들을 비켜내며, 서녕에서 제일 고급스러워 보이는 객잔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객잔 안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들어차 있었고, 점원의 안내를 받아 삼층에 오르고서야, 창가 쪽으로 딱 한자리 남아있는 탁자를 차지 할 수가 있었다.
“후아....! 이곳은 정말 사람이 많군요. 오라버니 ...!”
“그렇구나, 소접, 어서 이곳에 본문사람들이 있나 알아보아라.”
“예, 오라버니, 맡겨두세요.”
소접은 빙끗 웃으면서 품에서 무지개 색으로 화려한 손수건을 꺼내 창밖에서도 볼 수 있도록 내걸었다.
하림은 그녀의 그런 모습을 유심히 보면서 궁금한 듯 묻는다.
“그런 것은 언제 준비했느냐?”
“호호....대 하오문의 문주께서 제자를 부르는 암호를 알지 못하다니요, 오라버니가 이상한 거예요.”
“하하...소접, 문주인 내가 그런 것도 일일이 알아야 되느냐?”
하림의 말에 소접의 아미가 심통 난 것처럼 휘어진다.
“쳇...! 문주니까 지금의 나처럼 아랫사람들이 다 해주겠군요.....뭐!”
“하하.....! 소접, 심통이 난거야?”
“몰라욧! 위대하신 문주님!”
“하하.....그만하지구나, 마침 우리가 찾는 자가 온듯하니.....”
소접이 고개를 돌리자 사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허름한 복색의 중년인이 곧바로 다가와 하림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
“청해성 서녕분타주 임영이 본문의 하늘같으신 문주님을 뵙습니다.”
“임분타주, 그만 일어나세요.”
“어찌 제자가.........익....!”
임영은 더욱 몸을 낮추려하자 자신의 몸이 말을 듣지 않고 반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그동안 소문만 무성하고 실체를 알 수 없다는 본문의 문주의 정체에 대해서 말들이 많았었다.
하지만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이 젊고 귀티가 흐르는 문주는, 그동안의 소문이 모두 헛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데, 불과 한 호흡도 필요가 없었다.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고 젊은 문주의 내기에 의해, 차츰 몸을 일으켜 세우는 임영의 두 눈이 금 새 빨갛게 변해온다.
“과연....과연 영명하신 대하오문의 문주님, 뵙게 되서 영광입니다.”
그의 감격한 목소리가 얼마나 크게 맴돌았는지, 삼층의 많은 사람들은 일시에 대화를 끊고 하림에게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저자가 하오문의 문주라고.......?”
“하오문이래.....요즘 그 떠들썩한.....!”
“문주가 햇병아리같이 어린데...?”
“옛날에 그 양아치들 집단이던 그 하오문 말인가?”
-웅성웅성.......!
- 작가의말
- 매일 떼거지로 몰려다니던 하림이 조촐하게 소접과 강호 주유를 하게 되는군요.저도 기대가 된답니다.ㅎ
감기 조심하세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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