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해(2).
<혈해(血海)(2).>
지옥도.
흡사 인간들을 그린 지옥도가 있었다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챙.....챙....챙...!
-크르르릉....!
-꽝....꽈꽝....!
-번쩍......!
-우르르르....꽈꽝...!
“으악.....!”
“아아악.....!”
“살려줘.....!”
“끄아아아악....!”
번쩍이는 도풍과 검광이 난무하는 곳에는 여지없이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온다.
수많은 사람들이 벌떼처럼 얽힌 채로 피아를 구분 못하고, 병기를 휘두르며 흡사 누가 먼저 죽을 것인가를 내기라도 하듯이 달려든다.
“아아악.......!”
비명소리는 그곳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림인을 잔뜩 실고 섬으로 다가가는 어선과 땟목들은, 십중팔구 섬에 다가서기도 전에 격랑과 급류가 휘몰아치는 바다 속으로 처박혔다.
천하의 거선이라도 쉽게 섬에 안착을 바라지 않는 듯, 잔잔했던 지금까지의 호수와는 달리 섬 주변으로는 거센 급류과 격랑이 수많은 암초들이 더해져서, 귀한 인명을 파리 목숨처럼 수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흐으음......!”
금아의 둥에서 내려다보는 하림의 입에서 잔뜩 탁해진 신음이 새어 나온다.
“오라버니....무서워요. 이곳은 정말.......!”
“그래....욕망에 두 눈이 뒤집어져버린 인간과 그걸 받아들일 수없는 자연과의 혈투 같구나.....!”
“아아.....! 오라버니, 정말 엄두가 나지 않아요. 저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경악한 소접의 얼굴에 잔뜩 슬픔이 묻어나면서 그녀는 하림의 등으로 고개를 묻어 버렸다.
“하지만 소접 고개를 들어서 잘 봐두어라. 저들이 우리처럼 극강의 무공을 가지고 있었다면 저렇듯 처절하게 달려들겠느냐. 우리도 어쩌면 지금의 우리가 없었다면 지금쯤 저안에서 칼을 휘두르고 있지 않겠느냐?”
“휴우...그렇겠지요. 오라버니....그래도 슬픈 건 슬픈 거예요.”
다시 고개를 등에 묻는 소접을 향해 하림이 섬 아래를 둘러보며 조금 큰소리로 입을 연다.
“금아랑 소접은 잘 들어봐!”
(뭔데..? 주인아!)
“예, 오라버니....!”
“지금 살펴보니 이 섬은 절진이 설치되어 있는 거 같다.”
“절진....? 진법 말인가요. 오라버니?”
“그래, 잘 보아라. 저기 기암괴석처럼 반듯하게 솟아 있는 길쭉한 바위가 보이더냐?”
“아.....! 보여요, 오라버니....!”
“저건 분명 바위로 보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바위처럼 위장한 쇠말뚝이 분명해 보인다.”
“쇠말뚝....요...? 저건 분명 바위 같은데.......?”
“아니야, 소접! 저곳을 중심으로 열십자 방향으로 열두 개씩 스물네 개가 꽂혀있다.”
“아......그러고 보니...모양이 같군요.”
“그래, 십이진에 이십사 방, 삼십육 궤, 사십팔 변이구나.”
하림이 시를 읊듯 단숨에 말하자, 소접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그럼 쇠말뚝이 마흔여덟 개나 된단 말이에요?”
“잘 아는구나, 소접! 맞아, 눈에 들어온 말뚝이 그 정도야, 다른 꽁수가 없다면 말이지.”
“그럼 저 급류들과 암초등이....진법의 영향일까요?”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우리는 저걸 파괴해서 진법을 멈출 수가 없어.”
“에옛....? 그건 왜죠? 진을 파괴하면 물속으로 수장되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잖아요.”
“아니...그렇지 않아! 내가 만약 저 진을 설계한사람이고, 이 섬 안에 반드시 지킬 것이 있다면 저 진이 파괴되는 순간 이 섬도 폭발하게 만들어 버리지 않겠어?‘
“아......!”
“그래서 이건 건드리면 안 돼,”
“그렇겠군요. 오라버니....! 헤헷....역시 우리 오라버니는 천재인가?...헤헤헤......!”
소접이 두 팔로 감싼 하림의 복부를 쓱쓱 비비며 깔깔거린다.
하림의 볼록한 복근이 느껴져서 새삼 기분이 좋아진 소접은 그의 등에 고개를 다시 묻는다.
그녀는 어느 순간 지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비규환의 처절한 현장을 잊고 말았다.
이 얼마나 꿈에서도 기다리던 님의 채취가 아니던가....
그녀의 분홍빛 감정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하림의 입은 쉬지 않고 열렸다.
“금아!”
(어...주인아!)
“저 사십팔개의 쇠기둥들을 기억하겠지?”
(어린주인아, 나, 금아야...존심 상하게 무시하지 말아줘!)
“그래, 그래....! 잘 기억하고 있다니 다행이다, 내명이 떨어지면 외곽에 있는 것부터 빠르게 파괴해줘!”
(부수라고...?)
“응! 만년한철도 날려버리는 넌데, 저 까짓것쯤이야..!”
(카카카.....그래, 그렇고말고....알았어. 염려 꽉 붙들어 매라고....!)
(그리고 한 가지 더...! 싸움이 벌어지면 소접을 지켜줘, 알았지?)
(주인이 아니고 소접을...?)
(그래, 꼭!)
(그....그러지...뭐!)
-까아아아악......!
금아가 길게 울음을 터트렸으나 치열한 전장에서는 누구하나 올려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소접,”
“예. 오라버니.....!”
“아래를 내려다보아라! 검은 마기에 휩싸인 자들이 보이냐?”
“마기.....? 아.....그러고 보니 보여요, 오라버니.”
“검은 마기더냐?”
“음, 완전 검지는 않고 회색인데.....?”
“응, 그건 너의 화후가 아직 깊지 않아서 그렇게 보일 것이야.”
“응........그러고 보니 한 백여 명이 훌쩍 넘는데...그런 자들이....?”
“짐작 컨데 저들이 바로 이번사건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마교도들 일거야. 우리는 저들을 없애야 돼.”
“아.....! 그럼 생각보다 쉽네. 하지만 군웅들은 어쩌지?”
“후후.....부딪쳐 봐야지....! 준비됐지?”
“호호.....네에...오라버니....오라버니가시는 곳이라면 이 소접은 기꺼이 따릅죠....호호호....!”
“하하....! 이제는 아예 유들유들해졌구나!”
말을 마친 하림은 바로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절벽을 두고, 그 앞에 넓은 분지에서 수없이 얽혀 혼전을 치루고 있는 곳으로 떨어져 내린다.
“멈추어라!”
-쑤아아아악!
“으아아악....!”
하림의 커다란 목소리는 이내 결전속의 비명 속으로 묻혀버렸고, 그의 장검에 마교도로 보이는 평범한 차림의 장한이 두 쪽으로 갈라진다.
“아아아아악.....!”
그리고 이내 번개처럼 움직이는 하림의 검은 서너 장을 격하고 날아다닌다.
그럴 때 마다 이내 세로로 양단되거나 동그란 머리통이 하늘을 날았다.
하림은 일부러 독하게 검을 썼다.
그리고 그의 독함은 곧 군웅들한테 자신을 향한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악.....!”
하림의 근처에서도 참혹한 비명이 터지고 소접이 하늘거리는 백의로 뒤로한 채 옆으로 날아간다.
그녀의 얼굴은 아까와는 다르게 냉정했으며 뿜어내는 경기는 얼음보다 차갑게 느껴졌다.
회색의 마기를 두른 자들을 찾아다니는 소접의 검은 자비라고는 애초에 보이지 않았다.
하림도 아까와는 달리 묵묵히 검은 마기의 인물들을 속속들이 찾아다니며 베어버렸다.
그가 아무리 외치고 말려도 이미 보물에 눈이 뒤집혀버린 자들이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을 익히 안 것이다.
마교도로 보이는 자들은 죽통들을 하나씩 매고 있었다.
하림이 최초로 죽인자의 등에서 끌러내려 안을 살펴보니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는 양피지 한 장만 덜렁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림의 등장으로 악귀 같은 자가 눈앞에서 양분되는 것을 본 자는, 하림을 공포에 젖은 눈으로 보다가 이내 양피지를 꺼내드는 순간에 검을 잡고 달려들었다.
하림은 아무 말 없이 그자를 베어 버렸다.
그리고 양피지를 네 쪽으로 갈라 허공에 날려버리고, 떨어져 내리는 양피지로 몸을 날리는 자들을 바라보며 혀를 차고 그 자리를 떠났던 것이다.
이후 그런 상황은 계속 되었다.
하림과 소접에 의해 죽어나간 마교도들이 물경 백이 넘어 간다.
사태가 이지경이 이르니 이제 군웅들의 목표가 하림과 소접으로 바뀌어 갔다.
당연하게 두 사람의 등에는 수많은 죽통이 달랑거리며 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쉽게 달려들지 못하고 탐욕스런 눈빛만 쏟아내며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
하림과 소접의 경천동지할 무공을 자신들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본능이 빠르게 움직인 탓이리라.
몰려드는 군웅들의 표적이 되어버린 두 사람은 하얀 백의를 휘날리며 검을 내렸다.
-휘리리리릭!
하림이 근처에 있는 아까 자신이 쇠말뚝이라 했던 그 기암괴석위로 몸을 날렸다.
-휘릭.....!
당연하게 화월용태 같은 소접이 그의 옆에 내려서고, 그 기암괴석은 이제 두 사람은 오롯이 받힌 채로 우뚝 솟아 있었다.
“여러분! 멈춰요!”
-웅성웅성......!
“모두 불초의 말을 잘 들어 주세요.”
“네가 누군데 말을 들어 달라는 것이냐. 어서 그 등에 진 죽통이나 이 어른에게 던져라!”
장비를 연상시킬 정도로 구레나룻털이 많은 사십대 장한이 앞으로 나서며 하림을 향해 흉광을 번뜩인다.
“난 대하오문의 문주인 장하림이오.”
“아.....환사!”
“적혈마도 장하림이다.....!”
“저 어린놈이 하오문의 문주라고.....?”
-웅성웅성........!
수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아까 하림을 해 말을 뱉었던 자가 코웃음을 며 도를 치켜든다.
“흥, 나는 대단한 놈인 줄 알았더니 겨우 하오문 문주라는 그 애송이인가?”
“거기서 한발만 더 앞으로 나온다면 목 위에 있는 머리가 무거워서 그러는 것으로 간주하죠.”
하림이 도를 치켜들고 앞으로 나서는 그자를 향해서 시큰둥한 어조로 말했다.
“흥....어린놈의 새끼가 갖은 똥 멋은......! 나왔다....어쩔 테냐.. 어린놈......이.......?”
-쑤악.....!
-떼그르르르르.....!
“아앗......!”
하림의 손바닥이 가볍게 흔들리는 순간에 그자의 머리가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린 것이다.
경악하고 뒤로 주춤 물러나는 군웅들을 향해 하림의 음성이 스산하게 낮아졌다.
하지만 그의 말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군웅들의 귓속으로 빨려 들어가 듯 들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본 공자의 말을 허투루 듣는 자는 다른 사람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방금 본 것과 같이 생목숨이 하릴없이 사라질 겁니다. 바라건 데 본 공자의 심기는 건드리지 마세요. 다 알아들으셨죠?”
“...............?”
“..............?”
“뭐, 대답이 없는 것은 무언의 긍정이라 여기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 가보죠.”
-웅성웅성......!
“조용히 하세요.”
하림이 손을 들자 웅성거리던 자들이 손바닥으로 입을 막는다.
“하하...좋은 자세에요, 자, 여러분이 궁금해 하시는 이 죽통.....! 아쉽지만 이 죽통은 모두 가짭니다.!”
-휘릭......!
-휘리릭......!
-휘릭....휘릭...!
하림은 말이 끝나자마자 죽통을 사방으로 던졌다.
하림의 돌연한 행동에 소접도 등에 매고 있던 죽동들을 골고루 날려 보낸다.
“우와......!”
“잡아라.....!”
“장진도다......잡아라!”
“놔라....내꺼다.......윽.....!”
“내가 잡았다....놓으란 말이.....으악......!”
“으아아악...!”
“아아아악.....!”
졸지에 죽통이 떨어진 곳에서 난리가 났다.
잠잠하던 칼부림이 다시 불기 시작했다.
- 작가의말
무척 춥네요.
건강챙기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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