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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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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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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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6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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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태운다 나의 거짓 2

DUMMY

우리 땅에서 세계 그 어느 특수전부대를 데려다 놔도 우리가 잡을 수 있다. 자칫하면 자기 땅이 완전히 적에게 넘어간다는 걸 못 겪은 서양 부대들이 가오나 잡는 거지. 우린 살아야 할 곳과 전장이 같다. 그들은 죄다 일주일 이하 작전이고 3일도 장기작전이다. 길어야 하루이틀 하고 돌아가 잘 먹고 편하게 쉰다. 그리곤 여객기 타고 귀국해 고향에 정취를 즐긴다.


숏타임 스페셜 포스. 한반도의 전쟁? 그런 거 없다. 그럴 틈도 없다. 퇴출수단 없이 그런 갑바들 버텨보라고 하던가. 하늘에서 스니커즈 쵸코바가 떨어지나 배터리가 떨어지나 생수가 떨어지나. 벤치프레스 스쿼트 존나게 해봐라. 그것도 그만큼 먹어야 근육량이 버텨주는 거지. 갑바의 반 운동 반은 먹는 거. 그 갑바 빠지고 6하원칙이 열악해지면 그들도 비실비실 댈 거다. 아니 여기서 딱 한 달만 해봐. 러시아나 영국 애들 정도나 버틸 걸 아마...


이런 산에서 도피와 추격 동안 한 시간 만에 물 마시면 그 팀은 이미 끝난 거다. 땀난다고 바로 물 마셔? 흐흐. 똥인지 된장인지 당해봐야 알지. 전술종합 동안 그리고 천리행군까지 수통에 물 가득 채워 다니는 병신 같은 놈은 없다. 천리행군? 24시간 물 안 마셔도 간다. 존나게 걸을 때 수통에 물 출렁이는 좆같은 거보다 참는 게 낫다. 겨울이면 천리행군 하루 행군 동안 물 두어 모금이면 그날 행군 채운다. 그런 날이 실제로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게릴라는 최소한의 물로 버티는 거 당연히 몸에 익숙해야 한다. 물을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때나 몸에 수분을 유지해줘라 피트니스 책에서 떠드는 거다. 허기와 갈증을 못 버티면 장기 특수전 비정규전 못한다.


지극히 일상적인 것. 누구나 언젠가는 항상 필요한 것. 어찌 되었건 필요한 것. 물.타는 목젖이 원하는 것. 여기서도 지속된다. 그래도 이제는 군번 순이 아니다. 누구나 교대하고 중사도 예외 아니다. 중대장은 제외되나 담당관도 팀원들 피곤하다고 생각하면 종종 수행한다.


일명 물조. 비전투적으로 말하면 뭐 물-당번이다. 원래 야전훈련이면 졸병하사들 몫이다. 냇가 내려가는 물조에게 반합 설거지는 부가 서비스. 전투식량 아니면 국거리(국반합)와 밥물도 냇가에서 해야 한다. 전투식량이 떨어지니 노획한 쌀로 반합밥을 해먹어야 한다. 지금 여기서는 잔가지로 밥하는 법도 무척 정밀하게 연기 안 나게 해야 한다. 걸리면 추격 붙고, 이삿짐 다 못 챙기고 뛰는 생사의 레이스. 그래서 은거지를 최대한 깊은 산속으로 정하려 한다. 그러나 길어지고 높아지면 작전 이동거리 피로도가 늘어나고, 오늘처럼 물을 길어 와야 한다.


하사가 또 돌아섰다. 내가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내려가라고 했다. 그래도 하사가 비슷한 지형에서 의문은 품었다. 여깁니까? 나는 보자마자 알아봤다. 계곡에 물을 구하러 내려가는 길. 난 이하사를 대기시킨 다음, 조중사가 올라오자 소리 조심하며 내려가라고 주의를 주고 다시 눈 감고 서서 다시 귀를 연다. 360도 천천히... 세밀하게... 신중하게... 1분. 수상하다 싶으면 양 귀에 손바닥으로 펴서 뒤에 대고 레이더처럼 돌려본다. 지금 당신도 손을 펴서 귀 뒤에 대봐라. 당신 방에서도 새로운 소리가 들릴 것이다.


숨어 따라오는 놈이 나타날 정도의 시간을 기다렸다. 마지막으로 한번 둘러보고 나도 따라 내려간다.


‘뭐 씨발 거 없지?...’


조장은 항상 바쁘다. 혹시나 몰라 조심해야 한다. 실수 한 번에 세상 하직. 세 명은 화력이 엄청나게 열세인 상태니 죽음의 목전으로 봐야 한다. 난 바삐 발길을 서둘러 둘을 따라잡고 또 앞으로 지나쳐 물 뜰 곳으로 내려간다. 여기는 산악의 2~3부. 내려가는 곳은 아주 작은 수원이 시작되는 곳으로, 더 아래면 점차 물이 늘어나면서 빨리 담을 수 있지만 위험하다. 그래서 수원을 따라 올라가다 은폐가 좋고 안전한 곳을 택하고, 그곳도 물을 떠갔다는 흔적을 절대로 남기면 안 된다. 여러 번 오다 보면 미묘한 자국이 남기에, 좀 지리가 익는다 싶으면 약간 위로 장소를 옮기는 게 상책이다. 사람 손이 타는 자국은 게릴라의 적이다. 그리고 게릴라의 기본상식. 원하는 목적지에 가까울수록 다니던 루트를 바꾸어 접근한다.


중요한 것은 선점. 게릴라는 선점이 필수 능력이며 산에서 생존하는 비법 중 하나다. 이건 각자 본인이 일부러 노력하면 더 빨라진다. 어디에 도착하게 되면, 도착하고 나서 최대한 빨리 그 일대의 장악자가 되어야 한다. 그 일대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목표에 도달할 때 점차 속도와 행동을 늦추면서 소리를 절대적으로 줄이고 주변을 보고 들어야 한다. 아무리 헐벗은 산이라고 해도 산새가 있고 벌레가 있고 뭐 말하자면 지렁이도 있다. 그 지점을 선점하는 장악자가 되려면 일단 그곳에 자기 몸과 마음을 녹여야 한다. 일단 근처에 적이 없다는 걸 확인하면, 그 장소를 자신이 진심으로 편하게 여겨야 한다. 내 집 안방처럼. 사랑하는 여인의 자취방 포근한 이부자리에 등을 댄 것처럼.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산새와 벌레들이 나에게 경계를 풀고 자연의 일부로 본다. 그러면 난 그들과 하나가 되어 새로운 자연스러움을 형성하고, 새로 나타나는 것은 우리 모두 공동으로 대응한다. 내가 선점으로 안착해 있을 때 다가오는 것은 일대와 분리된 존재, 위협하는 타자(他者)가 된다. 이때가 되면 벌레들이 새로운 것의 출현을 알려준다. 문득 그들이 경고해준다. 그러나 이것은 꼭 산새나 벌레만이 아니다. 그 산의 일부 지역 조각, 그 지점도 하나의 생물로 느낄 때가 있다. 동물의 감정도 공기 중에 전파된다. 적개심은 공기를 뚫고 멀리 날아가는 힘이 된다. 너무 강하면 화살처럼 상대에게 날아가 자극한다. 그래서 차분한 놈이 숨어도 안 들킨다. 그 감정의 힘이 미약하더라도 경험 있고 집중력 강한 놈은 캐치한다.


도착 - 적응 - 융화 - 긴장감의 해소 - 선점... 그때부터 난 일대의 장악자가 된다. 거기 누가 나타나면 상대보다 훨씬 일찍 간파한다. 걷거나 뛰거나 이동하는 놈은 정지한 상태보다 오감이 상당히 협소하다. 위장-선점 능력이 우수하다 해도 무서운 것이 있다. 바로, 나와 같은 능력을 가진 놈, 그게 적일 경우. 그때는 0.5초가 생사를 가른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험하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서로가 가까운 거리에서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다. 용변 냄새가 생사를 좌우할 수도 있다. 이곳에 서양인이 들어온다면, 그들이 도시에서 성장하고 최근까지 치즈 듬뿍 먹고 샴푸와 로션을 사용하던 사람이라면 훨씬 빠르게 우리가 간파한다. 아주 멀리부터 알아차린다. 오랫동안 산에 사는 사람은 그러한 감각에서 우리보다 위다. 그런 사람은 아침에 문득 대문 열고 나와서 이상한 감을 훅 감지한다.


총 자물쇠 풀고 20분간 천천히 내려간다. 하사와 중사는 내가 너무 민감하다고 생각하며 불안한 눈빛을 보낸다. 그래 너희는 대범해라. 민감한 건 내가 할게.


‘단 한 번에 골로 가는 거다. 너희 지금 얼이 빠져 있어... 힘들고 지칠 때 더 조심해야 돼. 힘들다고 마구 하면 오감이 건성된다.’


최대한 소리를 죽여 내려가며, 발 디딜 곳도 최대한 낙엽 없고 소리가 안 날 곳을 지정해 밟는다. 거의 도착했을 때 둘에게 정지하라고 신호하고 단독으로 내려간다. 물 뜨는 곳은 누구나 발견할 수 있고 누구나 방문하게 된다. 기본적인 인간 욕망의 규합지. 응? 인간은 누구나 물이 필요하니까. 본능적으로 목마른 사람이 찾는 공통의 장소다. 다시 말해 위험한 곳이다.


멈춤. 소리. 새. 벌레. 냄새. 공기의 무게. 이유를 알 수 없는 징후? 그 무엇이든 캐치하려고 노력한다. 시각정보 외에는 눈을 감는 게 취득에 좋다. 눈을 감으면 소리가 매우 선명해지고 소리 속에 안 들리던 것까지 강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오감 중에 시각정보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면 나머지가 감소한다. 그러면 위험해진다. 밤에는 후각 청각 촉각도 예민하지만 낮이 문제다. 눈으로 보는 걸 모든 것이라 착각하지 말라는 건 옳다. 맹인은 같은 마디 수를 듣고 상대의 감정을 금방 간파한다. 결론? 산에 많이 가면 된다. 길을 잃어 반 미쳐도 보고, 순간의 판단실수로 개땀을 흘려봐야 한다. 그때부터 자의든 타의든 지도를 보는 집중력이 좋아진다. 몸이 힘들지 않으면 사람은 대충 보게 마련이다. 산에 많이 가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산에서 멈춰 앉아 눈을 감고 감지하는 걸 많이 해봐야 한다. 곧바로 공기 흐름이 들린다. 아무 생각 없었는데 몸 차분하게 하고 눈을 감으면 엄청난 자연의 역동성이 귀로 온다.


멈추어 스캔...


안정적이라는 신호가 오고, 드디어 물가로 접근한다. 물을 뜨던 포인트를 지나서 더 밑으로 내려가 본다. 총을 오른손으로 지지하고, 풀이 몸에 걸릴 것 같으면 왼손으로 부드럽게 밀면서 나간다. 내 몸이 통과했다고 풀이나 가지를 확 놓지 말고 왼손으로 지지하다 천천히 원위치로 놓고 통과한다.


‘처음 왔다고 생각하자. 최고로 불안한 곳이라고 생각하자.’


5분 정도 지났을 때, 난 발길을 돌려 위로 다시 올라갔고, 저 위의 둘에게 내려와 물을 뜨라는 신호를 했다. 그러자 둘은 수거해 온 카멜백과 수통을 냇가에 꺼낸다. 나는 불안감에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출렁이는 소리 안 나게, 수통은 이빠이 완전히 채워. 수통을 물에 완전히 담구지 마. 퐁퐁퐁 소리 난다.”


고개를 끄덕인다.


동이 터 온다. 그러자 나도 피로감이 확 밀려온다. 만약 이 상태가 도피탈출 중이라면 아예 태양이 확 떠야 덜 피곤하다. 주간으로 전환되는 시점 피로가 순간 강하다. 그러다 완전히 해가 뜨면 뇌가 착각도 한다. 나 잔 거 아냐? 사람 움직이는 그냥 낮이잖아! 조금 피곤하긴 한데. 뭐 그냥 낮이잖아. 이렇게 날 세뇌시킬 수도 있다.


어쩔 수 없다. 긴장감 팽배한 밤을 보내고 총도 쏘고 산을 향해 뛰었고 그 이후 산을 두 시간 째 타고 있다. 목은 마르지 않다. 갈증 버티기와 조절은 행군 경험이 다 가르쳐준다. 갈증에 마음껏 물을 마셨다가 곧 몸이 반응해 땀이 줄줄 흐르고, 그럼 몸은 다시 그 정도의 물을 요구하며, 그게 반복되다 몸에 염분도 빠지고 퍼지는 경험. 최대한 적게 마시고 땀도 줄여야 한다. 그게 행군에 편하다. 그래도 저 물 없이는 사람이 살 수가 없다. 이하사와 조중사는 물가에서 물을 담고 난 주변을 둘러보며, 다시 한 번 여기로 물을 뜨러 오게 되면, 물이 적게 흘러도 상류로 한 칸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그런 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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