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폐
그 때, 머리에 붕대를 감은 티모가 롬멜에게 쭈뼛쭈뼛 다가오더니, 주섬주섬 권총을 내밀었다.
“저···돌려드리러 왔습니다. 탄약을 다 써서 죄송합니다.”
롬멜이 물었다.
“자네 머리에 총을 맞은 건가?”
“아뇨, 총검에 얼굴을 긁혔습니다.”
“난 권총 많네. 자네가 가져.”
롬멜이 말했는데도 티모는 쭈뼛거리며 손을 내려놓지 않았다.
“하..하지만 이건 장교용 권총이라···”
“그 권총은 자네한테 자격이 있네. 가서 좀 쉬게.”
롬멜의 말에 티모는 자리를 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한 부사관이 롬멜에게 물었다.
“좋은 전차가 나오더라도 이런 산악지대에선 운용이 힘들겠죠? 궤도가 금방 나갈 겁니다.”
“궤도를 잘 만들더라도 힘들겠지. 이런 산악지대는 길이 좁아서 매복하면 제 아무리 좋은 전차라도 끝일세.”
“하긴 전차는 평지에서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겠군요.”
“모래 폭풍이 이는 사막 같은 곳이면 더욱 금상첨화겠지.”
롬멜은 병사들이 노획한 담배를 즐겨 피우는 것을 보고 말했다.
“야간에 보초를 서는 병사들에게 담배를 피우지 못하도록 하게.”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왜..”
“야간에 담배를 피우면 담뱃불로 우리 위치를 훤히 드러내주는 꼴이 되지 않나?”
“네! 지시하겠습니다!”
부사관은 속으로 생각했다.
‘말 해도 병사들이 안 들을텐데···’
그 날 밤, 롬멜은 산 여기 저기서 독일 병사가 보초를 서는 곳 마다 담뱃불이 반짝거리는 것을 보았다. 독일군이 있는 곳 중에 담뱃불이 반짝이지 않는 곳이 거의 없었다. 롬멜이 길길이 날뛰며 소리 질렀다.
“빌어먹을 멍청한 자식들!!”
그 때, 서부전선에서 한스는 포병들에게 자주포 운용술에 대해 가르쳐 주고 있었다. 에르빈이 불평했다.
“젠장! 이렇게 좁은걸 어떻게 타! 레버는 왜 이리 빡빡해!”
한 포병이 말했다.
“엔진을 키면 너무 시끄럽습니다!”
한스가 말했다.
“자주포는 전차보다 장갑이 약하니 혹시 적들에 자네 쪽으로 포를 쏜다면 바로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을 걸세. 그 때는 우리가 앞에서 적 전차를 공격하겠네.”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거야! 자네는 전차나 잘 운용하게나!”
한스는 뮐러 씨가 제작한 이 자주포가 살짝 불안하게 느껴졌다. 안 그래도 르노 전차는 무게중심이 윗 쪽에 있는데, 위쪽에 무거운 야포를 달아 놓은 형태라, 잘못 운영하다간 참호에 쳐 박힐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였다.
‘이 자식들은 그냥 후방에만 있게 해야 겠군···’
한스가 말했다.
“전방에서는 우리가 싸우고 있을 테니 자네들은 후방에서 확실히 지원을 해주게. 오인 포격에 주의해주게나.”
에르빈이 말했다.
“오인 포격이라니 우리를 뭘로 보고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아군한테 오인 포격할 때만 엄청 정확한 주제에···’
에르빈은 안에 들어가서 포탄이 잔뜩 거치되어 있는 곳을 보고 동료 포병에게 말했다.
“포탄 하나만 빼고 그 자리에 술병 넣어두자.”
한스가 말했다.
“네 놈들은 명색이 포병이란 녀석들이 포탄 관리도 그런 식으로 하냐?”
그러자 에르빈이 말했다.
“이봐 한스. 자네는 지나치게 융통성이 없어.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이 정도 일탈은 허락해줘야 하지 않겠나?”
에르빈은 겉으로는 자주포를 싫어하는 척 했지만 매우 이것을 마음에 들어 했다.
‘이거만 있으면 나도 저 한스라는 자식보다 훨씬 큰 공을 세울 수 있을 거야. 내가 농장에서 트랙터 운전만 몇 년을 했는데 저 자식보다 못할 게 뭐 있어!’
에르빈이 신형 자주포로 활약할 기회는 생각보다 일찍 왔다. 프랑스 놈들이 일제 포격을 시작했다. 병사들은 대피호에서 소총을 쥔 채로 포격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망할 놈들!! 또 일주일 내내 저럴 건가!”
그런데, 갑자기 사방이 고요해졌다.
“뭐..뭐야 벌써 끝이야?”
잠시 뒤, 장교들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모든 보병들이 각자 무기를 들고 최전선 참호로 달려갔다. 병사들은 전방을 향해 소총을 겨냥하고 무인지대를 주시했다. 한 신병은 바지에 오줌을 지린 것도 모르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총을 쥐고 있었다. 한 병사가 말했다.
“생각보다 늦는데?”
그러자 다른 고참이 말했다.
“조만간 놈들의 전차 부대가 올 거야!”
고참의 말이 맞았다. 무인 지대 여기 저기서 생샤몽과 르노 전차가 이 쪽을 향해 느릿느릿 전진하고 있었다. 쌍안경을 보고 있던 병사가 외쳤다.
“전방에 전차 수십 대!”
신병이 청회색의 전차들을 보고 겁에 질려 외쳤다.
“저!!저게 전차입니까?”
그 때, 독일군의 일제 포격이 시작되었다.
슈우욱 콰과광!!!
쉬익 쿠과광!!!
무인지대 여기 저기 포탄이 쏟아졌다. 그렇지만 사방으로 흙먼지만 튀어 올랐고 단 한 대의 전차도 맞추지 못했다. 신병은 바지에 똥까지 지리면서 소총으로 한창 멀리 있는 전차를 향해 쏘았다.
타앙!
옆에 있던 고참이 외쳤다.
“그게 맞겠냐!!머저리야!”
그 때, 독일군 포병이 박격포로 어마어마한 연막탄을 무인지대에 뿌렸다. 황량한 무인지대가 뿌연 연막으로 가득해졌다. 생샤몽을 타고 있던 한 프랑스 전차장이 외쳤다.
“젠장! 저 독일 자식들 무슨 속셈이야!”
그리고는 발로 조종수의 등을 툭툭 걷어 차며 외쳤다.
“전진해! 그냥 언막일 뿐이다! 전진!!”
그 때, 연막 사이로 여기 저기서 마크 전차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프랑스 조종수가 외쳤다.
“전방에 마크 전차!”
프랑스 전차장이 스패너로 전차를 캉캉 두드리며 외쳤다.
“놈들은 우리 포를 이길 수 없어! 정지하고 발사해!”
생샤몽의 무한 궤도가 느릿하게 멈췄다. 괜히 무리해서 무인지대를 건너다가 대전차호에 빠져서 포도 못 쓰게 되는 불상사가 없어야 했다. 그래서 프랑스 전차장은 이 거리에서 놈들을 공격하기로 결심했다. 전차장은 작은 관측창으로만 주변을 관찰할 수 있었기에,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잘 알 수 없었다.
장전수가 장전을 마쳤다.
“장전 완료!”
포수는 전방에 마크 전차까지 거리를 계산하고 포를 발사했다.
“발사!!”
음속보다 빠른 속도로 포가 날라갔다. 포는 마크 전차의 앞 쪽에 떨어졌다. 전차장이 외쳤다.
“잘했어! 좀만 더 높게 쏴! 그럼 다음엔 맞는다!”
순간, 생샤몽 안에 모든 전차병들은 머리 위로 공기가 찢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쉬이익
쿠과광!!콰광!!
한 전차병이 말했다.
“뭐야! 어디서 쏜 거야!”
“우리가 맞은 거야??”
전차장이 외쳤다.
“빌어먹을!! 빨리 자리 옮겨!! 이러다 다 죽는다고!!”
조종수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외쳤다.
“어디로 움직입니까!!”
전차장이 조종수 등을 발로 걷어차며 외쳤다.
“전진!!일단 전진부터!”
생샤몽이 다시 느릿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쉬이익 콰과광!!
방금 생샤몽이 있던 자리로 포가 떨어졌다.
포수가 외쳤다.
“저거 뭐하는 자식이야!! 왜 저렇게 잘 쏴!!”
생샤몽의 프랑스 전차장은 목숨을 걸고 해치 위로 몸을 내밀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그 전차장은 구석에 쳐박혀 있던 전령에 귀에 대고 비명을 질렀다.
“독일군이! 르노를 노획해서! 포로 쓰고 있다!! 나가서 전달해!!”
전령은 어마어마한 엔진 소리와 궤도 소리 때문에 전차장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잘 안 들립니다!!”
“독일놈이!! 르노로!! 포를 운반해서!!쏘고 있다고!! 알아 들었나!!”
전령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장 나가!”
전령은 작은 프랑스 깃발을 손에 쥔 채로 생샤몽 아래쪽에 있던 문으로 기어 나갔다. 사방에 포탄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고, 무인 지대 여기 저기 썩어 가는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하지만 다른 생샤몽 전차는 한참 저 쪽에 있었다. 전령이 비명을 지르며 다른 생샤몽 전차를 향해 허리를 숙이고 달려갔다.
“으아악!! 아아악!!”
그 때, 쌍안경으로 무인지대를 바라보던 한 독일 병사가 외쳤다.
“저 쪽에 전령이 뛰어가! 저 놈을 저격해! 저격수 있나!”
하지만 그 시간 저격수 맥스는 생샤몽 전차의 해치를 하나씩 저격해서 잡고 있었다. 그 틈에 전령은 이미 포탄 구덩이로 숨어들어갔다. 전령은 눈 앞에 스페이드 마크가 그려져 있는 생샤몽 전차를 확인했다.
‘다 왔어..이제 조금만 뛰어가면 된다···’
그 순간, 에르빈이 자신이 타고 있는 자주포로 생샤몽 전차를 향해 포를 발사했다.
“발사!”
쉬이익 콰과광!!!
프랑스 전령의 눈 앞에서 생샤몽 전차가 불타올랐다. 생샤몽 전차 뒷문으로 한 전차병이 미친듯이 비명을 지르며 탈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으아악!!! 아아아악!!”
에르빈이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어떠냐 이 프랑스 전차병 머저리들!”
에르빈이 자주포를 조종하고 있는 조종수의 등을 발로 툭툭 치며 말했다.
“전진해! 오늘 다 쓸어 버린다!”
조종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에르빈의 명령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한스 파이퍼 하사는 후방에 있으라고 했는데···’
에르빈은 자주포 안에서 자신이 무슨 왕이라도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내가 바로 전장의 신이다 머저리들아!”
그리고 에르빈은 1시 방향에 프랑스 군의 르노 전차를 발견했다.
“먹잇감이 입 안으로 걸어오고 있군.”
에르빈이 포를 장전하려는 순간, 자주포가 깊은 포탄 구덩이 안 쪽으로 덜컹하고 들어갔다.
“어?”
조종수가 당황해서 포탄 구덩이 밖으로 운전하려고 했지만, 구덩이가 가팔라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무한궤도가 헛돌았다. 에르빈이 외쳤다.
“젠장! 빨리 빠져나가라고!”
그 때, 1시 방향에 있던 르노 전차가 에르빈의 자주포가 빼꼼하고 땅 위로 솟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포탑을 서서히 이 쪽으로 돌렸다. 에르빈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그리고 에르빈은 땅 위로 빼꼼 나와있는 포를 용케도 르노 전차를 향해 조준해서 발사했다.
“발사!”
쉬익 쿠광!!! 콰과광!!
조종수가 외쳤다.
“맞췄습니까?”
에르빈이 외쳤다.
“맞췄어! 근데 우리 빠져나갈 수 있는 거야?!!”
“힘들 것 같은데 탈출하는 것이 어떨까요?”
“이 자주포는 내 꺼야! 절대 못 버리고 가! 절대 안돼!”
“우린 여기 빠졌습니다! 기동 불능 상태라구요! 탈출해야 합니다!”
그 말에 에르빈이 길길이 뛰며 반박했다.
- 작가의말
제 작품에 후원을 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든 분들에게 쪽지를 드리려고 했지만 쪽지 거부를 체크하셨는지, 발송이 되지 않았던 분들에게도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2021년에도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왕따 이등병의 1차 대전 생존기를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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