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결
덩치가 크고 눈빛이 사나워 보이는 병사들 몇 명이 지나갔다. 요나스가 그들을 보고 말했다.
“저 자식들은 똥 싸다가도 한 방에 적에게 헤드샷을 먹여줄 수 있을 것 같이 생겼는데?”
헤이든이 말했다.
“겁쟁이 미군놈들은 이제 우리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겁니다!”
거너가 쑥덕댔다.
“저 눈빛을 보라고. 백병전에서도 순식간에 적 스무 명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아.”
한스가 생각했다.
‘저 친구들이랑 보전 협동 전술을 쓴다면 훨씬 효과적일 거야!’
에밋이 말했다.
“우리가 인사라도 해야 할까요?”
최근에 하사로 진급한 바그너가 말했다.
“파이퍼 중사님이 먼저 인사하시겠지.”
바그너의 말에 전차병들이 모두 한스를 바라보았다. 한스는 사교성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 상황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들은 모두 한스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컸기 때문에 괜히 쫄릴 것 같았다.
‘젠장..내가 인사해야 하는 건가?’
결국 한스가 그 병사들에게 다가가서 적당히 무게를 잡으며 악수를 청했다.
“나는 한스 파이퍼 중사라네! 동부전선에서 온 것을 환영하네.”
“에에? 동부전선이요?”
덩치 크고 사나워 보이던 병사가 당황하며 대답했다. 한스가 말했다.
“자네들, 동부전선에서 온 정예병들이 아닌가?”
덩치가 큰 금발 머리의 병사가 얼빠진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흰 훈련소에서 왔습니다.”
“뭐라고? 자네들 나이가 몇 인가?”
“17살입니다!”
그 때, 포병대에서 그 신병들을 불렀다.
“너네 거기서 뭐해! 빨리 와서 옮기라고!”
“네!”
영국 포로들이 탈출했기 때문에 영국군에게 현재 포병대의 위치가 노출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포병들은 모두 급하게 낑낑대며 포를 이동하고 있었던 것 이다. 한스와 동료들은 이미 그들보다 먼저 전차 부대를 옮겨놨지만, 포병과 보병 모두 고생 꽤나 하고 있었다. 요나스가 말했다.
“그러면 동부전선에서 오는 베테랑 정예들은 어디 있는 거야?”
벤이 말했다.
“저 친구들 같은데?”
몇 달 동안 씻지 못하고 군복이 헤져 있고 면도도 하지 못한 몇 병사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한스가 그들에게 인사를 하자 그 중에서 한 명이 일어나서 대답했다.
“오스카 바르크만 하사입니다. 이 쪽은 필립, 로버트, 브랜틀리, 칼로스입니다.”
오스카 바르크만 하사의 옷에는 2급 철십자 훈장과 1급 철십자 훈장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들은 대다수가 평균 이하의 체격에 피곤에 찌든 표정이었다. 한스가 말했다.
“식사를 방해해서 미안하네. 편히들 들게.”
한스가 동료 전차병들에게 돌아갔다. 에밋이 쑥덕거렸다.
“별로 미덥지는 않네요. 저 친구들 믿었다가, 우리가 악!”
바그너가 에밋의 머리를 한 대 치고는 말했다.
“겉모습만 보고는 얼마나 잘 싸울지 알 수 없는 법이네.”
전차병들은 평균 체격의 바그너 하사가 지난 번에 보병들을 때려눕힌 것을 떠올리고, 그 말에 동의했다. 한스는 바닥에 그림을 그려놓고, 보병들과 함께 보전협동전술에 대해 미리 논의하고 연습하기로 했다. 한스가 말했다.
“이런 시가지 전투에서는 자네 보병들이 먼저 건물들을 수색해서, 매복한 적이 있는지 확인한 다음에 우리 전차들이 진입해야 하네. 시가지 전투뿐 아니라 이런 다리, 옆에 수풀이 우거진 길목도 그러하다네. 양 방향으로 자네 보병들이 수색을 한 이후에, 전차부대에 신호를 보내주면 되는 걸세.”
보병들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한스의 설명을 들었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자식들 이해하는 거야 뭐야···’
한스가 막대기로 돌맹이를 움직이며 계속해서 설명했다.
“이런 지형에서 전차를 격파할 때, 우리는 주로 협공 작전을 쓰는데, 자네 보병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할걸세. 우선 자네들이 적 전차에 들키지 않고 정찰해서, 적 전차의 위치를 알아내야 하네. 그러면 우리는 적 전차의 측면, 후면 등 두 방향에서 놈들에게 기습을 할 걸세. 놈들이 재빨리 한 쪽을 공격하면, 그 쪽에 있던 아군 전차는 뒤로 물러나고, 다른 아군 전차가 놈들을 공격할걸세.”
베테랑 보병 로버트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우리가 쓰던 거랑 똑 같은 방법이군..”
브랜틀리도 작은 목소리로 로버트에게 말했다.
“서부전선은 재미 없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한스는 로버트를 흘끗 쳐다보았다.
‘뭐야 제대로 이해하는 거야?’
그 때, 근처에서 포병들이 무리를 지어 우르르 지나가고 있었다. 포병들은 새벽부터 엄청나게 고생해서 포들을 이제 막 옮겨놓고, 휴식을 취하려던 참이었다. 한 포병이 한스를 보고는 쑥덕거렸다.
“재네 바닥에다 뭐 하는 거냐?”
“전차병이랑 보병이랑 보전합동전술인가 연습한다던데?”
“전차병들은 맨날 꼴깝 떤다니까.”
헤이든이 분노해서 주먹을 움켜 쥐었다.
“저 빌어먹을 자식들이! 한 번 혼을 내줘야 합니다!”
오스카 바르크만 하사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포병들에게 소리쳤다.
“이봐! 우린 훈련 중이니까 참견하지 말고 꺼지라고.”
오스카 바르크만 하사의 말에, 포병들은 자기 할 일을 하러 가기 시작했다. 전차병들이 속으로 생각했다.
‘베테랑 보병들이라 들었는데 이런 상황에도 싸우지 말고 저렇게 비굴하게 대처해?’
‘베테랑은 무슨···그냥 찌끄레기들일 것이 분명해!’
‘훈장은 운이 좋아서 받은 것일 거야!’
‘젠장! 우리한테는 왜 맨날 덜 떨어진 자식들만 붙여주는 거야!’
‘포병놈들 엿이나 먹어라!’
그 때, 하늘 위로 미군의 정찰기가 날라오고 있었다. 한스가 말했다.
“빌어먹을! 정찰기다!”
미군 제임스는 오늘이 고작 두 번째 비행인 용감한 파일럿이었다. 훈련 때 제임스는 다른 훈련병들에 비해 월등한 비행 실력을 자랑하였다. 제임스에게 비행기를 타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벅찬 일 이었다. 전투기 조종사는 평균 수명이 2주가 안 된다는 것도, 애국심이 충만하고 야심 찬 제임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제임스는 여자한테 인기도 엄청나게 많았다. 수 많은 여자들을 바람맞힌 그도, 진정으로 사랑하는 약혼녀 릴리가 있었다. 제임스는 약혼녀 릴리의 사진을 전투기 안에 붙여놓고, 하늘을 비행하였다.
부으으으응
제임스의 목에 걸린 스카프가 뒤로 휘날렸고, 거센 바람은 얼굴을 짜부가 되도록 후들겼다. 하지만 그마저도 제임스에게는 짜릿하게 느껴졌다.
“멍청한 독일 자식들..조만간 네 놈들 똥꾸멍에 포탄을 박아줄 날이 머지 않았다..”
전투기 위에서 바라보니, 이 곳의 땅은 벌써 여기저기가 시꺼멓게 포탄 구덩이로 파여있고 여기저기 흉물스러운 나무기둥이 꽂혀있고 그 사이에 철조망이 걸려있는, 검게 그슬리고 썩어가는 지옥 같았다. 독일 군이 점령한 저 멀리 떨어진 곳에는, 톱니바퀴 모양의 참호가 또렷이 각인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하늘과 대비되는 기괴하고 불길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제임스는 하늘을 날고 있는 자신만이 이 광경을 위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꼈다.
“저 보병 포병 떨거지들은 이 광경을 죽어도 못 보겠지!”
쿠과광! 퍼엉!
독일군의 대공포가 제임스의 전투기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여러 개의 팝콘이 튀겨지듯 공중에서 포탄이 연달아 터지며 시커먼 포연을 만들었다. 제임스의 전투기는 그 시커먼 포연 사이로 요리조리 쏙쏙 피하며 곡예를 했다.
“하하하! 멍청한 독일 놈들! 이거나 먹어라!”
그 때, 하늘 반대 편에서 독일군의 철십자기가 그려진 다른 전투기가 나타났다. 그 전투기를 조종하는 것은 미하엘이라는 21살의 독일 파일럿으로, 찌질한 성격 때문에 친구도 없고, 여자한테 인기도 없었다. 훈련소에서도 늘 위축이 되어 평균 이하의 비행 실력을 가졌다. 미하엘은 반대편에서 미군의 정찰기가 자신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오는 것을 발견했다. 잠시 뒤면 부딪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악!!!”
미하엘은 필사적으로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충돌을 피했다. 제임스는 미하엘을 비웃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겁쟁이 같으니라고!”
이제 제임스는 미하엘의 전투기의 꼬리 날개를 향해서 기관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드드드득 드드득
제임스는 모든 신경을 미하엘의 전투기에 집중시켰다. 도망가는 타겟만큼 온 신경을 집중시키고 아드레날린을 곤두서게 하는 타겟은 없었다. 제임스는 자신이 좇는 독일군 파일럿이 실력이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렇게 하강하다간 바닥에 추락할 수도 있는데, 왠일인지 놈은 계속 바닥으로 꼴아 박고 있었다.
미하엘은 자신이 미군의 정찰기에 꼬리를 잡혔다는 것을 깨닫고 공포에 질렸다. 총알이 자신의 근처를 스쳐가는 것이 느껴졌다.
“아아아악!!!”
이 때, 독일 병사들은 모두 이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멍청아! 잘 좀 싸우라고!”
“우리 쪽 조종사 뭐 하는 새끼야!”
“조종하는 것만 봐도 병신 같다!”
“독일 망신이야! 비행기가 아깝다!”
“그러다가 추락한다! 병신새끼야!”
미하엘은 어버버거리다가 기체를 상승시켰다.
“아아악!!!”
그렇게 미하엘의 전투기가 슝, 위로 올라간 다음에, 이제는 거꾸로 제임스의 비행기의 꼬리를 잡았다. 제임스가 당황했다.
“아니, 저 자식이?”
미하엘은 제임스의 비행기를 향해 기관총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드드득 드드드득
엄청나게 많은 총알을 쏴댔지만, 제임스의 비행기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연기도 나지 않는 것으로 봐서, 거의 맞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시발 왜 안 맞아!!”
그 때, 갑자기 제임스의 비행기가 우측으로 선회하며 사라졌다. 그리고는 다시 미하엘의 뒤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제 미하엘은 다시 미군의 전투기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미하엘은 비명을 지르며 최고 속도로 비행하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미하엘의 앞에는 이미 폐허가 된 커다란 건물이 있었다. 미하엘은 재빨리 기체를 상승시켰고, 뒤 따라오던 제임스의 정찰기는 건물에 그대로 부딪쳤다.
콰과광!!콰광!!
비행기가 건물에 부딪치며 엄청난 충격과 함께 폭발하기 시작했다. 독일군이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특히 포병들이 제일 좋아했다.
“야호! 야포 다시 안 옮겨도 된다!”
미하엘은 이제야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조심스럽게 전투기를 착륙시켰다.
“내..내가 해냈어?”
제임스는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충돌 즉시 사망했다. 제임스의 비행기에 붙어 있던 약혼자 릴리의 사진이 활활 불타 올랐다. 독일 병사들은 미하엘의 전투기를 보러 가서 환호하며 미하엘을 헹가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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