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이등병의 1차 대전 생존기

한계

영국 병사들은 필사적으로 달아나고 있었지만, 화염방사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꽃은 순식간에 그들을 움켜쥐었다.

“아아악!!!”

상병이 오토에게 외쳤다.

“잘했어! 구석구석 꼼꼼히 정리해!”

슈테켄 중사의 A7V 브륀힐트가 영국군 교전 참호를 정리하고 있을 때, 다른 A7V 전차, 군터는 뒤뚱거리며 숲을 건너오고 있었다. A7V의 소대원들은 이리저리 손잡이를 잡고 휩쓸리며 불안하게 버티고 있었다.

“으아앗!”

“밀지 마 시발!”

“운전 똑바로 못해!”

그 때, A7V가 가는 길 앞에는 거대한 나무가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A7V의 조종수는 엔진 위에서 조종을 해야 했기 때문에 땅에 이런 장애물이 있는지 관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원래는 측면에 있는 탈출용 해치를 열고 다른 병사가 계속해서 땅의 상태를 봐주어야 하는데, 지금은 여기저기서 총알, 포탄 파편이 날라오는 상황이라 그것도 쉽지 않았다.

조종수 페터는 전차장과 함께 엔진 위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아서 전차를 조종하고 있었다. 엔진 밑에서 나오는 열기는 엄청나서 엉덩이가 바비큐처럼 익어버릴 것 같았지만, 페터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A7V를 운전했다. 그 순간, 뭔가가 전차 밑에서 느껴졌다.

덜컹!

A7V의 조종수 페터는 아래쪽에 뭔가가 걸렸다는 것을 알아챘다. 하지만 전차장은 그냥 계속 전진하라고 수신호를 보냈다. 페터가 소리쳤다.

“뭔가 밑에 걸렸습니다!”

하지만 엔진이 웅웅거리는 소리 때문에 페터가 씨부리는 소리는 전차장에게 들리지 않았다. 전차장이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며 외쳤다.

“그냥 전진해! 전진하라고!”

페터는 결국 억지로 A7V를 앞으로 계속 전진시켰다. 통나무에 걸려서 A7V의 앞부분이 조금 위로 치솟았다. 손잡이를 잡고 버티고 있던 병사들은 뒤로 쏠리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손잡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아아악!”

“지금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병사들 대다수는 전차 안에서 바깥 상황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무척 불안했다. 바깥에서 두들겨대는 포탄 소리, 총알 소리, 엔진 소리에도, 불에 달구어진 통조림 같은 A7V안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던 것 이다. 전차장이 병사들에게 외쳤다.

“잘 붙잡고 있으라고!”

하지만 전차장이 뭐라고 씨부려대는지 병사들은 들을 수 없었다. 포수 레마르크가 중얼거렸다.

“병신 같은 자식, 뭐라고 씨부리는 거야!”

레마르크는 자기가 말해봤자 전차장은 절대 듣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욕을 지껄인 것 이었다. 전차장은 식은 땀을 흘리며 조종수 페터를 보며 소리쳤다.

“잘 지나갈 수 있는 거지?”

A7V는 무게중심이 위 쪽에 쏠린 구조였기에, 자칫하면 뒤집어지기 쉬운 전차였다. 병사들은 이미 좆 되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전차가 기울어지며 바닥에 놓여 있던 탄약 상자와 구급 상자도 뒤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시발!”

의자에 앉아 있던 베겔러가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바닥에 막대형 수류탄이 굴러다니는 것을 발견하고는 잽싸게 잡았다.

“뒤질뻔했네!”

이 때, 조종수 페터 뒷자리에 있던 깔때기 모양 소화기까지 바닥에 떨어지며 굴러다녔다. 베겔러가 다른 손으로 소화기를 잽싸게 잡고는 말했다.

“다행이다..”

조종수 페터는 애써 지금 상황을 만화해보려고 우측으로 스티어링 휠을 돌리며 방향을 틀어보려고 했다.

“조금만 기다려!”

그 순간, A7V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뭐야!”

“아아악!!”

육중하고 거대한 A7V, 군터는 오른쪽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전차병들은 샌드위치처럼 포개어졌다.

우당탕!

"아악! 시발!!"

한 전차병은 하필이면 맨 밑에 깔려 버렸다.

“으악!! 누르지마!”

베겔러는 결국 소화기를 손에서 놓쳤고, 그 소화기의 꼭지점은 다른 병사의 대가리에 맞았다.

“아악! 내 머리!”

베겔러는 자신의 옷 소매가 기름으로 범벅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질겁했다.

“아악!!”

다른 전차병은 얼굴에까지 기름으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누군가 외쳤다.

“탈출해! 빨리 탈출해!”

A7V 군터의 전차병들은 재빨리 왼쪽 측면에 나 있던 탈출구를 통해서 빠져나갔다.

“무기 갖고 가!”

“여기 수류탄!”

베겔러는 자신과 동료들이 무사히 전차 밖으로 빠져 나온 것에 안도했다. 하지만 문득 자신과 동료들이 철모를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차 안에서는 필요 없을 거라 생각하기도 했고 뜨거운 열기 때문에 너무 답답했던 것 이다.

‘젠장..어떡하지? 철모도 안 쓰고 싸워야 해?’

그 순간, 반대편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타앙! 탕!

총알들은 A7V의 반대편 장갑에 부딪치며 튕겨져 나갔다.

“젠장! 저 쪽에 영국놈들이 있어!”

다행히 전차병들은 A7V, 군터 뒤에 엄폐하고 있어서, 영국 보병들이 쏘아대는 총알에 맞지 않았다. 베겔러가 생각했다.

‘군터 뒤에 숨어서 놈들이 올 때 수류탄을 던지면!’

그런데 다른 전차병들은 모두 군터를 버려두고 어딘가로 달려가고 있었다. 조종수 페터가 베겔러에게 소리쳤다.

“빨리 따라와! 빨리!”

베겔러는 영문을 모르고 멀뚱하게 있다가 재빨리 동료들을 따라 달려갔다.

‘뭐지? 저 놈들이랑 싸워야 하잖아!’

그 때, 뒤에서 익숙한 소리가 났다.

쉬잇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베겔러는 무의식적으로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앞에 있는 구덩이 안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뒤에서 엄청난 폭발과 화염이 느껴졌다.

쿠과광!!콰광!!

A7V전차는 영국군의 포탄을 맞은 것 이었다. 거대했던 군터는 시꺼먼 구름 속에 휩싸였고 2차 폭발을 일으켰다.

콰광!!쿠과광!

사방으로 A7V전차의 파편과 흙먼지가 튀어나왔다. 베겔러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자신의 몸 위로 흙먼지가 흩뿌려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아악!!으아악!!”

베겔러는 왼쪽 팔에 통증이 느껴졌다. 조심스럽게 눈을 뜨고 살펴보니, 왼쪽 팔뚝에는 엄지 손톱만한 파편조각이 군복을 뚫고 박혀 있었다.

“시발! 나 맞았어! 맞았다고!”

베겔러는 오른손으로 조심스럽게 그 파편을 뽑아냈다. 파편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허억···헉···”

뒤에서는 계속해서 영국 병사들의 소총 소리가 들렸다.

탕! 타앙! 탕!

이 때, 캠머리히 상병은 프리드리히, 파울을 이끌고 다른 보병들보다 훨씬 앞서서 숲 속에서 달려가고 있었다. 숲이 꽤 넓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적군도 아군도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캠머리히 상병은 덜컥 겁이 났다.

‘우리만 너무 많이 온 거 아냐?’

괜히 혼자서 너무 멀리 왔다가 적의 매복에 당하거나 포위당하는 일이 흔했기 때문에, 가급적 다른 보병들과 속도를 맞출 필요가 있었다. 캠머리히 상병이 동료 프란츠 상병을 찾으며 큰 목소리로 외쳐 보았다.

“프란츠! 프란츠!”

하지만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프리드리히와 파울도 불안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괘..괜히 우리 위치만 들통나는 거 아냐?’

캠머리히 상병이 다시 외쳤다.

“프란츠 상병!”

그 때서야 남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나 여기 있어!”

캠머리히 상병이 안심하고는 말했다.

“계속 앞으로 간다!”

독일 보병들이 숲을 수색하고 있을 때, 한스는 저격수도 신경 쓰지 않고 해치 위로 머리를 내밀고 주변을 관찰했다. 그러다가 재빨리 해치를 닫고, 헤이든의 오른쪽 어깨에 발을 올려놓고 귀에 외쳤다.

“우측으로 선회! 우측으로 선회!”

헤이든, 에밋, 거너는 조심스럽게 티거를 우측으로 선회할 준비를 했다.

‘왜 우측으로 가는 거지?’

그 때, 헤이든의 눈에는 수류탄을 들고 달려오던 영국 병사가 보였다. 헤이든이 입을 크게 벌리고 한스를 쳐다 보았다. 한스가 계속 전진하라는 수신호를 보내며 외쳤다.

“깔아뭉개! 깔아뭉개라고!!”

결국 헤이든은 눈을 질끈 감고 계속해서 마크 전차를 전진시켰다.

“아아악!”

그렇게 독일군은 그 날 전투에서 승리했다. 독일 병사들은 영국 병사 열 댓 명을 포로로 잡았다. 프레드리히가 포로로 잡힌 영국 병사의 앞에서 주먹질을 했다.

“이 좆 같은 새끼들! 네 놈들 모두 뒤질 거야! 뒤질 거라고!”

하지만 프레드리히는 겁이 나서, 실제로 포로를 때리지는 못했다. 파울은 포로로 잡힌 영국 병사들한테 오줌을 갈겨댔다.

“이거나 먹어라 십새끼들아!”

영국 병사들은 모멸 속에서도 두려움 때문에 눈알을 굴리며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 때, 어디선가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났다. 프레드리히가 파울에게 말했다.

“이거 뭔 소리야?”

“구경가자!”

그 소리가 나는 곳에는 독일군의 노획 마크 전차 티거가 있었다. 파울이 말했다.

“뭐야? 뭐라도 있어? 우웩···웩···”

그 티거의 밑에서 다리가 반쯤 깔린 영국 병사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프레드리히도 이 광경을 보고 먹은 것을 모두 게워냈다.

“우웩 시발···”

“으아악!!아악!!”

그 영국 병사는 목청이 나가버린 것인지 쉰 비명 소리를 냈다. 마크 전차의 해치가 열리고 전차병들이 뛰쳐나왔다. 거너가 질질짜며 한스에게 말했다.

“중사님! 어떻게 합니까!”

한스도 서둘러 전차 밖으로 나와서 중얼거렸다.

“이런 세상에..”

그리고 한스는 전차에 들어가서 먼지 터는 솔과 막대기를 꺼냈다. 그리고는 전차 궤도에 박힌 자갈과 나뭇가지를 하나 둘씩 빼내기 시작했다. 영국 병사가 비명을 지르던 말던 아랑곳하지 말고 한스는 지저분해진 궤도를 청소했다.

“파이퍼 중사님!”

한스가 거너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걱정 말게! 이물질을 제거하면 궤도는 굴러갈 수 있을 걸세! 그리고 우리에겐 예비 궤도가 하나 있지 않은가! 티거는 무사할걸세!”

에밋, 헤이든, 벤, 루이스도 티거 안에서 나와서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 벤이 말했다.

“중사님! 이 자는 어떻게 할까요..”

한스가 그 때서야 전차 밑에서 비명을 지르는 영국 병사를 바라보았다.

“아..이거 말인가? 빼내면 티거에는 문제 없을 걸세! 빌이 고생 좀 하겠군..”

한스는 여전히 티거의 궤도만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 날, 전차병들은 오랜만에 고기 스프를 배급 받았다. 평소에는 말만 고기 스프지, 건더기가 거의 없는 묽은 국물이었는데, 이번에는 웬일로 고기가 그득했다. 전차병들은 말 없이 밥을 먹었다. 니클라스가 말했다.

“한스는 이등병 시절부터 사격 솜씨가 좋아서 위험한 임무를 모두 도맡아 했네. 그러다 보니 녀석도 한계가 온 걸세. 휴가라도 갔다 오면 나아지겠지.”

[증오하는자]

소실된 A7V는 어떻게 보충할까요? 물론, 한스 부대에게 그만큼 막중한 임무를 가지겠죠? 트럭들과 오토바이는 뭘할려나? 트럭보고 보병수송장갑차도 떠오를지 궁금하네요! 오토바이 사이드카야...

그나저나 저 영국군 병사는 수류탄 던지려던 병사 맞죠? 과다출혈과 쇼크로 ㅜㅜ 아, 정말 고통스럽겠군요! ㅜㅜ

[di******..]

한스가 장갑차와 오토바이에 대해서도 관심을 더 갖게 될 것 같습니다! 네. 그 영국 병사 맞습니다.ㅠㅠ

[gl******..]

'사람이나 철은 두드릴수록 강해진다' '근성' '이게 다 나약해서 그런거다' 라는 감성에 찬 헛소리에 정면으로 죽빵을 날린것들중 하나가 세계대전들의 후유증이죠
결국 모두 몸도 마음도 상할뿐입니다
예전같은 일상과 예전같은 초롱초롱한 눈과 뜨겁고 순수한 열정을 가졌던 나로 돌아가는건 불가능해졌죠
그저 그들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길 바라는게 해줄수있는것의 전부가 되어버렸습니다
비극이죠 그게 사료든 뉴스든 창작물이든 안타까울뿐입니다

[di******..]

휴가라도 갔다왔다면 괜찮았을텐데, 정신적으로 한계에 다다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ㅠㅠ1차대전에서 큰 부상없이 무사히 돌아온 병사들도 말이 없어지고 성격이 완전히 변했다고 하더라구요. ㅠㅠ

[슐레지엔]

근데 딱히 저래되도 문제가 있나? 전투만 승리로 이끌면 되는 거 아님?

[di******..]

장교 입장에서는 확실히 그렇죠! 어차피 저 시절에 몇 년간 전쟁터에서 싸웠는데 제정신을 유지하는 군인이 거의 없었다고 하더라구요!

[화이트썬]

즐감했습니다

[참좋은아침]

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