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대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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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빛의추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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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4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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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4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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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6.0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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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삽질 대마법사 이야기 44화

DUMMY

44화 이번에는 어떻게 ‘버렸다’로 끝낼지 고민하다 시간을 다 날려버렸다.





젊은 일리시드의 파라곤은 문 밖으로 빠져나가는 몬스터들을 보았다. 할라스터에게 잡혔을 때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던전에 도착하자마자 그 미친 마법사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다른 관심사가 나타났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다. 아니, 어쩌면 자신들의 배일지도 모른다.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지?”


붉은 머리 청년의 모습을 한 존재가 있었다. 그건 절대로 ‘먹이’가 아니란 것은 잘 알고 있지만. 할라스터가 요새를 비우고 난 지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마비가 풀려 돌아다니다 그의 진짜 모습을 보았으니까.


파라곤은 방금 전에 식사를 마치고 남은 ‘음식물쓰레기’를 보았다. 녹색머리의 여자였다. 약간의 정보도 획득할 수 있었다. 그 정보는 정말로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위대한 존재께서는 분명히 이 던전의 지리를 파악하고 있으실 것입니다.-


“그래. 난 수 백년간 내 의지를 잃었다네.”


그가 다시 의지를 찾게 한 것은 자신이다. 그리고 그가 저 외견을 하고 있는 것도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다니게 하면 눈에 띄고 말 테니까.


-할라스터의 빈틈을 노린다면 당신은 복수를 성공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저 시체로부터 정보를 하나 얻었습니다.-


“무슨 내용인가?”


-카서스가 이 세계에 있습니다.-


“카서스? 들어본 적이 없네.”


-위대한 존재께서는 수백 년간 이 세계에서 유폐되셨으니까 입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청년의 외견을 한 것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네서릴의 아크위저드는……-


“아크위저드라고?”


-네. 그 자는 공중도시의 창조자 중 하나이며 단신으로 간단히 마수 타라스크를 쓰러뜨린 자입니다.-


“타라스크라고?”


단지 수일간의 움직임으로 하나의 세계를 멸망시켰다고 하는 괴물의 이름. 그것은 세계를 끝장내기 위해 신이 보냈다는 파충류 처벌자.


“그거 별로 안 세잖아?”


-분명히 그것은 강력하지는 않습니다만 그 아크위저드는 타라스크를 ‘진정’으로 죽였습니다.-


인간의 외견을 한 존재는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그것은 먼지단위로 붕괴시켜버려도 다시 살아나고 마는 강대한 마수.


-그리고 그 자는……이올라움과 비견되고 있습니다. 아니, 이올라움을 넘어섰다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미살라의 첫 제작자와?”


-어쩌시겠습니까?-


“그냥 적당히 보물 좀 챙기고 이 세계를 뜨는 게 좋을 것 같군.”


파라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이동했다. 에인션트보다도 두 단계나 더 오래되고 더 강력한 레드 드래곤의 그레이트 웜과 함께.





미스 발리에르에게 사역마가 다가가고 있다. 등에 생긴 큰 부상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느린 움직임과는 반대로 그 얼굴에 가득히 유쾌함이 묻어있다.


“자, 자. 제로.”


큰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또렷이 들린다. 조소 어린 목소리다.


“능력은 안 되면서 주제에 공작의 따님. 큭. 신분 탓에 잘난 약혼자는 있었으나 그 손으로 약혼자를 살해하시고……”


잠시 사역마가 멈칫했다.


“크, 크크큭. 와하하하하.”


돌연 폭소를 터뜨렸다.


“자, 우리의 제로씨. 할 말은 많지만 말해봐야 재미도 없을 것 같으니까.”


저 사역마는 절대로 제정신이 아니다.


“갈가리 난자해줄게. 아, 그래도 죽이지는 않을게.”


생각해보니 저 유령들은 아마.


“내가 죽이면 저 미쳐 날뛰는 망자가 되지 못하잖아?”


확실히 공동묘지 쪽에서 유령이 목격되었다는 증언은 없었다. 저 망령들의 손에 살해된 자만이 망령이 된다고 추측을 할 수는 있다.


“그냥 죽어버리면 내 원한이 안 풀린다고.”


사역마가 검을 쥐고 있다. 자신의 주인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그 주인은 공작가의 영애이며 연인의 소중한 친구다. 웨일즈는 지팡이를 쥐었다.


자신의 힘은 미력하다. 현재 나타난 문어머리 악마를 없앨 방법은 없다. 지팡이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진작 유령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비록 명예롭지 못한 방법은 써서 유령의 군세를 줄였다고 해도 알비온의 황태자로서의 마지막 자긍심만은 지켜야 한다.


사역마가 칼을 휘둘렀다. 아까까지 멍하니 보고 있었을 때에 보인 것에 비해 매우 느려터진 속도였다. 표정을 찡그리고 있었다. 뭔가가 방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그녀를 죽게 놔둘 수는 없다. 사역마가 주인을 죽이게 하는 일 같은 것은 절대로 나타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웨일즈는 지팡이의 힘을 사용했다.


“아.”


그리고 깨달았다. 사역마와 미스 발리에르가 동시에 빛에 감싸였다. 비명 소리가 들렸다. 사역마와 미스 발리에르가 쓰러져 있었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무서운 일인가? 웨일즈는 지팡이를 보았다. 아니, 아직 늦지는 않았다. 빨리 치료를 한다면. 그는 쓰러진 두 명에게 뛰어갔다. 사역마가 갑작스레 일어났다. 전신에 화상을 입었다. 피부가 타고 살점이 엉망이다. 눈에 서린 것은 오로지 광기.


근접전에서는 불리하다는 것은 확연한 사실. 천천히 뒤로 물러나면서 지팡이를 겨눴다. 사역마는 뒤로 돌아 다시 미스 발리에르를 보았다. 또? 다시 공격할 셈인가? 웨일즈는 이번에는 제대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봐.”


사역마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말하고 싶은 바가 뭐지?”


“넌 내게서 루이즈를 구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고개를 끄덕였다. 사역마는 웃음을 참을 수 없어하는 표정이었다.


“아, 킥. 아아. 크래. 큭.”


사역마는 비틀거리면서 길을 비켜주었다.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미스 발리에르에게 다가갔다.


“이, 이건……”


웨일즈는 천천히 바라만 보았다.


“이야. 역시 세상은 재미있는 건지 악의가 만연한 건지 모르겠다니까……”


사역마는 반드시 웃고 있을 것이다. 웨일즈는 힘겹게 관찰했다. 정말로 간신히 가슴일 것 같은 것이 미동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눈꺼풀이었던 것의 일부가 타고 일부가 녹아내려 눈동자였던 것과 섞인다. 눈동자였던 것 역시 거의 대다수가 타버렸다. 이래서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시력을 회복시킬 수 없다.


얼굴의 한 쪽은 피부가 녹아내리다 못해 뼈까지 들어나 있다. 다른 쪽은 지방은 녹고 다른 성분은 타 붉은 색과 검은 색이 섞여 괴물의 피부와 유사해졌다. 이래서는……


“내가 갖고 있는 쓸모없는 검의 말로는 내가 직접적으로는 그 지옥에 갈 나의 빌어먹을 ‘주인님’을 살해할 수가 없는 것 같더군. 어째 안 움직여진다고 했더니 말이지.”


화상이 번진 몸에 생겼을 통증조차 아무렇지 않다는 듯 밝게 웃고 있는 자. 흥겨움을 만끽하고 있는 것 같다.


“맘에 안 든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는 정말로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걸.”


그녀를 가장 끔찍한 상황으로 몰아줘서 말인가? 보호해야 하고, 보호하기로 했는데.


“명예니 어쩌니라며 말하더니 현실적이잖아.”


웃기지 마라.


“그러고 보니 이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아가씨’께선 트리스테인 왕녀님의 친한 친구였다면서?”


그래.


“아아, 멋지시군. 이대로 죽으면 이제 이 ‘아가씨’께서 누구에게 살해당했는지 들으신 왕녀님께서 속이 많이 상하겠어.”


“무, 무슨 소리하는 거지?”


앙리엣타가 이걸 알아버린다고? 앙리엣타의 친우를 죽게 만들었다는 것을? 안 된다. 절대로 안 된다.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아, 지금 날 죽여도 증거는 사라지지 않아. 저 저주받아 유령이나 되어 구원받지 못할 여자가 죽었을 이유는 명백해. 그 빛을 사용할 수 있는 건 당신밖에 없으니까.”


“아.”


뭔가가 부서져나가는 것 같다. 깊은 곳에서 균열이 발생한다. 그녀, 앙리엣타에 대한 애정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반역자들이 권세를 부릴 때 그녀의 호의를 거절하고 당당히 알비온의 멸망의 순간까지 이곳에 남기로 했지만 이 일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귀중한 명예를 박살내며 그녀에게 이해를 받을 일도 아니며 그저 상처 입히는 일이다. 안 된다. 절대로 그렇게 되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미스 발리에르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동시에 이 일이 퍼져 귀족들, 아니 세상에 미칠 파급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것이 드러나는 것을 어떻게든 회피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뭐 간단한 방법이……”


웨일즈의 사역마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사역마는 그저 저편을 응시했다. 고개를 따라 움직였다. 도덕적인 어쩌고를 생각할 틈도 없었다.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그저 앙리엣타를 가능한 덜 슬프게 만들어야한다는 생각이었다.


아무 것도 판단하지 않고 저질러버렸다.


죽음이 확정된 소녀가 비명을 질렀다. 아련하게 들렸다.


유령들에 휩싸인 채 고통의 절규를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 올라왔다. 그 끔찍한 몰골은 그대로였다.


흐릿한 몸체에 타버린 머리와 녹아버린 눈꺼풀과 눈, 얼굴 한쪽의 턱뼈와 광대뼈가 드러난 채 피부는 녹아내린 부분과 탄 부분이 붉고 검고 드러난 몸도 다 타들어간 모습.


유령이 되어도 생전과 같은 외견. 웨일즈는 멍하니 지팡이를 휘둘렀다. 미스 발리에르의 영혼이 지워지면서 들리는 비탄도 그냥 흘러들었다. 그녀를 떨어뜨린 창가에서 다시 중앙탑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사역마가 드러누운 채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정신이 들었다. 뭘 해버렸는지 알아차렸다. 어떤 것을 저질러버렸는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해버렸는지 깨달아버렸다.


“네 놈!”


저주를 내뱉고 싶어졌다.


“난 그냥 방법을 제시했다고.”


저건 악마다. 인간을 타락시키는 자다.


“아아, 그렇게 화내지 않아도 난 곧 죽는다고.”


가지고 있던 가치관을 너무나도 간단히 무너뜨려버리고 말았다.


“정말로 멋지더군. 솔직히 그렇게까지 잘 해줄지는 몰랐다고.”


상당 기간 같이 지냈을 자의 최악의 말로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다.


“아아. 당신은 정말로 좋은 사람이야.”


하하하. 좋은 사람이라고? 좋은 사람이라고! 웨일즈는 지팡이를 휘둘렀다. 다시 사역마가 빛에 휩쓸렸다.


“크윽.”


그 악의와 광기에 젖은 자는 아직도 죽지 않았다. 부상이 더 심해진 것은 눈에 보이지만.


“아. 이 쓸모없다고 생각한 마법검도 마지막에는 쓸모가 있네. 약간이라도 그 마법의 힘을 막아주고는 있으니까.”


그렇기에 몰락을 볼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하는 건가!


“그런데……”


위험하다. 뭘 하려는 거지?


“말이야. 아직도 눈치 못 챈 거야? 하긴 나도 방금 알았지만.”


무엇을 말하는 건가? 또 뭐가 있다는 건가? 아주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고 타락시킨 이가!


“어째서 주인년이 사역마에게 살해되려는데 당신 말고는 막지 않았는지 말이야.”


귀족이, 메이지가 계약을 맺은 사역마에게 살해된다는 일은 들어본 적이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다. 비록 상황이 엉망진창이지만 목격했다면 어떻게든 막아야 되겠지.


“그러고 보니 왜 나와 그 이름을 말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진 계집애가 공격을 당하지 않았는지도 알만한 건가.”


자신은 잠시 멈춰있었다. 상대할 수 없는 것이 또 나타났기에 기력이 빠져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공격을 당하지 않았다.


“저 악령들은 구경하고 있어. 이 망가짐을. 기뻐하고 있어.”


확실히 저 지옥에나 펼쳐질 광경을 세상에 나타낸 것들은 살아있는 것을 증오하고 있다. 그들은 구경하고 있는 것이다. 관중이 되어 이 난잡한 활극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가련한 배우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알비온의 황태자인 자신이, 6천년의 기간 끊이지 않은 고귀한 피의 주인이!


“뭘 생각하고……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역마의 목소리가 약해져간다. 그의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어서 나에게 훼방이 생기지 않은 이유를 구해보는 게 어때?”


여유로운 목소리. 생명의 불꽃이 끊어져가면서도 웃음기가 있다.


“어째서 웃는 거냐?”


“아아. 모르겠어?”


이해할 수가 없다. 아까의 발악을 봐서는 죽음을 태연히 받아들일 성격으로는 여겨지지 않는다.


“난 유령이 되지 않아. 네가 날 죽여줬으니까.”


웨일즈는 절망했다. 연인의 친구를 최악의 상황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타락시킨 자를 이 강림해버린 지옥에서 유일한 구원된 자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아니, 아직 늦지 않았어. 당장이라도 저 악령들의 떼에 던져버린다면, 이 거대한 악에 합당한 처벌을 내린다면! 웨일즈는 다급히 사역마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만졌다. 이미 죽었다.


“하하하.”


허무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비록 마음에 드는 행동은 전혀 안 하고 짜증까지 유발한 여자라해도 자신은 연인의 유일한 친우를 가장 고통스레 죽게 했다. 전신에 지독한 화상을 입혔다. 그리고 그 악마에 말에 순간적으로 넘어가 그녀의 영혼마저 악령의 무리들에게 당하게 했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영혼마저 파멸로 몰아버렸다.


“하하하.”


한 번 더 웃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째서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인가? 웨일즈는 지팡이를 바라보았다. 이 지팡이에 깃든 힘은 저 악령들에게 가장 유용한 힘이기에 들고 있는 것만으로 보호를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아니다.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힘을 목격한 자는 다수일 것이다.


“그래.”


중앙탑의 최상층에 있던 이들이 전멸했거나 아니면 전투에 휘말렸다는 소리다. 주변에는 그 악인의 시체 말고는 보이지 않는다. 내려가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까. 웨일즈는 힘겹게 움직였다.


그러고 보면 그 악령들. 가까이에서 본 적이 있다. 그 살아있지 않은 것들은 선한 자가 악에 빠지고 두려워하고 저주하는 마음에 빠지는 것을 정말로 좋아할 것이다. 평민이 귀족을 역으로 없애려 들고 그게 성공한다는 사건 같은 것은 아주 큰 구경거리겠지. 젠장.


“아무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생존자를 찾아야 한다. 뉴캐슬을 지키는 것은 이제 무리다. 어떻게든 살아남은 자를 규합해서 탈출해야 한다. 이 지팡이의 힘이라면 도주하는 것은 시도해 볼 수 있다. 뉴캐슬이 무너지면 알비온의 재건은 끔찍하게 힘들어질 것이다. 실제로 그냥 버리고 달아나는 것은 알비온의 멸망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기도 했으니까.


“거기 아무도 없는가?”


중앙탑의 아래층에 도달했다. 유령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누구 있는 사람 없는가?”


제발 아무나 답을 해줬으면.


“살아있는 사람 없나?”


누군가 있었으면 한다. 저 망령들과 괴물들 사이에 혼자 있고 싶지 않다. 저 비현실적인 것들은 정말로 질색이다.


“아무도 없나?”


이 죄악감을 사라지게 할 방법을 누군가 줬으면 한다. 그것이 자신이 해치운 그녀에게는 아무런 속죄가 안 되는 위선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부탁이니까.


“누구 없습니까?”


오랜만에 경어가 나온다. 답답하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동시에 마음의 어느 구석에서 생성된 두려움이 몸을 점령하려 든다.


멍하니 봤던 그녀의 시선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걸 박살내버렸던 것도. 자꾸만 뭔가가 속삭인다. 이제 절대로 고귀할 수가 없다고. 해야 할 일을 버려버렸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했다고.


“그래도……그래도.”


병사들과 메이지를 죽게 했다고 해도. 그 대신 누군가를 살렸다면, 뭔가를 해냈다면. 제발 그 선택들이, 자신이 한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 그 이하가 되지 않았다면. 웨일즈는 계속 내려갔다.


“살아있는 분 계십니까?”


어쩔 수 없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래도 이럴 수는 없지 않은가. 웨일즈는 탄식했다.


“지하까지 와버렸네.”


웨일즈는 힘없이 다시 계단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최상층에 도착해버렸다.


“킥.”


모두 다 죽었다. 망령에게 먹혔다.


“하하하.”


자신을 믿어주던 이들은 이제 없다. 레콘키스타와 뉴캐슬에서 최후의 전투를 할 것을 다짐했을 때 눈물을 간신히 참게 만든 충성스런 이들은 이제 없다. 살아 있는 자가 없다.


중앙탑 주변에 바글바글 거리던 악령들은 문어머리의 괴물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이 지팡이는 그 힘 말고도 다른 보호의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혼자 남았다. 이제 앙리엣타를 볼 면목은 없다. 이제 알비온의 장병은 없다. 그저 한 구의 시체와 한 명의 바보만이 남았다.


알비온은 이제 부활하지 못한다. 그럴 의지도 이젠 없다.


웨일즈는 힘없이 지팡이를 바닥에 놓았다. 이 세상은, 이제 인류는 끝났다. 대적할 힘도 무엇도 남은 게 없다. 더는 막을 힘이 없다. 그리고 막지 못한다면 모든 것은 끝이다.


“끝이라……”


그거 좋군. 평생을 다짐하던 것이 무너졌고 가장 사랑하는 이는 더 이상 만나서는 안 될 것이며 믿어주는 사람도 믿을 사람도 없다. 살아가봤자 해야 할 것은 거대한 책임뿐이다. 아무도 모른다고 한들 자신은 알고 있는 것. 도저히 짊어질 수가 없는 큰 악몽이 마음을 갉아먹고 있다.


웨일즈는 뚫린 공간을 보았다. 저 망령들도 자신을 보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유령이 되어 절망하고 싶지는 않다. 힘을 행사할 마음은 무너졌다.


웨일즈는 멍하니 밖을 보았다. 저 멀리서 무수한 이형의 새로운 괴물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그래. 이제 더 이상……”


자신은 주역이 아니다. 그저 부서지는 자 중 하나뿐. 웨일즈는 크게 웃고는 뛰어내렸다. 지팡이 하나 들지 않은 채.


지상이 가까워지고 있다. 삶의 최후가 다가오고 있다. 그는 떨어지면서 다시 중앙탑을 보았다.


누군가 있었다. 분명히 바닥에 내려놓았던 지팡이를 한 손에 든 회색 외투차림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가 다른 한 손에 든 찻잔을 여유롭게 한 모금 들이마신다. 자신의 눈빛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자신이란 존재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 같이.


낙하하면서 느껴지던 강렬한 바람이 사라졌다. 느끼지 못하게 됐다. 어째선지 이유를 대질 못할 의문이 들었다.


당신은 어째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거지?


그것이 그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 정규마스터님에 의해서 문피아 - 정규 - 미정 (bn_794) 에서 문피아 - 하 - 연재 완결(etc_fine) 으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6-20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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