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대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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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빛의추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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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4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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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4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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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5.20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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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삽질 대마법사 이야기 2화

DUMMY

2화 소년은 만나버렸다.




그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여전히 겁에 질려 있었다. 그렇기도 하겠군. 꼴을 보니 아무것도 모른 채 끌려온 모양인데. 그는 방의 의자에 걸터앉았다. 자신을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던 콜베르라는 대머리는 업무를 보러 양호실 앞에서 헤어졌고 자칭 자신들의 주인인 루이즈 역시 자신들을 방으로 데려온 후 뭔가 해 둘게 있다며 사라졌다. 물론 그들이 어디 갔는지 정도는 알려면 바로 알 수 있지만.


“거부감인가?”


하긴. 그럴 법도 하군. 자신을 대상으로 할 생각은 아니지만. 어쩌면 트라우마가 생긴 건지도 모르겠군.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닌가. 언어의 차이를 없애기 위해 이미 사용했으니까. 아마도 필요하지 않은 일에는 가능한 한 안 쓰도록 무의식 차원에서 정해져 버린 것 같군. 그래도 지금 당장은 가만히 놔두도록 하자. 이렇게 제약을 걸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해도.


그는 천천히 몸을 움직여 보았다. 이상은 없는 것 같다. 기절한 사이 치료라도 받은 건가. 아니면, ……확실히 가능성은 있군. 그는 소년에게로 발을 옮겼다. 소년은 벽에 기댄 채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진정해라.”


소년은 눈을 크게 떴다. 역시 이야기가 통하는 상대가 나타난 것에 기쁜 건가. 일단 피부색으로 봐서는 황인종이군. 이 복식은 본 적이 없고 그렇다고 여기의 사람들과 언어가 통하는 것도 아니야. 최소한 이 학원이 속한 곳-트리스테인이던가-과 다른 언어권의 사람이겠군. 소년은 아직 주저하고 있다. 그는 다시 말을 걸기로 했다.


“가만히 있다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데 넌 어떻게 생각하지?”


소년은 잠시 인상을 찡그리다 스스로 뭘 했는지 알아채고는 힘겹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히라가 사이토라고 합니다.”


공손한 태도다. 하긴 방으로 오면서 잠깐 동안의 취급과 부상의 정도-특히 눈가에 생긴 멍과 다소 검게 탄 피부-를 봐서 험하게 다루어진 것은 확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나름대로 친절하게 대해준다면 이런 반응이 나올 만도 하다. 뭐 남자 녀석이 눈가에 눈물마저 글썽이고 있는 장면 같은 건 별로 보고 싶지 않지만. 뭐 상관없나. 일단 들어나 보자. 그는 사이토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전 아시겠지만 일본에서 왔습니다.”


역시 알 리가 없는 지명이군. 그는 생각했다. 사이토는 자신의 흑발을 긁적이며 바라보고 있다. 그 눈빛은 무언가를 바라고 있다.


“아니, 몰라.”


사이토가 갑자기 무너졌다. 잠깐 바닥을 바라보던 사이토는 갑자기 머리를 숙이며 맹수처럼 그에게 다가왔다. 의문과 분노가 섞인 눈이다. 칼처럼 날카로운 머리끝이 그의 눈앞에 온다. 그는 살짝 뒤로 물러섰다. 예기가 상당하군, 이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다시 사이토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아마도 이렇게 추리하는 것 같군. 내가 자네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니 그와 관련된 기본 지식 예컨대 국가명이라던가 하는 부류의 것 역시 알고 있을 거라고.”


사이토의 눈에서는 분노가 사라졌다. 남은 건 오로지 의문. 설명을 요구하고 있는 눈초리. 그는 약간 괘씸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계속 말을 잇기로 했다. 어떤 지식을 추구하는 것에 열의를 다하는 것은 마법사의 기본적인 태도. 그건 너무나도 잘 체득한 것이니까 화내지 말자. 상황이 좀 다르더라도 말이다.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난 좀 먼 곳에서 왔다네. 그곳에서 약간 남다른 면이 있던 부류로서 이곳저곳의 언어를 익혔지. 뭐 그 유래 같은 걸 모르는 것도 제법 있었지.”


사이토의 눈에서 의문이 사라져간다. 그는 약간 실망했다. 벌써 수긍한 건가. 너무 빠르잖아. 이건 바보 중의 바보인가? 뭐, 그건 그대로 좋다. 착각을 하고 있다면 그렇게 놔두도록 하자. 어차피 설명해봐야 그다지 관계가 없으니까 일부러 길게 말해줄 필요는 없지 않은가. 결국 결과는 같을 텐데.


“아무튼 난 자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니. 가능한 한 도움을 주도록 하지.”


“아, 네. 넷!”


그는 천천히 발을 옮기고 창문을 열었다. 어둠이 펼쳐져 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 두 개의 달. 자신 보던 하늘과는 다른 별자리. 그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새로운 목적이 생길 때까지는 이곳에 있도록 하자. 어차피 돌아가도 환영해줄 자는 이제 없다. 그 누구도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을 가르쳐주던 이들은 이제 없다.


자신에게 가르침을 청하던 이는 이제 없다.


자신에게 호의를 가진 이들은 이제 없다.


자신에게 적의를 되었던 자들은 이제 없다.


자신에게 책임을 요구하던 자들은 이제 없다.


자신이 책임을 요구할 자들은 이제 없다.


모두 다 죽었으니까. 자신이 죽였으니까.


그는 잠시 흐르던 눈물을 닦아냈다. 용서받을 리는 없다. 속죄할 사람 자체가 이제는 없을 테니. 아무리 고의가 아니었다고 한들. 세계를 구할 다른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한들, 수천 년을 살아온 이올라움이 실종되었다고 한들, 핑계를 대기에는 너무나 큰일을 저지르고 말았지 않은가.


“아.”


그는 눈물이 또 다시 흐르는 것을 알았다. 주책이군, 이제 360살이나 되었는데. 그는 바닥에 앉았다. 사이토가 조용히 걸어오고 있다. 암살자의 걸음걸이는 아니다. 그저 다루기 힘든 상황에 들어가려는 행동이다. 용기가 있다고 칭찬해줄까, 만용이라며 징계해줄까. 그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지?”


“저, 저기. 질문이 있습니다.”


“말해보게.”


사이토는 잠시 바닥을 바라보다 말했다.


“이 왼손, 대체 어떻게 된 건가요?”


사이토는 자신의 손에 새겨진 룬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사이토의 질문에 답해주기로 했다.


“그건 아마도 마법사와 다른 존재의 특정한 계약의 증표일 걸세. 그 외에도 그건……”


살짝 말을 끊었다. 사이토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일단 하나만 이야기하자. 그는 약간 생각하는 척 하다 말을 이었다.


“특수한 능력을 부여하는 것 같네. 아마 무기로 분류되는 개념에 한정되는 능력일걸세.”


“무기로 분류되는 개념?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요.”


조금 답답해지는군.


“그냥 무기라고 생각하게. 그 중에서 의장용이나 예술품으로 사용되는 거에 효과가 발휘하지 않는다는 예외사항만 기억하는 게 낫겠지.”


“그래서 그 능력은 뭔가요?”


“자네의 신체의 잠재능력을 깨워 무기를 잘 다루게 하는 것 같군. 그리고 무기 자체의 예기도 더 강하게 하며 마지막으로 무기의 정보를 읽어 사용법 정도는 나름대로 알게 되겠지.”


“호오.”


“하지만 함부로 사용하면 반동이 올걸. 지쳐 쓰러지는 것에서 과로로 사망한다거나.”


사이토의 안색이 조금 창백해졌다.


“아무튼 앞으로 잘 지내보세. 증표도 같고 상황도 같으니.”


그는 자신의 왼손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 외에도 사역마가 주인에게 호의를 가질 수밖에 없게 만드는 정신조작이 있지. 그리고 주인 자신이 사역마의 의식이 끝나기 전에는 다른 걸 소환하지 못하게 강제하는 연결고리도 있고. 하긴 그런 제약이 있게 해야 추가능력이 부여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아 그리고, 내 말은 정확한 게 아니야. 혹시 모르니 주의하게.”


“알았습니다.”


그는 몸을 돌려 다시 밖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의 그 실패가 없었다면 일부러 모호성을 부여하는 말은 쓰지 않았을 거다. 그만큼 쉬운 거니까. 그만큼 어수룩하고 빈틈투성이의 구성이다. 이미 정신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지웠다. 무리하게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도 없애버렸다. 단지 무기의 정보를 읽는 능력과 룬의 모양이 유지되게 하는 건 남겨두었다. 너무나 쉽게 조작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다 해도, 그것에 살아남은 건가.”


운명의 장난이라는 건가. 자신이 이런 어설픈 무리들에게 구조를 받게 되다니. 우습군, 정말로.


“아, 저, 저기.”


아, 용건이 남았나보군. 하긴 약간의 시간동안 행동을 한 번에 끝내도록 준비를 할 능력이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당신, 아, 아니. 어째야 하지……”


호칭 관련 문제인가.


“그냥 선생님이라고 부르도록.”


과거에 칭해지던 호칭 -위대하다는 말로 시작되며 네더릴 제국의 대마법사 카서스로 끝나는 것- 을 받을 생각은 이제 없지만 나름대로의 존중을 받아야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하고 있으니. 이 정도로 참도록 하지. 그는 다시 사이토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럼, 선생님. 당신, 아니 선생님의 이름이 어떻게 되는가요?”


“카서스.”


역시 이 질문이 나올 줄은 알았다. 어차피 이름은 이미 양호실에서 가르쳐 주었으니 한 번 더 이야기해도 상관은 없다. 거기다 약간 짜증이 나고 결점이 제법 보이기 시작하지만 고향 차원에서 떨어진 걸로 보이는 사이토에게서 느껴지는 연대감이 아직까지는 결점들을 상쇄하고도 남아있다. 그는 다시 창문 밖을 보았다. 여전히 어둡군.


꼬르륵.


그는 사이토의 배를 바라보았다. 정신을 한 번 잃기 전에 본 광경을 떠올렸다. 시각은 잘 알 수 없었지만 분명히 밝았다. 그리고 그들이 소환된 시각은 거의 동시였을 테니. 자신의 부상으로 인해 식사를 챙겨준다거나 할 시간은 없었던 것 같으니 당연한 일이군.


“일단 아침까지 참게.”


“네, 아. 그러고 보니 제가 사, 사역마라면서요?”


“그렇지.”


혹시 마법사라는 것에 딴죽을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변경의 원주민 중에는 그런 부류가 있었다.- 역시 생각대로 부상의 원인 자체가 마법이었는지-상처 주변에서 미약한 마법력이 감지되고 있다-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게 뭐하는 건가요?”


“주인의 수족이 되어 행동하는 부류라고 해야 할 텐데.”


“하아?”


사이토는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요컨대 우리는 납치되어 갑작스레 종살이를 하게 되었다라고 해야 하려나?”


“말도 안 돼!”


사이토가 갑자기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런데 나간다고 해도 어디 갈 곳은 있나?”


사이토의 몸이 멈추었다. 그리고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주변이 백인계니 미국이나 유럽 쪽이 아닐까 하는데 달려가다 대사관이라도 가면……”


“미안하지만 난 미국이니 유럽이니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네. 그리고……”


그는 천천히 창문 밖의 밤하늘을 보다가 손가락을 들어 달을 가리켰다. 두 개의 달이 밤하늘에 있었다. 사이토도 그걸 보았다.


“별의 위치를 보면 어지간해서는 돌아갈 수가……”


“아니 달이 두, 두 개!”


그는 역시인가, 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역시 이 녀석도 이계에서 온 존재로군. 침대 옆 루이즈의 책상에 걸터앉았다.


“자네가 있던 곳은 달이 세 개인가?”


“아, 아니에요. 달은 하나라고요! 하나!”


“그렇다면 나가봐야 협조를 얻을 수는 없네. 일단 나가기 전에 하나의 생계를 유지할 능력을 갖추던지 상당량의 돈을 얻든지 하지 않는 이상 탈출해봐야 무의미야. 뭐 자네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면 모를까.”


“그, 그렇죠. 전 무기를 잘 다루는 능력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자네는 지금 무기가 없지 않은가?”


사이토는 고개를 숙였다.


“자네에게 인지도가 있다면 일을 줄지 모르지. 또한 겉보기에 나름대로 유망해 보인다면 어딘가의 용병 단체에서 선수금을 줄지도 모르지. 하지만 자네의 외견은 그 부류에 해당하지 않아. 그리고 말일세.……”


그는 천천히 말을 끌었다.


“언제든 죽을 수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건 현명한 결정으로 보이지 않네. 뭐 당장이라도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다면 괜찮겠지만.”


사이토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다리 속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그는 사이토를 바라보다 앉은 채 벽에 기댔다. 이곳의 나약한 메이지들은 일단 자신을 구조해 준 자들이다. 그들이 적의를 품지 않는 이상 자신이 적의를 품을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자칭 자신의 주인인 복숭앗빛 머리의 소녀, 루이즈였던가. 그녀의 소환이 가장 큰 도움이었지.


“답례정도는 해줘야겠지.”


하지만 직접 나서서 할 정도로 활력이 남아돌지는 않는다. 그러니 아까 생각한 것처럼 잠시 동안 지켜보도록 하자.


“뭣보다.”


현재의 상태를 다시 보자. 마법의 근원-미스트릴-에서 훔쳐낸 에센스는 어느 정도 남아있다. 처음 도달했을 때에 비해 비교조차 안 되는 양이라도. 그리고 마법력은 이 세상에 충만하다. 그러니 딱히 부족함은 없다.


“문제는 없지만.”


한 번 도달한 탓인지 마법에 대한 감각과 지식이 상당히 늘어났다. 어디선가 마음잡고 수련을 할 수 있다면 그 실수 전보다 더 강해지겠지. 자신의 마법은. 그리고 다시 에센스에 정신을 집중했다.


“분명히 같은 근원인데.”


이 힘은 마법력으로 사용하기보다는…… 클레릭 흉내라도 내볼까.


“그나저나.”


정말 형편없군. 그는 한심하다는 느낌마저 가지고 있었다. 양호실에서 오면서 그는 주변의 메이지들의 마법력이나 주문 시전 시 마법력의 응용을 감지하며 왔고 모든 면에서 부족한 점을 열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자신의 수준은 기대하지 않지만 애초에 기본적인 이론 자체가 도입되어 있지 않다고밖에 볼 수가 없다. 거기다 속성으로 분류해서 수련하는 것은 뭐하는 건지. 물론 한 속성에서 나름대로 약하지는 않은 정도의 능력을 발휘할 수야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는 가지 못한다.


“상관없나.”


일단 지금까지 감각으로 획득한 정보로는 불, 물, 바람, 흙 네 가지 엘리멘탈을 기본으로 하는 것 같다. 분명 이 네 가지를 요소로 하는 방법론은 일정 위치까지는 빠르게 갈 수 있겠지만 그 이상 진보할 수는 없다. 하긴 네서릴 제국의 마법부흥도 네더스크롤이라는 인간 및 휴머노이드 일족의 창조자들이 남긴 물품에서 시작되었으니 어쩔 수 없지만.


자신의 소환자는 여기서 분류되는 네 가지 종류에서 벗어나 있다. 아마도 이곳의 커리큘럼으로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겠지. 자신의 마법지식에는 포함되어 있다. 애초에 속성 부여 이전의 것에서 사용하는 게 네서릴의 마도이니까.


“뭐 굳이……”


이곳에서의 명칭을 매긴다면. 아마도 네 가지 속성은 자신의 생각대로 부르겠지. 그건 눈에도 확실히 보이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걸 여기서 어떻게 부르는지는 알 수 없다. 인간의 언어로 간단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단어이니까. 그나마 간략하게 한다면……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허무가 되려나.”




낮이라도 다소 어두운, 밤이기에 어두컴컴한 곳에서. 수층 높이의 책장들이 무수한 곳에서. 교사 직위 이상이나 학원장 허가를 받은 자만이 올 수 있는 특별서고에서. 콜베르는 공중을 떠다니며 책들을 뒤져보고 있었다.


나름대로 가는 턱을 괴다가 책을 뒤지기를 수십 차례 후 콜베르는 한 권의 책을 들고 공중에서 내려왔다. 책상 옆으로 움직여 지팡이를 휘두르자 책상 위의 촛불이 켜졌다. 그리고 책을 폈다. 콜베르의 손이 약간씩 떨렸다. 눈을 깜박이고 책에다 눈을 붙이듯이 다가갔다. 그러다 가방에서 양피지를 꺼내 보았다. 양피지와 책을 번갈아 보았다. 콜베르는 가방에 양피지를 넣었다.


콜베르의 눈매가 살짝 일그러졌다. 대부분의 사람이 언제나 부드럽다고 생각하는 그 눈매가 이번에는 강하게 일그러졌다. 나름대로 가는 얼굴선과 부드러운 눈매와 안경이 어우러지는 아마도 대머리가 아니었다면 제법 인기가 있지 않았을까 싶은 정도의 외모가 잠시 망가졌다.


“후우.”


콜베르는 숨을 들이마셨다. 역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과연 그런 건가. 미흡한 적은 많지만 어떻게든 해답이 되긴 한다.


“이건.”


중요한 일이다. 밤이 늦었지만 가능한 한 빨리 알려야 한다. 학원장 올드 오스만한테. 콜베르는 탑의 정문으로 날아갔다. 지금 시각이라면 이 문 안부터 마법을 쓸 경우 경보가 울리게 되어 있다. 머릿속에 떠오른 규칙이 생각나 콜베르는 어두컴컴한 복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역시 그동안 몸 관리를 안해서인가. 콜베르는 잠깐 달렸다고 숨이 거칠어진 자신의 몸을 탓하며 최상층에 위치한 학원장실의 문을 열었다.


학원장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조명이 하나도 켜져 있지 않은 어둠 속에서. 유난히 빛나는 새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학원장 올드 오스만은 콜베르를 보았다. 미스 롱빌은 없다. 자러 갔겠지.


“무슨 일인가. 그렇게 급하게?”


“헉. 헉. 죄, 죄송합니다.”


“일단 숨부터 돌리게나.”


“네.”


콜베르는 잠시 서서 호흡을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역시 단련을 평소에 해뒀어야 했는데. 다음에 하도록 하자며 지켜질 가능성이 별로 없는 자신과의 약속을 세우면서.


“그래. 무슨 일이지? 미스터 콜베르.”


“일단 불부터 켜주셨으면. 아니, 무슨 특이한 취미라도 갖고 계신 겁니까?”


“딱히 그런 건 없네. 자네는 내가 괴짜로 보이는가. 그냥 어둠 속에서 마음의 공허를 채우고 있었을 뿐이네.”


‘뭔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 걸 괴짜라고 합니다.’라거나 ‘괴짜는 아니지만 호색한은 맞지 않습니까?’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어느새 밝아진 방 속에서 콜베르는 책을 폈다. 올드 오스만은 지겹다는 듯이 눈가를 일그러뜨렸다.


“또 그……”


“정말로 중요한 일입니다!”


올드 오스만은 강경한 기색을 보이는 콜베르를 보고는 말을 멈췄다. 그리고 손을 펴서 말해보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오늘 미스 발리에르가 두 명의 사역마를 소환했습니다.”


“설마 여럿을 소환했다고 문제가 생긴 건가? 아니, 그보다 두 명이라니?”


“문제가 생긴 건 아닙니다. 미스 발리에르가 소환한 건 두 명의 인간으로 평민으로 추정됩니다.”


올드 오스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기다린다.


“그 두 명 다, 본 적 없는 복식을 한 푸른 옷의 소년과 먼지투성이의 남자가……”


“왜 말을 멈추는 건가? 미스터 콜베르.”


콜베르는 소년의 얼굴이 기억이 났다. 룬은 뚫어지게 쳐다봤지만 얼굴은 얼핏 보고 신경을 안 썼음에도. 그리고 예상외의 사태로 소년 말고 남자를 이송했었다. 그리고 그가 일어났을 때 그한테서 느껴지는 위험한 분위기에 분명히 주시했었다. 마치 수백 년 이상 존재한 것 같은 눈을.


“왜 그러는가? 미스터 콜베르!”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어서 말하게!”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거지?


“어이, 콜베르!”


콜베르는 쓰러졌다. 그리고 양호실로 이송되었다.





* 정규마스터님에 의해서 문피아 - 정규 - 미정 (bn_794) 에서 문피아 - 하 - 연재 완결(etc_fine) 으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6-20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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