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인한의 데이트(1)
다음날 인희가 학교에 도착하자 이미 교실에 도착한 수영과 민경, 늦잠꾸러기 호연까지 일찍 와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호연이 웬일?”
“해가 서쪽에서 떴다, 왜?”
인희가 수영을 바라보자 두 눈두덩이 개구리마냥 부어오른 수영의 얼굴이 보였다.
놀란 인희가 물었다.
“너 얼굴이 왜 이래?”
옆에 있던 민경이 대신 답했다.
“실연의 아픔을 눈물로 씻었단다.”
“헐···. 시작도 안 해 놓고 실연은 무슨···.”
“난 했거든.”
수영이 불퉁한 얼굴로 인희를 째려보았다.
“하지만 나 싫다는 사람 좋아하는 미련한 짓은 안 해.”
“퍽이나? 너 지난번엔 같은 학원에 다니는 남중의 그 머시기를 좋아한다고 했었잖아? 너 그거 며칠 갔어?”
“얘가, 얘가···. 그래서 넌 아직 어린 거야. 네가 사랑을 알아?”
“알만큼은 알지. 널 보면, 흔하디, 흔한 게 사랑이다, 뭐.”
“그러니까 네가 어리다는 거야. 쯧쯧.”
“허··· 어이없어. 너나 나나 미성년자거든. 그런데 어제 오빠한테 누구 좋아하는지 묻는다는 게 깜박했네. 쩝. 혹시 너 거절하느라 만든 거짓말인가?”
“사실일걸.”
“네가 어떻게 알아?”
“눈빛, 얼굴빛이 다 그랬어.”
호연이 끼어들었다.
“그 말은 수영이 말이 맞을 거야. 쟤 연예인들 중에 누구 연애한다고 하면 거의 다 맞았잖아.”
민경도 수긍했다.
“맞아, 수영이 그런 쪽은 뭐 거의 스페셜리스트잖아.”
“이상하다. 사람 만날 시간도 없었는데···.”
인희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수영이 팔짱을 끼고, 인희를 거만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분명 주변에 있겠지. 잘 찾아봐.”
호연이 선을 그었다.
“얘들이! 남의 연애사에 왜 끼어? 그거 욕먹고 끝나면 다행이고, 잘못하면 얻어맞는다.”
민경이 맞장구를 쳤다.
“호연이 말이 맞아. 인희네 오빠가 연예인도 아닌데, 그건 아니다.”
“남 아니고, 우리 오빠거든.”
마침 종이 치고, 곧이어 수학교사가 들어오면서 애들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자리에 앉은 인희는 새로운 의문이 마구 떠올라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누구지?”
인한은 식당으로 들어서자 천막 안으로 들어와 순덕의 스마트폰을 거치대에 걸었다.
순덕이 지루하지 않게 TV를 틀어주려는 것이었다.
- 인한아, 산책부터 다녀올 겨. 그때 틀어줘.
“아, 그러세요.”
순덕이 검둥이와 산책을 가려고 일어서자 마침 민정이 식당으로 들어섰다.
- 잉? 뭐 하러 저렇게 빨리 와? 아하, 요것들 봐라.
순덕은 인한이 민정과 눈짓을 교환하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하지만 모른 체 식당을 나섰다.
앞으로도 인한이 이야기하기 전에는 모른 척 할 생각이다.
사람만 괜찮으면 새 식구 생겨 나쁠 거 없다는 생각이었다.
인한도, 인희도 많이 외로웠을 테니까.
순덕은 갑자기 점을 봐주었던 노인이 보고 싶었다.
9월 둘째 주 일요일은 뼈해장국집이 쉬는 날이다.
오늘은 유난히 인한이 거울 앞에 서서 제 모양을 손봤다.
인희는 아침부터 인한이 멋 내는 일에 관심을 갖자 노골적으로 물었다.
“지난번 수영이 때 한 말 정말이야?”
“뭐가?”
“여친 생겼다는 말.”
“왜?”
“왜라니? 진짜 생겼냐고. 수영이 떼어내려고 한 말 아니고?”
“좀 있어봐. 확실해지면 말해줄게.”
“확실하지 않아도 알겠는데? 요즘 들어 머리 신경 쓰고, 옷 신경 쓰고, 화장품까지 신경 쓰잖아.”
“남자는 그러면 안 되냐? 나 정도면 괜찮은 남자잖아. 이 얼굴에, 이 키에, 안 그래?”
“헐! 자뻑이 하늘을 뚫겠다.”
“이게 무-슨 자뻑이야? 사실이 그렇지.”
“누군데?”
“네가 알면 뭐 어쩔 건데?”
“그냥, 궁금하잖아.”
“그러니까 확실해지면 얘기해 준다니까.”
“쫓아간다.”
“쫓아와라. 내 차를 네가 어떻게 따라잡아?”
- 아, 왜들 그려! 인희, 너도 고만 혀.
“아니, 오빠가 달라졌어요. 이상해요.”
- 잘생기기만 했구먼. 뭐가 달라져?
“어으, 할머니도 이상해.”
결국 인희가 팽 하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한 달에 겨우 두 번 있는 휴일 중 하루이다.
“할머니, 저 나갔다 올게요.”
- 운전 조심, 차조심 혀.
순덕은 인한이 민정과 데이트 하러 가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 생각이 맞았다.
들떠서 나가는 인한이 걱정된 순덕이 잔소리를 했지만, 인한의 마음은 벌써 민정과 함께 데이트 중이었다.
인한은 제 차를 타고 영화도 보러 가고, 영종도까지 드라이브도 하고, 맛집에서 점심도 먹을 생각이었다.
지난 보름 넘게 순덕은 사람의 눈이 하트로 변하는 것도 보았고, 꽈배기가 되는 것도 보았다.
‘얼레? 아주 빵집에 놓인 꽈배기가 형님소리 하게 생겼구먼.’
인한과 민정을 보면서 속으로 꿍얼거린 순덕이었다.
둘은 안 그런 척 하고 있지만 그 둘과 인희를 제외한 모든 직원이 둘이 사귀는구나 생각할 만큼 속내가 드러났다.
인한이 나가자 순덕이 인희방으로 갔다.
입이 댓발은 나와서 침대에 누워 삐삐 떼거리를 조물거리는 모습을 보니 순덕의 마음도 편치는 않았다.
인희가 중학교에 들어간 뒤로 삐삐 떼거리를 만질 때에는 주로 기분이 아주 좋거나, 아주 안 좋을 때였다.
‘나 속상해요.’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인희만의 방식이었다.
- 왜? 니 오래비가 여자 사귀는 게 싫어?
한참 생각에 잠겨있던 인희가 겨우 대답했다.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짜증나요.”
- 오래비가 너만 신경 쓰다가 저러니까 심술 난 겨?
심술이란 말에 인희가 발딱 몸을 일으켰다.
“심술은 아니죠. 그냥 궁금한 거잖아요. 아니, 왜 말을 못해요? 왜?”
- 남녀 사이란 게 조심스러워 그러지. 사귄다 확실하게 말허고, 난중에 헤어졌다 그러면 실없는 사람 될께비 그러지. 그러니 니가 이해해야 안 쓰겄어?
“그런데 기분이 이상해요. 오빠가 그럴 나이인건 머리로 알겠는데 그냥 짜증나요.”
- 그럼 어디 괜찮은 놈으루다 너도 사귀어 봐.
“그게 마음대로 되요? 그리고 어디 제가 그럴 나이예요?”
- 그려. 인한이도 똑 같겄지? 어디 지 맘대로 된 거겠냐? 서로 좋아야 가능한 일이여. 그런 일이 생겼으면 ‘아, 잘 됐다.’ 하면 되는 거여. 그리고 인한이는 그럴 나이여.
“할머니는 오빠가 여자 생기면 좋아요?”
- 아, 나쁠 거 뭐 있어? 우리 집에 식구가 누가 있냐?
“잉? 할머니는 벌써 오빠 결혼 생각해요? 그건 아니죠.”
- 흠흠, 나야 생겨도 좋지.
“헐···.”
검둥이가 혼자 놀다 안 되겠는지 순덕에게 왔다.
- 아저씨, 집 뒤로 산책 가요. (월, 워월.)
- 인희야, 검둥이가 산책 가잔다. 가자. 가서 바람 좀 쐬고 오면 기분이 좀 나아질 거여.
검둥이 덕분에 셋은 기분도 전환할 겸 집에서 나와 뒷산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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