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너희 둘만 몰라.
- 허이구, 벌써 진로 걱정을 해야 하는 때가 됐구먼. 인생 뭐 있어? 도둑질도 아니고, 남 해코지도 아니고, 나쁜 짓 허는 거만 아니면 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기도 짧구먼. 쩝.
그 사이 검둥이는 여기저기 킁킁 거리고 다니다 순덕에게 장난 걸기 바빴다.
- 그려, 개 팔자가 상팔자여. 검둥이, 너는 운 좋은 줄 알어. 저런 걱정이 없잖어? 그냥 인희랑 인한이 옆에 딱 껌딱지처럼 붙어살면서 니 본분만 하면 되야.
- 아저씨, 간식 더 없어요? 간식요, 네? 간식! (월, 워워월 월 월!)
- 인희야, 검둥이가 간식 없냔다. 흠흠.
순덕의 전달에 인희가 수영에게 물었다.
“수영아, 아까 그 간식, 가져갈 거야?”
“아니, 검둥이랑 할머니 줄 건데?”
“그럼 지금 줘. 많이는 말고.”
그러자 수영이 간식봉지에서 간식을 두 개 꺼내고는 나머지를 인희에게 넘겼다.
눈앞에 디밀어진 간식을 본 검둥이의 표정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한참을 진로문제로 머리를 모으던 친구들이 가고, 인희와 순덕은 앞장선 검둥이를 따라 집으로 내려왔다.
- 다음 달부터 원서 쓰는 겨?
“아마 그럴걸요.”
- 그럼 인희, 니는 간호사 그대로여?
“헤헤. 네.”
- 그려. 나쁜 짓만 아니면 허고 싶은 거 맘껏 허고 살어. 그게 최고여.
순덕의 말에 인희가 순덕의 목을 안으며 말했다.
“할머니 최고!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인희의 말에 순덕이 그만 목이 메었다.
올해가 지나고 사람이 되면 순덕은 미리미리 저승 갈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게 염라대왕과의 약속이니까.
아직 어린 인희를 두고 저승 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가기 전에 이 어린 것의 앞날에 지장 없게 인한이부터 결혼을 시켜야 할지도 모르겠다.
가만, 아직 그렇게 많지 않은 재산이지만 본래 몸으로 돌아가면 인희 앞으로 좀 더 준비해놓아야 할 것이 많을 것 같았다.
사람 몸을 되찾기도 전부터 해야 할 일을 꼽아보는 순덕이었다.
***
연휴가 빠르게 지나갔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뼈해장국을 찾는 손님은 더 늘었다.
11월에 들어서면서 인희는 담임교사와의 상담을 마쳤고, 인한과 달리 인문계를 선택했다.
민경 역시도 인문계를 선택했다고 했다.
민경은 방학이 오면 제가 모은 돈으로 작곡을 배울 거라고 했단다.
그 말을 순덕에게 전하던 인희가 오히려 제 일처럼 기뻐했다.
그동안 겪었던 많은 일들이 무색하게 평화로운 날이 계속되었다.
어느덧 12월에 접어들었다.
사람들은 발목까지 오는 두꺼운 패딩을 두르고 다녔다.
곧 있으면 연말이 될 터였다.
순덕과 검둥이는 뼈해장국 식당 뒤편 천막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다.
“올해 8월초 인천에서 있었던 전경석 살인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전경석은 모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던 부인을 무참히 살해하고, 초등학교를 다니던 자녀에게도 폭력을 휘둘러 중태에 빠뜨렸던 사건입니다. 부인의 외도를 의심한 전경석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부인이 다니던 식당에서도 칼을 휘둘렀는데요. 오늘 재판부는 전경석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뉴스를 듣던 순덕의 귀가 쫑긋 하고 섰다.
분명 이선미 이야기였다.
인한도 식당에 있다가 뉴스를 보았는지 천막 안으로 들어서며 순덕에게 물었다.
“할머니, 보셨어요?”
- 잉, 봤어. 이럴 줄 알고 선미가 원혼이 안 되고 승천한 모양이여.
“에이, 저 같으면 귀신이 되서라도 저런 놈은 내 손으로 죽이겠다고 남았을 거 같은데요?”
인한의 말에 순덕이 정색을 했다.
- 그런 말 말어! 원귀가 되면 끝이 정해져 있어. 그냥 소멸이여, 소멸.
“아니, 원귀가 된 것도 억울한데 소멸까지 되는 건 좀 아닌 거 같아요.”
- 원귀가 되면 귀신이래도 제 정신이겄어? 말 쉽게 하는 거 아녀.
순덕의 말에 수긍하지 못한 듯 불만스러운 표정을 한 인한의 입이 닭의 똥구멍마냥 오무려졌다.
순덕이 인한의 눈치를 힐끔 보더니 툭 한 마디 던졌다.
- 잘 되가?
“예? 뭐가요?”
- 뭐긴 뭐여? 느그들 연애질이지. 내년쯤 결혼할 수는 있겄어? 크리스마스 때 고백혔다고 안 혔어? 나는 빠를수록 좋으니 가서 의논 혀봐.
“···예?”
- 놀라긴 뭘 놀라? 식당 사람들 다 알게 연애함시롱 뭐가 새삼스럽다고···.
인한의 얼굴이 홍당무마냥 빨개졌다.
“다 안다고요?”
- 그려. 너그 둘만 몰러. 정말 몰렀남?
인한이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어쩌죠?”
- 뭘?
“식당 식구들한테 까놓고 얘기···해야 할까요?”
- 민정이헌티 의논도 안 허고?
“아···.”
인한이 멍한 표정으로 일어나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순덕이 그런 인한을 보고 혀를 찼다.
- 쯧쯧, 저놈 저거 민정이헌티 꽉 잡혀 살겄구먼.
순덕이 보기에 적어도 민정은 식당 식구들이 눈치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것과 정말 모르는 것은 정말 다르다.
순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희를 데리러 갈 시간이었다.
이젠 검둥이가 알아서 앞장을 섰다.
도로를 언제 건너야 하는지도 잘 알았다.
정확히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 앞에 도착한 순덕과 검둥이가, 자주 기다리던 자리에 서기 무섭게 핫도그 속의 소시지처럼 패딩에 둘둘 말린 인희가 내려왔다.
교문 앞에서 비슷한 모양의 친구들이 각기 제 갈 길로 떠나자 순덕이 인희에게 말했다.
- 이선미 남편 사형이란다.
“헉! 정말요?”
- 그려. 그런 놈은 세상 밖으로 내놓으면 안 되는 겨.
“···.”
- 왜?
시무룩한 인희 표정에 순덕이 물었다.
“그런 인간에게 사형이 내려져도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은 아니잖아요. 거기다 승민이 아버지잖아요. 승민이가 상처받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잘 이겨내면 좋겠다 싶어요.”
- 그래도 일이란 게 그려. 모든 일에는 마무리는 필요한 겨. 그래야 앞을 보고 나가지.
잘 가던 인희가 갑자기 멈춰 섰다.
“아! 할머니, 수영이가 알려준 게 있어요. 뉴스에는 안 나왔다는데, 길냥이한테 해코지 하던 남자 있잖아요? 수영이 해치려고 했던 그 나쁜 놈이요.”
- 그··· 김 머시긴가 허는 놈?
“네. 김성규? 하여튼 이름이 그랬어요. 그 인간 징역 5년으로 끝날 거 같다고 걔네 엄마가 많이 속상해 했대요.”
- 아니, 사람을 죽일라고 했는디 5년이 뭐여, 5년이!
“그러니까요. 길냥이들도 너무 불쌍해요”
- 아주 이담에 큰 범죄자 맹그는 꼴 아녀! 뭔 법이 그 모냥이냐? 에이그!
인희와 순덕이 법이 문제가 있다며 통탄하는 사이 식당에 도착했다.
앞장 서 식당으로 들어간 검둥이의 눈이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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