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룡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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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iG
작품등록일 :
2021.12.1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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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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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5)

DUMMY

이쯤해서 왕년에 듣던 징기스칸 그룹이 떠오르는구나!


‘Sie ritten um die Wette mit dem Steppenwind, tausend Mann HA! HU! HA! - 질풍노도와 같이 질주하는 수천 명의 기마대 하! 후! 하! Und einer ritt voran, dem folgten alle blind, Dschings Khan HA! HU! HA! - 모두가 맹목적으로 따르는 인솔자, 그 이름 징키스칸.하! 후! 하!'


이제야 이자들이 몽고인이 아니라 독일인이라는 걸 알았다오.

1980년대 남조선 인민들이 맹목적으로 따라 부르던 노래가 독일어였단 걸.

가사 중에서 ‘Und der Teufel kriegt uns fruh geung!(어차피 인생은 짧지 않느냐!)’에 공감하지만 ‘마음에 드는 여자를 모조리 텐트로 끌고 가서, 하룻밤에 일곱 명의 아이를 잉태시켰다.’라는 가사는 너무한 게 아니냐. 징기스칸아!


너희 남조선 것들은 한반도에서 몽고에 짓밟힌 것도 모자라 공녀로 끌려간 고려 여인내의 삶이 불쌍하지도 않느냐?

요즘 남조선이면 페미들이 날릴 쳤겠구나. 이 모든 게 힘없는 나라의 서러움일지니. 외적에 죽기 살기로 대비할 생각보다는 이편저편 가르고 죽어라 싸우던 조상들의 개싸움을 기어이 본받으려느냐?


다시 무림으로 돌아와서. 일본여자는 잠시 당황해하더니 부하에게 맡겨두었던 칼을 집어 든다오.

한눈에 보아도 알 수 있는 일본 명검!

혹시 저것이 ‘마사무네(正宗)’인가?

나에게 굳이 칼을 사용하지 않은 건, 맨손으로도 자신이 있었거나. 아니면 자신의 가라테 실력을 실전을 통해 향상시키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오.


그녀는 아직 칼집에 들어있는 진검을 들고 몽고인들과 대치하고 있었소.

잠시 긴장감이 고조되더니 순식간에 뽑아 든 칼!

어쩜! 몽고인 2-3명이 차례로 쓰러지다니. 몽고군 팀장으로 보이는 자는 죽은 자들을 향해 ‘망가르(mahrap-바보‘ 멍청이)’라고 하더군.


참고로 왜년의 이런 검법을 연참(連斬)이라 하오. 또, 저런 검술을 발검술(拔劍術)이라고 한다오.

칼을 베는 기술만큼 뽑는 속도와 자세가 중요한 것임을 아낌없이 보여준 장면이었소이다.

일본 전국시대 전투머신이라던 사무라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검법이라는데···.


왜, 임진왜란 당시 자기들 신장의 두 배 되는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본 우리 조상들이 경악했다는 그 장면 말이오!

내가 보기엔 그녀는 가라데 기술보다 검술에 한층 더 실력이 있더구나.


나 역시 살인 검술의 달인이라서 그간나의 검법을 분석해보자꾸나.

칼집에서 우선 칼을 빼어 전투 자세를 잡는 우리 조선 검술과 달리 칼집에서 칼을 빼면서 바로 찌르는 기법이렷다.


이는 한반도가 전시에만 칼을 사용하던 것과는 달리, 항상 칼을 차고 있는 환경에서 수시로 위기에 직면해야 했던 일본 열도의 특수상황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오.

마치 신대륙 미국의 서부 활극마냥.


공격 속도와 함께 상대 허를 순식간에 포착하는 능력의 중요성을 실감한 구경거리였소이다.


그건 그렇고. 난 아직 상황파악이 안 되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조금 전에 일본 여자아이의 시끄러운 공격에 혼이 나가서인지 몰라도 정신이 혼미해졌거든.


가까스로 정신을 다잡고 적의 장수를 잡아야 한다는 병법의 원리에 충실하고자, 백미 하나만을 공격했소이다.

난 힘들게 난타전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백미의 팔 하나를 겨우 꺾어버렸는데, 아니! 의수(義手)라니!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너무 징그럽고, 화들짝 놀라서 백미가 들고 있던 중식도를 뺏어 엉겁결에 휘둘렀소.


내가 겨우 정신을 차렸더니 백미의 나머지 팔 한쪽마저 잘라져 땅에 나뒹굴고 있다니. 마치 덫에 발이 잘려나간 짐승이 우는 것과 같은 절규와 통곡소리라니!


이런 것을 중국식 사자성어로 방성대곡(放聲大哭)이라고 하나보오.


솔직히 미안했소이다. 결과적으로 나 때문에 옛 친구는 두 팔을 잃고만 것이외다.

백미의 부하들은 서둘러 대장을 업고 내빼었고, 상황은 또 그렇게 끝!


이번 전투는 과연 어떠하더뇨?

옛날 중원을 놓고 겨루던 송나라와 원나라의 싸움이 연상되더이다.

몽골이 중국 송나라를 멸망시킨데 이어 고려를 앞세워 일본까지 치려고 했던 것 말이오. 너무 말이 안 되는 비유였는가?


저 뒤편에서 이번 싸움을 지켜만 보던 인물이 다가왔소.

그는 몽고인들을 몰고 온 보스로 보였소이다.


“누나! 오랜만이야. 북에 있을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염소가 누나에 대해 죽이겠다고 떠버리는 걸 듣고 미리 구하려 온 거야. 헌데 죽련방과 이나가와카이 얘들이 여기 왜 있어요? 아무튼 이 정도면 예전 은혜에 대한 보답은 된 거죠? 옛말에도 있지 않습니까? 받은 은혜는 바위에 새기고, 준 은혜는 강물에 새기라고···. 이쪽 세상에선 날 푸시킨으로 부른다죠?”


그랬던 것이요. 푸시킨이 나와 젊은 시절을 함께 한 영탁(影濁) 이었다니! 고영탁···. 내가 힘 좀 쓰고 그럴 때에 소련에 유학을 보내 준 술친구였소.

고영탁이 염소와 함께 일하고 있다는 건 ‘예술의 전당’에서 목격하면서 알고 있었지만, 푸시킨이 바로 영탁이라는 건 처음 알게 되었소.


푸시킨은 이미 이 바닥에서 악명이 자자했고, 염소만큼 사적인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는 소문을 들어서라오.

그래도 과거엔 친누나와 동생처럼 지낸 흉허물 없는 사이였건만···.

그래서 나도 오랜만이지만 편하게 말했소.

“그래, 니 대끼번에(한꺼번에) 갚았다. 이런 식으로 만나다니, 내 메사하구나(창피하다).”


예전에도 서울사람인 영탁을 만나면 표준말을 열심히 흉내 내곤 했는데···.

아무래도 이젠 함께 늙어가는 처지이니만큼 하대하듯 하는 건 삼가야 하겠소.


우린 산에서 내려와 읍에 위치한 한적한 선술집에서 예전처럼 술잔을 기울였다오. 간판에 ‘목로주점’이라고 적혀있구나. 야.

시골 술집임에도 벽에 큰 그림이 걸려있고, 당구대까지 놓여있지 뭔가.

벽에 칠해진 붉은색과 녹색의 당구대 천이 강하게 대치하고 있었소.

붉은색과 녹색이 보색이라서 그런가? 일시적으론 거부감을 주면서도 뭔가 강렬한 뒷맛이 있다니 놀랍구나! 왜일까?


게다가 가게에서 몰래 팔고 있는 밀주도 요상한 맛일세. 싸구려 증류수인데 이상하게 중독성이 있더군.

마치 남조선에서 요즘 뿌리는 각종 지원금과 같구나!

동네 사람들을 모조리 싸구려에 의존케 하는 게 말이오.


또 뭔가 있었소. 내가 봐도 유명작품의 모조품으로 보이는 그림에는 ‘Wheat field with crows, 1890’이라고 적혀있었소이다.


짙은 구름이 잔뜩 낀 하늘 밑에 노란 밀밭이 대조적인데, 까마귀 떼가 날고 있어 더욱 기분이 묘하다고 할까. 뭔가를 예견하는 그림이라고 해야 하겠소이까?


“누나, 미모는 여전합니다. 아직 혼자 사시는 겁니까? 저도 아직 혼자입니다. 젊었을 땐 운동권 생활하느라 그랬고, 소련 붕괴 이후부턴 먹고살려고 그랬습니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내가 듣기 좋은 소리만 했소. 내 몰골을 보더니 건강이 걱정이 되었는지 몰라도 술을 조금만 따라주는 게 아니겠소.

나도 이제 거물이 된 그에게 예를 갖추어야겠소.

“그러지 맙소. 아 때(아이때)는 그랬지···. 그양(그냥) 싱글이 화다분하다(홀가분하다). 왜 술을 글케 부어줍니까? 채아(채워) 주쇼.”

나 백사는 의심도 병이라고 하지만,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든다오. 영탁, 아니 푸시킨이 옛정 때문에 자기 보스인 염소 몰래 날 도와준 것일까? 아니면 내가 숨긴 그 어마어마한 것을 찾기 위해 염탐을 하러 온 것일까? 그거 왜, 내 채온 거(훔쳐 온 것) 말이오.

아무러하든 상관없소이다. 일단 그를 믿기로 했다오. 그가 나에게 해 준 이야기가 있어서요.


푸시킨은 저간의 사정을 남김없이 토로했던 것이오.

염소와 푸시킨은 친구인 듯 친구가 아닌 듯, 그런 관계라는 것에서부터···.


까놓고 말하자면, 원래 사업을 하면서 둘은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지 뭐요. 무엇보다도 염소가 자기를 항상 한수 아래로 보면서 무시하는 것을 인제 참을 수 없다고 분해했소.


그 말인즉슨 자기를 한낱 폭력조직의 구역을 중간 관리하는 ‘토르페도(torpedo-어뢰)’ 정도로 취급해왔다며 광분했소이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그래도 염소를 평소 위대하다고 느꼈다나···. 유별나게 둘 사이엔 나 백사의 처리를 놓고 이견이 컸다고 고백하더이다.


그것이 그들 관계에 빈틈이 생긴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했소. 염소는 푸시킨이 나를 인간적으로 존경하고 있다고 솔직히 고백하자 당황해했다는구나.


이왕이면 그간의 혁명과업 수행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하자는 영탁의 주장에는 화를 불같이 냈다나···.


이어서 염소는 나 백사를 ‘살인카페’ 여주인으로 부르면서 천박하다고 표현한데다, 그 카페가 매음굴에 불과하다고 욕했다고 하오.


성을 팔고 사는 매음굴이나 죽음을 거래하는 백사의 집이나 똑같다나 뭐라나.

그러고 보니, 푸시킨의 귀 한쪽이 이상했소.

그는 자신이 술에 취해 다쳤다고 했지만, 날카로운 칼에 베어진 것이 분명했소이다. 나 같은 전문가는 척 보면 아니까···.


그가 헤어지면서 빨강과 파랑이 반씩 나뉜 보자기에 싸여있는 것을 주었다오.

자기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니 소중하게 보관해달라더군.


그가 떠난 후 보자기를 풀어보고는 두 번이나 깜짝 놀랐소이다.

하나는 푸시킨이 염소의 명령을 받아 그간 벌인 행적과 앞으로의 계획을 분석한 쪽지였으며, 다른 하나는 푸시킨의 잘린 귀였던 것이오.

그것도 포르말린이 들어있는 병에 온전히 보관된.


푸시킨의 마지막 대사는 이랬소이다.

“누나,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이런 얘길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지금도 내가 소중하게 보관 중인 푸시킨의 귀가 말을 하는 환각과 환청에 시달릴 정도로 혼란스러우이.

입도 아니고 귀가 말을 하다니! 사랑했다는 말을 단 한 번만이라도 더 펄럭여다오. 귀때기야!

지금, 이 나라에는 인민의 절규에 귀를 기울여야 함에도 말만 오지게 하는 것들이 너무 많구나.


그나저나 백미가 걱정이거늘. 이번 건은 정말 본의가 아님을 알아주었으면 좋으련만.

전투 도중이어서 얼떨결에 그의 나머지 한쪽 팔마저 잘라낸 걸 말하려는 거요.


백미를 다시 만난다면 꼭 해줄 말이 있소.

오체불만족(五體不滿足) 이란 책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 일본 ‘오토다케 히로타다’를 보면서 위안을 삼았으면 하오.

그는 양팔이 아니라 사지가 절단되고서도 결혼까지 한데다,

그것도 모자라 여러 여성과 불륜 행각을 벌이다 이혼함으로써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실을 말이오. 어찌 됐든 애도해 마지않소이다.


위치가 노출된 암자에서 내려온 지 이틀 만에 의외의 기별이 왔소.

어쩜, 깜짝 놀라라! 그녀였다오.

난 과거 그녀에게 한 짓이 미안하기도 하고, 아직도 그녀를 잊을 수가 없어서였는지 흔쾌히 승낙을 했소.

그녀가 북에서 은밀히 가져온 지령이 있다는 것도 거절할 수 없는 이유였소.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움직인 말이 있어서요. “언니! 보고 싶었어. 이제 언니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하지만 계속되는 의문점들! 참으로 이상하지 않소이까? 그녀가 이북 사투리를 전혀 쓰지 않는 것이. 마치 대사를 읽어 내려가는 삼류 배우처럼 애드리브(ad lib) 조차 전무했다오.

내가 혹시 옛 감정에만 충실해 총기를 잃은 걸까? 그래도 옛 파트너를 만날 날짜만 학수고대했소. 바로 내일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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