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룡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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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1.12.1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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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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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추정하건대 다음 동작은 내 머리를 손으로 고정시킨 상태에서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나이프로 목덜미를 찌르려 했거나, 아예 목을 잘라버리려 했던 것 같더군.


천만다행으로 주방에서 나온 그녀는 내 가짜 수염이 송두리째 뽑히는 걸 보고 당황해했다네.

당황도 잠시! 중년의 슬라브족 여성은 수염이 가짜였다는 사실에 놀란 나머지 얼떨결에 요리 그릇째로 내 머리를 가격했지 뭔가.


그러더니 예상했던 대로 테이블 위 나이프를 짚어들어 내 복부에 이어 왼쪽 가슴을 무자비하게 찔러대더군. 당연히 훈련받은 암살자라서 심장을 노렸겠지.



날이 무디어서 그나마 천만다행이었지 살상용 칼이었다면 즉사할 위기였다네.

식당 안은 이미 아수라장!

내가 흘린 피가 하얀 식탁보 위의 음식과 뒤엉키면서 기괴한 모양의 추상화를 순식간에 그려내다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전위예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럼, 중년여성의 정체는? ··· .

푸시킨 역시 사전에 다른 여자를 매수했던 것일 테지.

내가 미리 준비한 젊은 하녀가 아니었더라면 난 현장에서 즉사를 피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네.


이젠 두 명의 슬라브족 여성들 간의 대결을 보라우! 러시아 땅에서 오래 살던 내가 정확히 구별하자면, 나 염소가 사전에 준비시킨 젊은 여성은 서(西) 슬라브 계통이고, 푸시킨이 고용한 중년의 여성은 동(東) 슬라브 계통일세.


동 슬라브족은 주로 러시아를 비롯해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국가 출신들이고, 서 슬라브는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쪽 사람들임을 이참에 공부하게나.


다 같은 슬라브족이 아니니까.

참고로 남 슬라브는 옛 유고슬라비아를 말하지.

그래서 유고(Yugo)는 남쪽을 뜻하니까 합쳐서 남 슬라부족 국가인 게지.

나 염소는 이제 막 벌어질 슬라브족 여인들 간의 흥미진진한 혈투를 보지도 못한 채 과다출혈로 잠들어가고 있는 중일세. 리랙스, 리랙스하게.

복부에 출혈이 너무 심하다네. 왼쪽 가슴도 상황은 마찬가지일걸. 한 달 새 찔린 곳을 정확히 또 찔렸으니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번에도 동슬라브 여인이 나의 심장이 바뀐 위치를 모르고 찌른 것 같아서 천만다행이군.

그래도 한동안 사람 구실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은 왜일까?


이미 밖에선 내 부하들과 푸시킨 부하들 간의 총격전 소리가 들려오는구나.

푸시킨은 원래 무공이 약해서인지 달아난 지 오래일 게야.

서서히 죽음과도 같은 잠에 빠져들고 있는 중. 언제 다시 깨어날 수 있을까?

바닥에 옴짝달싹할 수 없게 누워 있던 나를 누군가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착각이었네. 그나저나 식당 벽에 붙어 있던 모조품 ‘별이 빛나는 밤’이 날 보고 있네?

이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환청은, ‘Starry starry night’이 아니냐?


돈 맥클린이라는 가수가 고흐를 추모한다면서 1971년 발표한 ‘Vincent’란 곡이라지? 나 역시 기억나는구나!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ey(팔레트를 블루와 회색으로 칠해요)∽With eyes that knew the darkness in my soul(내 영혼의 어둠을 이해하는 눈으로)∽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이제야 알겠어요. 당신이 내게 하려던 말)∽Perhaps they’ll listen now(아마 이제는 들을 겁니다.)’


그림 속 사이프러스 나무가 다리를 쩍 벌리고 눈을 부릅뜬 채 날 노려보면 어쩌라고!

너무 그 눈깔이 무서워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나뒹굴고 있던 ‘벨루가’ 보드카 병 역시 날 바라보고 있네 그려.

정확히 표현하자면, 병에 그려진 ‘벨루가’의 멀건 눈망울이 날 보는구나.

어, 그런데 철갑상어가 아닌데? 너는 흰 돌고래 ‘벨루가’로구나.

지금 내가 제정신이겠어? 철갑상어나 흰 돌고래나 ‘BELUGA’라는 같은 철자를 쓰고 있어서일까?

남해안 수족관에서 사람들을 태우고 다니는 학대받는 돌고래···. 어쨌거나 ‘에떠 또줴 쁘라이죹(이 또한 지나가리라).






저 다니엘은 하나냐로부터 염소와 푸시킨 간에 벌어진 내전에 관한 첩보를 받았어요. 한마디로 말해서 난리도 아니었대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사상자만 수십 명에 이르는데도 블라디보스토크 언론마저 침묵했다는 사실이죠.

그만큼 염소와 푸시킨이 러시아 지역에서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준 사건이 아닐까요?


전해 오는 소식에 따르면, 염소가 심각한 부상으로 당분간 활동이 불가능한데다, 영원히 재기가 힘들 것이라는 추측성 소문까지 들리고요.

몸 상태도 문제지만, 중요한 물건을 도둑맞아 무기류 중개인 역할을 하던 염소 조직에 대한 신뢰도가 급락한 상황이래요.

필연적 결과였을까요? 천하의 염소마저 그렇게 망가지다니! 너무 게임이 쉽게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마저 느껴진답니다.


계속되는 후속 첩보에 의하면, 염소 조직은 일단 비서인 ‘김 비탈리’란 젊은이가 염소가 피격된데 따른 조직의 혼란을 수습하고 있대요.

정확한 소식통에 따르면 염소의 리더십에 공백이 생긴 틈을 타 조직 일부를 사유화했다는군요. 물론 나머지 일부는 푸시킨이 접수했고요.


우린 서둘러 러시아 담당 CIA 요원들과 퇴직한 국정원 소련지역 분석관들을 통해 인물정보 수집에 들어갔지요. ‘김 비탈리’라···.


비탈리란 이름은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그리고 중앙아시아에도 쌔고 쌘 이름이군요. 그래서인지 김 비탈리처럼 고려인들도 흔히 사용하고 있대요.


김 비서 역시 조부의 이름에서 따왔고요. 근데, 이 청년이 평소 자기 증조모가 한국 참여정부에서 건국훈장을 받았다고 자랑했다는군요.


그가 한 말을 토대로 상세한 인물 탐색 작업에 들어가자, 몇 대에 걸쳐 소련 땅에서 숨어 지낸 사회주의자 집안의 역사가 마침내 드러났어요.

러시아 입장에서 보면 까레아에서 온 까레이스키들이죠.


족보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라는 게, 하나같이 소설 같은 이야기들인지라···.

세상에나! 그 시대에 비탈리의 증조모는 투옥 된 전남편을 버리고, 증조부와 눈이 맞았거니와···.

전 남편은 증조부와 친구였다나···.

증조부 역시 본처와 가족을 버렸대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군요!

당시 모던보이와 모던 걸들의 진정한 사랑이 아니냐고요? 사랑은 무슨, 말라비틀어진 사랑!

증조부 전 부인 또한 일제 강점기 한국 감옥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잘 모르겠어요.

글구, 비탈리 증조모와 증조부의 전처 역시 또 다른 누구와 함께 삼총사였다는데? 그녀는 북조선 고위직까지 진출했대요.

이분 또한 스캔들이 누구 못지않아요. 현재 북한 애국열사릉에 안치되어 있지요.


이것이야말로 열성 혁명가들의 찐사랑? 아니, 미친 19금 러브스토리가 아닌가요?

이 시대 ‘사랑과 전쟁’ 시리즈에 내놔도 결코 꿀리지 않는 막장 치정극이었죠.


비탈리의 증조부의 경우, ‘달과 6펜스’에 나오는 ‘찰스 스트릭랜드’와 이미지가 겹쳐진답니다.

자기의 이상을 찾아 처자식을 버리고, 별생각 없이 친구 여자를 잠시 사랑했던···. 아니면 작품의 소재가 된 인물인 고갱과 같다고 해야 하나요?

고갱 역시 처자식을 버리고···.


그런 비탈리의 직계 조상들은 소련정권의 숙청운동에 휘말려 증조부가 간첩혐의로 처형되고, 증조모는 강제 노동형에 처해졌지요.

더 ‘웃픈’건 그다음 장면이라니까요. 증조모의 전남편이 해방된 북한에서 거물이 되었으니, 그 유명한 누구였다나?

증조모는 거물인 전남편에게 소련의 강제 노역에서 자신을 해방시켜 줄 것을 부탁했대요.

결과는 전 남편이 뭔 소리냐며 쌩 까는데 이어 전남편 역시 북한에서 숙청당하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답니다.


더욱 놀라운 팩트는? 증조모 사후 반세기가 흐른 뒤 참여정부는 건국훈장을 수여했지 뭐예요.

김 비서와 이름이 같은 조부는 어릴 적 사망한 것으로 처리되어 있는데, 어떻게 살아남아 카자흐스탄에서 살았는지는 알 길이 없어요.

그래서 김 비서의 고향이 카자흐스탄이었던 것일까요?


건국훈장을 받은 분의 족보가 어쨌든지 간에, 염소가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연명하는 상태라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단계는 아니지요.

CIA에 따르면 염소의 공백(空白)을 푸시킨이 벌써 메웠다고 하네요.


푸시킨은 염소도 재낀 것은 물론 과거 운동권 인맥을 활용해 이 땅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했다니, 어찌 된 거였을까나?

어둠의 계곡에서 하던 검은 장사에서 탈피하여 이제는 수륙양용 성향의 악어처럼 수면 위로도 올라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푸시킨이 곧 정치권에 진출할 것이라는 둥 별별 관측들이 떠돌고 있으나, 다 허위 정보였지요.

정치권은 여야 진흙탕 싸움이 장기화되면서 돈 줄이 막힌 지 오래잖아요. 국회의원과 개인사업을 병행할 수도 없는 시대가 되었답니다.

사업가 출신들은 언제 어떤 제보를 받아 낙마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죠. 관련제보가 넘쳐나고 사방에서 비난의 화살이 빗발쳐서고요.


그래서인지 요즘 잘나가는 여당 국회의원들이 김밥만 먹고 있다고 난리들이네요. 웃기는 이야기···.


누가 모를까 봐요? 보좌관에게는 김밥 드시라고 해놓고, 자기는 5만 원 지폐가 돌돌 말린 돈 밥을 몰래 처먹고 있는 줄···.

그건 그거고. 이런 상황에서 푸시킨이 국회의원에게 주는 월급만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추측하는 건, 뭘 모르는 소리가 아닌가요?

푸시킨은 사회주의자의 탈을 쓴 ‘실용주의자’였어요. 그의 사상적 동지라는 염소도 똑같은 놈이 아니겠어요?

이들은 정통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가 아닌 그냥 ‘욕심주의자’랍니다. 자본을 너무 사랑하는 각시탈!


따라서 자신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지 않고서도 뒤에서 운동권 선후배들을 조종해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데···, 굳이···.

게다가 푸시킨이 주로 하는 사업이 정치권에서 활동하기에 어울리지 않아요.

일례로 그가 이태원에 큰 클럽을 인수했다는 따끈따끈한 정보가 입수되었죠.

푸시킨도 근래 클럽에서 숙식을 한대요. 물샐틈없는 신변 경호를 위해서였다나요?

혹시나 이전에 호텔에서 저와 여무명에게 당한 것 때문일까요? 우린 즉각 그 업소로 출동했지요.


클럽 내벽은 온통 노란색이고, 천장은 어둠이 배어있는 하늘과 같은 색채군요.


마침 핼로원 축제 기간이어서 동서양 젊은이들의 열기로 뜨겁답니다. 코로나도 잊은 채 광란의 파티를 즐기고 있다니 다들 미쳤군요!


교회는 봉쇄했어도 이곳은 젊은층 표를 감안해 개봉한대요.


클럽 손님들의 대부분이 핼로원 소품으로 치장하고 있는 점도 우리가 몰래 잠입하기 유리하게 작용했어요.

나이가 든 쌍장군도 호박인형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아무도 그의 연식을 가늠할 길이 없잖아요. 그쵸?


클럽에서 인기를 끈 인물은 단연코 청백(淸白)!

그 애는 삼지창을 든 악마 복장을 하고 있어요. 남들은 따라올 수 없는 기럭지의 소유자여서 무시무시한 사탄가면을 쓰고 있어도 눈길을 끄네요.


동양의 베아트리체 담백 역시 흉측한 스컬 우먼으로 변신했지만, 해골 모양의 의상이 그녀의 미모를 감출 순 없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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