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룡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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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1.12.1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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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0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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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백(3)

DUMMY

나 여무명이 짐작컨대 요기는 도자기를 만드는 강의도 하면서 그릇도 팔고 순진한 남성들을 유혹하는 등 이것저것 하는 요괴들의 아지트였다.


실내에 들어서니 성모마리아 상까지 있구나. 그것도 설백(雪白)의 도자기로 구운.

남편은 중인데 부인은 가톨릭 성도? 가지가지 하는 요물들이다. 정말 용서할 수 없도다.


건물 전체에 울려 퍼지는 기타 선율의 팝송은?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의 ‘She’s gone(그녀는 떠나고.)’!

‘클레오파트라 황’이 운영하는 도예공방과 너무 잘 어울린다.


블랙 사바스는 ‘검은 안식일’이라는 의미로 악마적인 흑마법 분위기를 연출하는 그룹이란다.

허나 정작 멤버들은 앨범 카버에 십자가 목걸이를 차고 나올 정도로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던데? 맞나? 안 맞나?


‘I’ve been gone a long long time, waiting for you.(당신을 기다린 지 너무 오래되었어요) I din’t want to see you go, Oh No no.(당신이 가는 걸 보고 싶지 않았어요. 오 그래, 그래요.) And now it’s hurting so much, what can I do?(이제 그건 너무 큰 상처를 주는군요. 난 어찌해야 하나요?)∽’이 들리는 가운데 50대 중년부인과 30대 초반의 두 딸이 도자기 물레로 그릇을 빚는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제자들이 대부분 남성들?

강사와 학생들 간에는 야한 농지거리를 주고받은 정도로 친밀해 보인다.

도자기가 아니라 사랑을 빚는 공방일까?


그럴 만한 이유가 있구나. 모녀는 이거야말로 천하일색(天下一色)이 아니겠나?

옛글에도 나와 있듯이 중국의 3대 명기인 강남의 만옥연(萬玉燕), 하북의 적경홍(狄驚鴻), 낙양의 계섬월(桂蟾月)이라더니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더냐?


중국이 아니라면 조선의 명기?

좀 전 간판에서 본 것이 ‘클레오파트라 황’이었으니 황 씨라면 황해도 개성의 황진이(黃眞伊)? 아님 그녀와 쌍벽을 이뤘다는 전북 부안의 계월(桂月)?


사전 정보에 따르면 딸들은 20대 초반에는 강남의 유명 호스티스로 잘 나갔단다.

가게에서 에이스였다는 뜻.

그렇담 애미는 행수기생(行首妓生-관아에 속한 기생의 우두머리)인가?

애미도 젊었을 땐 각종 이권사업에 손을 안 대 본 게 없다더라.

그동안 남조선 산업화 과정에서 타지역에 비해 발전한 이쪽 영남 지역에서 터를 잡는 게 비즈니스하기에 유리했다면서···.

아무튼 요즘은 도자기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단다.

얼만 전까지만 해도 노래방 도우미인 보도로 활약했다던데···.

코로나 19 때문에 유흥업소가 서리를 맞자 업종을 변경했단다. 어차피 같은 문화예술계 사업이라면서···.


게다가 중년 여성은 수강생들에게 관상까지 봐 주는 데다 딸들은 타로점까지 처 준다나 뭐라나.


이들은 날 수강 신청하러 온 호구로 알고 맨드라미(민들레의 경북 사투리) 차라며 드셔보란다.

이는 필시 새서방 후리는 옹녀의 목소리로다.


난 계속 이들을 관찰만 했다. 자매는 아쉽게도 기혼자였다.

그들 대화에서 그걸 캐치할 수 있었거든.

왜냐하면 흥분해서 셤니(시어머니)와 시늬(시누이) 욕을 마구 해대고 있었으니까.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은 경국지색(傾國之色-나라를 어지럽게 할 만한 미모)이라도 할 수 있는 얼굴과 다르게 손에는 썩살(북한말로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오랜 세월 무공을 단련한 흔적이 분명했다.

아마도 거친 손을 숨기려고 도예가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으로 사료된다.


특히 중년 요괴는 대구사투리를 구사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숨길 수 없는 깊은 함경도 억양을 머금고 있었다.

난 평생을 식구들과 지내와 어지간한 이북 사투리에는 정통하니까.


돌연 늙은 요물 덩어리는 낯선 나의 존재를 이내 감지하고는 탐색의 눈초리를 보내더라.

눈썹을 살벌하니 추켜세우고 붙인 가짜 속눈썹을 파르르 떨면서 뭔가 미심쩍다는 표정이었다.

야사(野史)에도 나왔듯이 클레오파트라가 여자 노예 젖가슴을 황금바늘로 콕콕 찌를 때 짓는 표정이랄까?

영화 클레오파트라에는 두 명의 여배우가 출연했다.

한 명은 ‘엘리자베스 테일러’ 또 한 명은 ‘모니카 벨루치’!

황 여사는 모니카 벨루치에 더 근접하다 하겠다. 테일러 양은 이미 우리 곁을 떠나 가셨고 벨루치 양께서도 1964년생일진대···. 세월의 무상함이라니!


사람 경험 많은 그녀가 보기에 나 여무명은 도자기를 깨면 깼지 정성스레 빚고 있을 놈으로 보이진 않았을 테니까.

이미 중년에 접어든지 오래인데다 간편하게 츄리닝만 입고 있건만 타고난 미모를 숨길 수 없었다.

이윽고 엄마 요괴는 고전적인 에나멜 구두를 신은 채 어차하면 바로 킥을 날릴 기세로 묻더라. “총각 웬일이래? 어쩐 일로?”

난 신문하듯 던지는 미녀 마귀의 질문을 일단 얼버무렸다. “그러게요.”


다음은 미모가 치명적인 모녀 요괴들의 의심을 무마시키기 위해 간첩들의 암호를 얼른 사용해야 했으니.

이번엔 암구호 대신 전설의 난수표로 사용하던 책이다.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의 ‘행복의 정복(The Conquest of Happiness)’!


내가 이 책을 꺼내자마자 미녀 스파이들은 호들갑을 떨어대며 난리도 아니다.

“어머나! 어찌 이 누추한 곳까지 오셨나이까. 미리 연락이라도 줬으면 아이 좋잼까? 지도원 동지는 처음 뵘다. 먼저 그간 성과를 보고하겠슴다. 이 지역 상황에 대해서는 이 클레오파트라가 다 안내하겠슴다.”


나 여무명은 지도원답게 거만한 폼을 잡고 엄밀한 말투로 말했다.

“누가 들으니 위쪽 사투리는 그만 쓰시죠. 남조선 반동 보수주의자들의 텃밭에서 혁명 사업을 하려니 얼마나 애로가 많았겠습니까.”


만옥연(萬玉燕)을 닮은 요물 암캐는 손사래를 치면서 겸양을 떨어 댄다.

“보수의 텃밭은 무슨 텃밭? 이곳도 많이 변했다오. 정부에서 막 퍼주니까 너무나 좋아라하고 있어요. 원래 대구가 가장 먼저 공산주의 혁명의 불꽃이 일어났던 걸 잊었소? 1946년 10월 ‘대구 항쟁’ 말이오. 반면에 보수 측에서는 ‘대구 폭동’이라고 하고요. 그리고 과거 산업화시기에 구미공단을 비롯한 영남지역 공장으로 몰려든 호남 지역민들의 후손이 있지요. 그동안 정체를 숨기느라 누구보다도 이 지역 사투리를 찐하게 쓰고 찐 보수주의자임을 자처했던 자들이 요즘 세상 바뀌니 정체를 슬슬 드러내고 있잖아요. 적어도 20년간은 정권이 바뀌지 않으리라 생각했겠죠. 그렇잖습니까?”


적경홍(狄驚鴻)의 미모를 자랑하는 장녀까지 어미의 주장을 거든다.

그녀는 실내인데도 어울리지 않게 검은색 빵모자를 쓰고 있더라.

거기엔 흉측한 해골모양의 금속이 장식된···.


“혁명의 불길이 아직 훨훨 타오르는데 팔공산 호랑이인들 별수 있나? 모두 죽은 채 누워 있어야지. 여기 출신들도 살아남으려면 맛대강이(맛대가리의 북한말) 간 보수에 기웃거리기보다는 새 정권에 연옹지치(吮癰舐痔-종기의 고름을 빨고 치질 않는 밑을 핥는 천박한 아첨)하거나 곡학아세(曲學阿世-학문을 굽혀 개인 영달을 위해 세상에 아부함) 해야 하거든. DJ나 노무현 때도 이곳 사람 일부는 아주 잘 나갔잖아? 윗사람 잘 모시는 게 TK의 최대장점 아니겠어? 글구 촛불혁명이 너무 온건했어. 유혈혁명으로 이어져야 진짜배기지. 걱정이야. 지금 수서양단(首鼠兩端-쥐가 머리만 내민 채 어느 쪽으로 갈지 결정을 못 하는 상황)하고 있는 소위 중도라는 것들이 종국에는 ‘이기는 편이 우리 편으로’ 돌아설 것 아냐? 그러니 노동 교화소를 만들었어야지. 소비에트 공화국이 만든 시베리아 수용소라든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소금광산으로 보냈어야지. 기존 질서에 대한 파괴는 보다 광범위한 창조계획의 합법적인 앞부분이라잖아. 남조선은 아직 충분히 붕괴되지 않았어. 절대로!”


이 여자 좀 보게. 역시 젊은 것이 싸가지가 없구나. 말도 짧고.

그래도 대리석과 같은 그녀의 피부가 눈길을 끌더라. 언젠가는 왕족과 궁녀들의 피로 적셔질 제국의 대리석 궁전···.


조금 공손하게 생긴 계섬월(桂蟾月)과 비교되는 막내딸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다 나서더라.


“2017년 사망하셨던 마르크시즘이 대한민국에서 다시 부활했습니다. 그것은 남한 악의 뿌리가 어디 있는지 치유책이 어지 있는지를 간파했기 때문이겠죠. 새로운 시대의 강력한 힘이 된 거랍니다. 마르크시즘에 따라 생각하는 사람은 침이나 질질 흘리는 바보천치가 아닌걸요? 이 정치철학은 실증과학이자 현실에 대한 교리이며 역사적 상황의 철학인걸요. 다만 작금에 혁명정부에서 일어나는 현실이 절 불안하게 해요. 전리품에 대한 공정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러면 곤란해요. 이미 일부 좌파에서 분열이 시작되었지요. 한국 속담에 있잖아요.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아, 라고요. 배 아픈 동지들이 광분하기 시작했어요.”


내가 들어 봐도 구구절절 옳은 얘기다. 암탕나귀들이 신통방통하구나. 배운 년들이었다. 부모로부터 배운 혁명학습을 철저히 이행한 탓이거늘.


장녀는 수강생들을 내보내겠다며 강의실로 들어갔고, 복닥거리며 현관문으로 모여 들었던 남자들의 와작지껄 소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실내는 조용해졌다.


잠시 후! 갑자기 장녀가 호들갑을 떨어 댄다.

“엄마 아빠가 연락이 안 되는데? 보살 이모들도 모두 똑같고. 아빠께 위대한 조국에서 지도원 동지가 왔다는 사실을 알려 주려 했는데 이상해! 요즘 우리 같은 암살 전담 야체이카(세포조직)를 차례로 조지고 있다는 여무명이란 놈의 소행이 아닐까?”


그러면서 세 모녀는 마치 화가 난 메두사의 표정으로 돌변하면서 동시에 나를 쳐다보다니! 허둥지둥 각자 무기를 챙기면서···.


난 이 무자비한 쿠노이치(여자 닌자)들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들을지어다! 남조선과 같은 하얀 세상에선 우리 같은 패악무도(悖惡無道)한 ‘흑위(黑衛)’들은 오래 살면 안 된다는 걸 진정 몰랐더냐? 물론 지금 대한민국 또한 중국 영화배우 공리가 출현했던 ‘붉은 수수밭’이지만. 어쨌거나 난 내 소명을 다하다가 순교할 테니. 이 섬세한 살인자들아 너희 먼저 지옥으로 가거라! 그래야 내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지도 모르니까. 하나님께서는 가끔 이이제이(以夷制夷)가 아니라 이독제독(以毒制毒)을 쓰시거든. 나 같은 죄인을 이용해 너희 같은 죄인을 치실 때 쓰시는 거지. 바빌론 제국으로 앗수르 제국을 때려잡듯이 말이야. 비유가 좀 거창했나? 어찌하였건 너희들로 인한 죽음의 메아리를 그치게 해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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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관백(4) 22.01.14 3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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