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룡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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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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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18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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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4)

DUMMY

몽학선생께서도 이쯤 해서 껴도 된다고 생각하셨는지 한 말씀 거들었습니다. 너무나 흐뭇해하면서요.


“이젠 많은 국민들이 알고 있는 얘긴걸요. 지금까지 속속들이 밝혀진 바로는 도덕적 DNA가 아니라 도적적 DNA겠죠. 농담입니다. 저 역시 과거 운동권 출신으로 한때 그들과 동지적 관계였으니까요.


그때 우린 술판을 벌이곤 힘차게 오른 주먹을 휘두르면서 ‘인터내셔널가(歌)’를 불렀습니다. ‘깨어나라, 노동자의 군대여! 굴레를 벗어던져라!∽어떠한 낡은 쇠사슬도 우릴 막지 못 해.∽민중이여 해방의 깃발 아래 서자!∽인터네셔널 깃발 아래 전진 또 전진!’


당시 혁명을 꿈꾸는 학생들이라면 이 정도 노래는 불러줬어야 진정한 운동권이라 할 수 있겠죠.

이 노래로 말씀 드리자면 1988년 프랑스인이 작곡했답디다.


헌데 안타깝게도 젊은 운동권이 늙은 기득권으로 변신해 이 노랠 더 이상 부르지 못한대요. 자기들이 혐오하던 낡은 쇠사슬이 되었거든요.

민중이 해방의 깃발을 세워 그들이 만든 프레임인 굴레를 벗어나는 것 역시 용납하지 못 하겠대요.

예전에 내 친구들은 단 한 번의 싸움을 위해 발톱을 벼리는 장산곶매였지만 지금은 자신들을 믿고 기다린 민중을 외면한 채 안락과 일상의 둥지를 지키려고 이 세상을 누르고 있지요.

한마디로 ‘진보(進步)’가 ‘진부(陳腐)’로 변하고 있다, 라고 할까요? 이젠 낡아버린 진영에서 온 자들이 되어버렸답니다.

불쌍한 영혼들을 사냥하는 새 사냥꾼처럼 손목마다 시뻘건 부적을 꿰어 매고 있지요. 각설하자면 여기 러시아 땅에도 얼마 전까지 존재하던 ‘노멘클라투라(Nomenklatura-착취를 일삼았던 소련의 특권계급)’라고나 할까요?


제 소견으론 한국의 강남 좌파들은 아마도 스웨덴의 인기 정치인 ‘올로프 팔메(Olof Palme)’ 수상의 길을 꿈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금수저이면서도 노동운동에 참여했고 증세 없는 복지 같은 것에도 관심이 많았지요. 베트남 전쟁에도 반대했고요.


그러던 어느 날 괴한이 쏜 총에 사망하고 말아요. 범인은 34년간 잡히지 않았고 최근에 범인이 공개되었지만 이미 저격수는 세상을 떠난 후였거든요. 이상하죠? 2000년경에 자살한 것으로 밝혀졌음에도'''''.

그런데 혹시 아시나요? CIA가 친 소련 성향인 올로프 팔메 총리를 암살했다는 음모론 말이에요.”


그러면서 몽학선생은 저 다니엘을 바라보더군요. 혹시 알고 있는 팩트가 없냐는 표정이었어요. 전 재빨리 화재를 돌렸답니다. 전직 CIA 요원인 나조차도 솔직히 잘 모르고 있던 사건이잖아요.


염소 일당이 남한에 가져온 북한 핵물질로 다시 대화를 유도했지요. “제가 알기론 요즘 북한 과학자들까지 탈북을 감행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국가과학원 소속의 최고 엘리트까지도요. 이유는 먹고살기가 힘들어서라네요. 믿어지나요. 진실이에요. 불과 얼마 전인 2017년 6월에 발생한 해상탈출사건이 있었어요.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핵과학자나 적어도 핵기술자까지 탈출하지 않을까요?”


체리미스 박사가 바로 저의 주장을 접수하는군요. “그들이 탈출해서 만약에 한국이 아니라 제3세계로 간다면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재앙을 확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제가 잘 알고 있는 북한 핵전문가가 중국으로 탈북하려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비밀이고요. 그가 자유진영의 품으로 안기는 데 성공한다면 북한 핵의 실체를 국제사회에 알릴 수 있음을 물론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도 심각성을 경고할 수 있겠네요.

솔직히 제 생각엔 남한 사람들은 너무 대범하고 안일한 게 있어요. 불과 100년도 지나지 않은 과거에 이웃나라에서 핵폭탄이 터졌음에도 말이죠. 물론 그것 때문에 겨우 독립이 되었지만. 아직도 독립운동과 민족적인 저항정신 때문에 독립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죠?”


이렇게 첫날 만찬이 끝나고 체리미스 씨 댁 2층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제가 배정받은 방에는 러시아 화가 ‘일리아 레핀’의 모조작품이 걸려 있군요.

그림 제목은 ‘뜻밖의 손님(The Unexpected Visitor)’! 또는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No One Waited Him)’ 랍니다. 아주 유명하고 대단히 우울한 그림이죠.

어느 날 갑자기 국가에 의해 끌려가 시베리아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가장이 시간이 흘러 집에 돌아온 광경이었죠. 아이들은 너무 초췌하고 늙어버린 아빠를 보고 낯설어 하고 있네요.

대한민국에서도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정부에 의해 옥(獄)에 끌려간 분들이 서서히 돌아오시겠죠?

종신형과 다름없는 형을 때려 전 정권을 유폐(幽閉)시킨 저들은 하긴 자기들은 그나마 적들에 대한 동정심이 지나쳤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어요.

이유인즉슨 이곳 러시아 땅에서는 혁명세력이 로마노프 왕족을 저택 지하실에 몰아놓고 총을 쏴댔으니까요. 아이에 불과한 황태자는 물론 하인들까지도. 이렇게 니콜라이 2세를 끝으로 로마노프 왕실은 300년 만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어요.

원래 레닌은 니콜라이 2세를 죽일 생각이 없었대요. 서방과의 협상카드로 활용할 계획이었는데, 백군이 진격해 오고 있다는 첩보를 접하고 재빨리 처형한 것이래요.


다시 적백 내전 얘기가 되풀이 되었군요. 자꾸 반복하는 경향이 있으나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참고서입니다. 혁명정부의 적군(赤軍)은 전 정권 적폐세력인 백군(白軍)의 반격이 만만치 않자 백군 장교출신들을 회유해 적군에 복속시켰답니다. 왜냐하면 적군에는 군사전략가가 부족했기 때문이었죠.

그러한 기회주의자이자 세상을 멀리 보지 못하는 백군의 일부 배신자들은 결국 남 좋은 일만 시키고 훗날 깨끗이 제거되었대요. 한반도에도 이런 인물들이 없었을까요? 아니 바로 지금요!


남한에서도 자칭 촛불혁명이 발생했잖아요. 재미 삼아 비유하자면 멸족한 로마노프 왕족 중에서 유일하게 생존했다고 주장한 한반도의 아나스타샤는 누구일까요? 희대의 사기극으로 밝혀졌지만요.


아직 잠이 덜 깼는데 밖이 소란합니다. 문을 마구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집주인인 체리미스 씨와 그의 부인이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놓고 변백(辨白)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Oh, no!”

저는 마침내 2층 침실까지 진입한 자들에 의해 어떤 곳으로 연행되었지 뭡니까? 알고 보니 저뿐만이 아니라 저희였어요. FSB(러시아 연방보안국)로 추정되는 자들이 저희를 흰 방에 각자 가두고 심문을 진행했답니다.


제가 조사를 받으면서 느낀 점은 아직도 러시아 방첩부서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 나오는 애정성(愛情省)과 같았다는 거죠. 반체제 인사제거와 사상통제에 앞장서는···.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 시간이 흐르고 알게 된 사실은 우릴 밀고한 사람이 바로 ‘무라슈키나’ 아줌마였어요. 저 다니엘이 ‘이반 크람스코이’가 그린 유명한 초상화 ‘미지의 여인’과 닮았다고 했던 그 여자요.


그랬어요. 크람스코이의 ‘미지의 여인’은 처음에 러시아가 아닌 유럽에 팔렸대요. 그런데 이상한 일들이 연이어 발생했죠. 그 그림을 구입한 첫 임자는 연인에게 버림받았고, 두 번째 수집가는 화재를 당했으며 세 번째 구매자마저도 파산했다지 뭡니까? 뭔가 불길한 그림이었어요.


역시나 제가 불길하게 여겼던 무라슈키나는 다니엘을 러시아 원전의 비밀을 캐내려는 산업스파이로 고발했답니다. 몽학선생의 경우는 러시아가 폴란드 대통령 비행기를 추락시켰다고 언급했음을 이유로 유언비어 유포자로 고발했고요. 게다가 자기를 그간 고용해준 체리미스 부부를 서방의 스파이로 신고한 거였죠. 그것도 미주알고주알.


무라슈키나는 소련 시절부터 몸에 밴 투철한 신고정신을 아직 버리지 못했나 봐요. 그리고 러시아인들은 예로부터 돈 많은 핀란드나 폴란드 사람에게 역겨운 감정이 있거든요. 러시아 문학작품 곳곳에서 그런 감정이 묻어 나와요. 예를 들어 그리스 놈들만치 역겨운 핀란드 놈들이라고. 티푸스와 같은 법정전염병 취급도 해요.

또한, 유대인에 대한 혐오도 다른 유럽지역만큼이나 심하고요. 심지어 체리미스 씨는 유대인 혈통으로 분류되거든요. 모계 쪽에 유대인 유전자가 있었으니까요. 공산주의 사상을 만든 장본인인 ‘칼 마르크스’도 유대인이었다던데?


다행히 저 다니엘을 미국 국적이기에 러시아 정보기관에서 함부로 엮을 수 없었어요. 일정 시간이 경과한 후 훈방 조치되었죠.

FSB 수사관들이 내세운 터무니없는 증거 앞에서는 “Humbug!(협잡이야!)”라며 강하게 대처했다니까요. 이들의 bullshit(개수작)에 전여 동요하지 않았답니다.

그런 까딱수에 전직 CIA 요원인 제가 넘어가겠어요? 감히 얻다 대고! 전 믿는 바가 있잖아요? 저에게 뱀과 전갈을 밟을 능력을 주신 분이 계시니까요.


몽학선생과 체리미스 부부 역시 우여곡절 끝에 풀려났죠.

후일담이랍니다. 무라슈키나는 과거 소련 시절에도 은밀히 KGB의 정보원 역할을 했다는 게 밝혀졌대요. 당시에는 동네 사람들을 밀고한 대가로 놀면서도 괜찮은 생활을 유지했었으나 구 소련 붕괴 후에는 가사 도우미라는 힘든 일을 했어야 했답니다.


어쨌거나 체리미스 씨가 석방 후에 술 먹고 화가 난 나머지 얼결에 문진(文鎭)으로 가사 도우미였던 무라슈키나의 대가리를 내리쳤다는군요. ‘배은망덕(背恩忘德)도 유분수지!’라면서···. ‘핵폭탄 같은 년’이라는 이유로요. 갈 곳 없는 그녀를 가족처럼 보살폈다면서요.

체리미스 부부가 그녀에게 도시(都是) 왜 그랬냐고 물었음에도 도무지 반성의 빛을 보이지 않았더래요. 심하다 못해 나중에는 퇴직금에다 위로금까지 요구하면서요.


숲의 나라이자 요정의 나라라는 핀란드 출신은 아직도 순진하군요. 대한민국은 고도의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의리 같은 것은 잊은 지 오래랍니다. 그래서랄까요? 배은망덕이나 뒤통수치기가 출세의 지름길이자 미풍양속이 된 지 오래잖아요. 그리고 대가리도 속된 표현이 아니라 무공훈장인 양 자랑스럽게 여기는 풍토가 정착되었습니다.





나 염소는 중국 감옥에서 많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네. 시방 당장 석방이 힘들다면 우선 러시아 감옥으로 이송당하는 계략을 꾸며봄세. 뭐라고? 러시아에서도 청부살인과 마약밀매를 비롯하여 죄를 많이 짓지 않았냐고?

까짓것! 그건 다음에 생각할 일일세. 러시아는 중국과 달리 사형제도가 폐지되었거든. 1996년부터 사형이 유예됨에 따라 집행은 물론 판결도 하지 않고 있다네.

어떤 이들은 종신형이 세월아 네월아 천천히 죽이려는 잔혹한 형벌임을 강조해 단번에 죽여주는 아량을 베푸는 사형보다도 윤리적인 측면에서 더 잔인하다고 평가하지만···. 요즘 교도소에선 절대로 자살하지 못하도록 CCTV로 24시간 감시하는 거 봤나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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