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님의 놀이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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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괴
작품등록일 :
2021.12.15 21:27
최근연재일 :
2022.01.2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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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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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화.

DUMMY

침대에 누워서 가만히 생각해봤다.


‘음... 우리 레이시아짱이 뻑 가려면 뭐가 좋을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명품백. 그런데 명품 핸드백은 이 세상에 없다. 물론 드워프나 엘프가 만든 비싼 가죽 가방은 있어도 브랜드 네임으로 가치가 결정되는 그런 가방은 없단 말이다.


‘어? 명품백?!’


돈 냄새가 났지만...


‘하아... 이럴 줄 알면 어차피 못 샀었더라도 디자인 같은 거나 좀 봐둘 걸.’


문양이랑 디자인이라도 잘 알면 어디 의뢰해서 만들기라도 할 텐데, 나는 그런 것도 잘 모르는 무지렁이였다. 에르메X니 샤X이니 프라X에 구X 같은 이름은 알아도, 그것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랐다.


‘대충 이렇게 교차된 문양이 있었던 거 같은데... 에라이.’


다시 생각해보니 여기 세상에서 먹힐 일은 없을 것 같다. 일단 핸드백이 먹히려면 여성들의 의복과 가치관부터 바꿔야 할 텐데, 내가 그런 것까지 모두 고려해서 무언가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다시 돌아가 일단 레이시아가 좋아할 것을 생각해본다.


보자... 여자들이 보통 뭘 좋아하더라?


‘...피자랑 떡볶이?’


오! 피자랑 치즈 떡볶이는 그 이예나도 그렇고, 그 전 썸녀도 그랬고, 하다못해 한수정도 좋아하던 음식이었다.


‘...파스타도 있는데.’


그리고 이 세상에는 밀도 있고 치즈도 있지만, 인터넷에 레시피를 검색하지 않고서 만드는 방법은 모른다. 고추장과 파스타 소스가 있으면 떡볶이랑 파스타는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생각해보면 반할 정도로 맛있게 만들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생각해보면 지구에 있을 때는 시판 소스를 사서 만들어도 별 맛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여기 음식보단 낫지 않을까?’


자신감이 없어지다가도 여기 영주관의 음식들을 생각해보면, 일단 그것보다는 나을 자신이 생긴다.


‘그래. 그리고 어차피 나도 먹으려면 식재료라도 좀 찾아놔야 하려나? 음. 그리고 김치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후우. 매운 맛을 내는 고추 같은 것이 있던가?’


일단 제이크의 기억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백작가의 식탁에 올라온 건 대부분 원형을 살린 요리. 얼핏 기억나는 건 스테이크처럼 구운 고기와 빵과 샐러드에 수프 정도였고, 도박장과 술집을 전전할 때의 안주 역시도 소시지와 육포 같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물류 이동의 어려움은 식문화에도 매우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어라? 그러고 보니 튀긴 요리도 거의 없네? 거의가 아니라... 어? 설마 고기 말고는 아예 없는 거 아냐? 잠깐만... 여기서도 이세계물이? 으... 역시 기름이 문제인가? 하아. 치킨 없이 살 수 있나?’


그나마 닭은 있었던 것을 알기에 기름을 구할 방법을 생각해본다.


‘흠. 식용유라. 포도씨유. 콩기름. 해바라기씨유. 올리브유. 카놀라유? 그런데 카놀라는 뭐지? 그것도 뭔 식물이겠지? 에잇. 그리고 또... 음... 들기름하고 참기름은... 방앗간에서 보긴 했는데... 어? 그런 거 압착 정제 어쩌고 하던데... 그냥 볶은 다음에 짜내면 되나?’


그래도 올리브유는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에 엄마 때문에 비압착 정제 어쩌고 하면서 올리브유를 만드는 TV 프로그램 같은 걸 같이 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중요한 건 올리브를 어떻게 구하냐의 문제였다.


‘올리브... 흐음. 올리브가 어디는 있겠지? 그것만 구하면... 씨발. 올리브유로 치킨 튀기면 그게 황올이지 뭐. 후우.’


그나마 바다를 접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물론 염전은 없지만 소금이야 바닷물을 끓이는 것으로 만들 수 있을 테니까. 게다가 그게 후추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백작가의 식탁에 올라온 고기에는 까만 향신료가 있긴 했었다.


츄릅.


나도 모르게 흐른 침을 닦고서, 다시금 레이시아의 마음을 뺏을 선물을 생각해본다.


‘...치킨은 레이시아도 좋아하지 않을까?’


치킨이면 아무리 얼음 여기사라도... 하아, 역시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여심 저격 조건은,


일단 잘 생기고, 몸매도 좋아야 하고, 헤어스타일은 항상 단정하고 깔끔하며, 과하지 않으면서도 센스 있는 패션은 필수, 유머 감각과 배려있는 매너도 있어야 하고, 멋진 차와 서울 시내에 번듯한 자가 부동산을 가지고, 자신의 말에 관심과 공감을 보이면서, 다른 여자에게는 차갑지만 자신에게만 따스하고, 여행과 같은 이벤트를 수시로 해주며, 지적인 매력과 함께 요리도 잘 해야 하고, 맛집 같은 곳을 먼저 찾아서 자신을 데리고 다녀야 하며, 매번 연락을 잘 받고 먼저 해주면 된다는 것은 아는데...


‘...그건 전부 K 버전이잖아. 여기는 지구가 아닌데 어떻게 해야 하지? 후우. 씨발, 그놈의 이론은 맨날 알기만 하고 한 번을 적용을 못 해보네. 젠장, 내가 그래서 연애를 못 했었나?’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그냥 잘 보이려고만 생각했었지, 막상 여자들이 좋아하는 것을 디테일하게 알아본 적은 없단 것을 알게 되었다.


‘...레이시아는 뭘 좋아할까?’


제이크의 기억 속에서 레이시아의 기억을 다시 찾아본다.


‘어릴 때부터 정말 다정한 누나였네. 엄마 없는 제이크의 엄마 노릇을 해줬어. 고작 두 살 차이인데 어릴 때부터 참 성숙하고 똑똑했네.’


어린 제이크는 장난꾸러기이기도 했고, 검술에 미쳐 있기도 했다. 그 이면에는 아빠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 레이시아 누나를 지켜준다는 마음도 있었으며, 점차 크면서는 은근히 거부감이 느껴지던 새 엄마 카니안 덴프 백작 부인에게 보여주려는 마음도 있었다. 때문에 미친 듯이 검술에만 매몰하던 제이크를 누나라고 해도 여전히 어렸던 레이시아가 꼼꼼하고 세심하게 챙겨주었던 기억이 많았다.


‘레이시아가 뭘 좋아하는지 찾아보려고 했는데, 음... 순전히 제이크가 도움 받은 기억뿐이네.’


고개를 긁적긁적 긁어가며 기억들을 쭉 살폈다.


‘아무래도 가문의 검술을 가르쳐줄 수는 없었으니까 레이시아가 기사 학교로 떠나면서 미안해했고. 꼭 돌아올 거라고 약속을 했고. 그런데 그 사이에 제이크의 오러홀이 박살났지. 그리고 나중에 레이시아가 돌아왔을 때는 일부러 제이크가 의도적으로 멀리하다가... 그리고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였는데...’


결국 연알못인 나는 레이시아가 여자로서 뭘 좋아할지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러면 다른 쪽으로. 기사니까 검? 갑옷? 아니지. 가족으로 접근해볼까? 일단 레이시아도 제이크를 엄청 아꼈고, 제이크가 망가진 것을 안타까워했었던 건 확실하니까... 오! 그러면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천사 레이시아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안 그래도 망가진 몸에 술집과 도박장을 전전하던 제이크의 몸은 누가 봐도 기사의 몸은 아니었다. 지구로 치면 야근과 회식에 시달리는 회사원의 몸매라고 해야 할까? 이왕이면 인터넷에서 봤던 출시직전의 개발자의 몸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후우... 오러홀? 아니야. 일단 지금은 다른 건 모르겠고... 몸이라도 제대로 만들어보자.’


그러한 과정을 거쳐서 나는 레이시아가 돌아오기 전까지 1차 목표는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것으로 정했다.


‘후우. 그래. 여기서는 복근이라도 좀 가져보자.’


겸사겸사 건강에 이어 매력적인 몸도 가져보기로 한다.


“좋아!”


일단 여기는 이세계이고 내 몸은 제이크의 몸이므로 기억 속의 수련을 되짚어 본다.


‘음... 타나티안가의 검술이라...’


아델린 왕국의 시조처럼 당시 연합국 전체에서 손꼽히던 영웅까지는 아니었지만, 타나티안 가문의 시조도 아델린 왕국 한정으로는 영웅의 반열에 섰던 인물이었다. 그래서인지 타나티안 가문의 검술은 북부에서는 가장 뛰어난 편이고, 현재 소드 마스터를 보유한 램브란트 공작가와 달리센 후작가에 비교해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였다. 물론 타나티안 가문의 핏줄인 제이크의 기억 속 지식이니 괜한 자부심이나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일 수도 있지만, 왕국의 호사가들이 떠들어댄 것이니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 세상에서 검술이란 일정 수준에서는 그것을 누가 익히느냐에 좀 더 좌우가 될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제이크도 엄청 기대를 받았었는데, 일이 그렇게 되는 바람에... 쯧.’


내가 아닌 제이크의 기억이지만, 괜히 속이 쓰리다.

아무튼 타나티안령의 검술로 충분하다.

다만 여기 세상의 검술이란 것은 정교함보다는 신체 수련에 좀 더 의의를 두고 있기에 무협지에서의 그것들처럼 신묘한 힘은 없지만...


‘뽀대만 나면 그만이지 뭐.’


레이시아에게 보여주기에는 충분히 멋진 검술이었다.


‘음... 여기에 헬스 동작 몇 개만 더 하면 수련으로는 충분하긴 하겠다.’


다행히 헬스는 제대로 배운 적이 있다. 군대에 있을 때 후임 중에 하나가 트레이너 출신이라서 PX 냉동을 먹여가며 PT를 받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한 두 달하다가 때려 치는 바람에 복근은커녕 어좁이 신세를 벗어나진 못했지만, 지금은 확실한 동기부여가 있지 않는가.


‘비록 망가져서 그렇지 베이스는 좋아.’


여기 세상에서 검술 천재라 함은 기본적으로 오러를 받아들이기 좋은 신체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었고, 왕국 전체에 소문이 자자할 정도로 신동이었던 제이크의 몸은 전투력이 아닌 매력으로만 한정하면 아직도 충분히 유망했다.


‘이 상병 가라사대, 어깨도 늘릴 수 있고 옆으로는 얼마든지 노력 여하에 따라 고칠 수 있어도, 타고난 위아래의 비율은 극복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8등신에 얼굴이 조막만하고 팔 다리가 길쭉길쭉한 제이크는 충분히 긁지 않은 복권인 셈이다.


“우리 레이시아짱이 혹시 취향이 이상하진 않겠지?”


만에 하나 배가 나오고 푸짐한 남자를 좋아할 수도 있지만, 나는 완벽한 레이시아가 충분히 정상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으리라 믿고 수련에 동기부여를 가졌다.


‘좋아. 푸시업 천 개, 스쿼트 천 개. 윗몸 천 개. 타나티안 검술 3시간. 저택 30바퀴.’


처음에는 영주관 뒷산에 미끄럼틀이 놓여 진 수련장을 가려고 하다가 그건 좀 무서워서 영주관 내에서 수련을 시작했다.


“흐아압.”


그리고 첫날에 내가 한 수련량은 목표치의 3% 남짓 정도에 불과했다.


“흐에엑.”



* * *



그래도 첫날에 비하면 컨디션은 눈에 띄게 빠르게 좋아지는 거 같다.


“헉 헉.”


레이시아가 상행을 떠나고 첫날 푸시업을 겨우 10회 정도 했는데, 운동 사흘 만에 30개 정도는 연속으로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일단 옛날에 했던 가락이 있어서 그런가?’


지구에서 내가 제일 건강했을 때 기준인 상병 기준 78개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그래도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후우. 조금 쉬었다가 하자.”


충분한 휴식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이걸 해결할 때가 됐다.


[제이크 타나티안]

[◇: 73 [+]] [◎: 400/400 [+]]

[현황] [건설] [관리] [상점] [조합] [창고]


잠든 와중에도 꼬박 꼬박 자동회복되는 마나가 어느새 최대 마나량에 도달했다. 이제 여기서부터는 사용하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카드 하나를 사용해서 마나를 소모해줘야 한다.


‘뭘 만들지?’


현재 보유한 카드는 티켓과 테마를 빼면 17개.


[어트랙션] [나무 그네] [★]

[어트랙션] [두꺼비집] [★★]

[체험시설] [미니 골프] [★]

[체험시설] [모래사장] [★]

[체험시설] [모래사장] [★]

[어트랙션] [복합 미끄럼틀] [★★]

[어트랙션] [회전목마] [★★]

[체험시설] [번지점프] [★★★]

[조경시설] [잔디밭] [★]

[편의시설] [벤치] [★]

[편의시설] [식수대] [★★]

[조경시설] [나무 울타리] [★★]

[조경시설] [나무] [★]

[편의시설] [안내소] [★★]

[조경시설] [연못] [★★]

[편의시설] [나뭇잎 파라솔] [★★]

[조경시설] [동상] [★★★]


다만 카드만 있다고 만들 수는 없고, ‘필요정령’과 ‘필요재료’에 ‘최소 마나’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하므로, 당장 이 중에서 만들 수 있는 건 사실 몇 개 없다.


[어트랙션] [나무 그네] [★]

[편의시설] [벤치] [★]

[조경시설] [나무] [★]


“에휴.”


이 셋 중에서 [나무]는 그나마 돈이 될 법한 거라서 비싼 과일 나무와 목재가 될 법한 나무의 씨앗을 구해달라고 부탁한 상태니 패스. 그리고 한 달이란 시간 동안 마나가 차고 넘칠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어차피 순서의 문제일 뿐이었다.


‘그냥 앉아서 쉬게 벤치부터 해야지.’


나는 용기를 내어 혹시 몬스터나 마수나 위험한 야생동물이 있을지도 모르는 비밀 수련장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이보게. 수련할 생각이니 기다리지 말게.”


영주관에서 뒷산 입구에 호위를 떨어트려 놓고 가기로 했다.


“아닙니다. 영주님. 마치시고 내려오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괜찮네. 굳이 힘들게 기다릴 것이 뭐가 있는가. 그런 시간 낭비하지 말고 할 것 하면서 영주관에서 대기하게. 여기 신호탄도 있으니까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신호를 보내겠네. 그럼 되지 않는가.”

“...알겠습니다. 영주님.”

“그럼 다녀오겠네. 어차피 영주관으로 돌아오면 하녀들에게 이야기할 테니 괜히 기다리지 말고 자네도 수련이나 하고 있게.”


레이시아의 부탁으로 붙여진 호위병을 영주관에 대기시켜놓고 나는 홀로 산길을 올라간다.


‘...갑자기 마물이 나오진 않겠지?’


영주관 저택 뒷산은 해안 절벽 위에 있고, 직접적으로 바람산맥과 연결되지는 않아서 지금까지 딱히 마물이 나타난 적은 없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긴장이 되긴 한다.


‘에휴, 참 잣 같은 세상이야. 중남미 치안도 이 정도는 아니겠네. 후우, 그러고 보면 지구의 헌터물도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끔찍할까.’


괜히 소설 속 엑스트라들의 어려움을 걱정해가며 나는 첫 날에 버거웠던 산길을 다시 올랐다.


“후우.”


아직은 여기 세상에 단 하나뿐인 미끄럼틀이 있는 비밀 수련장이다.


듬성듬성 나무가 몇 그루 있고, 바닥에는 풀과 흙이 섞인 아주 살짝 비탈진 땅.


뜬금없이 서 있는 명품 목제 미끄럼틀만 빼면 그냥 흔한 야산에 양지바른 곳일 뿐이다. 물론 멀리 바다가 보이는 뷰니까 흔한 제법 땅값은 비싸겠지만 말이다. 만약 이곳이 지구였으면 딱 누군가의 조상님 묘지가 하나 있지 않았을까? 성묘하러 오는 후손들은 조금 곤란하겠지만, 산 중턱에 절묘하게 자리 잡은 분지 지형은 아무도 찾지 않는 어촌 마을이라는 것을 빼면 꽤나 명당일 것 같다.


‘나중에 여기도 개발해서 캠핑이나 제대로 해야지.’


물론 나야 풍수도 잘 모르지만, 배산임수의 명당보다는 바다가 보이는 은밀한 곳이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매기고 싶다.


‘나중에 담장만 두르면 무조건 여기서 레이시아랑 캠핑이다.’


그런 희망의 첫 시작으로 내가 택한 시설은...


[편의시설] [벤치] [★]


[크기: ???]

[건설비용: 100 마나+α]

[필요재료: 살아있는 나무 또는 나무씨앗]

[필요정령: 나무의 정령 1성 이상]

[제작시간: 1시간+α]


지구에서는 놀이터, 캠퍼스, 공원, 유원지, 아파트 단지 안이나 그냥 뒷산 여기저기 산책로에 있을 법한 흔한 벤치였다.


‘크게! 더 크게! 이왕이면 누울 수 있을 정도로...!’


사실 굳이 스마트폰의 사진을 확대하듯 엄지와 검지로 조절하지 않아도 된다. 집중만 잘하면 크기 조절도 위치 조절도 생각만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은 집중력이 미숙한 초심자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손을 활용하는 것이 더 편하긴 하다.


‘에이 씨... 진짜 그냥 벤치네.’


물론 못 하나 없고 접합부 하나 없이 통짜로 이어진 특별한 나무 벤치이긴 하지만, 그래도 특별한 기능은 없는 그냥 흔한 벤치 이상은 아닐 것 같다.


‘음... 별로 커지지도 않는구나.’


이번에 건설을 하면서 한 가지 더 알게 되었다. 원래 정해진 크기에서 크기를 키우는 건 생각보다 더 마나가 많이 소모되는 일이라는 걸. 마음 같아서는 벤치라도 크게 만들어서 4명이 앉을 거 10명쯤은 앉게 하고 싶었는데, 그건 어려울 모양이다.


‘하긴... 쩝. 그렇게 따지면 다른 시설들도 다 마나만 퍼부으면 난리 나겠지.’


아무튼 홀로그램으로 자리를 잡고, 건설을 시작한다. 나무씨앗이 마나 400을 모두 쏟아 부어 제작하는 동안 나는 수련을 쉬지 않고 했다.


“백만 스물 둘. 백만 스물 셋. 으라차!”


한 시간 하고 몇 분? 시계가 없으니 정확한 시간을 알 수는 없지만, 마침내 1성 [벤치]가 완성되었다.


“...오.”


못과 접착제 하나 없이 오로지 나무로만 만들어진 벤치는 가시 하나 없이 원목 그대로의 매끄러움과 결을 가진 채로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와... 미쳤다.”


이 정도 퀄리티면 벤치도 돈이 되지 않을까?


털썩.


푹신한 소파나 침대가 아니라 몸을 날리지는 않았지만, 앉는 순간 명품이라는 느낌이 온다. 어릴 적 조금만 앉아도 온몸이 배겨오던 학교의 싸구려 의자의 느낌이 아니다. 파스타 매니아였던 썸녀 덕분에 찾아갔던 한 그릇에 2만원이 넘는 파스타 전문점의 나무 의자보다 훨씬 편하고 운치가 있다.


“......”


그런데 그것뿐이다.


“...에휴.”


이걸로 큰돈을 벌어서 지구로 돌아가기에는 조금이 아니라 많이 무리가 있어 보인다.


...

...

...


[벤치]를 만들고, 닷새 후에는 [나무 그네]를 만들었다.


[어트랙션] [나무 그네] [★]


[크기: ???]

[건설비용: 150 마나+α]

[필요재료: 살아있는 나무 또는 나무씨앗]

[필요정령: 나무의 정령 1성 이상]

[제작시간: 1시간+α]


원래는 그네였던 것이 왜 나무 그네가 되었나 싶었더니, 줄부터 시작해서 전부 나무로만 만들어져 있었다. 왜 타잔 같이 정글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 늘어진 나무줄기를 붙잡고 멀리 점프해서 이동하지 않는가. 물론 그런 얽히고설킨 덩굴보다는 이게 진짜 나무일까 싶을 정도로 매끄러운 느낌이긴 하지만...


“...끊어지진 않겠지?”


그래도 금속으로 만들어진 줄만 타봤던 사람으로서 불안감에 괜히 그네의 줄을 당겨본다.


탁 탁 탁.


다행히 이 정도로 끊어지지는 않을 모양이다.


“음... 오랜만이네.”


지구에서 마지막으로 그네를 타본 것이 언제였을까? 유격훈련 때 그네 비슷한 것을 타고 물웅덩이를 지나는 훈련이 있긴 했는데, 그걸 그네라고 하기에는 조금 많이 거리가 있으니까... 음. 아마도 중학교 때가 마지막인 듯싶다.


다다닷-


몇 번 발 구름을 하며 그네를 타보았다.


부웅-!


금방 앞뒤로 속도가 붙는다.


슈웅- 슈우웅-!


금속으로 만들어진 동네 놀이터의 그네보다 도리어 삐걱거리는 소리도 없이 잘 움직이기만 하다.


“...에휴.”


그리고 천천히 그네가 멈춘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냐... 진짜 놀고 있네. 씨이.”


처량하게 그네에 앉아서 흔들흔들 몸을 흔들어 본다.


“후우... 드라마에서 괜히 그네를 이렇게 타고 있는 게 아니었구나.”


마치 그런 심정은 아닐까? 그네에게서 자신의 처지를 빗대어 동병상련을 느끼는 그런 마음? 누군가 밀면 밀리는 대로 당기면 당기는 대로,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처럼 흔들리는 그네의 마음을 알 것만 같다.


...지금 내가 그런 심정이니까.


아무리 열심히 발버둥을 쳐봐도 결국 줄이 매달린 기둥을 벗어날 수 없는 애처로운 그네의 마음에 빙의해서 외쳐본다.


“아아악!”


젠장.

이세계 생활이 너무 끔찍하다.

집도 너무 불편하고, 밥도 너무 맛이 없고, 스마트 폰과 인터넷이 없는 세상은 너무 심심하다.


“하아. 레이시아라도 있었으면...”


그렇지만 레이시아가 돌아오려면 아직 4주 정도는 더 있어야 한다.


“...하아.”


나는 괜히 화풀이로 그네를 손으로 붙잡고 세게 밀었다.


부웅-!


그네가 앞으로 힘차게 올라갔다가 우당탕탕 거리면서 뒤로 돌아온다.


“......”


여전히 줄에 잘 매달려 있는 그네였다.


부웅-.


다시 밀어본다.


부웅-.


역시 다시 돌아온다.


“더럽게 튼튼하네. 썅. 그래. 언젠간 끊기겠지. 언젠가는... 내가 꼭 탈출한다.”


어떻게든 줄을 끊고 탈출한다는 심정으로 나는 수련을 하고, 휴식을 하고, 수련을 택했다. 그네처럼 결국 매달린 것이라도 상관 없다는 심정이었다. 정말로 이 빌어먹을 세상은 할 것이 아무 것도 없기에, 오로지 지금 할 수 있는 건 수련뿐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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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011화. 21.12.31 81 1 16쪽
10 010화. +1 21.12.30 84 1 20쪽
9 009화. +1 21.12.29 92 1 16쪽
8 008화. +1 21.12.28 99 1 16쪽
7 007화. 21.12.27 98 2 15쪽
6 006화. +1 21.12.25 112 1 20쪽
5 005화. 21.12.24 132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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