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불로소득 망나니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여름산夏山
작품등록일 :
2022.03.30 21:52
최근연재일 :
2022.04.30 13:21
연재수 :
29 회
조회수 :
30,505
추천수 :
425
글자수 :
165,575

작성
22.04.04 22:30
조회
1,522
추천
23
글자
13쪽

제6화 같은 꿈을 두 번 꿀 수는 없는 법

DUMMY

늦잠을 푹 자고 일어났다.

거의 12시가 다 된 시간.

출근에 대한 부담이 없는 오전이란 천국이구나.


어머니는 식당에 나가셨는지, 식탁 위에 아침밥만 덩그러니 차려져 있었다.

고요한 집안에 혼자 있는 건 꽤 편안한 기분이었다.


우선 해장을 하기 위해 식탁에 앉았다.

소고기 무국과 잘 익은 신김치 그리고 양반김 한 봉.

어제 점심 때 기어코 남은 소고기를 몰래 비닐 봉지에 챙기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괜스레 씁쓸했다.

가난에서 오는 어머니의 행동 때문이 아니라, 돈이 생기는 순간 음식의 소중함 조차 잃어버린 나 자신의 가벼움 때문에.


모두들 말한다.

성공해도 자기는 안 변한다고.

말은 쉽다.

근데 그건 성공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다.


어머니의 소고기 무국은 너무 맛있었다.

야무지게 한 끼를 먹어치운 뒤, 바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이러다 진짜 소가 되버리는 거 아닐까.


음매애~ 스스로를 조롱하듯 황소 울음소리를 내며 핸드폰을 켰다.

본격적으로 SNS를 뒤지기 시작했다.


'진이경'

평생 잊지못할 첫사랑의 이름.

흔치 않은 이름이라 생각했지만, 동명이인이 꽤 많았다.

일일이 들어가서 얼굴을 확인해 보는 수 밖에.


SNS에는 정말 다양한 성공과 행복의 이미지가 둥둥 떠다닌다.

세상엔 정말 가지각색의 인간들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건너건너 아는 사람 혹은 모르는 사람들이 돈도 잘 벌고, 행복하고, 좋은 걸 입고 먹고 마시고, 좋은 호텔과 해외 여행을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약간의 열등감과 질투심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 더러운 기분 탓에 나는 SNS를 접었다.

남들의 그럴듯한 일상을 보면 볼수록 괜히 우울해 졌기 때문이다.

그들과 비교하여 내가 올릴 만한 일상의 콘텐츠 따위는 없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제 와서 보니 다 비슷비슷해 보였다.

삶의 플렉스.

마치 힙합 쇼 프로그램을 보는 듯 했다.

모두가 연예인이 되고 싶고 관심 받고 싶어서 나 어때? 라고 어필하고 있는 듯 했다.


예리한 심사위원의 시선으로 스크롤을 열심히 내리던 중.

놀라서 하마터면 '좋아요'를 누를 뻔 했다.

졸업 후 10년 가까이 흘러 버린 세월 속에서도 뚜렷하게 남아있는 그 얼굴.

진이경의 아름다움은 여전했다.


우월한 미모와 특유의 애교 섞인 눈웃음까지.

그리고 그 유전자를 제대로 이어받은 그녀의 딸아이까지.

스크롤을 천천히 아래로 내리자,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가 드문드문 등장했다.

나와는 살아가는 계급이 다른 사람들 같아 보였다.

부자는 아니고 중상층 정도?

예상했던 일이었다.

미스 유니버시티 출신이 아무나 만나서 결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헛헛한 기분에 담배 생각이 났다.


.

.

.


담배 연기를 흡입하다 보니, 씨발 정신이 생겨났다.

같은 학과 동창 출신인데 갑자기 니 생각이 났다 하면서, 연락을 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러다가 만나서 차 한 잔 정도 마실 수도 있는 거고!

뭐 내가 탈옥수라서 집에 숨겨달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의향 정도는 물어볼 수 있는 거잖아?


바로 DM을 보냈다.

원래 계정이 아닌 새 계정을 새로 판 뒤 사진 하나만 업로드한 상태였다.

바로 나의 첫 수입차 E360 모델과 시승 후에 함께 찍은 사진.

원래 알던 친구들이 본다면 이미지 세탁처럼 보여지겠지만, 사실 맞다.

이렇게라도 해야 답장이 올 것 같았다.


그리고 1시간 뒤, DM으로 답장이 왔다.


***


- 광고홍보학과 강건희?

- 오 기억하고 있었다니 감동^^

- 잘 지냈어?

- 응. 너도 잘 지내고 살아?

-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 남다르게 잘 사는 것 같은데 뭘


진이경은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어색하고 긴장은 됐지만, 얼굴을 마주 안 보고 문자로만 대화를 하는 거라 그럭저럭 해볼 만 했다.

그렇게 DM으로 몇 마디를 더 주고 받았는데, 의외의 진전이 있었다.


더이상 할 말이 없어지자 의례상 하는 투로 기회가 되면 얼굴 한 번 보자는 말을 건넸는데, 이번 주말은 시간이 어떠냐는 대답이 돌아온 것이다.

동창에 대한 반가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내가 올린 한 장의 자동차 사진 때문이었을까?

별 생각을 다 해봐도 내가 진이경의 마음을 알 수 있을 턱이 없었다.


그렇게 일요일 점심 약속이 잡혔고,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번호까지 알려주다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설렘도 잠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장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철은 불알친구 패밀리 중 한 명으로 논현동의 테일러샵에서 일한다.

유일하게 멋을 부릴 줄 아는 친구이고, 패션에 관심이 많다.

집은 월세 살고, 차는 없어도 항상 화려한 의상을 입고 다녔다.


"업무 시간에 어쩐 일이냐?"

"장철아. 친구 전화를 왜 이렇게 불친절하게 받으실까? 나 너네 가게에서 옷 한 벌 맞추려고 하는 데 오늘이나 내일 가도 되니?"

"뭐야. 여친 헤어졌다더니 다시 재결합해서 결혼하냐?"

"그건 아니고~ 중요한 미팅이 생겼는데 신경 좀 써야 할 것 같아서."

"중요한 미팅 좋아하네. 여자 만나는 구만."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고 치는 게 아니라 우리 가게 옷 비싸 이 새끼야."

"알아 이 새끼야~ 직원 할인가로 좀 부탁하자."

"피곤하게 구네 이거. 알았어 일단 그럼 오늘은 스케줄이 안 되고, 내일 점심 같이 먹자."

"오케이. 내일 봅세."


장철과 통화를 끝낸 뒤, 새로 만든 SNS 계정을 바로 삭제했다.

번호를 주고 받았으니, 괜히 흔적을 남겨둘 이유가 없었다.

진이경이 물어보면, SNS는 잘 안 맞는거 같다고 둘러댈 생각이다.


중상층의 기대 수준에 맞추려면 일요일 점심은 어디에서 먹는게 좋을까.

연애할 때는 주로 여자 친구가 가고 싶은 데로 취향을 맞췄었다.

서로의 사정을 알기에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없되 유행하는 먹거리들 위주였다.

기본적으로 소개팅도 많이 안 해본 나로서는 새로운 여자와 만날 때 어디를 가야할지 정하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운 숙제였다.

특히나 결혼하고 애까지 딸린 미모의 첫사랑과 거의 10년 만에 만나는 상황이라니.

인터넷에 뭐라고 검색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 수준이었다.


띵!


골몰하고 있는 나를 향해 따끈따끈한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방금 저장한 진이경 번호였다.


:> 일요일 1시 진라 호텔 콘티넨탈에서 보자 :)


호.. 호텔이구나.

이럴 땐 역시 호텔에서 보는 거구나.

또 하나 배웠다.


***


장철은 내가 첫사랑을 만나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먹고 있던 국밥을 뿜었다.


"너 지금 무슨 드라마 찍냐?"

"왜 나는 드라마처럼 살면 안 되는 거냐?"

"이 새끼 큰일 날 새끼네? 요즘 간통죄 없어졌다고 너같은 초짜도 날 뛰는 거냐?"

"그냥 낭만이야. 추억! 보고싶었던 사람 얼굴도 보면 안 되는 거냐?"

"순진한 새끼. 걔가 널 왜 보자고 했겠냐?

"왜?"

"하루하루 삶이 팍팍하든가, 남자가 궁하든가 둘 중 하나겠지, 뭐."

"내 첫사랑을 너의 더러운 상상력으로 판단하지 말아줄래?"

"아휴... 밥이나 먹어라~ 형이 너의 판타지를 위해 옷은 제대로 하나 골라줄게. 물론 돈은 니가 내라."


장철은 전신 거울 앞에 나를 세워놓고, 여러가지 컬러와 소재의 원단들을 들이밀었다.


"애매할 땐, 기본으로 가는 거야."


최종적으로 네이비 컬러의 수트로 결정되었다.

맞춤 제작은 시간도 일요일까지 안 되고 가격도 비싸다며 최대한 사이즈가 맞는 기성품을 골라주었다.

입어보니 꽤 그럴듯 했다.

약간 젊은 스타트업 대표 같은 느낌이 났다.


"구두는 이거 빌려줄 테니까, 깨끗이 신었다가 다시 반납해라~"


마치 아들 장가 보내는 형처럼 툴툴거리면서도 잘 챙겨주는 장철이 고마웠다.

장철은 또 어딘가로 전화를 걸더니, 메신저로 주소를 하나 찍어주었다.

바버샵이었다.


전신 타투를 한 대머리의 이발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화로 친구 분이 알려주신 스타일대로 해드리면 될까요?"

"네? 네네.."


이렇게 머리를 바싹 깎아본 것이 얼마만 인가.

윗머리는 포마드로 기름이 좔좔 흐르게 빗어내린 스타일.

내가 봐도 딴 사람 같았다.

그게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다.

내가, 내가 아닌 느낌.


외모적으로 자신감이 충전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사전 답사였다.

진라호텔 콘티넨탈에 전화를 걸어 당일 예약 가능 여부를 확인했다.

다행히 창가 자리는 아니지만, 가능하다고 하여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장충동으로 향했다.


잘 차려입은 탓인지, 호텔에 들어서면서도 심리적으로 꿀리지가 않았다.

21층에 위치한 미슐랭 프렌치 레스토랑이었다.


진이경은 평소에 어떤 생활을 하길래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서 보자고 한 것일까.

런치 코스 중에 가장 싼 것이 9,5000원이었다.

일단 그걸 시켰다.


식전 빵부터 나왔는데, 포크 세 개가 동시에 세팅되었다.

어디서 들은 것 같았는데, 코스 요리 나올 때마다 왼쪽부터 하나씩 쓰는 거였던가.

일하는 척 핸드폰을 보며 검색을 하였다.

미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근데 빵이 이렇게 맛있다고?

그때부터 이어지는 예쁘고 작은 요리들의 등장.


토마토 살사와 브리오슈, 가자미살을 넣은 크로켓, 감자칩 위에 한우타르타르.

이렇게 예쁜 걸 씹어도 될까 하는 마음이 드는 모양새였고, 맛은 또 다채롭고 화려했다.

이래서 프랑스 요리를 최고로 치는 거구나.


메인 요리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어느새 답사라는 생각보다는 맛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소고기 안심 스테이크는 간에 기별이 갈까 싶을 정도로 작았다.

그런데 찍어먹을 소금만 세 가지 종류가 나왔다.

영국 소금, 프랑스 소금, 그리고 한국의 신안 소금.

소고기 한 조각을 먹더라도 각기 다른 맛을 느껴보라는 섬세함.


마지막으로 나온 디저트는 미술 공예품인 줄 알았다.

결국은 설탕 덩어리겠지만, 한 마리의 날아오르는 백조의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주변의 눈치를 살핀 뒤, 겨우 날개부터 부셔서 먹을 수 있었다.


첫사랑과의 만남이라는 명목으로 황홀한 답사를 마친 뒤에도 나는 쉽사리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우월감이 느껴졌다.

처음이 어렵지, 모든 게 돈만 있으면 가능해 보였다.


***


그렇게 목요일, 금요일 이틀 간 점심, 저녁 네 끼를 혼자서 서울 시내에 위치한 호텔 레스토랑 몇 곳을 골라 순례하였다.

알고보니 나는 미식가였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셰프들의 실력과 연구 과정이 묻어나는 정성스럽게 비싼 요리들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혀를 가지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해서 제대로 된 음식만을 먹고 살고 싶었다.

'그러려면 로또가 계속해서 당첨되어야만 한다.'

내 인생이 달라질 유일한 정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

.

.


다시 찾아온 토요일 오후 2시 30분.


의미심장한 마음으로 로또 판매점에 입장했다.

수동으로 만원 어치, 신중하되 마음가는 데로 자유롭게 번호를 찍었다.

밖으로 나온 뒤에는 노인 분이 지나가진 않을까 10분 정도를 기다렸다.

혹시 몰라 옆 콩나물 국밥집에 들어가 주문도 했다.

맛은 그냥 콩나물 국밥이었다. 요 며칠간 먹은 예술적인 음식들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국밥을 떠먹으면서 창밖으로 계속 노인이나 여자가 지나가지 않는지 살폈다.

무슨 첩보 영화처럼 그들을 놓칠새라 눈동자를 쉴 새 없이 굴리고 있었다.

프렌차이즈 커피숍에도 들어가 아메리카노를 한 잔 시켰다.

사장은 나를 다행히도 못 알아보았다. 스타일이 너무 달라졌기 때문이리라.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다 먹는 동안에도 노인과 여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 같은 꿈을 두 번 꿀 수는 없는 법이지.'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경건한 마음으로 8시 45분을 맞이했다.

이번에도 된다면, 정말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거다.


.

.

.


그리고 눈 앞에서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만원 어치 열 줄 중에 단 한 줄의 번호가 1등과 모두 일치했다.


연이은 로또 1등 당첨.

막연한 확신이 진짜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역대급 불로소득 망나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공모전 참가를 위해 연재를 잠정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2 22.05.02 166 0 -
공지 웹소설 첫 연재작입니다. +2 22.04.18 584 0 -
29 제30화 일등석에서 먹는 라면맛 +1 22.04.30 354 8 12쪽
28 제29화 어쩔 수 없는 인간사 +4 22.04.29 423 6 12쪽
27 제28화 우리가! 남이가! +2 22.04.28 412 6 11쪽
26 제27화 혼쭐이 나야 정신을 차리지 +4 22.04.27 526 7 12쪽
25 제26화 자유이용권 22.04.26 608 7 12쪽
24 제25화 적성에 맞는 일 +2 22.04.25 746 7 13쪽
23 제24화 인생은 성공한 사람에겐 놀이터 22.04.23 1,212 10 13쪽
22 제23화 쓰리썸 +3 22.04.22 970 11 12쪽
21 제22화 욕망에 눈 뜬 자들 22.04.21 750 10 11쪽
20 제21화 뜨거운 밤 +2 22.04.21 805 13 12쪽
19 제20화 연애 사업 22.04.20 776 11 12쪽
18 제19화 음지의 세계 22.04.19 765 11 12쪽
17 제18화 스폰 놀이 22.04.18 834 12 11쪽
16 제17화 노는 물이 달라짐 22.04.16 831 11 13쪽
15 제16화 얀커르 벤처스 +1 22.04.15 888 17 14쪽
14 제15화 세상에서 가장 바쁜 인간 22.04.14 926 15 12쪽
13 제14화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22.04.13 955 14 12쪽
12 제13화 캐릭터 설정 +3 22.04.12 1,039 17 13쪽
11 제12화 나는 죽어도 이 기회 못 놓친다 +1 22.04.11 1,075 15 13쪽
10 제11화 우정 콘서트 +1 22.04.09 1,152 17 12쪽
9 제10화 너 돈 많아? +1 22.04.08 1,228 19 13쪽
8 제9화 건강검진과 아파트 쇼핑 +1 22.04.07 1,281 18 12쪽
7 제8화 대한민국 30대 평균 +1 22.04.06 1,354 18 13쪽
6 제7화 로또 당첨 번호에는 주인이 없다 +1 22.04.05 1,458 18 12쪽
» 제6화 같은 꿈을 두 번 꿀 수는 없는 법 +2 22.04.04 1,523 23 13쪽
4 제5화 인생 공부, 사람 공부 +3 22.04.02 1,623 22 13쪽
3 제4화 자격지심 +2 22.04.01 1,751 24 13쪽
2 제3화 오늘부로 이 회사 그만둡니다 +4 22.03.31 1,904 27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