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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산夏山
작품등록일 :
2022.03.30 21:52
최근연재일 :
2022.04.30 13:21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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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14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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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세상에서 가장 바쁜 인간

DUMMY

초대장 있는 사람들만 참석할 수 있는 삼성동의 호텔 개업식.

진이경 외에는 아무 친분도 없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과감해지기 시작했다.


"맞네~ 애진 플라텍, 포장용 플라스틱 성형 용기 제조업!"


나는 핸드폰으로 검색한 화면을 김진석의 눈앞에 보여주며 크게 말했다.


"아무리 이경이 지인이라시지만 지금 좀 무례하신 거 아닌가요?"

"아이고, 그럼 좀 예의있게 묻겠습니다. 댁의 부모님은 뭐하시는 분들이시죠?"


나는 그저 김진석이 나에게 했던 질문을 똑같이 돌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아하하.... 이거 뭐 제가 했던 질문들이 기분이 많이 나쁘셨었나 봐요?"

"에이 설마요? 저도 그쪽이 단순히 궁금해서 그런 겁니다. 원래 친해지려면 호구 조사부터 하는 거잖아요. 보아하니 자수성가는 아니시고 재벌집 아들로, 다이아몬드 수저 물고 태어나셨나 봐요?"

"보자보자 하니까 이 새끼가!!"


김진석이 내 멱살을 잡아챘다.

나는 의연하게 한 마디를 더 보탰다.


"아버지가 화장품 파는 기업을 운영하셔서 그런가 남자치고 피부가 굉장히 좋으시네요? 저도 요즘 피부가 꺼칠해져서 그런데 피부샵 잘하는 데 추천 좀."


애진 그룹.

재계 서열 42위.

화장품 제조업으로 시가 총액 10조 5천억 원대를 찍은 준대기업이다.


내 학벌과 커리어로는 취업도 하기 힘든 회사인데, 그 집안 사람과 말싸움이나 하고 있을 줄 알았을까.

계열사 전무라고는 하지만, 회장 직계 손자는 아닌 듯 하고 어디 장남의 사촌뻘일 듯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회사 직원도 아닌 마당에 그를 우러러 모실 필요가 1도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싸가지에는 싸가지가 답이다.


얘기를 듣고 있던 진이경이 옆에서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

거의 눈물을 훔쳐가면서 웃어 재끼는 바람에, 나도 김진석도 황당한 기분을 느낄 정도였다.


"너네 너무 재밌게 노는 거 아니니? 아니 첫만남부터 벌써 그렇게 친해지면 어떡해? 응?"


벙찐 채 멈춰 버린 남자 둘을 바라보며, 진이경이 칵테일을 한 모금 삼켰다.


"진석아 기분 진짜 나빴던 거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무식하게 손이 먼저 나가는 거, 그거 너무 못 배운 태도 아닌가?"


김진석이 그제야 민망한 듯 내 멱살 잡은 손을 풀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갑자기 흥분해서 그만. 제가 아버지 얘기만 나오면 좀 욱하는 게 있어서~"

"몰랐네요. 저도 누가 저희 부모님 뭐하시는지 물어보면 영 불편해서~"


진이경이 우리를 귀엽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안면 텄으면 된 거지 뭐. 다음부터 나 모임 나갈 때, 건희도 같이 데려갈 거야. 그때 진석이 너가 잘 좀 챙겨줘."

"그래~ 우리 모임 나오시면 잘~ 어울리실 분 같아 보이네."


김진석은 끝까지 비아냥 대는 식으로 말했지만, 나는 이미 자존심이 상했던 게 충분히 풀린 상태였다.

이제부터는 상대에게 여유를 가지고 대하는 사람이 승자다.

끝까지 찌질대는 것은 자기가 병신이라는 것을 계속 입증할 뿐.


"무슨 모임인데요? 이경이도 저한테 얘기 안 해줬는데, 재벌들만 모이는 프라이빗한 그런 교류의 장 같은 건가요? 그러면 정보도 많고, 배울 점도 많을 것 같아요."

"하..하. 다이아몬드 수저들만 모이는 그런 모임이죠 뭐~ 금수저든 흙수저든 짭퉁들이 오면 금새 티가 날 수 밖에 없는 진골들의 친목 도모라서요. 근데 이경아 나 계속 이 친구랑 말 섞어야 하는 거니? 너 나 엿 먹이려고 일부러 이런 새끼랑 같이 온 거야?"


김진석의 병신 지수가 계속해서 우상향 하고 있었다.


"아니. 말 섞기 싫으면 니가 일어나. 우리도 너 보러 온 거 아니니까. 얼른 가서 연예인 지망생들이나 챙기고~ 기분좋게 술 먹고 춤이나 추든지."


결국 진이경이 병신에게 쪽을 주고 말았다.

김진석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랑 진이경을 번갈아 몇 번 쳐다보더니, 들고 왔던 칵테일을 원샷하고는 자리를 박차고 가버렸다.

진이경이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 지으며 칵테일을 마셨다.


"이경아, 그 모임 진짜 나 데려갈 거야?"

"응. 너가 원하면 같이 가보지 뭐. 한 달에 한 번 평창동에서 모이거든. 거기 가면 모든 일 벌리기 좋아~ 나는 좀 피곤해서 이제 좀 멀리하려고 하는데... 암튼 나중에 스케줄 나오면 내가 다시 알려줄게."

"그렇지 않아도, 요즘 내가 투자처를 좀 찾고 있었거든."


진이경이 갑자기 멈칫했다.


"건희야, 너 정말 나랑 본격적으로 일해보려고 이러는 거야? 투자처? 그런 걸 나한테 왜 묻지? 왜 그냥 내 남편이라도 소개시켜 달라고 하지 그래?"

"아~ 맞다. 너 남편이 엔젤 투자 쪽 일한다고 아까 누가 그러던데."

"너 진짜 계속 이러면 재미없어져~"

"나도 너 계속 이러면 재미없거든?"


김진석이 가고 나니, 나는 진이경에게 시비를 걸고 싶어졌던 걸까?

그동안 쌓여왔던 부자들에 대한 적개심 같은 게 화산 터지듯 폭발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계속 급발진을 하고 있었다.

진이경이 표정을 싹 바꿨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나도 재미없어진다니?"

"나는 뭐 너가 시키는 데로만 해야 하는 사람이야?"

"건희, 너가 지금 무슨 오해를 하고 있구나~"

"오해하고 자시고 할 게 뭐 있냐? 지금 너랑 나랑 하고 있는 모양새가...."

"나는 너한테 억지로 뭐 시킨 적 없고, 그리고... 하~ 됐다. 싸울 이유가 없어, 우리 둘이."


그리고 찾아온 침묵.


이건 마치 연인 간의 다툼 같은 것일까.

아니면 우정에 금이 가는 소리일까.

여자 성별의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었기에 너무나 낯선 상황이었다.


다행히 진이경의 지인들이 그 뒤로 계속해서 테이블로 찾아와 인사를 했다.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진이경은 그들과 서로 안부를 나누었고, 웃으며 나를 그들에게 소개시켰다.


알고 보니 김진석 전무가 특별하게 이상했던 놈이었다.

진이경의 지인들은 대부분 아주 젠틀했고, 기본적으로 잘생겼으며 이쁜 사람들이었다.

로또가 아니었더라면 평생 나와는 얼굴 마주칠 일도 없었을 사람들.

그들의 관심과 호의에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감정이 좀 누그러들자, 진이경에게 소리쳤던 게 후회가 됐다.

자리가 끝나면 진이경에게 사과를 한 뒤, 좀 더 솔직한 대화를 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볼 사람들 대충 다 본 거 같다~ 시간도 이쯤 됐으니 나갈까?"

"그럴까? 나가서 둘이 한 잔 더 할래?"

"그래. 그러자."


잠시 불꽃이 튀었었지만 무난하게 화해할 의지가 있는 연인들 같았다.

주차장에 차를 내버려 둔 채, 택시를 잡아타고 진이경의 단골 BAR로 이동했다.


***


바텐더가 진이경을 반갑게 맞이했다.

단골이겠거니 하면서도, 도대체 얼마나 외식을 많이 하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가족들과 시간을 같이 보내긴 하는 것일까.


"싱글몰트 중에 내 이름 달려 있는 거 있나요?"

"잠시만요. 가끔 드시는 아드벡 킵해 놓으신 게 있네요."

"건희야, 너 피트한 거 잘 마시니?"

"피트한 게 뭔데?"

"말로 설명하기 어려우니까 한 잔 마셔보고, 아니다 싶으면 말해줘~"

"그래. 먹어볼게~"


처음 먹어보는 맛과 향이었다.

약간 훈제 같기도 하면서, 요오드 같은 화학 약품 맛이었다.


"어때? 특이하지. 스코틀랜드 아일라 지역에서 만드는 술인데, 호불호가 많이 갈려. 특유의 향은 석탄 대신 피트라는 연료를 사용해서 나는 거야."

"난 괜찮은 거 같은데? 약간 고급스러운 소주 같기도 하고."

"소주랑 비교하기는 좀 그런데, 아저씨들 중에 아드벡 마실 때 마른 멸치에 고추장 찍어서 안주로 먹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텐더가 주방에 들어가더니 마른 멸치 몇 마리와 고추장을 가지고 나타났다.

아드벡을 마시고 멸치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니 입에 착착 달라 붙었다.


"아무래도 나는 아저씨 입맛인 거 같다. 내 취향이네~"

"다행이네. 오늘은 다른 거 섞어 먹지 말고, 아드벡으로 가자."


자연스럽게 위스키 얘기를 하다보니 다시 다정한 동창 사이로 돌아와 있었다.

난폭 운전이며, 지인과 멱살잡이 하고, 사소한 말다툼까지 한 하루였다.

진이경 입장에서도 오늘 나 때문에 많이 피곤했을 법 하다.

남은 시간은 무리하지 말고, 진이경과 사이좋게 하루를 마무리 하는 데 집중하기로 하자.


그렇게 바텐더까지 함께 한 잔을 하면서, 다양한 싱글몰트 위스키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진이경의 핸드폰이 울렸다.


"응. 퇴근했어? 나 지금 여기 언더독인데, 잠시만."


진이경이 핸드폰의 마이크 부분을 손으로 가린 뒤, 나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남편인데, 여기로 오라고 할까?"

"아니야~ 아까는 진짜 그냥 한 얘기야~!"


나는 손까지 절레절레 흔들어 가며 부담스러움을 표현했다.


"아니야~ 기회될 때 봐야지. 이 사람 세상에서 가장 바쁜 인간이거든. 그럼 오라고 한다?"


진이경이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전화를 하면서 화장실 쪽으로 향해 사라졌다.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저, 담배 한 대만 피우고 올게요~"


바텐더에게 설명을 하고 자리를 잠시 비웠다.

바깥 바람은 어느새 따뜻해졌다.

어느새 겨울을 지나, 봄을 스치더니 바로 여름이 오려는 듯 했다.


진이경 남편이 오면 무슨 말을 하지?

자연스럽게 동창 관계라는 점을 어필하면서 대학 시절 썰이나 풀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진지하게 투자에 관한 얘기를 나눠야 할까.

근데 내가 뭐 투자에 관해 아는 게 있어야지....


"나도 한 대만 줄래?"

"어? 언제 나왔어?"


진이경이 어느새 옆에 다가와 검지와 중지 사이를 벌려 보였다.

나는 서둘러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꽂아 주었다.


"왜? 갑자기 남편이 온다니까 긴장돼?"

"아무래도 좀 그렇지. 편한 사람은 아닐 거 같아서."

"굉장히~ 불편한 사람이지."

"그런데 왜 불렀어?"

"그냥~ 그러고 싶었어."

"에효~ 나는 정말 도무지 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진이경이 말없이 담배를 피웠고, 나도 한 대를 더 꺼내 피운 뒤 다시 BAR로 들어갔다.

아드벡 바틀의 남은 잔술을 다 먹었는데도, 진이경의 남편은 나타나지 않았다.


"늦으려나 보네~ 집으로 가자."

"그래도 전화라도 해보는 게 낫지 않겠어?"

"여기 왔다가 없으면 집으로 바로 오겠지~ 집이 여기 바로 앞이야."

"아아~ 집이 근처였구나."

"가서 커피 한 잔 하고 있자."

"나도 같이 가자고? 너네 집에?"

"그럼 너네 집에 내가 같이 가자고 할까?"

"아... 지금 시간이... 밤 11시인데, 좀 실례이지 않을까?"

"걱정마, 내일 주말이라 애는 할머니집에 가서 아무도 없어."


그렇게 진이경의 집에 첫 방문을 하게 되었다.

집은 정말 가까웠다.

BAR에서 걸어서 7~8분 정도 걸린 듯 했다.

아파트 대단지 길을 진이경과 같이 걷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이 위치에 신현태 아파트면, 매매가가 적어도 60~70억 정도는 될 거다.

진이경 남편은 뭘로 그렇게 돈을 벌어들이는 것일까?


'이들도 나처럼, 어떤 치트키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갑자기 진이경 남편의 얼굴과 목소리, 행동거지 등 모든 면면들이 너무 궁금해졌다.


거대한 성곽처럼 둘러진 아파트들을 지나 도착한 127동.

엘레베이터를 타고 12층에 내렸다.

또각또각 진이경의 하이힐 소리를 따라 복도를 지나 1204호의 비번을 누르고 현관문을 열자, 55평 대의 깔끔한 실내가 드러났다.

이상한 건 집 전체에 환하게 불이 켜져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진이경이 하이힐을 벗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저멀리 소파에서 잠에서 깬 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왔어? 잠깐 옷만 갈아입고 간다는 게 그새 잠이 들어 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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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제19화 음지의 세계 22.04.19 765 11 12쪽
17 제18화 스폰 놀이 22.04.18 833 12 11쪽
16 제17화 노는 물이 달라짐 22.04.16 830 11 13쪽
15 제16화 얀커르 벤처스 +1 22.04.15 888 17 14쪽
» 제15화 세상에서 가장 바쁜 인간 22.04.14 925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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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제13화 캐릭터 설정 +3 22.04.12 1,038 17 13쪽
11 제12화 나는 죽어도 이 기회 못 놓친다 +1 22.04.11 1,073 15 13쪽
10 제11화 우정 콘서트 +1 22.04.09 1,151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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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제9화 건강검진과 아파트 쇼핑 +1 22.04.07 1,281 18 12쪽
7 제8화 대한민국 30대 평균 +1 22.04.06 1,353 18 13쪽
6 제7화 로또 당첨 번호에는 주인이 없다 +1 22.04.05 1,458 18 12쪽
5 제6화 같은 꿈을 두 번 꿀 수는 없는 법 +2 22.04.04 1,521 2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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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4화 자격지심 +2 22.04.01 1,751 2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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