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불로소득 망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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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산夏山
작품등록일 :
2022.03.30 21:52
최근연재일 :
2022.04.30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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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31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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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오늘부로 이 회사 그만둡니다

DUMMY

도무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좀더 실감이 날까?


대략적으로 실수령액을 계산해보기로 했다.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 중 하나를 아무거나 골라 잡았다.

고전 소설 <데미안>이었다.

책의 맨 뒷장을 펼치고 빈 여백에다가 세금을 뗀 실수령액을 계산해 보았다.


구글링으로 찾은 방법에 따라 18억 1천만원이라는 액수를 쪼개보았다.

우선 3억 이하까지는 세금이 22%였다.

300,000,000 X 0.78 = 234,000,000원.

총 당첨금인 18억 1천만원에서 3억을 뺀 금액에는 33%을 세금을 매겼다.

1,510,000,000 X 0.67 = 1,011,700,000원.

다 합치면 총 십이억 사천 오백 칠십만 원이 실수령액이었다.


십이억.

1등 당첨치고는 어마어마하게 큰 액수라는 느낌은 없었다.

이래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는 걸까.

그래도 통장에 1억 조차 찍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정말 낯선 숫자였다.


계산이 적힌 페이지를 찢어 밖으로 나갔다.


"또 어디가니?!"


어머니가 아직도 화가 안 가셨는지 퉁명스럽게 물어보셨다.


"잠깐 바람 쐬면서 통화 좀 하고 올게요."


밖으로 나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실수령액이 적힌 페이지에 라이터를 갖다댔다.

'영웅본색'의 주윤발처럼 타오르는 종잇불로 담뱃불을 붙였다.

마치 나만의 비밀을 간직하는 주술 행위를 하듯 진지한 마음으로 담배 연기를 깊이 들이마셨다가 뱉었다.


아직 아무한테도 발설하면 안 된다.

당첨 관련된 흔적도 남기면 안 된다.

모든 비밀은 방심하는 순간부터 일파만파 퍼져 나가는 법이다.


***


월요일 아침.

평소처럼 출근 준비를 하고, 어머니가 차려주신 아침밥을 먹은 뒤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사실 밤새 한 숨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오만가지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12억이라는 돈을 어떻게 쓰면 좋을까를 고민했다.

일단 집부터 사고 볼까? 얼마짜리를 사야 적당할까?

아니면 아무 일 없는 듯 회사를 다니면서, 주식이나 코인에 투자해서 제대로 돈을 불려볼까?


'파이어족'.

경제적 자유를 얻어 조기 은퇴를 추구하는 삶의 방식.

요새 유행하는 말이지만, 나랑은 전혀 상관이 없었던 말이었다.

12억을 은행 예금에 맡기면 이자가 한 달에 100만원 내외.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많이 불안한 액수였다.

아무래도 조기 은퇴는 어려워 보였다.


그러다 문득, 여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만약 로또 1등 당첨이 한 번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당첨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내 이름으로 사주를 봐주면서도, 30대 후반에 그냥 부자가 아니라 거부가 될 사주라고 했었다.

미친 척하고 정말 그 여자 말대로 계속 로또가 당첨된다는 가정을 전제로 머리를 굴려보았다.


결론은 평소처럼 회사에 출근을 한다, 였다.

월요일부터 바로 농협 본점으로 향할 경우, 나를 제외한 13명의 당첨자와 마주칠 확률이 높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첨된 로또 종이를 잃어버릴까봐 꽉 쥐고 주말 내내 전전긍긍하다가 월요일이 되자마자 농협으로 달려갈 것이 뻔하다.

나는 계속해서 로또가 당첨될 사람이기 때문에 최대한 존재를 감추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은밀하고 차분하게 나만의 작전을 세워야 했다.


***


- 이번 정류장은 마포구청역, 마포구청역입니다.


만원 버스 안에 갇혀 평소처럼 출근을 하고 있지만, 마음은 구름 위에 있는 듯 했다.

승객들 대부분이 피로에 찌든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보거나 눈을 감고 졸고 있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나 또한 같은 모습이었다.


이제 다른 삶을 살게 되겠구나.


같은 버스 안에 몸을 싣고 있지만, 심장에서부터 자신감이 차올랐다.

모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두둑한 통장 잔고가 주는 힘은 실로 대단했다.


.

.

.


회사 앞에서 자연스럽게 로또를 구매했다.

만원 어치, 전부 수동으로.

최대한 저번주처럼 비슷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일종의 징크스를 느꼈다.

혹시 모르니까 저번 토요일과 같은 시간에, 집 앞 판매점에서도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강대리. 뭐 기분 좋은 일 있나봐?"


손차장이었다.

당첨금 받으면 이 사람한테만큼은 소고기 한 번 쏴야지.

회사 생활하면서 유일하게 나에게 친절했던 사람이다.


"여자친구랑 헤어졌다고 그렇게 힘들어 하더니... 주말 동안 좀 괜찮아 졌어?"

"네. 차장님. 부끄럽습니다."

"부끄럽긴 이 사람아. 힘내자구! 이렇게 웃으니까 얼마나 보기 좋아."


로또에 당첨이 안 됐더라면, 나도 손차장처럼 늙어 갔겠지.

뒤늦게 결혼을 하고 애 낳아 키우면서 회사에서 안 짤리려고 아등바등 살았겠지.

신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 사무실로 향했다.


***


"야! 강건희, 너 내가 피티 자료 주말 중으로 수정해서 보내놓으라고 했어, 안 했어?"


신팀장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의 사수이자 회사의 자칭 에이스다.


"아.... 제가 깜박..."

"깜빡? 너 지금 깜빡이라고 했냐? 미쳤어?!"

"죄송합니다."


아침부터 차올랐던 자신감이 한순간에 쪼그라들어버렸다.

신팀장의 눈도 못 마주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이건 관성이다.

허구한날 일 못한다고 혼나고, 고개 숙이고, 다시 해봐도 또 욕 먹다보니 생긴 피해 의식 같은 것.

일단 죄송하다고 하고 보는 습관.


"그거 수정하는 데 얼마나 걸린다고 내 말을 무시하냐? 주말에 일 시킨다고 시위하는 거냐?"

"아닙니다. 제가 진짜 주말에 딴 데 정신이 팔려서..."


순진한 손차장이 눈치없이 끼어들었다.


"신팀장. 그만해~ 강대리 여자친구랑 헤어져서 주말 내내 마음 다잡고 나온거야."


그러면서 나에게 몰래 윙크까지 해보이는 손차장.

이걸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걸까.


"아. 실연의 아픔을 감당하시느랴 회사 일 따위는 내팽개치고 노셨어요? 누군 씨발, 연애도 안 해보고, 이별도 안 해본 줄 아냐? 서른 다섯이나 쳐먹었으면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알아야지. 그래 이별의 아픔! 그거 쉽지 않다고 치자. 이해해 줄 수도 있지! 근데 니가 평소에는 잘 했니? 빵꾸난 게 이번이 처음이야? 내가 진짜 너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생각해 본 적 있냐? 나 화병 걸리면 병원비는 그럼 니가 챙겨줄래? 왜 말이 없어!! 뭐라고 변명이라고 좀 제대로 해봐!"


장담컨대, 신팀장은 오늘 아침 부부싸움을 하고 출근을 했거나, 주식이 폭락했거나, 어쨌든 안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야 이렇게까지 사람을 몰아세울 일인가?

이 정도면 회사 내 괴롭힘 수준 아닌가?


로또 1등에 당첨 되버려서 깜빡했습니다! 라고 말하면 깔끔하겠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

평소 같았으면 주눅 든 척 연기하면서 쏟아지는 언어폭력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겠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


"팀장님, 사람의 인생이 바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세요?"


뜬금없는 나의 질문에 신팀장은 눈알을 더 부라렸다.

거의 흰자가 보일 정도였다.

잠자코 듣고 있어야 할 죄인이 허튼소리를 하니 눈깔이 뒤집어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 할 말을 이어나갔다.


"안 하던 짓을 하거나, 하던 짓을 안 하거나. 그래야 인생이 바뀐대요."

"너 미쳤어?! 지금 상황이 파악 안돼?"

"아니 상황 파악이 너무나 잘 되서 오늘부로 이 회사 그만둡니다. 알겠냐? 이 씨발년아."


사무실 내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신팀장은 부들부들 떨면서 할 말을 찾고 있는 듯 했다.


"씨... 씨... 씨발년이라고 했냐 지금?"

"그래~ 이 씨발년아. 나 같은 거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말고 이제 행복해져라."


그 길로 나는 가방을 챙겨 사무실을 박차고 나왔다.

계획에 없던 충동적인 행동이긴 했다.

후회는 없었고, 오히려 후련했다.

그동안 버틴 것만 해도 내 자신이 가상했다.


***


손차장에게 전화가 왔다.


"강대리. 이게 무슨 일이야. 이런식으로 하고 내일 어떻게 출근하려고 그래?"

"차장님, 못난 모습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근데 저 진짜로 그만두는 거에요."

"여자야 또 만나면 되는 건데, 인생 끝난 것처럼 이럴 거야?"

"여자 친구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에요. 주말동안 생각해 보고 그만두는 겁니다."

"나 참... 일단 내가 얘기 잘 해 놓을테니까. 오늘은 푹 쉬면서 생각 좀 잘 정리해 보아."

"네, 차장님. 신경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연락 드릴게요."


며칠 사이에 참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생각해 보면, 내 인생 앞에서 못할 짓이 뭐가 있을까 싶다.

우습지만 정말 이 모든 게 돈 때문이라는 생각으로 귀결될 때면 헛웃음이 났다.


어쩌다 백수가 되버렸구나.

백수 생활은 거의 한 7~8년 만인가...

다른 점은 현금 12억을 가진 백수라는 거.

이제는 회사 일이 아닌, 오로지 나의 인생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


이 시간에는 버스 안이 텅텅 비어 있구나.

멍하니 달리는 버스 창가에 앉아 햇빛을 받으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세상이 예전과는 다르게 보였다.


맞다, 그러고 보니 헤어진 여자 친구가 떠올랐다.

이제서야 떠오르다니... 내 사랑도 결국엔 상황에 따라 바뀌는 가짜였던 것일까?

지금이라도 3억짜리 집을 계약하고 다시 찾아가 자신만만하게 결혼을 준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돈을 보고 딸 결혼을 시키는 처가라면 앞으로 계속해서 돈, 돈 거릴 확률이 높았다.

딸이 데려온 남자가 어떤 성격인지, 어떤 비전을 갖고, 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궁금한 게 참 많을 법도 한데, 3억이라는 말 한 마디에 내 마음도 짜게 식어버린 모양이다.

이렇게 사람이 변해가게 되는 걸까.


'여자가 했던 말들이 맞았다. 내 운명이 바뀌어 버린 듯 하다. 계속해서 상황은 변하고 내 성격도 같이 변해가겠지. 모르고 지내왔던 내 안의 냉정함과 강단 있는 행동력을 지켜보는 쾌감이 있다. 더더욱 증폭시키고 싶은 마음이 솟아난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주에도 역시나 로또에 당첨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대충 따져도 매주 최소 10억을 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한 달이면 40억.

일 년이면 480억.


로또가 폐지되지 않는 이상 영업이익 500억 대의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이 되는 것이다.

한 번도 놀라운 데, 두 번 세 번 당첨이 되면 관련 관계자들이 의구심을 품을 것이 당연하고, 세간에 화제가 되어 언론에서 나에 대해 떠벌릴 것이 뻔했다.

신변에 위협이 될 일들이 많이 생길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상황.


이렇게 거대한 프로젝트를 현명하게 풀어나가기에 내 지식과 경험은 현저히 부족했다.

조급해 하지 말자.


우선은 내일 당첨금을 수령하고, 먹고 싶은 거 먹고 사고 싶은 걸 사며 기분을 만끽하자.

그리고 나서 토요일에 또다시 1등에 당첨된다면, 그땐 진지하게 그림을 그려보는 거다.


오늘은 일단 낮잠이나 한숨 때려야 겠다.

몇 년 만에 누려보는 월요일 낮잠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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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화 오늘부로 이 회사 그만둡니다 +4 22.03.31 1,903 2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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