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불로소득 망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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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산夏山
작품등록일 :
2022.03.30 21:52
최근연재일 :
2022.04.30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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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18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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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스폰 놀이

DUMMY

수령하지 않은 로또 1등 당첨 용지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간 몇 가지 실험을 해보았고, 단순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 굳이 집 앞에서 사지 않아도, 당첨이 된다는 사실.

- 만원 어치 이상을 구매하더라도 당첨은 딱 한 장에서만 나온다는 사실.

- 같은 번호를 중복해서 쓸 경우, 중복 당첨은 되지 않는다는 사실.


정리하자면, 어디서 얼마어치를 사든 매주 딱 하나의 번호만 정직하게 1등에 당첨된다는 것이었다.


대용량 사진 앨범을 구매하여, 그 안에 로또 종이가 훼손되지 않게 잘 넣은 뒤 해당 회차와 함께 실수령액도 함께 표기를 해 두었다.

그것은 1년 안에 현금화 하면 되는 몇 억짜리 수표 모음집 같은 것이었다.

앨범은 아무렇지도 않게 책장 한켠에 꽂아 놓았고, 연석이에게는 회차 번호와 실수령액만 따로 알려주었다.


"국가에서 로또 사업을 중단할 일은 없겠지?"

"올해로 20년째 하고 있는 사업이고 아직 별다른 이슈가 없는 상태이니까."

"그렇지, 더 쎈 당첨 금액의 복권이 나오지 않는 이상 사라지진 않을거야~"


그렇다. 리스크는 단 하나 뿐이다. 로또가 사라지는 것.

로또가 없어지지 않는 한, 나는 평생 화폐를 찍어내는 한국은행 같은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


2002년에 처음 '로또 6/45'라는 이름으로 발행되었을 때, 무제한 이월 규정 탓에 계속 1등 당첨자가 안 나오면서 최대 수백 억까지 당첨금이 늘어 났었다.

자연스레 당첨금 액수가 정해져 있었던 주택복권, 체육복권, 기술복권 등은 몰락했다.

로또 열풍은 어마어마 했고, 결국 당국이 나서서 2004년에 규정을 변경했다.

게임당 가격을 반값으로 줄이고, 이월 횟수도 2회로 제한했다.


이월 횟수 2회 조차 이제 더이상 의미가 없다.

여기, 매주 당첨되는 사람이 나타났으니 당첨금이 이월 될 일이 없는 것이다.


.

.

.


돌아온 토요일 저녁 9시, 집에서 혼자 로또 당첨 방송을 보며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다.


저녁 메뉴는 조리 경력 10년의 쉐프가 직접 만든 수제 함박스테이크와 부르고뉴 레드 와인이었다.

얼마 전, 나만의 저녁을 요리해줄 쉐프를 고용하였다.


서른 다섯 살의 양식 전문 염민주 쉐프.

원래 그녀는 논현역의 레스토랑에서 세컨급 조리사로 근무중이었으나, 내가 행운의 로또 당첨금을 선물하여 자신의 가게를 오픈할 예정이다.

계약 내용으로는 향후 10년 간, 매달 가게 매출의 15%를 로열티로 받는 것.

대신 원금 13억은 갚지 않아도 된다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물론 여기엔 특약사항이 있다.

매주 토요일, 나만을 위한 저녁 식사를 직접 준비하여 대접할 것.


"오늘도 역시 맛이 좋네요. 오픈 준비는 잘 되어 가요?"

"회장님 덕분에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장사 시작하면, 토요일 저녁마다 시간 내기 쉽지 않을텐데."

"어떤 일이 있어도 토요일 저녁은 시간을 비워야죠."

"서로 간의 신뢰가 깨지는 일이 없는 게 제일 좋은거니까요. 저도 제가 한 말은 다 지킵니다."


내가 이런 식의 스폰을 하게 된 계기는 레이킴과의 만남에서 얻은 자신감 덕분이었다.

로또 1등 당첨의 행운을 선물하면 창업자들이 대박의 징표로 알고 열정을 불태울 것이라던 말.


그렇게 좋은 힌트를 얻게 된 후, 연석을 비롯한 모든 이에게 비밀로 한 채 오직 나와 안면이 있으면서 능력이 있는 사람을 찾아 로또 당첨금으로 스폰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대상은 내 개인 PT를 도와주던 헬스 트레이너 신형석이었다.

나는 그의 마인드와 열정이 마음에 들었고, 술자리를 한 번 가진 뒤 즉석에서 로또 당첨금을 선물하였다. 당연히 당사자에게는 평생 비밀 엄수의 계약 조건이 붙었다.

신형석은 나의 투자금을 받아 자신만의 1:1 전문 PT 스튜디오를 차렸다. 아마 그러고도 돈이 많이 남았을 것이다.

남은 현금을 리턴 받기도 좀 뭐해서, 매달 매출의 15%라는 조건이 탄생한 것이다.

스튜디오의 위치는 우리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였고, 당연히 나는 평생 무료 VIP 회원이었다.

내가 좀 귀찮아할 때면, 신형석이 우리집으로 찾아오기도 했다.


"회장님의 건강은 제가 평생동안 책임지겠습니다. 제가 좀 귀찮게 하더라도 이해해주십쇼."

"잘 부탁할게요~ 건강해지니까 확실히 머리도 잘 돌아가긴 하는데, 운동이란 게 매일매일 의지박약과의 싸움이니까요."


트레이너에게 제대로 운동을 배우면서, 식습관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레 커졌다.

먹는 것까지가 운동의 연장이라던 어느 연예인의 말이 맞았다.


맛집들을 찾아서 다니다가, 염민주 쉐프를 알게 되었다.

가져온 음식의 재료와 조리법, 맛을 즐기는 방식에 대해 설명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레이킴이 말했던 노하우처럼 내 안목과 직감을 따랐다.

염민주에게도 따로 연락처를 받아 바깥에서 식사를 한 번 같이 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그녀가 하고 싶은 가게의 컨셉을 묻자, 너무도 열정적으로 말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두 번째 로또 스폰의 당사자가 된 것이다.


"이렇게 매번 로또 방송을 보시는 거 보면, 또 한 번 당첨될 거라는 기대가 있으신가 봐요?"


내 치트키의 정체를 모르는 염민주는 매번 토요일에 저녁을 먹으면서 로또 방송을 보는 내가 철없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죠~ 누구는 평생에 한 번도 되기 힘든 거를, 나는 한 번 해봤으면 된건데 또 기대를 하게 되네."

"취미 같은 거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쨌든 희망과 기대를 품게 된다는 감정 자체가 재밌잖아요."

"취미라~ 하하하. 그거 재밌는 표현이네요."


가을방학이라는 가수의 노래 제목 중에 <취미는 사랑>이라는 곡이 있었다.

어쩌면 나의 취미는 행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워낙에 내가 별로 푸쉬하는 게 없다보니, 천연석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가 됐다.

뭐, 그것이 본인의 수익과도 연관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려나.

한 번 돈 맛을 보면, 이제 건당 들어오는 2~3억은 커보이지 않을 것이다.


한 번은 천연석이 노숙자를 데려다가 수수료를 주고 대리 수령을 시키겠다고 했다.


"신분 확실한 노숙자들을 잘 엮어서 라인을 만들어 놓으면, 현금화시키는 데 쏠쏠한 도움이 될 것 같아."

"노숙자들도 패거리가 있고, 오야붕이 있다고 들었는데. 괜히 또 수수료 문제로 장난질 생기면 문제가 커질 수도 있지 않을까?"

"맞아. 그래서 패거리 소속의 닳고 닳은 노숙자들 말고, 일종의 가출 수준의 사람들로만 선별해서 따로 섭외하고 있어. 그들에게는 재기의 기회를 주고, 우리는 리베이트를 받는 개념으로."

"수수료를 얼마 생각하는데?"

"10% 정도?"

"그러면 평균 1~2억일텐데 너무 큰 돈이잖아. 그러면 더 욕심을 부리고, 이후에 문제가 될 여지가 있어."

"그런가?"

"100만원 만 줘. 씨발, 100만원도 큰 돈이지 사실. 하루 종일 기차역에서 노숙해봐라. 10만원도 벌기 힘들지."

"100만원은 너무 작지 않나?"

"그 정도가 오히려 적당한 거야. 로또 당첨금은 남의 돈이라는 범접할 수 없는 경계선을 그어줘야, 딴 생각을 안하지~ 그냥 심부름 하나 하고 100만원이나 벌었네. 이 생각을 하게 만들어야 된다고."

"아... 오케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


천연석은 내가 지독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매주 십몇억씩 챙기면서, 대역들에게 돈을 쪼잔하게 아낀다고 말이다.


그런데 내가 이러는 건 돈 몇 억 아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오직 리스크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은, 사람으로 하여금 일을 벌이지 못하게 사전 차단하는 게 제일 우선이다.


연석이는 애가 너무 착하다.

사업적 파트너로서 너무 큰 단점이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을 해낼 수 있는 친구다.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는 90년대에 이미 끝이 났다.

이제는 인성 있는 캐릭터도 필요한 시대가 왔다. 선과 악의 협업이다.

연석이가 모르는 건 가르쳐 주면서 끌고 가면 된다.


무엇보다 완벽한 파트너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


레이킴은 해외 출장 다녀와서 많이 바쁜지, 아니면 소개해 줄 창업자가 바쁜건지 아직 별다른 연락이 없었다.

진이경도 문자를 보내면 답은 왔지만, 얼굴 보기는 힘든 상황인 듯 했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일단은 너무 관심을 두지 않기로 했다.


나 또한 취미 생활로 바빴기 때문이다.

'행운'이라는 취미를 나눌 친구를 찾아 다양한 종류의 일들에 관심을 두고 다녔다.


먹고 살만하고, 배가 부르니 예술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투자가 필요해 보이는 작가나 감독들을 소개 받아 같이 놀다보니 너무 재미가 있었다.


가난한 예술가들만큼 인생의 풍파 히스토리가 다양한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그래도 신중해야 했다.

업계는 좁고, 한 분야에서 한 명에게만 스폰을 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가능했기 때문이다.


"제 인생이 곧 영화입니다. 저는 상업 영화로 돈 많이 벌고, 유명한 감독이 되서 거장이 되고 명성을 쌓고 싶은 게 아니에요. 그냥 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제가 살면서 힘들 때 위로 받았던 영화들, 응원이 되어주었던 영화들처럼 삶을 말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시나리오 써둔 거 있어요?"

"아니요, 완벽하게 쓰기 위해 계속 취재하고 고쳐쓰고 도서관에서 고군분투 중입니다."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아직 준비중.

영화 아카데미 뒤풀이 자리나 예술학교 학생들과의 술자리를 하다보면, 불안한 좌표에서 그저 표류 중인 경우가 많았다.

돈은 없고, 언제 영화를 찍어서 유명해질지는 존나 불확실하고.

그러다 보니 느는 건 정신 승리의 레벨 뿐.


나도 과거엔 이런 인간들 중에 한 명이었겠구나...

마음 속의 진심만 가득한 인간.

현실적으로는 계속 준비 상태라는 늪에 빠져 버린, 예비 성공 희망자.


지루하다.

예술 아마추어들의 불행 배틀에서 느껴졌던 흥미로움은 금새 꺼져버리고 말았다.


너무 취미가 감상적으로 빠져 버린 탓일까.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라는 생각에 빠져들고 말았다.


돈이 넘치도록 많아졌는데, 이렇게 재미로 인생 경험이나 하고 다니는 거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스폰질에 재미를 붙이려다 보니, 꿈과 열정, 젊음.... 이런 것들에 잠깐 혹했던 것 같다.


정신을 차리고 생각을 정리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던 날.

천연석에게 연락이 왔다.


"저번에 말했던 조폭이 서울로 올라오고 있대. 들어보니 작년부터 자기 혼자 독립하고 싶어서 계속 스폰을 찾고 있었다고 하네. 네 얘기 하자마자 덥썩 물더라고. 오늘 당장 올라온다고 하네."


조폭 스폰이라.

스폰 놀이의 지루함을 벗겨줄 새로운 카드가 되어줄지 살짝 기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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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제15화 세상에서 가장 바쁜 인간 22.04.14 925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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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제13화 캐릭터 설정 +3 22.04.12 1,039 17 13쪽
11 제12화 나는 죽어도 이 기회 못 놓친다 +1 22.04.11 1,073 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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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제7화 로또 당첨 번호에는 주인이 없다 +1 22.04.05 1,458 1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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