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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산夏山
작품등록일 :
2022.03.30 21:52
최근연재일 :
2022.04.30 13:21
연재수 :
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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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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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2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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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제29화 어쩔 수 없는 인간사

DUMMY

:> 자니? 집이야?

:> 집이지. 이 시간에 뭐야.

:> 잠이 안 와서. 레이킴이랑 같이 있어?

:> 아니.


택시에서 내려 걷는 동안 문자로 진이경이 깨어있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진이경의 집 앞에 도착해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그새 잠들었나.


띵동.


뭐야. 이 집이 아니었나.

진이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꽤 길게 가다가 받았다.


"여보세요. 너 집 아니야?"

"왜 말도 없이 이 시간에 찾아오고 그래?"

"뭐야. 그냥 잠깐 얼굴 보고 얘기나 하려고 했지. 안 자고 있다길래."

"잠깐만 기다려봐."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진이경은 헝클어진 머리에, 누워있다가 급하게 일어나서 대충 걸친 옷차림이었다.

그리고 거실 소파에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둘이 구면이지?"


남자 역시 자다 깼는지 부시시한 상태였지만, 재벌가의 귀티는 어디 안 가고 남아 있었다.

호텔에서 시비가 붙었던 애진플라텍의 김진석 전무였다.


"건희 씨 이렇게 또 뵙네요."

"안녕하세요."


나는 김진석과 인사를 한 뒤, 진이경을 쳐다 봤다.

이쯤되면 진이경의 남자가 몇 명인지가 궁금해 지기 시작했다.


"두 분이 많이 친하신가 봐요? 이 늦은 새벽에 연락도 없이 집으로 찾아오시고. 꿀잠 자고 있었는데, 확 깨버렸네요."

"같이 계신 줄 알았더라면 안 왔을텐데. 미안하게 됐습니다."

"아니에요. 알고 왔으면 이상한 건데, 모르고 올 수는 있는 거죠."


진이경이 부엌에서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커피 한 잔 할 사람?"

"나는 괜찮아."

"나도 괜찮아."

"그럼 내 것만 한다."


당황스러울 법도 한 데, 세 사람 모두 평정심을 유지한 채 대화를 이어나갔다.

진이경이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를 진척시켰다.


"레이킴한테는 비밀로 해줘. 아까는 레이킴인 줄 알고 문 안 열어준 거야. 비밀번호도 잠깐 바꿔놨었거든."

"그래, 내가 재미삼아 일러바칠 위인은 아니지."

"그런데 무슨 일로 갑자기 찾아온 거야?"

"진짜 별일 아니야. 그냥 들렸어."


김진석이 친구처럼 대화하는 나와 진이경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오호라. 내가 방해를 한 건가 보네. 건희 씨가 오기 전에 내가 집에 가서 잤었어야 되는 건데. 침대는 하나 뿐이니까. 그치? 근데 여기 무슨 그러면 모텔 비슷한 건가?"

"김진석, 적당히 해라."

"그런 거 아니에요. 제가 진짜 미리 얘기도 없이 갑자기 온 거니까. 이제 그만 가보겠습니다. 이상한 오해 같은 거 하지 마시고요."


호텔에서 처럼 김진석과 기싸움을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피곤했다.

편하게 진이경과 얘기하려 왔는데, 영 꼬여버린 상황.

해명도 듣고 싶지 않고, 숨겨진 스토리도 궁금하지 않았다.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급하게 빠져 나왔다.


:> 나중에 다 얘기해 줄게.

:> 그래. 미리 연락없이 찾아가서 미안. 푹 쉬어.

:> 너도 조심히 들어가.


진이경은 마음이 불편했는지 문자를 보내왔다.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진이경이 나한테 모든 이야기들을 다 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래도 가슴 한켠이 왠지 공허했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의 고요한 새벽 공기가 마치 우주 한 복판에 혼자 떠다니고 있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에서 살짝 졸고 있을 때, 화영에게 전화가 왔다.

취해서 횡설수설 하는 목소리. 그런데 얘가 이상한 말을 한다.


"오빠! 이것들 다 미친 놈들인가봐. 오빠 아무도 믿지 말아야 돼."

"무슨 말이야, 화영아. 차근차근 조용히 얘기해봐. 목소리가 너무 커."

"앗 미안미안. 나 좀 취했음."

"어디야? 아직도 다들 마시고 있어?"

"아니, 다 2차 보냈고. 내가 뒷정리 하고 나오는데. 전봇대에서 연석이 오빠랑 김택호랑 둘이서 하는 얘기를 들었단 말이야."

"둘이서 뭔 얘기를 했는데."

"막 그걸 벌써 들키면 어떡하냐. 일을 그런식으로 허술하게 하면 안 된다, 하면서 약간 화가 난 듯이 연석이 오빠가 얘기하는 거 같더라고. 그러더니 김택호가 걱정말라고. 아직 눈치 못 챈 거 같다고. 막 비밀스럽게 얘기를 하는 거야."

"일 얘기 하는 모양이지. 연석이가 하는 일을 내가 일일이 다 체크를 못 해요."


끼이이이익.

택시가 갑자기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앞좌석 의자에 머리를 쿵하고 부딪혔다.


"저 씨발 새끼가 운전을 개 좆같이 하고 있어."


택시 기사가 쌍욕을 내뱉더니 이번에는 급발진을 하며 레이싱을 시작했다.

배달 오토바이와 시비가 붙은 것이다.

과속을 하며 오토바이에게 위협 운전을 하기 시작했고, 창문을 내려 오토바이 운전자와 서로 욕설을 주고 받기 시작했다.


"오빠, 어디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

"어어, 화영아. 택시인데 잠깐만. 기사님!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돌겠네, 진짜."


배달 오토바이가 오른쪽 샛길 골목으로 빠지면서, 겨우 레이싱은 끝이 났지만 택시 기사는 나에게 일절 사과 한 마디 없이 혼자서 계속 씨부렁 거리고 있었다.

상대하기도 귀찮다. 저 인간을 또 택시에서 만날 일이 있겠는가. 없겠지.

진이경은 도대체 언제 같이 차를 보러 가려는 거야. 괜히 짜증이 났다.


"오빠! 오빠! 내 말 안 들려?"

"들려, 들려. 얘기해."

"그래서 내 말은, 그 둘이 작당을 하고 오빠를 약간 뒤통수 치려는 거 같았다니까?"

"화영아, 너 뒷감당 안 될 얘기 아무렇게나 하고 다니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미치겠네. 오빠 나 술 아직 안 취했고! 여자의 직감이 무서운 법이야."

"알겠어, 일단 오늘은 들어가서 좀 쉬자. 내일 다시 얘기해."

"그래, 오빠. 나는 끝까지 오빠 편인거 알지? 의리 빼면 시체야, 내가."

"끊을게~"


택시에서 내리자 멀미가 나는 건지 속이 메슥거리고 두통이 있었다.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경비실 안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경비 아저씨가 자신의 친구인 것 같은 동년배 아저씨와 야식을 시켜 놓고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아무리 늦은 시각이라지만, 근무 중에 소주를 마시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가까이서 보니 빈병이 벌써 3개 째였고, 두 사람은 취해서 열띠게 대화 중이었다.


"내가 진짜 그 썅년이 사라지니까 10년 묵은 체증이 사라지는 기분이야. 이제야 좀 일할 맛이 나고, 사람 사는 것 같고 그렇다니까!"

"맞아! 진짜 나쁜 년이었어 그거. 내 언젠가는 벌 받을 줄 알았다니까!"


바로 내가 옆으로 지나가다가 멈춰서서 핸드폰을 꺼내 그 광경을 사진으로 찍는데도 전혀 눈치를 못 챌 정도로 두 사람은 술과 대화에 심취해 있었다.


어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이년 저년 할 것 없이 열심히들 산다. 정말 열심히들 살어.


인간에 대한 연민의 결과는 쉽게 배신감을 불러 오곤 한다.

도움을 받던 약자들이 상황이 바뀌고 난 뒤, 잔인한 이면을 보여주는 경우는 꽤 흔하다.

이것이 자주 반복될 수록 세상에는 약자를 위한 선의가 점점 사라질 것이고,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인간사이다.


***


새벽 4시.

바로 침대로 뻗으려 했는데, 이상하게 출출했다. 그냥 넘어갈 수 없는 허기였고, 실제적인 배고픔이었다.

바로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라면이 익는 동안, 어머니가 보내준 김치를 꺼내 가위로 먹기 좋게 잘라 세팅했다.


후루룩. 짭짭.


맛좋은 라면이다.

34평 신축 아파트의 부엌 식탁에 앉아 홀로 먹는 컵라면.

오늘따라 유난히 집이 넓어 보였다.


***


그날 잠을 자는 내내 몹시도 실감나는 꿈을 꿨다.


김택호와 김문호가 나를 납치했고, 청테이프로 내 두 눈을 가린 뒤 스타렉스에 태워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더니 휴게소에 잠시 멈춰섰다.

그리고 천연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시키는 데로만 하면, 목숨만은 부지하게 해줄게. 걱정마라, 그래도 20년 지기 친구잖아. 최악은 피하게 해줄게."


그러더니 내 입으로 뜨거운 우동을 억지로 우겨넣기 시작했다.


"먼 길 가야 되니까, 입 맛 없어도 먹어. 너 휴게소 우동 좋아했잖아? 왜. 너무 뜨거워? 호호 불어줄까?"

"연석아. 너 지금 실수하는 거야. 이렇게 해서 나 좆되봤자 너한테도 크게 득 될 거 없는거다. 당장 눈 앞에 것만 보지 말고 인생을 멀리 봐야지."


그 순간 김택호인지 김문호인지의 주먹이 내 아구창으로 날아왔다.


컥!


혀를 깨물었는지, 입안 속살이 터졌는지 피맛이 났다.


"먹기 싫음 말지, 쓸 데 없는 말은 왜 해. 그러니까 쳐 맞지. 자! 안 먹는다니까 출발합시다."


스타렉스는 다시 고속도를 내달렸다. 어디까지 가는 걸까. 이것들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것일까.


"자, 내리자."


찬바람이 훅 하고 불어왔다. 여름이 아니었던가. 벌써 겨울이 온 건가. 왜이리 춥지?

김택호와 김문호가 양쪽에서 나를 붙잡고 어디론가 연행했다.


청테이프를 짝! 하고 떼어내자 뽑힌 눈썹 때문인지 눈두덩이 전체가 아려왔다.

천천히 시력을 되찾으니, 무슨 오두막 같은 작은 목재 건물 안이었다.


"건희야, 오늘이 무슨 요일이게?"

"모르겠는데. 여기 어디야?"

"너가 오늘 무슨 요일인지 모르면 어떡하니! 토요일이잖아. 로또 당첨 번호 뜨는 날! 요새는 아예 확인도 안 하는 모양이네. 아주 복에 겨웠지."

"연석아. 그래서 뭘 어쩌자고 이러는 건데?"

"뭘 어쩌긴? 로또를 사야지. 얼른 니가 펜으로 수동 마킹을 해. 그러면 그걸 문호가 가서 그대로 로또를 사올거야. 그 다음에 다시 그 용지를 니 손에 쥐어줄거야. 그리고 당첨을 확인해. 그 다음에 어쩌겠어? 그 용지를 니 손에서 다시 뺏을거야. 어때 간단하지?"


내 행운을 이런 식으로 갈취하겠다는 목적이었구나.

이것이 내 운명의 거대한 허점이었다.

그걸 발견한 친구는 내 뒤통수를 세게 쳐버렸고. 후회가 되었지만, 이미 늦어버린 상황이었다.


"이런 식으로 하면, 같이 누릴 수 있었던 행운도 날아가 버릴 걸? 다 끝인 거야."

"설마 그렇게 디테일할까. 너의 행운이 막 프로세스가 그렇게 복잡해? 내 생각에는 생각보다 단순할 거야. 어쨋든 결과는 다같이 오늘 확인해 보면 알게 되겠지."


나는 그들이 쥐어준 컴퓨터 사인펜으로 아무렇게나 6개의 번호를 마킹했다.

김문호가 차를 끌고 나가서 로또를 사왔고, 저녁 8시 35분이 되자 나만 빼고 그들끼리 모여 앉아 핸드폰으로 로또 추첨 방송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새로 산 로또 용지는 내 주머니에 넣어 놓은 채로.


3, 15, 26, 28, 33....


숫자가 연이어 발표되었지만 나는 내가 몇 번을 골랐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마지막 숫자가 발표되는 순간, 그들이 다같이 환호성을 질렀고, 그 소리가 너무 크고 공포스러워서 겨우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온 몸이 식은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아직도 손이 덜덜 떨릴 정도였다.

이렇게 끔찍한 악몽은 살다살다 처음 꿔보는 듯 했고, 너무나 현실처럼 생생해서 대사며 상황이며, 내용이 다 기억이 났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띵동.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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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제30화 일등석에서 먹는 라면맛 +1 22.04.30 353 8 12쪽
» 제29화 어쩔 수 없는 인간사 +4 22.04.29 423 6 12쪽
27 제28화 우리가! 남이가! +2 22.04.28 411 6 11쪽
26 제27화 혼쭐이 나야 정신을 차리지 +4 22.04.27 525 7 12쪽
25 제26화 자유이용권 22.04.26 608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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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제24화 인생은 성공한 사람에겐 놀이터 22.04.23 1,211 1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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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제19화 음지의 세계 22.04.19 765 11 12쪽
17 제18화 스폰 놀이 22.04.18 833 12 11쪽
16 제17화 노는 물이 달라짐 22.04.16 830 11 13쪽
15 제16화 얀커르 벤처스 +1 22.04.15 888 17 14쪽
14 제15화 세상에서 가장 바쁜 인간 22.04.14 925 15 12쪽
13 제14화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22.04.13 953 14 12쪽
12 제13화 캐릭터 설정 +3 22.04.12 1,038 17 13쪽
11 제12화 나는 죽어도 이 기회 못 놓친다 +1 22.04.11 1,073 15 13쪽
10 제11화 우정 콘서트 +1 22.04.09 1,151 17 12쪽
9 제10화 너 돈 많아? +1 22.04.08 1,227 19 13쪽
8 제9화 건강검진과 아파트 쇼핑 +1 22.04.07 1,281 18 12쪽
7 제8화 대한민국 30대 평균 +1 22.04.06 1,353 18 13쪽
6 제7화 로또 당첨 번호에는 주인이 없다 +1 22.04.05 1,458 18 12쪽
5 제6화 같은 꿈을 두 번 꿀 수는 없는 법 +2 22.04.04 1,521 23 13쪽
4 제5화 인생 공부, 사람 공부 +3 22.04.02 1,623 22 13쪽
3 제4화 자격지심 +2 22.04.01 1,751 24 13쪽
2 제3화 오늘부로 이 회사 그만둡니다 +4 22.03.31 1,902 2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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