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불로소득 망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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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산夏山
작품등록일 :
2022.03.30 21:52
최근연재일 :
2022.04.30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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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25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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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적성에 맞는 일

DUMMY

입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한우 꽃등심.

구리 불판에 살짝 익자마자 입 속으로 가져가느랴 손차장은 정신이 없었다.


이렇게 늙은 사람이었었나?

그게 아니면 내가 젊어진 것일까, 겨우 몇 달이 지났을 뿐인데 손차장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강대리, 진짜 로또 1등 당첨이라니. 진짜 부럽다."

"회사 때려치우니까 이런 행운도 따르더라구요."

"나도 이참에 회사 때려치울까."

"에이, 차장님 마음에도 없는 얘기를 하시네요."


손차장은 로또보다는 지금 눈 앞에 소고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게 더 현실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가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들 잘 지내시나요? 신팀장이라든지."

"똑같지 뭐. 솔직히 말해서 강대리 그만뒀다고 회사가 달라지는 게 뭐가 있겠어? 나나 되니까 좋은 인재 하나가 떠나갔다고 안타깝게 생각하지. 다들 무관심, 무신경이거든. 근데 이거 1인분만 더 시켜도 될까?"

"예예. 배부를 때까지 계속 추가하시고 맘껏 드세요, 차장님."


손차장의 앞으로의 인생에는 더이상의 발전과 신선함은 없을 것이다.

이제 막 50을 넘어선 나이.

커리어의 마지노선에 선 채, 그저 보리차처럼 미지근하게 사장님 눈밖에 나지 않을 정도로만 생활을 유지해 나가는 선량하고도 위태로운 삶의 좌표.


"차장님, 저희 회사가 영업이익 어느 정도 됐었죠?"

"아유, 뭘 그렇게 따질 정도의 회사인가. 우리가 무슨 제일 기획이나 이노션도 아니고."

"제 기억으로 그래도 가끔 온라인 쪽 말고 TV CF 건 매체까지 도맡아서 하고 했으니 매출은 그래도 100억 정도는 나오겠죠?"

"우리 대표가 그래도 이 바닥에서 15년 넘게 살아남은 사람이고, 순이익이 그래도 10억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천호 쪽에 빌딩도 하나 있다고 했던 거 같은데."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많이 드셨죠? 저 있을 때 이미 환갑을 훌쩍 지나셨었는데."

"물려줄 자식이 없으니까 그냥 계속 굴리고 있는 거지. 우리 회사가 무슨 비전이 있겠냐. 지금도 매년 내리막인데, 사람 안 짜르는 게 다행인거지."

"누가 인수한다고 하면 좋아하시려나...."

"아이고 당연히 좋다고 하겠지. 누가 이런 인터넷 마케팅 회사를 인수해. 무슨 메리트가 있다고."

"저, 담배 한 대만 피우고 오겠습니다."

"오, 그래. 소고기 이거 익으면 맛없어서 얼른 먹어야 돼."

"먼저, 다 드세요."


밖으로 나와 천연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코애드커뮤니케이션이라고 작은 광고 대행사 있는데, 거기 지분 100% 인수 한 번 진행해 보자."

"거기는 너 원래 다녔던 회사 이름 아니야?"

"어, 맞아. 앞으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브랜드 마케팅은 필요할 테니까. 인수해서 키워보지 뭐. 내 생각에는 대표가 늙어서 한 30억 쥐어주면서 직원들 그대로 껴안는다고 하면 오케이 할 거 같아."

"오키, 일단 접촉해 볼게."

"그래."


잠깐 담배 한 대 피우며, 전화를 하고 왔을 뿐인데.

그새 시킨 소고기 2인분이 증발해 있었다.

왠지 모를 연민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손차장님, 제가 다른 건 몰라도 과거에 잘 해준 사람들에게 진 빚은 갚습니다.

조만간 승진 시켜드리고, 법인 카드로 소고기 가끔 드시게 해드릴게요.


"2차 가야지, 여기 앞에 포차에서 산낙지에 소주 한 잔 어때? 오늘 아주 육해공으로 몸보신 해보자구."

"아, 손차장님 오늘은 제가 일찍 들어가 봐야 해서요. 그런데 조만간 또 뵐 일이 금방 생길거에요. 연락드릴게요."


손차장은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나는 서둘러 자리를 벗어난 뒤, 한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사업차 얘기가 길어졌어. 미안해. 비밀번호 알려줬잖아~ 왜 안 들어가 있었어."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들어가서 기다리는 거 너무 기분 별로야."

"희안하네. 복도에서 계속 기다리는 게 더 기분 별로일 거 같은데."

"지금 내가 문제라는 거야?"

"아니야. 아유~ 오빠도 일하다 온거다. 피곤하다고! 계속 이런 걸로 싸울 거면 그냥 오늘은 그냥 집으로 가라."


한현이가 닭똥같은 눈물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왜 이러는 것일까.

눈물학개론이라는 수업을 남자들 몰래 듣고 자라나는 것인지, 아주 여러가지 상황에서 심리전의 필살기처럼 눈물을 사용하곤 한다. 아니면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우는 것은 여자의 천성인 것일까.

이럴 때 남자 입장은 난감하다. 가열차게 내치기엔 내가 너무 나쁜 놈 같이 느껴지고, 그렇다고 매번 눈물에 속아 넘어가기엔 못된 버릇만 키우는 것 같다.


러시아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현명한 사람은 여자의 눈물을 그저 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눈물은 안 통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되, 화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타협을 보기로 한다.


"현이야, 오빠는 툭하면 눈물 터뜨리는 여자 제일 별로야. 매력없어 보여. 얼른 뚝 해."

"자꾸 눈물이 나오는 걸 어떻게 막으라는 거야."

"그러면 나가서 다 울고 나서 다시 와."

"알았어, 안 울면 되잖아!"

"이리와. 안아줄게."


한현이가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으며 안겼다.

포근하다.

그래도 이쁜 여자가 우니까 봐줄만 한 것이다.


"저녁은 먹었어?"

"먹었어."

"와인 한 잔 할래?"

"좋아."


갑자기 대여섯살 짜리 유아들처럼 말을 잘 듣는다.

와인을 따라주자, 이유식 먹듯이 잘 받아 먹는다.


"다음주 수요일 저녁에 일정 있어?"

"아니, 없어."

"그럼 같이 만날 사람이 있어."

"누군데?"

"이병수 감독이라고, 작년에 칸에서 단편 시네파운데이션에서 상 받은 친구인데. 이번에 독립장편 영화 찍을거라길래 내가 제작비를 투자해줄까 고민중이거든."

"그런데 나는 왜 같이 가는 거야?"


표정은 좋아서 죽을라고 하면서, 굳이 또 물어보는 모양새가 귀엽다기 보단 유치해 보인다.

하긴 대놓고 만약 좋아했었어도 너무 세속적으로 보여서 꼴 보기 싫었을 것이다.

한현이는 말없이 알몸일 때가 가장 사랑스럽다.


"투자의 전제 조건으로 바로 우리 현이의 주연 역할 보장이라는 특약 사항을 걸기 위함이지."


한현이가 나를 와락 하고 다시 껴안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으로 와인잔이 엎어지며 와장창 깨졌고, 카페트가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아이, 씨..."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고, 한현이가 내 눈치를 살폈다.


"미안해. 오빠."

"아니야. 됐어. 내일 치우면 되니까, 일단 샤워 좀 하고 올게. 오늘 하루 종일 밖에 있었다."

"나도 같이 씻을까?"

"일단 나 먼저 씻고 있을 테니까 부르면 들어와."

"알겠어, 오빠."


모델 출신으로 연기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지만, 결국엔 연출이 중요하다.

이병수 감독은 연출력이 이미 단편을 통해 입증됐다.

문제는 그의 영화가 상업성이라고는 일절 찾아볼 수 없는 극사실주의 예술 영화라는 점이다.


"저는요, 돈 문제가 영화에서 언급이 안 되면 리얼리즘이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지금 시대에서 어떻게 돈 없이 삶을 논할 수 있을까요. 돈, 돈, 돈. 거기서 모든 게 다 시작되고, 끝이 납니다."


이병수 감독이 술에 취했을 때 한 말이다. 뭐,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계속되는 술자리에서 다양한 화제로 대화를 나눠보니 그는 진지하고 깊이 있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내 직감으로 봤을 때, 이병수가 지속적인 지원을 받아 작업을 멈추지 않을 경우, 작가주의 감독으로서 명성을 떨칠 수 있을 것이다.

지원은 누가 한다? 바로 내가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키운 것은 메디치 가문이었음을 잊어선 안 된다. 예술도 돈으로 키우는 것이다.


시원한 물에 샤워를 하기 시작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때마침 부르지도 않았는데, 한현이가 알몸으로 들어왔다.

역시는 역시다.

보는 순간, 온 몸의 피가 그곳으로 쏠렸다.


한현이도 분명 매력있는 분위기를 가졌으니, 작품을 잘 만나면 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내 입장에서 데리고 놀기에도 점점 재미가 날 것이다.


***


샤워실에서 한 번, 침대로 돌아와서 또 한 번.

한현이와의 연애를 마친 뒤 잠시 골아 떨어졌을 때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김택호였다.


"회장님, 요청하신 건 진행해서 지금 동진대교입니다."

"아, 미리 얘기를 해주시지."

"그게, 저희가 잠복을 때리다가 타이밍이 찾아와야 되다 보니. 죄송합니다. 갑자기 연락을 드리게 되어서."

"아니에요. 근데 지금 집인데."

"제가 1시간 내로 모시러 가겠습니다. 일단 세팅은 여기 동진대교에 스타렉스로 해놔서요."

"네, 그럼 저도 준비할게요."


통화 소리를 듣고 한현이가 깼다.


"왜? 또 나가봐야 돼?"

"어. 좀 갑작스런 일이라서. 너는 여기서 자고 있어. 다녀 올게."

"알았어, 잘 다녀와."


40분쯤 지나서 김택호가 차를 끌고 나타났다.

가는 동안 간단히 진행 과정을 보고 받았다.


"뭐하는 놈이였어요?"

"네. 수원에 공장 두고, 안경점을 체인으로 여러 개 운영하는 장사꾼이었습니다."

"안경잽이 새끼..."

"여자랑 모텔에서 있는 걸 잡아왔습니다. 불륜 저지르려고 양평쪽으로 자주 가더라고요."

"저희 쪽 얼굴 노출은 안 됐죠?"

"아. 걱정마십쇼. 현장 뛰는 애는 필리핀입니다."

"아하."


동진대교에 도착하자, 스타렉스가 주차되어 있었다.

아우디 안경잽이는 이미 몇 대를 쳐맞았는지, 아구창이 터져 있었고, 청테이프로 눈이 가려져 있었다.


"아우, 저거 테이프 뗄 때 눈썹 다 날아가겠네."

"일단 경기도 쪽으로 빠지겠습니다."


스타렉스가 바로 출발했다. 안경잽이가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살려주세요. 돈이 필요하신 거라면 드릴게요. 지금 계좌이체도 바로 가능합니다."

"돈? 돈 때문에 피곤하게 이짓거리 하겠냐?"

"그러면 왜 그러시는 거에요? 혹시... 유영이 남편이신가요?"

"몰라, 이 새끼야. 시끄러우니까 닥치고 있어."


하남쪽으로 빠져 휴게소에 들어가 주차된 화물 트럭들 사이로 스타렉스가 주차를 했다.


"화장실 좀 다녀오고, 간식들 좀 챙겨 먹읍시다."


나는 의외로 이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여유롭게 즐기는 중이었다.

뭐지. 적성에 맞는 건가.


출출했던 탓에 우동 한 그릇을 하고, 담배까지 한 대 피운다음에 다시 스타렉스로 돌아왔다.

그동안 필리핀 애가 계속 안경잽이를 지키고 있었다.


"헤이, 필리핀. 배고플텐데 가서 뭐 좀 먹고와."


나는 필리핀에게 만 원짜리를 건넸다.

김택호가 다녀와도 된다고 고갯짓을 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저 사장님 아니에요. 천천히 먹고 싶은 거 먹고 담배도 한 대 피우고 와요."


슬슬 일을 마무리 해야 했다.

그런데 막상 눈물과 피가 섞여 찌든 안경잽이의 얼굴을 보니 손도 대기가 싫었다.

처절함까지 담긴 찌질함이었다.


"너가 왜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지, 너무 궁금하지?"

"예. 알려만 주시면 시키는 데로 하겠습니다."

"에이~ 쉽게 알려주면 재미가 없지. 이 참에 니가 살아온 인생을 하나부터 백까지 잘 곱씹어봐. 그러면 혹시 알아? 오늘의 불운에 대한 답을 찾을 수도 있을지."

"제발. 살려만 주세요."

"그럼 이만. 불운을 빕니다."


나는 스타렉스에서 내리면서, 김택호에게 따라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저 새끼 어떻게 할까요?"

"반쯤은 아니고 한 35% 쯤? 두들겨 패서 흔적 안 남기게 잘 돌려보내주세요. 애초에 뭐 죽이거나, 장애인 만들려고 한 건 아니었고. 정신적 트라우마를 통한 갱생 작업? 그게 목적이었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너무 무리하진 마시고요. 얼른 하고 퇴근하세요. 저 차는 제가 타고 가서 화영이 가게에 갖다 놓을게요."

"넵. 들어가십쇼."


달리는 차창으로 들어오는 밤공기가 몹시도 상쾌했다.

오랜만에 휴게소 우동을 먹으러 마실을 나왔다 들어가는 기분.

아까 한현이랑 침대에서 잠깐 눈을 붙인 탓인지 컨디션도 개운했다.

이대로 집으로 가긴 아쉽고, 화영이랑 양주나 한 잔 하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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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제18화 스폰 놀이 22.04.18 833 1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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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제15화 세상에서 가장 바쁜 인간 22.04.14 924 15 12쪽
13 제14화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22.04.13 953 14 12쪽
12 제13화 캐릭터 설정 +3 22.04.12 1,038 17 13쪽
11 제12화 나는 죽어도 이 기회 못 놓친다 +1 22.04.11 1,073 15 13쪽
10 제11화 우정 콘서트 +1 22.04.09 1,151 1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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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제9화 건강검진과 아파트 쇼핑 +1 22.04.07 1,281 18 12쪽
7 제8화 대한민국 30대 평균 +1 22.04.06 1,352 18 13쪽
6 제7화 로또 당첨 번호에는 주인이 없다 +1 22.04.05 1,458 1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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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4화 자격지심 +2 22.04.01 1,751 24 13쪽
2 제3화 오늘부로 이 회사 그만둡니다 +4 22.03.31 1,902 2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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