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불로소득 망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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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산夏山
작품등록일 :
2022.03.30 21:52
최근연재일 :
2022.04.30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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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09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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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우정 콘서트

DUMMY

몽정이라니.

사춘기 이후로 근 20년 만에 겪어보는 현상.

그 정도로 어젯밤 꿈이 끈적하긴 했다.


바로 화장실로 가 샤워기를 틀어 놓고, 세면대에서 팬티에 비누칠을 했다.

컨디션은 좋았다.

밤새 열심히 꿈을 꾸느랴 잠을 제대로 못잤을 법도 한데, 이상하게 몸이 가볍고 상쾌했다.


씻고 나와 아침밥을 먹으면서,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통화 소리를 엿들으려고 바싹 내쪽으로 몸을 내밀어 귀를 기울였다.


"네네~ 워킹힐 부르지오. 11층. 거기로 계약할게요. 일단 오늘은 계약금 먼저 넣어 드리고, 계약서 쓰는 날짜는 주인 분이랑 시간 맞춰 보는 걸로 할게요."


이것저것 재지 않는 계약 성사에 부동산 중개업자는 아주 신이 났다.

통화를 마칠 때쯤, 어머니가 계란 프라이를 하나 더 해서 내 밥그릇 위에 올려 주고 있었다.


"비어 있는 집이니까, 계약서 도장 잘 찍고 나서 이사 날짜 같이 잡아 보기로 해요."

"고맙다, 아들. 이럴 때 니 아빠가 살아있었으면 정말 좋아했을텐데."

"에헤이~ 또 운다, 또 울어. 그러지 말고 얼른 핸드폰 줘봐요, 계약금 보내게. OTP도 꺼내오고요. 어머니 말마따나 혹시나 누가 먼저 계약할라."


어머니가 울음을 뚝 그치고 찬장에서 손가방을 찾아 OTP를 꺼내왔다.

계약금은 통상적으로 하듯이 10%.

얄짤없이 1억 2천 9백만 원.

집주인은 급할 거 없다며 매매가도 단 한 푼 네고를 안 해줬다.


계약금만 해도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보증금보다 비쌌다.

계약서에 사인하고 나면, 잔금 치르기 전에 이율 낮은 곳으로 대출도 알아봐야 할 것이다.

당분간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아 보였고, 이사 날짜는 넉넉히 잡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속전속결.

해놓고 보니, 아파트 쇼핑도 별 거 아니었다.


***


청담동 파인다이닝 무정 식당.

불알 친구들과 로또 당첨금에 관한 긴밀한 대담을 나눠야 했기에, 프라이빗룸으로 런치 예약을 했다.

원래 하루 전에 예약이 어려운 곳인데, 누군가 빵꾸를 내서 겨우 잡을 수 있었다.


나: 여기로 오면 되고, 의상은 캐주얼하더라도 깔끔하게 입고 와라~ 츄리닝 입고 오지 말고."


주소를 찍어주자, 애들은 장난치지 말라는 태도였지만 그냥 그러려니 응수해주었다.


나: 말하자면 복잡하다. 내 퇴직금으로 쏘는 거니까,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나와라~


특별한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평소답지 않게 다들 지각없이 제 시간보다 10분씩 빠르게 도착했다.

아무리 돈 버는 직장인들이라고 해도 청담동에서 코스 요리 먹을 일이 어디 흔한 일인가.

인당 119,000원 코스를 주문하고, 레드 와인 두 병을 우선 시켰다.

술이 한 두 병으로 끝나지는 않을테니 대략 다섯 명이서 최소 100만원은 나올 것이었다.


내가 주문까지 마치고 나자, 참다 못한 불알들이 돌아가면서 잡소리들, 질문들을 해댔지만 일단 나는 기다리라는 말로 분위기를 잠재웠다.


에피타이저로 아스파라거스와 문어 요리가 나왔고, 내가 한 명씩 돌아가며 와인을 따라주었다.


"천천히 먹자. 양 적다고 그냥 입에 쑤셔 넣지 말고, 미슐랭이 선정한 맛을 음미하면서~ 대화를 즐겨보자."


배들은 고팠는지 다들 포크를 집어 들었고, 잠시 동안 음식 씹는 소리만 들렸다.

내가 먼저 와인잔을 들어 건배를 유도했다.


"그래, 내가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너희들과 긴밀히 상의할 일이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그게 뭔데? 진짜 답답해 뒤지겠네~"

"건희 이 새끼 왜 이러는 건데~ 나 솔직히 좀 무섭다."

"야야, 일단 다들 닥치고 건희 얘기 끝까지 들어보자."


더이상 폼 잡고 얘기하는 데 지쳐서 본론으로 치고 들어갔다.


"내가 로또 1등에 당첨이 됐어. 그리고 나는 이것을 너희들과 함께 나누려고 한다."


장철이 마시던 와인을 뿜어서 하얀 식탁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아이 새끼~ 드럽게."


나는 지갑에서 빳빳한 로또 용지를 꺼내 스윽 한 번 보여준 뒤, 바로 QR을 찍어 당첨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와! 씨발 미쳤다!!!!"

"쉿! 조용히 해, 이 새끼야. 동네방네 소문낼래?"

"야, 담배 한 대만 피우고 오면 안 되겠냐? 와 진짜 식겁했네."

"가짜 아니지? 로또 당첨자가 올린 거 프린트 한 거 아니지? 하긴 그 정도 장난이면 청담동에 모였겠냐?"


다들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됐는지, 들뜬 감정을 도무지 내려놓지 못했다.

오히려 담담하게 행동하는 내가 미친놈이라는 듯한 반응이었다.

웨이터가 다음 코스 요리를 가지고 들어오면서 겨우 침묵이 찾아왔다.


"그럼 이제 질문 하나 해도 되냐?"


제일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천연석이 손을 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허락했다.


"너가 혼자 가져도 될 당첨금을 우리랑 나누려는 이유는?"

"좋은 질문이야."


청문회처럼 긴장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모두가 침 꼴깍이는 소리도 참아가며 연석과 나의 대화에 집중했다.


"우정 때문이지."

"진심이냐?"


평소라면 우정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마자 욕설을 내뱉었을 놈들이 조용했다.

아마도 머릿속으로 대충 로또 당첨금액을 상정한 뒤 5분의 1로 나누면 얼마일지 계산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번 회차 당첨금액이 평소보다 크진 않아. 실수령액이 한 8~9억 정도?"


액수를 알려주자, 몇 놈들은 머릿속을 더 열심히 굴리며 암산을 하고 있었다.


"내가 쭉 얘기를 해볼게. 너희는 음식 식으면 맛없으니까 먹으면서 편히 들어~"


순한 양이 된 녀석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인 뒤, 음식을 먹는 시늉을 해보였다.

이런 게 권력이라는 걸까?

한 순간에 사람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내가 시키는 데로 행동을 하는 꼭두각시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이제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다 정답이라고 믿고 따를 것만 같았다.


"한 사람 당 대충 1.6억씩 돌아가겠지~ 용돈이라고 생각했을 때 적지 않은 돈이야."

"야씨 적지 않다마다! 존나 큰 돈이지!"


장철이 그새를 못 참고 또 끼어들자, 다른 놈들이 닥치라고 눈치를 줬다.

나는 한 템포 쉬었다가 다시 얘기를 이어나갔다.


"물론 나도 혼자 먹으면 배부르지. 그래봤자 서울에 제대로 된 집 하나 못 살 돈이야. 중소형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10억을 넘어버렸으니까. 그래도 맘만 먹으면 나홀로 아파트 정도야 사면 살 수도 있겠지. 근데 그러면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그런게 행복일까? 약간 철학적인 고민이 든 거지."


얘기가 지루할 법도 할텐데, 녀석들은 혹시나 내 마음이 변할까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뭐, 어쨌든 결론은 평생을 함께 할 친구들과 이 행운을 나눠 가짐으로써 또 하나의 큰 추억을 만들어 보자! 이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


급하게 얘기를 마무리 지으며, 와인잔을 들어보이자 다같이 환호성을 지르며 잔을 부딪혔다.


"강건희! 강건희! 강건희! 강건희!"


다같이 기립해서 내 이름을 반복해서 외치더니 미리 짜기라도 한 듯이 나를 필두로 원샷 파도타기를 했다.

그 뒤로는 요리보다는 술이었다.

와인을 열 병 정도 시키도록 자리는 끝날 줄을 몰랐고, 결국 클레임이 들어왔다.


런치 시간이 많이 오버되었으며, 죄송하지만 디너 손님들을 모시기 위한 브레이킹 타임이라고 이제 그만 나가라는 얘기였다.

나는 기분 좋게 취해서, 디너까지 연장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예약이 꽉 차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애들아~ 우리 2차 가자. 여기는 이제 시간이 다 됐다네~"

"이대로 헤어질 순 없지! 어디든 가자!"


2002년 월드컵을 응원할 때 이후로 이렇게 한 마음으로 단합이 잘 된 건 처음이었다.


.

.

.


화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그날 잘 들어갔어?"

"어, 화영아~ 나 오늘 친구들이랑 기분 좀 내려고 하는데."

"잘됐다~ 나 지금 막 출근했어. 몇 명이야?"

"나까지 다섯 명."

"알겠어~ 지금 어디야? 강남쪽이면 얘기해서 거기로 차 보내라고 할게."

"오케이~ 문자로 주소 찍어 줄게."


곧이어 밴 한 대가 도착했다.

우르르 차에 올라탔고, 다들 룸살롱 간다는 얘기에 아주 신이 났다.

나도 혼자 갈 때보다 마음이 여유롭고 훨씬 즐거웠다.


도착하자마자 시작된 파트너 초이스 타임.

모두들 아주 진지한 태도로 자신의 이상형을 찾아 눈알을 굴렸다.


겨우 파트너 선정이 끝난 뒤엔, 장철과 최성원을 필두로 폭탄주 세례가 이어졌다.

더이상 더 취하면 중요한 얘기를 못 할 것 같아, 노래방 마이크를 들고 모두를 진정시켰다.


"자자, 친구 여러분. 잠시 주목해 주십쇼. 화영이랑 다른 숙녀 분들은 잠시 바깥으로 나가 주시겠습니까?"


장내를 정리한 뒤, 새로운 사실을 공표했다.


"지금부터 노래 자랑 대회를 열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높은 점수가 나온 분께 로또 당첨 용지를 들고 농협 본점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뭔소리야? 그건 건희, 너가 가는 거 아니었어?"

"아하. 말씀드렸다시피 이것은 우리 모두의 이벤트입니다. 돈을 나누되, 이벤트 체험의 기회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는 것이 맞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까딱하면 제 마음이 변할 수도 있기 때문에 더이상 이의 제기는 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바로 저부터 도전하겠습니다."


나의 선곡은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였다.


♪♫♬ 나는 떠날 때부터~ 다시 돌아올 걸 알았지~ 눈에 익은 이자리~ 편히 쉴 수 있는 곳~ ♪♫♬


술에 취해 혀가 꼬인 척 살짝 대충 불렀다. 혹시나 1등을 하면 안 되기 때문에.

내 차례가 끝나고, 자연스럽게 순서가 돌아갔다.

각자 심혈을 기울여 선곡을 하더니 최선을 다해 부르기 시작했다.


장철은 조장혁의 <중독된 사랑>

천연석은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

고희웅은 언니네이발관의 <아름다운 것>

최성원은 김광석의 <그날들>


어찌나 다들 감정을 절절하게 넣어서 부르던지.

콘서트라면 콘서트였다.

강건희가 개최하는 우정 콘서트.


유일하게 고지웅이 100점이 나와서 1등을 차지했다.

역시 음악을 한 놈이 다르긴 달랐던 모양.

노래방 기기 앞에서 우승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어 주었다.

그리고 바로 단톡방으로 전송하여 공지글로 올렸다.


나: 당첨 이벤트 체험자 선정 결과 - 고희웅 님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필름이 끊겨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화영이 끝까지 잘 챙겨줘서 각자 준비된 차량을 타고 집으로 배송됐다.


***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서 새벽 6시쯤 잠에서 깨어났다.

다들 나랑 비슷한 상황인지 단톡방은 조용했다.

화영에게 잘 들어갔냐는 문자가 한 통 와있었다.


코를 심하게 골고 잤는지 입 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부엌으로 나가 물 한 잔을 벌컥벌컥 마신 뒤 다시 침대로 와 누웠다.

이체 내역을 보니 밤 11시쯤 파한 듯 했다.


점심부터 만나서 술을 때렸으니 그만하면 적당한 시간에 끝난 거였다.

술값으로 950만원이 찍혀 있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다들 숙취로 개고생 중일테니, 하루 푹 쉬고 화요일에 농협 본점으로 출근해야 겠다.

대역은 고희웅으로 결정.

이 새끼 들어가기 전부터 얼마나 또 담배를 피워댈까, 벌써부터 그림이 그려졌다.

들여보내기 전에 멘탈 잡아주면서 연기 교육 좀 단단히 시켜야 겠다.


일단 오늘은 충분히 자두자.

아이고 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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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제12화 나는 죽어도 이 기회 못 놓친다 +1 22.04.11 1,073 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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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제7화 로또 당첨 번호에는 주인이 없다 +1 22.04.05 1,458 1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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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4화 자격지심 +2 22.04.01 1,751 2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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