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불로소득 망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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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산夏山
작품등록일 :
2022.03.30 21:52
최근연재일 :
2022.04.30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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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08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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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너 돈 많아?

DUMMY

"건희야 근데, 너 돈 많아?"


질문의 내용에 비해 당당한 목소리.

샤워를 마친 진이경이 젖은 머릿결을 수건으로 말리며 나왔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화제의 전환.


"돈? 없진 않지."

"구체적으로 얼마나 있는데?"


진이경이 다시 나와 마주보고 앉은 뒤, 내 빈 잔에 와인을 따라주었다.

쌩얼인데도 여전히 미모는 빛이 났다. 오히려 더 어려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진이경이 가운의 옷매무새를 다듬자, 바디 로션인지 샴푸 냄새인지 알 수 없는 꽃내음을 풍겼다.


문득, 갑작스러운 전개 앞에 진이경의 대학 시절 이야기가 떠올랐다.

스스로가 밝혔듯이 원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술집에서도 일했던 여자다.


지금 나에게도 원하는 게 따로 있는 것일까?

그리고 역시나 그것은 돈이겠지?


진이경은 확실히 사람들 앞에 우위에 서는 법을 아는 여자 같았다.

돈 얘기 앞에 비굴함이라고는 1도 느껴지지 않는, 우월함이 몸에 밴 태도.


갑자기 술이 확 깨면서, 이 게임에서 밀리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솟아났다.

나는 들었던 와인잔을 다시 내려놓았다.


"얼마나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지금도 계속 벌고 있는 중이니까?"

"뭐야, 재미없게. 지금 간 보겠다는 거야? 내 질문의 의도를 잘 이해 못하는 거 같은데?"

"이렇게 예쁜 여자의 속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어. 연애도 제대로 못 해본 사람이라서 아무리 여자들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힌트를 줘도 내가 눈치 못 챘다면 양해 바랄게."


너무 능구렁이처럼 굴고 있는 건가? 직구가 날아왔는데 계속 방망이를 돌려가며 시간만 끌고 있다면 진이경 입장에서 짜증이 날 법도 했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순진하게 구는 순간, 승부는 끝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조금 지저분해지더라도 이기는 게임으로 끌고 가야 한다.


"찌질했던 남자가 사회에 나와 성공한 다음, 과거에 좋아했던 여자에게 연락을 한다. 뻔한 스토리 아닌가?"

"그러게. 너무 뻔했나? 요즘은 자만추가 유행이라던데. 상황극이라도 좀 해볼 걸 그랬네."

"이제와서 괜히 남자답게 굴려고 애쓰지 말고. SNS 봤으면 애 딸린 유부녀라는 것 정도는 파악했을 텐데, 용기 낸 거 아니었어?"


이쯤 되면 서로 자존심 싸움으로 번질 우려가 있었다.

내가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어필했으니, 이제는 수그리고 들어갈 차례였다.

나는 다시 와인잔을 들어 한 입에 털어 넣었다.


"그냥 좋아했던 수준이 아니야. 말하기 좀 쑥스럽지만, 니가 첫사랑이었어."


진이경은 이런 얘기에 익숙한 건지, 감흥이 없는 건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깔끔한 대화를 원했으나 지저분하게 나오는 나 때문에 이미 기분이 나빠져 버린 것일까.


"판타지 같은 건가?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결핍 같은..."

"뭐,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만. 저번에 만나고 난 뒤에 확실히 느꼈어. 지금도 너가 내 이상형이라는 걸."


푸흡.


드디어 진이경이 웃음을 터뜨렸다.

첫사랑보다는 이상형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웃음을 멈출 줄 몰랐다.


"근데 그거 알아? 건희 너는 스타일은 별로인데, 하는 행동이 너무 귀여워."

"스타일 이것도 신경 쓴 건데. 좀 더 노력해 볼게~"

"나 다니는 샵 한 번 같이 가자. 쇼핑도 한 번 하고. 너는 센스도 없는 것 같고, 날리는 스타일로 가면 양아치 되는 거야~ 차분하게 모범생처럼 하고 다녀야 어울리고 멋이 나."

"넵.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역시 진이경과 나 사이엔 이런 포지션이 어울렸다.

이기려고 하지 말것.

그것이 제1의 규칙인 것처럼 진이경이 나를 길들이고 있었다.


"오늘은 피곤하니까 이만 자자."

"그럴까?"


진이경은 갑자기 하품을 하더니 침대로 이동했다.

자연스럽게 가운을 벗고 알몸으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짧은 순간이었고, 어두운 조명 아래여서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잘 빠진 몸매였다.


나도 모르게 뭐에 홀린 사람처럼 침대를 향해 걸어갔다.

아랫도리가 단단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이불 속으로 천천히 들어가 진이경 옆에 모로 누웠다.


"뭐하는 거야?"


진이경이 쳐다도 보지 않은 채 또박또박한 말씨로 말했다.

뭐지, 이거 아닌가?


"건희야~ 이거 싱글 침대야. 그렇지 않아도 좁으니까 저 옆에 싱글 침대에서 자고 가든지 아니면 집에 가서 편히 자."

"어... 어. 미안."

"그리고 다 큰 어른이 술 마시고 그냥 자는 버릇 안 좋아. 귀찮더라도 씻고 자라."


내가 착각했던 것이 있었다.

이건 내가 이기려고 애쓰면 안 되는 싸움이 아니라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진이경은 나와 레벨이 다른 사람임에 분명했다.

레벨업부터 해야 할 쪼렙이 섣부른 행동을 하고 말았다.


아랫도리가 힘을 잃고 축 처진 채로 나는 방을 빠져나왔다.


복도를 걷는데, 술이 깨는지 머리가 아파왔다.

원래 술이 중간에 깨버리면 두통이 더 심해지는 법이다.

그래서 아예 취해버리는 게 오히려 낫다.

갑자기 확- 외로움이 밀려왔다.


마주치는 호텔 직원들마다 내게 친절하게 웃으며 인사를 해왔다.


'저 사람들은 내가 어떤 인간인지 모르겠지? 이 정도 호텔 손님이면 당연히 부유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 사실 그냥 로또 당첨되서 팔자 핀 한량에 불과한데....'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하루는 내가 신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다가도, 한 순간에 나 자신이 벌레만도 못한 존재처럼 느껴진다.

결국 상대적인 것이다.

나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는 강해지고, 나보다 강한 사람 앞에서는 쭈그러드는 것.

그것이 똑같은 인간을 위아래로 서열을 나누는 돈과 권력이라는 장치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이다.


***


다시 돌아온 토요일.

징크스대로 같은 시각에 수동으로 로또를 사고, 콩나물 국밥을 먹고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저번처럼 노인과 여자를 열심히 찾으려 애쓰지 않았다.

그저 생각에 잠겼다.


나는 현실이라는 게임 속에서 치트키를 발견한 사람과 같다.

마치 스타크래프트 속 'SHOW ME THE MONEY' 같은.

매주 10억 이상이 입금되는 반칙성 플레이.

하지만 프로게이머들한테는 상대가 안되는 허접한 게이머.


그렇다고 GG를 칠 수는 없는 거잖아?

예전에는 게임 속에서 그저 미네랄만 캐는 SCV였다면, 지금은 그래도 플레이어가 된 거잖아.

초심을 잃지 말자.

여자 하나 때문에 혼란에 빠지지 말고, 신중하게 다음 대역을 생각하자.


이번 당첨금은 누구를 통해 수령할 것인가?

오직 그것이 중요한 단 하나의 문제이다.


.

.

.


"저녁은 어떻게 할래?"

"치킨 시켜 먹을까요?"

"그래 남은 밥이랑 같이 먹으면 되겠다."

"네~ 어머니 먼저 드세요. 제가 잠깐 일 할게 있어서 9시쯤 따로 먹을게요. 제가 점심을 좀 늦게 먹어서."

"그럴래?"

"네. 일할 거라서 혼자 시간 좀 보낼게요~"

"건희야."

"네?"

"우리 보고 온 집들은 아직 딴 사람들이 안 사갔겠지?"

"아파트 그렇게 쉽게 안 팔려요~ 내일 오전에 바로 전화해 볼게요."

"그래~ 이상하게 계속 꿈에 나오길래."


견물생심.

물건을 보고 나면 갖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법이다.


"어머니."

"응?"

"몇 번을 얘기하지만, 절대 주변 친구들이나 친척들한테 얘기하시면 안 되요."

"알겠어~ 얘는 엄마를 뭘로 보고.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게 사람이라잖니."

"돈 빌려달라고 하면 피곤해져서 그래요~ 돈 때문에 가족이고 친구고 다 잃기 싫으시면 입 꾹 닫으셔야 해요."


너무 매정하게 말했나 싶으면서도, 예민한 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사실 어머니가 문제라기 보다는 내 욕심과 결핍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게 심리적으로 더 문제였다.

이번에 당첨이 안 되면 실망이 클 것 같았다.


멘탈을 붙잡으며 산책을 나갔다.

일부러 밤 9시가 지나갈 때까지 걷고 또 걸었다.

이럴 때 걷는 건 꽤 도움이 된다.


9시 13분.

인적 드문 골목 어귀 가로등 아래에서 QR 코드로 바로 당첨 여부를 확인했다.

1등 당첨이었다.


당첨자는 19명.

어째 계속 늘어나냐. 나 같은 놈이 또 있는 건 아니겠지?

당첨 금액은 12억 5375만원.

실수령액은 대략 8억원 대.

생각보다 적은 액수였지만, 매주 당첨의 가능성이 사실상 현실화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컸다.


긴장이 풀리면서, 미소가 배시시 새어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


혈연 관계 다음으로 패밀리를 만드는 방법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요즘이야 이혼율이 많아졌지만, 인류의 역사상 결혼만큼 확실한 신뢰 형성 방법도 없었다.

물론 함께 피가 섞인 자식까지 낳아야 완성되는 프로젝트.


당첨금 수령을 위해 급하게 결혼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다음주면 또 당첨이 될 것이기에, 조금 더 실질적인 해결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세 번째로 당첨이 되는 순간부터 조금 더 과감해질 필요성을 느꼈다.


'여차하면 버리는 돈이라고 생각하자.'


그렇게 마음을 먹고나자, 떠오르는 결론은 역시 불알 친구들이었다.

돈으로도 못 사는 것 중에 하나가 어려서부터 친구와 함께 한 세월이다.

아무리 이해 관계가 얽히고 사회적으로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들이 많다 하여도, 수십 년을 함께 한 친구 관계의 가치는 특별하다.


며칠 만에 단톡방에 들어가 지난 메시지들을 읽었다.

처음에는 갑자기 사라진 나를 걱정하는 얘기들이 오가다가, 이내 쌍욕들로 귀결되었다.


나: 친구들아 미안하다, 그날 개 꼴아서 핸드폰 잃어버리고, 장염 걸려서 입원했었다....

장철: 지랄, 개구라 까고 있네.

최성원: 그래서 몸은 좀 괜찮아 졌냐?

고희웅: 경찰 보고 무서워서 튀었냐?

천연석: 걱정 많이 했다... 어머니 폰으로라도 연락 좀 주지 그랬어~

나: 진짜 미안하다... 내일 다들 시간 어떠냐? 내가 거하게 함 쏠게.


친구들과 일요일 낮술 약속을 잡고나니, 해결되지 않은 고민이 남겨졌다.

일단 당첨금 하나를 다같이 N빵해서 나눠가지는 '세상에 이런 우정이 있나' 컨셉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정말 솔직하게 치트키의 비밀을 터놓고, 한 놈씩 돌아가면서 당첨금을 수령하는 방법으로 갈 것인가. 그러면 적어도 네 번 정도는 수령자 걱정을 안 해도 될 것이었다.


일주일마다 여러 가지 생각의 변화가 있는 지금.

신중, 또 신중해서 나쁠 건 없었다.

일단은 N빵으로 가고 그 다음에 얘기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이 참에 각자 어떻게 나오는지 반응도 좀 살펴 가면서 상황을 전개시키는 게 낫겠다는 판단.

내일은 또 내가 왕이 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겠구나.

갑자기 잠이 쏟아지면서, 꿀잠을 잘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내일 보자, 이것들아.

형님이 너희들 팔자를 고쳐줄 일만 남았구나.


***


그날 밤, 꿈 속에서 나는 진이경과 헤어졌던 그날의 호텔방으로 다시 돌아가 있었다.


"너 돈 많아?"


진이경이 했던 질문에 다시 대답을 할 수 있는 상황.


"매주 로또 1등에 당첨되는 사람이면 돈이 많은 편인 건가?"

"장난하지마~ 그런 말도 안 되는...."

"응. 그런 말도 안되는 정도로는 내가 돈이 있어."

"오~ 우리 건희 부자였네?"

"왜, 너도 용돈 좀 챙겨줄까?"

"얼마 줄 수 있는데?"

"그건 너가 하는 거 봐서."

"건희야... 너가 모르는 모양인데, 나 잘해."


진이경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가운을 벗었다.

30대 중반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몸매였다.

희고 고우면서도 탱탱하고 미끈한 피부였다.


그에 비해 내 몸은 보잘 것 없는 아저씨 몸매였다.

상관없었다. 꿈속에서의 나는 괴력의 소유자였다.

나는 그대로 진이경을 들어올려 침대에 던져 버렸다.


꺅!


진이경이 놀란 듯 짧은 신음을 냈다.

나는 한 마리의 난폭한 야수가 된 것처럼 거칠게 진이경을 향해 파고 들었다.

진이경 또한 거부하지 않고, 나를 온전히 받아들였다.


꿈 속에서도 생생했던 촉감, 냄새, 숨소리.

얼마를 주고서라도 사고 싶은 쾌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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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제18화 스폰 놀이 22.04.18 834 1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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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제7화 로또 당첨 번호에는 주인이 없다 +1 22.04.05 1,458 18 12쪽
5 제6화 같은 꿈을 두 번 꿀 수는 없는 법 +2 22.04.04 1,522 23 13쪽
4 제5화 인생 공부, 사람 공부 +3 22.04.02 1,623 22 13쪽
3 제4화 자격지심 +2 22.04.01 1,751 24 13쪽
2 제3화 오늘부로 이 회사 그만둡니다 +4 22.03.31 1,903 2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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