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불로소득 망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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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산夏山
작품등록일 :
2022.03.30 21:52
최근연재일 :
2022.04.30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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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27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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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혼쭐이 나야 정신을 차리지

DUMMY

코애드커뮤니케이션.

나의 전 직장이자, 온라인 마케팅과 광고물 제작, 광고 대행을 주업으로 하는 중소기업.


뚜벅 뚜벅 뚜벅-!


나는 드라마의 재벌 3세라도 된양 깔끔한 수트를 차려입고 일부러 구둣발 소리를 내며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 사무실 입구에 들어섰다. 뒤로는 천연석이 비서처럼 따라 붙었다.


"이 공기 오랜만이군~!"


모두가 기립 자세로 회사를 인수한 새 군주의 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동공이 확장되고, 입이 떡 하고 벌어지는 데는 10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역시나 눈치없는 손차장이 큰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강대리 아니야?"


나는 말없이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고, 천연석이 가까이 다가오려는 손차장을 가로 막았다.


"아닌가? 닮아도 너무 닮았는데. 죄.. 죄송합니다. 아는 사람인 줄...."


나는 손차장을 향해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엉거주춤. 손차장이 몸을 수그리며 양손으로 내 오른손을 감쌌다.


"손차장님, 제가 또 뵐 일이 있을 거라고 했었죠. 아, 오늘부터는 손부장님이겠네요."

"예... 예? 부장이라면."

"손부장님은 일단 자리로 돌아가시구요."


손차장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직원들이 그새를 못 참고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멀리 보이는 신팀장의 표정은 거의 사색이 된 것처럼 하얗게 떠있었다.

나는 천연석을 향해 눈짓을 보냈고, 미리 합을 맞춘 대로 천연석이 공지사항을 전달했다.


"자자, 여러분 잠시 주목해 주세요. 아시다시피 오늘부로 이 회사의 최대 주주가 변경되었습니다. 그 기념으로 오늘 아침 9시 기준, 여러분의 계좌로 상여금이 지급되었습니다. 월급여 기준 100%입니다."


오. 오. 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그럴만도 하지.

내가 이 회사를 다니는 4년 동안 상여금은 명절 때 나오는 스팸 선물 세트가 전부였으니까.

가끔 참기름이나 참치나 아니면 김이라도 좀 섞어서 주던지, 그놈의 스팸 회사에 대표 친구가 다니는지 스팸만 지겹도록 선물 받았었다.


"감사합니다!"


신입인지, 아니면 내가 나가고 새로 들어온 놈인지 모를 젊은 남자 직원이 큰 소리로 외쳤다.

약간 쌩뚱 맞은 군대식 발성이었지만, 덕분에 얼었던 분위기가 좀 녹아내리면서 여기저기서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감사의 표시를 명확하게 해주신 분 누구신가요?"

"카피라이터 고지훈 대리입니다!"

"패기가 아주 좋네요. 앞으로 세상을 뒤흔들 카피를 만들어낼 것이라 믿으며 오늘부로 과장으로 승진!"


이쯤되면 이거 몰카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이름 없는 회사라도 그렇지, 회사 운영이 장난도 아니고 말이야. 라고 눈썹을 치켜 세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무렴.

내 좆대로 한 번 해버려고 사버린 회사다.


"오늘 승진하신 두 분의 명함은 새로 바로 파시면 되구요. 그 다음으로 중요 사안에 대해 여기 천비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만하면 괜찮은 오프닝이었으려나.

나는 멘트를 마치자 마자, 담배를 꺼내 물어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를 훅 내뱉으며, 천장에 화재 경보기가 있는지 힐끗 확인해 보았다. 별 문제 없을 듯.

천연석이 과제를 내듯 발표를 시작했다.


"저희 대주주께서는 회사 업무에 실무적으로 참여하실 계획이 일절 없으십니다. 때문에 새로운 대표의 발탁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코애드커뮤니케이션은 이름부터가 촌스럽고, 업무 및 클라이언트의 성향들 또한 시류를 따라가지 못한 채 닳고 닳은 상태입니다. 이를 벗어나, 새롭게 회사의 방향성을 잡을 묘안과 섹시한 법인명을 공모하겠습니다. 공모 결과 대상 수상자에게 대표 직함을 포상으로 내릴 예정입니다."


후-


나는 담배 꽁초를 바닥에 버린 뒤 구둣발로 지져 끈 뒤, 목소리 높여 말했다.


"왜 다들 반응이 없는 거죠? 여기서 일하기 싫으신 분들은 지금 당장 희망 퇴직 하시고, 나가주세요. 아, 오늘 아침에 받은 상여금은 반환하고 가셔야 합니다."


그제서야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보내기 시작했다.

환호성과 휘파람 소리도 들렸다.


"공모 기간은 일주일. 다음주 이 시간, 이 자리에서 경쟁 PT가 열리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메일로 따로 공지가 될 예정이니, 확인 부탁드립니다. 이상입니다."


천연석이 말을 마쳤고, 나는 살짝 발뒤꿈치를 들어 까치발을 한 뒤 저 멀리 보이는 신팀장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저어기~ 보이시는 분이 신 팀장 맞으시죠? 우리 회사의 에이스."


신팀장이 난감한 표정으로 작게 대답을 했다.


"에이스인 만큼, 신팀장의 아이디어는 내일까지 받아보는 걸로! 기깔나게 디자인까지 된 PT가 나올 것으로 기대를 많이 하겠습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웃긴 건, 신팀장이 그닥 자존심이 상한 표정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아주 현실감각이 뛰어난 사람인 걸까. 새로운 주종 관계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에 집중하는 영리한 태도였다.


"자, 그럼 오늘의 중요한 업무 전달은 마무리가 되었으니, 다들 퇴근하세요! 환영식 겸 회식 자리에 함께 하고 싶지만, 저는 너무 바빠서 여기 법인 카드만 올려두고 갈테니, 자유롭게 회식하실 분들은 모여서 회포를 푸시기 바랍니다. 그럼 저도 이상."


이제 겨우 오전 9시 25분을 경과하고 있었다.

출근하자마자 퇴근하라고 하니,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마음 편히 선택적으로 회식을 하라고 지원도 해주고 쿨하게 떠나가다니. 내가 봐도 나이스했다.


나와 천연석은 뒤도 안 돌아보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어때? 분위기 재밌었어?"

"같이 안 왔으면 후회할 뻔 했어. 내 비서 연기는 어땠어?"

"연기야 뭐, 이젠 배우 뺨 치지."

"근데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자선 사업가 컨셉으로 나갈 건 아니지?"

"리프레쉬를 한 번 시켜놓고, 신선해진 상태에서 다시 갈아넣어야지. 그래야 착즙이 제대로 된 답니다."


천연석은 나를 보며 뜨악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랜만에 직장인들과 같이 출근을 하고, 또 어깨에 힘까지 줬더니 벌써부터 피곤했다.


"내일 신팀장 피티 받는데로 나한테 토스해. 아주 난도질을 해서 피드백 한 번 해줘야 겠다."

"오케이. 들어오는 데로 바로 보고할게. 바로 집으로 가는 거야?"

"응. 가서 한 숨 자고, 운동 가야지."

"회장님을 위한 선물이 막 설치 완료 되었다는 보고를 받았으니, 기대하세요."

"오~ 뭘까나. 예측은 되는데, 그래도 벌써부터 설레이네. 그럼 나중에 통화하자."


오늘의 중요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다시 복귀한다.


마치 식민지 상태에서 독립한 뒤, 더 큰 제국주의 국가가 되어 지배에 성공한 기분이었다.

그저 남들 다하는 만큼 힘든 직장 생활을 했던 것 뿐인데, 뭐이리 맺힌 게 많았던 걸까.

회사 자체와 직장 상사가 원망스러웠다기 보다는, 그저 성공 못하고 하루하루 후달리게 살았던 내 과거에 대한 확실한 청산의 의미가 더 클 듯 했다.

승자의 입장에서 역사를 다시 쓰는 상황은 아주 뜻깊은 것이었다.


***


<<북한산 힐스로이스 도색공사 비리, 입주자 대표 구속 기소 망신!!>>


아파트 입구부터 여기저기 플랜카드가 걸려 있었다.

입주자 대표가 구속되었다는 멘트와 함께, 그 얄미운 아줌마의 사진도 같이 붙어 있었다.

제대로 쪽이 팔린 것은 물론, 법적 처벌까지 받게 된 상황.


구경 온 주민들이 이미 플랜카드 앞에 모여 웅성대고 있었다.


"이게 참말로 무슨 일이래. 아파트값 떨어지게."

"지하주차장 도색공사를 한다고 해놓고는 시공업체랑 짜고 장기수선충당금을 착복했다는 거야~"

"미친년이 영업비로 뒷돈을 2억이나 받아 놓고는, 빈 페인트통을 납품 받았대."

"시공사 선정할 때부터 이미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던 거지. 입찰 서류 다 확인하고, 최저가로 응찰하라고 짝짜꿍을 맞춘 거 아니여."


다들 디테일까지 알고 있는게 신기해서 물어봤더니, 이미 인터넷에 기사까지 뜬 상태였다.


그러게 왜 선량한 경비 아저씨를 괴롭히다가 나한테 걸려가지고는. 쯧쯧.

아파트 입주자 대표가 무슨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졌다고 갑질을 해대면서, 뒤로는 자기 사리사욕을 채우고 말이야.

이번 기회에 혼쭐이 나야 정신을 차리지.


엘레베이터에 올라타며 흐뭇하게 천연석에게 문자를 보냈다.


:> 아파트 도착. 오늘 아주 기분이 좋구만. 고생했네.

:> 별 말씀을. 너무 허술해서 그냥 검사가 서류 몇 장 뒤지니까 탄로남. 허접 그 자체.

:> 그 검사랑 조만간 술자리.

:> 오키요.


***


달콤한 아침잠을 자고 일어나니 출출했다.

오랜만에 어머니 얼굴도 볼겸 순대국이나 한그릇 해야 겠다는 생각에 광진구로 향했다.


택시에서 내린 뒤, 근처 한의원에 들려 공진단 한 박스를 샀다.

아무리 사장이라지만 어머니는 몸에 밴 노동자의 습성으로 분명 여전히 사서 고생을 하고 계실 게 뻔했다. 이런 거라도 챙겨드려야 마음이 편해진다.


손님인 척 자연스레 들어가 테이블에 앉아 홀서빙 하시는 아주머니에게 주문을 했다.

어머니는 주방에서 재료 수량을 점검 중인지, 왔다갔다 냉장고를 열어 보고 계셨다.


스윽-


여유를 가지고 가게 안을 둘러 보았다.

깔끔한 프랜차이즈 인테리어라 그런지 꽤 젊은 손님들도 보였다.

그리고 한 명씩 진상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기요! 아줌마!! 소주 한 병 더!"


순대국 한 그릇 시켜넣고, 소주 3병 째 까고 있는 막노동꾼 같은 아저씨 한 명.


"그러니까! 내가 대출 이자는 내달라고 했지! 했어, 안 했어! 왜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냐고!!"


순대국 다 먹은지 한 시간쯤 지나 보이는데, 집에 갈 생각은 안 하고 큰 소리로 전화 통화하는 아줌마 한 명.


"아줌마, 뭔 순대국이 이렇게 오래 걸려? 빨리, 빨리. 배고프잖아."


시킨지 5분도 안 되서, 계속 독촉하는 30대 초반 남자. 반말은 기본 세팅인가.


순간, 여기가 순대국집인지 진상들의 제국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예전엔 나도 먹기 바빠서 안 보였던 건지, 희안할 정도로 인간들이 비상식적이었다.

어머니는 매일 이런 손님들을 상대하고 있었던 것인가.

기분이 씁쓸해졌다.


"어머, 아들! 왔으면 말을 해야지."

"근처에서 미팅 있어서 잠깐 들렸어요."

"밥은?"

"순대국 시켰어요."

"시켰어? 잠깐만 내가 주방에 가서 뭐 좀 더 내오라고 할게."

"아아. 어머니, 딱 순대국 한 그릇이면 되요. 위 작은 거 아시잖아요."

"그래? 그럼 먹고 아쉬우면 얘기해. 밥은 제때 잘 챙겨 먹고 다니냐?"

"그런데 여기 원래 이렇게 개진상들이 많아요?"


내 목소리가 너무 뚜렷했는지, 흩어져 있던 진상들의 시선이 순간 나를 향해 꽂혔다.

나는 일부러 의식하지 않고, 더 크게 말했다.


"순대국 하나 먹으러 와서 가지각색으로 지랄들은..."

"얘, 왜그래. 쉿! 손님들 듣겠다."


그때 혼자 소주 세 병 깐 막노동꾼 같은 아저씨가 비틀거리며 일어서더니 나를 향해 걸어왔다.


"어이, 어이! 지금 나 들으라고 한 소리인가?"

"손님, 죄송합니다. 손님께 한 말이 아니에요."


어머니가 먼저 일어나서 막노동꾼을 멈춰 세웠다.


"아줌마. 안 비켜? 지금 저 새끼랑 볼 일이 있으니까 좋은 말 할 때 비켜."

"손님, 참으세요. 서비스..."


손님은 왕이라는 고전적인 마인드로 잘 한 것 하나 없는 술주정뱅이에게 서비스까지 챙겨 주려 했던 선량한 나의 어머니를 거세게 밀쳐 넘어뜨린 것은 막노동꾼 아저씨의 인생 최대 실수였다.


나는 너무 빡이 돌아버렸다.


***


작가의말

송샘2 님, 친애하는 님 후원 감사드립니다.

첫 후원이라 더 의미가 깊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작품 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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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7화 혼쭐이 나야 정신을 차리지 +4 22.04.27 526 7 12쪽
25 제26화 자유이용권 22.04.26 608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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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제18화 스폰 놀이 22.04.18 834 1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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