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불로소득 망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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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산夏山
작품등록일 :
2022.03.30 21:52
최근연재일 :
2022.04.30 13:21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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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28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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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제28화 우리가! 남이가!

DUMMY

"어이 다시 한 번 말해봐! 내가 진상으로 보여?"

"아저씨, 어디 갈 생각 말고 기다려요. 경찰 부를 테니까."


아무리 빡쳐도 이 상황에서 몸싸움이라도 나면 여러모로 피해가 너무 크다.

감정을 잘 추스려야 한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다행히 어머니는 살짝 넘어진 정도였다. 핸드폰을 꺼내 112에 전화를 걸려고 하는데, 가게 문을 열고 한 사내가 빠르게 달려오더니 진상 아저씨의 뒷목덜미를 잡고 들어올렸다.

헐크인가. 우락부락한 근육 더미에 깍두기 스타일로 자른 머리. 검정 티셔츠에 검정 반바지를 입었지만, 여기저기 몸 전체에 새겨진 용과 호랑이, 곰과 사자의 문신들 때문에 어디까지가 옷이고 맨살인지 구분이 안 되는 수준.


진상 아저씨가 허공에서 발을 휘저으며 반항을 하려 하자, 문신남은 그대로 진상을 들고 바깥으로 나가 가게 앞 바닥에 던져 버렸다.


"사장님, 어떻게 할까요? 아까 이 새끼가 사장님 밀치는 거 CCTV에 다 찍혔을 텐데, 경찰서로 데려갈까요?"


지나가던 행인이 불의를 참지 못하고 달려온 것일까.

겁에 질린 진상 아저씨가 바닥에서 일어나지 않고 신음하며 엄살을 부렸다.


"저는 괜찮아요. 경찰서까지 갈 필요는..."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어머니가 손사레를 쳤다.

내가 어머니 대신 나서서 궁지에 몰린 진상에게 면박을 주었다.


"아저씨, 술 먹었으면 곱게 집에 가서 발 닦고 쳐 자는 거야. 지금 당장 여기 사장님한테 제대로 사과하고 쳐먹은 거 계산하고 꺼져. 일 더 크게 만들고 싶지 않으면."


진상 아저씨는 나를 봤다가, 다시 문신남을 힐끗 보더니 일어나서 어머니께 다가가 고개 숙여 사과를 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구겨진 현금을 꺼내 값을 치른 뒤 비틀거리며 사라졌다.


"뭐, 씨발 재밌는 구경들 났어?! 다들 갈 길 가시지?"


문신남이 길거리에 모여든 사람들을 향해 인상을 팍 쓰며 호통을 쳤다.

그러자 순식간에 사람들이 흩어져 사라졌다.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회장님."


응? 방금 분명 회장님이라고 한 것 같은데.

나는 식당 종업원에게 어머니를 맡기고 가게 안으로 들여 보낸 뒤 문신남과 함께 골목으로 들어가 담배를 한 대 꺼내 물었다.


"누가 내 뒤에 붙여놓은 사람인가?"

"네. 택호 형님이."

"택호 씨는 뭐, 시키지도 않을 일을. 암튼 오늘은 수고했으니, 이만 들어가 봐요. 계속 따라다닐 필요는 없고. 여기 계속 어슬렁 거리면 보기 안 좋으니까 택시 타고, 이걸로 저녁도 사먹고."


지갑을 꺼내 10만원 짜리 수표 한 장을 건네 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래도 눈에 띄지 않게 근처에 있겠습니다."

"택호 씨한테는 내가 얘기할 테니까, 그만 들어가 봐요. 긴 말 하기 귀찮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나를 보호한다는 목적이었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나한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사람을 뒤에 붙여 놓았다고? 이거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닌 듯 했다.


'선 넘는 행동에 대해서는 확실한 대가를 치러야지.'


어머니의 몸상태를 다시 확인한 뒤, 순대국 집을 빠져나왔다.

바로 김택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택호 씨, 어디야."


***


캐비닛.

역삼동에 자리 잡은 하이 쩜오 룸살롱은 정식 개업을 앞두고 가오픈 상태였다.

이미 화영이 소문을 여기저기 낸 탓인지, 입구에는 축하 화분도 몇 개 보였다.

김택호는 내 목소리에서 심상치 않은 느낌을 눈치 챘는지 입구에서 각잡고 대기중이었다.


"들어가서 얘기합시다."

"네, 회장님."


추측은 간다.

얼마전 안경잽이 폭행 건으로 김택호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내 안위가 걱정되었을 것이다.

내 안위가 곧, 김택호 자신의 안위와도 연결이 되는 것일 테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취지는 좋다. 하지만 벌써부터 김택호가 스스로에게 결정권이 있다고 버릇을 들이게 하면 안 된다.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합니까? 내가 어디가서 칼이라도 맞을까봐 걱정 됐어요?"

"죄송합니다."

"오늘 너무 당황스러웠고, 기분이 불쾌했어요."


김택호가 무릎을 꿇었다.


"진짜, 처음이니까 넘어가겠는데. 그게 어떤 이유가 있든간에 또 내 뒤에서 나 모르게 일 꾸미는 사안이 생길 경우엔 다시는 택호 씨 안 봅니다. 저랑 상의를 하라고 택호 씨한테 입구멍이 있는 거에요. 결정은 내가 하는 거고."


김택호는 더이상 말이 없었다.


"일어나세요, 얼른. 에휴. 이게 서로 뭐하는 짓이야. 서로 미안하게 시리. 이렇게 된 김에 오늘 그 문신 친구도 오라고 하세요. 같이 한 잔 하면서 정식으로 서로 인사나 합시다. 오늘처럼 갑작스럽게 등장해서 사람 의아하게 만들지 말고."


김택호가 아직도 무릎을 꿇은 채로 고개 돌려 전화를 했다.

나는 굳이 일어나서 김택호를 일으켜 세웠다.


"가오픈이지만 미리 오늘 축하주나 합시다. 오픈식 때 나는 얼굴 비치기는 어려울테니까."


김택호가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룸을 빠져 나갔다.


***


오늘 순대국 집에 등장한 문신남의 이름은 김문호.

가까이에서 제대로 보니 스물 여섯의 혈기 왕성한 청년이었다.

씨름 선수 출신으로, 힘만 센 게 아니라 MMA 프로 준비까지 했었던 알짜배기 깡패였다.


"오늘 보니까 힘이 장난이 아니던데. 사람 함부로 패고 다니면 안 되는 거에요. 우리 패밀리를 위해 꼭 필요한 순간에만 힘을 써야지. 옛날처럼 감방 살고 나오는 걸 커리어로 보고 그러지 말자고."

"광주에서부터 아꼈던 친구입니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제가 형처럼 아버지처럼 돌봐가며 키웠어요. 운동 시키려고 했는데, 그게 생각대로 잘 안 됐네요."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같이 돈도 많이 벌고 행복하게 살아봅시다."


처음에는 근육 덩어리 문신남이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을 거라 생각하니 찝찝한 마음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아무리 이제는 조폭과 같이 일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익숙해지기 쉽지 않은 외향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합시다. 문호는 내가 부를 때만 달려 와요. 대략 내 일상적인 동선이나 특이한 스케줄 있을 경우에는 미리 공지를 해줄 테니까. 부르면 1시간 내로만 달려올 수 있게 해요. 맨날 스파이처럼 따라다니지는 말고."

"알겠습니다."


아무리 법치국가라지만 여전히 늦은 밤이 되면 길거리에서는 주먹다짐이 발생하고, 경찰도 해결하지 못할 문제를 주먹이 해결해 내기도 한다.

언제 어디서 미친놈들과 시비가 붙을지 모르니,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


김택호에게 한 잔, 김문호에게 한 잔.

그렇게 서로 따라주고, 원샷하고 남자들 간의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취기가 올랐다.


"우리 가게에서 이렇게 우리끼리 술 마시니까 참 술맛이 다네요."

"맞습니다. 회장님. 오늘은 저도 함께 취해도 되겠습니까?"

"택호 씨. 우리 오랜만에 달려볼까요? 문호는 피곤할텐데 먼저 들어가 봐. 형님들끼리만 한 잔 더 하려 하니까."

"네. 앞으로 열심히 모시겠습니다."


문호를 들여보낸 뒤엔 화영이가 자리를 메꿨다.

내가 바로 전화로 천연석을 불렀고, 천연석이 아파트 주민대표를 잡아 넣은 검사를 부르고, 그런 김에 로펌 대표 변호사도 부르고, 막판에는 강남 경찰서 강력계 형사까지 합류했다.


일 얘기는 구체적으로 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서로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며, 친밀감을 높이는 자리로 분위기가 흘러갔다.


누가 봐도 핵심은 확실했다.

조직 폭력배가 관리하는 룸살롱 개업. 문제가 생기면 같이 도와서 해결하자는 거. 그게 전부다.

술 먹고 싶을 때 지인들이랑 와서 꽁술 먹고 가라. 가끔은 주변에 영업도 해줘라. 그렇게 우리 가족끼리는 술 팔고 돈 받고 그런 거 안 한다.


"우리가!"

"남이가!"


다들 얼큰하게 취했고, 내가 '우리가'를 외치면 다같이 '남이가'를 외치며 단결력을 높였다.


제 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던 1992년.

부산 남구에 위치한 초원복국 음식점에 정부 기관장들이 모였다. 이들은 지역감정을 부추겨 선거에 승리하기 위한 작전을 짜며 모의를 진행했다. 그 자리에서 나온 구호가 "우리가 남이가!"이다.

물론 그 전부터 썼던 말이지만, 정치적인 상징성이 생긴 건 그때부터 였다.


"우리가!"

"남이가!"


다시 한 번 구호를 외치며 잔을 부딪혔다.

자연스레 내년 대선 후보들에 대한 얘기들이 나왔고, 나는 이 술자리에 국회의원이 한 명 없다는 게 좀 아쉽게 느껴졌다.


"우리도 내년 대선에 발 좀 담가 볼까요?"

"너무 시간이 촉박하지 않습니까?"

"원래 선거가 가까워질 수록 돈은 부족하고, 사람도 부족하고. 그런 거 잖아요."

"광주에 제가 모셨던 형님의 불알 친구가 서울에서 조직 생활을 하고 계신데, 그 분 삼촌이 DJ 시절에 정치 깡패하셨던 분입니다. 지금도 그래서 정치 쪽이랑은 계속 연을 이어가고 있다고 들었어요."

"지금 야당 당대표가 검찰총장 출신입니다. 저보다 20년 선배인데, 그 분은 제 이름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참에 돈가방 들고 인사드리러 가면 웃으면서 반기시지 않을까요?"


다들 술 취한 김에 자기 위상을 높이려 없는 인연까지 만들어서 어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싫지 않았다.

이제는 세상 만사가 마음만 먹으면 불가능할 게 없다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자자, 오늘은 일 얘기 그만하고 즐깁시다. 확실한 건! 우리가 한 번은 큰 거사를 함께 도모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는 거죠. 그게 빠르면 내년일 것이고, 늦어도 몇 년 안쪽일 것 같다는 말이죠. 앞으로 각자 좋은 아이디어, 좋은 인맥들 서로 공유하면서 화이팅을 해봅시다."


마지막 건배를 마치고, 나는 화영이를 데리고 먼저 밖으로 나왔다.


"오빠 벌써 가려고? 아직 새벽 1시 밖에 안 됐어."

"피곤해. 이만하면 재밌게 놀았다. 여기 남자들 지금 피가 끓어오르고 있으니까 물 좋은 애들로 불러서 같이 놀게 해줘. 2차까지 화끈하게."

"걱정마. 그래서 개업식 날은 못 온다는 거지?"

"이 가게에 나는 그저 오다가다 들리는 손님일 뿐이다. 명심해!"

"잠깐만 기다려. 차 부를게."

"오늘은 택시타고 갈게."


택시를 타고 진이경의 아파트로 향했다.

미리 연락도 없이 이렇게 집으로 바로 들이닥치면 진이경은 몹시 놀란 표정을 짓겠지.

재수가 없으면 레이킴이 있을수도 있겠지만, 아마 그럴 확률은 적을 것이다.


오늘은 왠지 진이경과 잠깐이라도 얘기를 나눈 뒤 잠들고 싶었다.

레이킴을 만나기 전, 술집 새끼 마담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남자들을 만나고, 돈과 정치와 권력에 대한 자랑과 소문들을 들었을까.


그런 정보의 힌트들이 집결된 진이경이라는 프레임을 이용하여 나는 제대로 큰 남자가 되는 지름길을 가보고 싶었다.

여지껏 내가 만나본 사람들 중에서는 진이경이 나에게는 가장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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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제7화 로또 당첨 번호에는 주인이 없다 +1 22.04.05 1,458 1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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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4화 자격지심 +2 22.04.01 1,751 2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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