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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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짓는목수
작품등록일 :
2022.05.12 08:11
최근연재일 :
2022.09.12 06:00
연재수 :
1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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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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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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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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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18화. 말없는 고양이 (시즌2-37)

DUMMY

"미숙아, 일어나! 집에 가야지!"


미숙은 결국 먹고 죽자는 말을 실천하고 말았다.

그녀는 테이블 위에 머리를 박고 작렬하게 전사했다.

술 이기는 장사 없다.

그녀를 흔들어 깨워보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꼼짝을 하지 않는다.



"저기요 저희 이제 마감해야 하는데요"


"아! 네"


'아~놔!, 가시네~ 오늘 완전 작정하고 마시러 왔구만'



그녀는 웬만해서 이 정도로 취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춘곤과 나랑 술을 마실 때도 춘곤과 내가 취해 쓰러질 정도가 되어도 아무렇지 않은 듯 우리를 집에 바래다주던 그녀였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바뀐 듯하다.

내가 말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서 연거푸 쉬지 않고 마셔대더니 결국 뻗어버린 것이다.

테이블 위에는 빈 소주병이 볼링핀처럼 피라미드를 모양으로 쌓여 있다.

청소를 시작하려는 듯 빗자루를 들고 지나가는 종업원은 우리 테이블을 쳐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보인다.

시간은 새벽 4시를 넘어 5시를 향해가고 있다.

좀 더 지체했다간 술이 떡이 된 채 일출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여기 얼마예요?"


"십만 오천 원이요"


"헐! 많이도 쳐 먹었네"


"가자~ 일어나!"


"으으어어#$%$#"



그녀를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혼잣말을 해댄다.

혀도 꼬인 듯하다.

그녀를 힘겹게 부축해 일으켜 세워 술집을 나선다.

커플이 번갈아가며 나를 괴롭힌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여태껏 친구들에게 술에 취해 민폐를 끼친 적이 거의 없다.



“아놔~ 춘곤이 새끼 또 뻗었네”


“이번엔 누가 델꼬 갈래?”


“자~ 안내면 술래 가위바위보!”


“또~ 희택이 걸릿네”


“아놔~ 또 내가?! X발!”


“수고해라이! 큭큭”


“열 받는다고 가다가 친구 버리지 말고 큭큭”



꼬치친구들 사이에선 항상 그랬다.

누군가는 항상 챙기고 보살피는 사람이었고 누군가는 항상 기대고 의지하는 사람이었다.

서로는 각자 다르지만 상호 보완적인 관계가 친구관계를 지속하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랜 세월이 흐르며 그것이 당연한 듯 되었다.

친구 사이도 직장이나 사회처럼 정해진 역할에 따라 유지되는 것 같았다.

한 번 정해진 역할은 고정관념이나 사회 관습처럼 굳어져 좀처럼 변하지 않았다.

어쩌면 인간이 잘 변하지 않는 것은 주변이 정해준 기대역할에 부응하며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꼬치친구들은 성인이 되고 각자 다른 직업과 환경 속에서 사회와 직장이 요구하는 역할에 따라 변해 갔다.

하지만 우리들끼리 모이면 각자의 사회 속 역할은 잊어버리고 어린 시절부터 맡아온 역할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렇기에 오래된 친구는 오래 지나도 변함이 없는 것이다.



“미숙아! 정신 좀 차리바라!”


“$%$%%$$#”



그녀는 눈도 뜨지 못하고 알아들을 수 소리만 웅얼거린다.

그녀의 집이 어딘지도 모른다.

이대로 택시에 실어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단 그녀를 부축해 나의 집으로 향한다.



"우우 욱!"


"아~~ 안돼!"


"우우우우 욱!"



결국 그녀는 전봇대를 부여잡고 십만 원어치를 다 토해낼 분위기다.

난 코를 막고 그녀의 등을 두드린다.



"휴... 휴지... 좀 가방 속"


"휴지 찾을 정신은 있나 보지"



그녀의 가방을 열어 휴지를 꺼내 건넨다.

그녀는 입가에 묻은 정체 모를 액체들을 닦아낸다.



"무.. 울"



난 손에 들고 있던 생수병을 그녀에게 건넨다.

그녀는 물을 한 모금 들이키고 입안을 씻어낸다.



"미... 안.."


"미안하긴 하냐? 알면 됐다."



나는 다시 그녀를 일으켜 세운다.

해가 뜨기 전에 사건 현장을 벗어나야 한다.

다행히 그녀는 방범 CCTV의 사각 지역에 범행을 저질렀다.

그녀는 물먹은 빨래가 축 늘어지듯 나의 어깨에 기대어 늘어진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기가 힘들 정도이다.



"어! 这不是大叔嘛!" (어! 이거 아저씨 아냐!)


“貂蝉?” (띠아오찬?)



등 뒤로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그 곳에는 오렌지 색의 가로등 불빛 아래 몸의 실루엣이 다 드러나 보이는 짧은 미니 스커트 입은 띠아오챤이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她是谁呀?”(이 여자 누구예요?)


“朋友!”(친구)


“朋友? 是真的吗? 嗯... 深更半夜跟女的朋友喝酒喝得这个样子?”(친구? 정말요? 음... 이 시간까지 이성 친구랑 술을 이렇게?)



띠아오챤은 팔짱을 끼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본다.



"那你深更半夜在这儿干嘛?”(그런 넌 이시간까지 여기서 뭐하는 건데?)


“回家呀”(집에 가죠)


“去哪儿了现在才回家?” (어딜 갔다, 이 시간에 집엘 가냐?)


“少管闲事!” (뭔 상관이예요!)


“你也少管闲事”(그런 넌 뭔 상관이냐)



띠아오챤은 뾰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가까이 다가온다.

한 손으로 턱을 만지며 술이 떡이 된 미숙의 얼굴을 가만히 드려다 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嗯...长得还不错嘛”(음... 뭐 이쁘게 생겼네)


“你说啥呀?”(뭔 말이야?)


“大叔!果然有眼力”(아저씨! 뭐 눈은 좀 있네요)


"她是我朋友的女朋友。你别乱想!”(얘, 내 친구의 여자친구야)


“什么?朋友的女朋友?带她去哪儿?" (뭐라구요? 친구의 여자친구? 이 여자 데리고 어딜 가려구요?)


"回家" (집에)


”回你家?”(아저씨 집에?)


“是啊 “(어)


“这像话吗?”(말이 돼요?)



띠아오챤은 그녀 앞으로 오더니 미숙의 몸을 흔든다.

미숙이 반응이 없자 그녀의 뺨을 때린다.



"阿姨! 醒醒!”(아줌마! 일어나!)


“你干嘛?”(너 뭐하는거야?)


“让她醒醒回家去呀” (깨워서 집에 보내야죠)


“아.. 아 $%$@&"



미숙은 꼼짝을 않는다.

맞은 뺨이 아프긴 한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웅얼거린다.

띠아오챤은 미숙의 다른 쪽 팔을 들어 자신의 어깨에 걸친다.



"跟我走吧!” (자 나랑 가요)


“”(어딜?)


“回我家” (우리집에)


“你家?” (너의집에?)


“嗯”(그래요)


“为什么”(왜?)


“我怕你心里有鬼”(오빠 속을 어떻게 알아요?)


“你凭什么这么说,你把我当作什么人呢?!”(야 무슨 근거로 그런말 하는 거냐? 나를 도대체 뭘로 생각하는 거야?!)


“你没有啊? 那有可能这阿姨心里有鬼呗,反正今晚把她睡在我家”(아님 됐고, 이 아줌마가 속에 뭔가 있는 건지도 모르니까, 일단 우리 집에 재워요)



우리 둘은 미숙의 팔을 양쪽으로 어깨에 걸치고 띠아오챤의 원룸으로 향한다.

시체처럼 축 늘어진 그녀를 끌고 원룸 계단을 올라오느라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미숙을 침대에 눕히고 나와 띠아오챤은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우리 둘은 침대에 기대어 거침 숨을 내쉬고 있다.

한 동안 방 안에 거친 숨소리만 퍼져나간다.

고개를 젖히고 거친 숨을 몰아 쉬다 눈동자를 돌려 주변을 스캔 한다.

원룸 방 한 구석 옷걸이에는 수많은 옷들이 걸려있다.

그 밑에는 명품 백과 구두들이 널려있다.

아직 박스도 뜯지 않은 명품들도 가득 쌓여있다.

그 박스들 위에 먼지같이 뽀얀 아이보리 회색털과 에메랄드 블루의 눈동자를 가진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있다.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박스 밑으로 사뿐히 뛰어내린다.

소리없이 나에게 다가와 온몸으로 스치듯이 나의 팔을 비비고는 나를 올려다본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주인인 띠아오챤에게도 가서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它是我的男朋友” (내 남자친구예요)


"哈哈 你男朋友?!,他叫什么?”(하하 니 남자친구?! 이름이 뭐야?)


“他叫灰尘“ (먼지예요)


“灰尘?为什么叫他灰尘啊?”(먼지?, 왜 먼지야?)


“灰尘哪儿都在嘛”(먼지는 어디에도 있잖아요 항상)


“···”



어디서든 함께 하는 존재는 많다.

물, 공기, 햇볕···같이

우리는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기에 소중함을 모를 뿐이다.

미세먼지가 심해지고 나서야 공기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먼지가 없었더라면 공기의 소중함을 영원히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我觉得我再也不需要的东西”(나는 더 이상 내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어요)


“···”


“没有人需要我了,我觉得别的世界肯定需要我所以我决定去离开这个世界。那时候灰尘在看着我便哭着叫声”

(아무도 날 필요로 하지 않았어요, 나를 필요로 하는 다른 세상이 있겠지 하고 이 세상을 떠나려 할 때 먼지가 날 쳐다 보고 있더라구요. 서글프게 울어대면서)



띠아오챤은 자신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기뻐하고 의지가 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먼지에게 띠아오챤은 공기 같은 존재였고 띠아오챤에게도 먼지는 공기 같은 존재였다.

공기 없이 먼지가 존재할 수 없고 먼지 없는 공기가 없듯이 말이다.

둘은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그 존재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과 같았다.

띠아오챤은 먼지가 곁에 있어 자신의 존재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그 때 그녀는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깨달았다고 한다.



“是,他总是安慰我”(응, 쟤가 항상 날 위로해 줘요)


“安慰你?”(널 위로해?)



때론 말없는 동물이 더 위로가 될 때가 있다.

말로만 위로하는 척 연기하는 인간보다 말없이 한결같이 행동하는 동물이 더 위로가 된다.

인간의 위로는 동정에 가깝다.

동정은 자신과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나와는 다른 처지를 불쌍히 여겨 도와주려는 것이다.

동정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때론 누군가에게 그것이 더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동정보다는 공감 있는 위로가 우선되어야 한다.



[난 너의 마음을 알아!]



회색 고양이는 다시 자신의 자리인 듯 명품 박스 위로 사뿐히 올라가 앉는다.

그 옆에 다른 명품 박스 위에는 뽀얀 회색빛의 먼지가 쌓여있다.

녀석은 한 자리만 고수하고 항상 그 자리에서 먼지처럼 앉아 띠아오챤을 바라본다고 한다.

지금 녀석은 나와 띠아오챤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하는 듯하다.



"它总是听我说话” (쟨 항상 내 말을 들어줘요)



쓸데없는 말들로 위로하는 것보다 가만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인간은 사실 그걸 잘하지 못한다.

빨리 무슨 말로 혹은 행동으로 위로하고 떠나려 한다.

위로가 시작되는 순간 이미 목적은 떠나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럼 위로는 떠나기 위한 수단인 것인가?



"我也会听你说话” (나도 니말 들어줄께)



나는 방바닥 위의 그녀의 손등 위에 나의 손을 살포시 얹히고 그녀를 바라본다.

띠아오챤은 고개를 돌려 나를 잠시 바라보고 손등 위의 나의 손을 내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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