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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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짓는목수
작품등록일 :
2022.05.12 08:11
최근연재일 :
2022.09.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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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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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화. 협력사가 해결사다 (시즌2-54)

DUMMY

"어이! 전대리 오늘 오토패스 확인해봤나?"


"예? 아직..."


"아놔! 매일 확인하라고 했잖아!"


"죄송합니다. 설계원가 자료 준비 때문에..."


"그게 핑계라고 하는 소리가? 어이! 내 말이 말 같지 않냐? 빨리 들어가서 확인해서 처리해 고객사에서 연락 왔잖아!"


"네··· 알겠습니다."



아침부터 구과장의 날선 질책이 쏟아진다.

고객사에는 자사뿐만 아니라 전 1차 협력사를 대상으로 공지하는 오토패스(Autopass)라는 온라인 게시판이 있다.

그곳에는 고객사 내부 공지 사항이나 협력사에게 전달하는 공고 사항이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협력사에서는 항상 그 게시판에 공지되는 내용들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고객사의 중요한 전달 혹은 요청 사항들을 그곳을 통해 공지된다.

그래서 각 영업부서에는 오토패스를 항상 확인하는 담당을 지정해 놓는다. 보통 부서 내 막내들이 그것을 챙기고 있었다.



[중국 차종 플라스틱 소재 소요량 조사의 건 ]



'아놔! 오늘 또 집에 다 갔네'



또 자료 조사 관련 공문이 접수되었다.

마감기한이 오늘까지다.

양산 차종 계산서를 다 뒤져야 한다.

소재별로 소요량 및 금액을 산출해야 한다.

항상 예상치 못한 긴급한 사이드 업무들이 치고 들어와 기존의 메인 업무를 방해한다.

결국 시간으로 때울 수밖에 없다.



"전대리 퇴근 안하나?"


"오늘도 야근해야 긋네요, 오토패스 조사 자료 때문에"


"아~ 그 놈의 고객 놈들은 지들이 확인해보면 될걸 왜 맨날 협력사 직원들 달달 볶아서 일 시켜먹는지 모르겠다니깐,”


"그래서 협력(協力)사 아니겠어요, 협력해 줘야죠 뭐 쩝···"



국내영업팀의 고정안 대리가 새집으로 변한 머리를 긁적거리며 나의 자리로 걸어온다.

일과시간에 항상 머리를 쥐어 싸매고 있다.

그래서 그의 어깨에는 항상 떨어져 나온 적잖은 머리카락과 비듬들이 앉아있었다.


고객에게 협력하는 회사라서 협력사다.

고객이 귀찮고 번거로운 일을 해결해 주는 곳이 협력사이다.

어쩌면 협력사보다 해결사가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웬만한 일은 협력사에서 다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덕분에 고객사는 방대한 양의 자동차 부품의 관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협력사 직원인 동시에 고객사 직원이기도 하다.

사실 월급만 협력사에서 받을 뿐 대부분의 일은 고객사의 일이다.

제품만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사무 용역 서비스도 포함되어 있다.



“해외팀은 전대리가 전담하나보네, 나도 첨 들어왔을 때 저 놈의 오토패스 조사 자료 때문에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는데···”


“국내영업은 이제 여중고 사원이 하죠?”


“글쵸, 녀석 머리가 좋아서 그런가 알아서 잘 하더라고, 근데 그거 안하면 좀 편할 줄 알았는데··· 것도 아니더라고”

“왜요?”


“이제 고객사 ERP 입력 내가 하잖아 씨X! 매달 고객 본사에 올라가서 용역업체 직원 마냥 하루종일 데이터 입력해주고 있으면 내가 이 짓 하려고 회사 들어왔나 하는 생각이 든다니까”



국내 영업팀에서는 매달 원소재 가격 변동이 있을 때마다 혹은 고객과의 제품 및 개발비 가격결정이 끝나고 나면 고객사 본사로 불려 간다.

변동된 소재 가격에 의한 납품가격 변동 내역과 신규 제품가격과 개발비를 고객사 내부의 ERP 시스템에 입력하는 전산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 시스템은 고객사 내부 전산 프로그램으로 내부 직원의 아이디를 통해 접속해야 한다.

고객 편의상 고객사의 구매담당자의 아이디와 패스워드로 접속하여 방대한 양의 가격결정자료들을 하루 종일 혹은 며칠이 걸려 입력해 준다.

고객사 담당자가 직접 해야 할 일을 협력사 직원이 대신해주는 것이다.

마치 당연히 협력사 직원이 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맨 파워가 부족해서라고 얘기한다.

그러면 직원을 더 뽑아야 하는 것이 맞다.

대기업이 정직원을 많이 고용하지 않고도 방대한 업무를 다 처리할 수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불합리한 일이 지속되면 나중엔 아무런 죄책감이 없이 그것이 마치 당연한 원칙처럼 되어버린다. 세상의 이해할 수 없는 시스템이나 원칙들 중 상당 부분이 그렇게 만들어져 왔다. 그 누구도 저항하지 않기 때문에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툭툭툭! 아~함~ 나 나가서 담배 한 대 피고 올께 같이 갈래?”


“몇시에요?”


“9시 넘었어”


“헐 벌써요? 전 이거 빨리 마무리 지어야 해서··· 피고 와요"


“그래 그럼···”



고대리는 호주머니에서 새 담배갑을 꺼내 손바닥에 몇 번 툭툭 친다.

그리고 하품과 기지개를 동시에 하며 터벅터벅 사무실을 걸어나간다.

오늘은 수요일 가정에 날이다.

1층 사무동에 남아있는 직원이 그리 많지 않다.

이 날은 오후 5시가 되기 15분 전에 전사에 방송이 울려 퍼진다.

뭐 내용은 가정에 날이니 되도록 빨리 업무를 종료하고 퇴근하라는 내용이다.

과거 민혁의 과로사 사건으로 회사에서는 야근 자제와 가정의 날 준수와 같은 자체적인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설계 사무직의 야근을 차단하기 위해 저녁 7시 이후 사무실 전력을 차단하는 방법까지 동원했다.

하지만 어차피 기한 내에 해내야 하는 긴급 업무는 결국 가정으로 들고 가서 하는 직원들이 늘어났다. 오히려 야근 수당도 못 받고 집에서까지 일해야 하는 상황에 직원들의 원성은 더 커졌다.

기름값 정도밖에 되지 않은 적은 야근 수당이지만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빼앗기면 기분 나쁘다.

어차피 해야 한다면 돈이라도 더 받아야 한다.

직원들은 생각 없는 주먹구구식의 회사의 정책에 진절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결국 얼마 가지 않아 전력 차단은 중단되었다.

다시 예전처럼 야근이 계속되었다.

결국 회사는 향후 더 많은 직원 채용을 통한 업무량 분산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전환했다.

다만 그것이 결국 급여 인상을 제한하는 명분을 만들어 주었다.



"전대리! 그만 퇴근하자~ 그래도 오늘 가정에 날인데..."


"뭐 난 아직 가정이 없어서 하하하"


"그럼 가정을 만들로 나가야지 하하하"



고정안 대리가 퇴근을 결심한 모양이다.

백팩 가방을 둘러메고 사무실을 나가며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는 국내영업팀에서 항상 야근 수당을 탑(Top)을 찍는 직원이다.

얼마 전 결혼을 하고 조금씩 야근을 줄여가려는 모습이 보인다.

그가 던지고 간 말에 잠시 생각한다.



'기혼자들은 가정에 날이라도 있는데 미혼자들을 위한 연애의 날은 왜 없는 거야?!"



나는 푸념 섞인 한 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담배와 라이터를 챙겨 사무실을 나가려고 1층 복도를 지나고 있었다.

1층 복도 한 쪽 편에 있는 서류창고에 불이 켜진 채 문이 열려있다.

문 앞에는 서류박스로 보이는 상자들이 쌓여있다.



"어! 이 시간에 서류창고에 웬 불이 켜져 있지?"



서류 창고 쪽으로 걸어간다.

반쯤 열린 문 안을 들여다본다.

눈에 익은 이마가 눈에 들어온다.

인사팀 배유진씨다.

그녀는 박스들을 이리저리 옮기며 창고에 쌓인 먼지를 쓸고 있다.



"유진씨! 이 시간에 여기서 뭐해요?"


"엇! 대리님! 대리님이 어떻게 이 시간에?"


"전 뭐 야근 중이죠"


"아 그러셨구나. 전 보시다시피 청소 중입니다."


"뭐 청소 알바라도 하는 거예요? 하하하"


"여기 도서관 만들려고요!"


"예?!"



그녀는 굽혔던 허리를 일으켜 세운다.

날리는 먼지 속에 마스크를 쓰고 있다.

손에는 고무장갑을 끼고 한 손에는 빗자루를 쥐고 서서 나를 바라본다.

그녀의 하얀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와~ 정말 도서관을 만드는 거예요?”


“제가 만든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하하”


“우아~ 추진력 하나는 대단하네요, 그것도 일개 사원이 어떻게 이런 일을···”


“일개 사원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죠 헤헤”


“하하하, 할 말이 없네요 정말”



유진씨의 대답은 내가 뱉은 말을 다시 주워담고 싶게 만든다.

우리는 항상 주어진 직급과 상황에 맞게 말하고 행동한다.

그렇게 스스로가 자신의 한계를 만들고 그 안에 갇혀서 살아간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누구나 자신이 중요한 자리를 맡게 되면 변할 수 밖에 없다.

상황과 환경이 변화시킨다.

물론 역량이 되지 않는다면 그 변화가 더디고 괴로울 것이다.

자리가 변화의 동기를 부여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주어진 직급과 상황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직장생활에서 간혹 그런 자들을 보게 된다.

그런 자들은 대부분 직장에서의 성공을 꿈꾸며 자신을 채찍질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눈은 야심으로 이글거린다.

비록 지금은 아니지만 남들보다 더 빨리 올라가고픈 욕망이 이글거린다.



“여기에 도서관이 생기면 너무 좋을 거 같지 않아요?”


마스크를 때문에 입가에 미소는 보이지 않지만 초승달로 변한 그녀의 눈이 그녀가 웃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녀의 눈은 야심이 아닌 순수한 즐거움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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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148화. 순수한 관심 (시즌2-67) 22.08.30 45 0 7쪽
147 147화. 신과 닿기 위해 (시즌2-66) 22.08.29 45 1 8쪽
146 146화. 불편함 속 편안함 (시즌2-65) 22.08.28 47 1 9쪽
145 145화. 나쁜 예감 (시즌 2-64) 22.08.27 44 1 11쪽
144 144화. 같은 노동 다른 계급 (시즌2-63) 22.08.23 54 1 7쪽
143 143화. 식혜와 삶은 계란 (시즌2-62) 22.08.23 48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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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5화. 협력사가 해결사다 (시즌2-54) 22.08.15 54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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