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완결

글짓는목수
작품등록일 :
2022.05.12 08:11
최근연재일 :
2022.09.12 06:00
연재수 :
160 회
조회수 :
30,614
추천수 :
1,358
글자수 :
862,220

작성
22.08.29 06:00
조회
44
추천
1
글자
8쪽

147화. 신과 닿기 위해 (시즌2-66)

DUMMY

"어?! 이 시간에 웬일이지?"


안에스더가 보인다.

나의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에 눈이 부신지 한 손을 들어 눈을 가린다.

나는 원룸 앞 공터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린다.



"안 에스더!? 이 시간에 웬일로 제 집까지 오셨어요?"


"이제 오는 거예요? 유진자매는 잘 데려다 줬어요?"


"예, 잘 데려다주고 왔죠"


"할 얘기가 있어서 왔어요"


"이 늦은 시간에... 전화를 하지 그랬어요"



그녀는 만나서 할 얘기라며 일부러 집 앞까지 찾아왔다고 한다.

시간은 이미 밤 11시가 넘어가고 있다.

가로등 불빛 아래 선 그녀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다.



"안 에스더! 혹시 술 마셨어요?"


"예?! 냄새나요?"



그녀 가까이 다가서자 알코올 냄새가 올라온다.

그녀는 입을 가리며 당황한 눈치다.

그녀는 집에서 와인을 한 잔 마셨다고 실토한다.

적어도 한 잔 이상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녀가 술을 마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목녀님께서 술을 다 마시고 도대체 뭔 일이랍니까? 내가 술만 마시면 그렇게 뭐하고 하시던 분이 하하하”


"아... 춥지 않아요?"


"그래요 일단 집으로 올라가죠"



발걸음을 옮기는 그녀가 어찌 위태로워 보인다.

바로 걷지 못하고 좌우로 휘청거린다.

그 모습이 불안해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부축한다.

그녀는 괜찮다는 말과 함께 다른 쪽 손으로 손목을 잡은 나의 손을 떼어낸다.

그리고 계단 난간을 잡고 계단을 오른다.



"안 에스더, 조금 마신 게 아닌 거 같은데요?"


"아... 아녜요, 제가 술이 못 먹어서..."


“그러니까 못 마시는 술을 왜 드셨데요? 잠깐 앉아 있어요, 뭐 좀 타드릴께요"



그녀는 식탁 의자에 앉아 내가 차를 타는 모습을 지켜본다.

술기운에 몸을 추스리기 힘든지 식탁에 몸을 엎드린다.



"자! 여기 유자차를 좀 탔어요"


"아~ 고마워요 희택 형제, 그리고 미안해요"


"뭐가요?"


"아니 그냥..."



그녀는 말을 끝내지 않고 등받이에 기대어 앉아 있던 몸을 곧게 일으켜 세운다.

머그컵에 담긴 유자차를 두 손으로 들고 입술에 가져다 댄다.

좀 전까지 나를 쳐다보던 시선은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는 듯 내 주변을 한 번 두리번거리고는 작은 찻잔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평소와는 그녀의 어색한 행동에 나까지 어색해진다.



"아니~ 우리 목녀님께서 술을 다 마시고 마실 거면 나한테 미리 연락을 좀 하시지 그랬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목녀님이랑 거하게 한잔 하는 건데... 하하하"


"... 그럴래요?"


"예?!"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예상치 못한 그녀의 답변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내가 생각하던 목녀의 모습이 아니다.

그녀는 지금 목녀라는 역할을 벗어버리려 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 역할을 벗어던지기 위해 술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하려는 것일까?



“농담하는 거죠? 정말 무슨 일 있어요?”


“왜요? 난 술 마시면 안되요?”


“아니··· 뭐 그런 건 아니지만, 에스더는 술 마시는 걸 싫어하는 줄 알았어요”


“저도 싫어하는 것도 한 번 해보려구요”


“···”


“내가 옳다고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옳은 건지 맞는 건지 알려면 틀리다고 맞지 않다고 생각하던 것을 해봐야 알 수 있으니까요”


“오~ 에스더 목녀한테서 이런 철학적인 말을 들을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요 하하하”


“내 안에 뭐가 있는지 알고 싶어요”


“그래 술을 마시니 안에 뭐가 있는지 알겠어요?”


“뭐라 말로 표현하긴 힘들지만 또 다른 내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일상 속에서 주어진 자신의 역할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 역할에 투영된 이미지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 통념과 신앙 혹은 주변의 시선 속에서 만들어진 자신의 이미지는 그에 걸맞은 행동양식을 요구한다.

자신의 삶 전체가 그것과 동일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매일을 살아간다.



“우리 목녀님 드뎌 발견하셨군요 하하하, 그래 또 다른 에스더는 어떻던가요?”


“무서워요”


“예?! 뭐가요?”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또 다른 자신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또 다른 자신을 감추며 살아간다.

혹자는 그런 자신이 있는 것 자체를 모르고 살아가는 자도 적지 않다.

이성이 억누르고 있던 감성은 없어진 줄 알지만 잠자고 있었던 것 뿐이다.

감성을 깨우는 도화선을 찾지 못한 것뿐이다.

오랜 시간 사회 관습적으로 억압되어 있던 것이 터지면 그 위력은 실로 강력하다.

쓰나미가 폭풍해일 보다 무서운 건 폭풍은 바다 표면에 파도만 일으키지만,

쓰나미는 바닷물 전체를 출렁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수심이 깊으면 깊을수록 속도와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오늘 목녀님께서 왜 이러실까?"


"저 농담하는 거 아녜요, 희택 형제, 그 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여태껏 보지 못한 눈빛이다.

나는 더 이상 웃음 섞인 농담을 꺼낼 수가 없다.

그녀의 눈은 나의 시선을 잡아놓고 입까지 막아버렸다.

어린 시절의 아버지로부터의 유린과 연인의 죽음까지 꿋꿋하게 이겨내고 일어섰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지금 내 앞에서 무너지고 있다.



“알아요, 에스더가 힘들었다는거 그리고 지금도 힘든 걸 견디고 있다는 거”


“알 순 있겠죠 그리고 누구나 그렇게 말을 해요. 안다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



잠시 침묵이 흐르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안에스더는 아버지에게 유린당하던 창학 시절 자신을 아껴주고 보살펴 주던 교회의 한 젊은 전도사를 바라봤다.

그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신앙을 키워왔다.

하지만 그가 교회 안에서 다른 반려자를 만나고 가정을 이루자 시기와 질투가 밀려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건 신앙이 아닌 사람을 향한 신뢰가 만든 집착이었다.

그를 향한 집착이 사랑이 되길 원했다.

그건 단순한 감기처럼 사춘기 소녀가 겪는 풋사랑이었지만 그녀에게는 폐렴이 되어버렸다.

기나긴 폐렴은 씻을 수 없는 후유증을 남겼다.

그녀는 그렇게 교회를 떠났다.



성인이 되어 만난 요한 목자는 다시 그녀를 교회로 이끌었다.

그녀는 그에게 빠져들 듯 주님을 외쳤지만 그것 또한 오로지 연인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가 떠나고 한 없이 무너지는 그녀는 성경 속 어떤 말씀도 기도도 그 어떤 것도 자신을 바로 세우지 못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사라진 어두운 밤이 찾아 들면 홀로 방안에 앉아 내면에 잠들어 있는 또 다른 자신을 끌어내려 술을 찾기 시작했다고 한다.

누군가를 통해 신을 알아갔듯이 그 무언가를 통해 또 다른 존재와 닿았다.

그 누군가가 사라지면 신도 사라졌지만,

그 무언가는 언제든 구할 수 있었기에 언제나 닿을 수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것을 통해 닿을 수 있는 존재에게 자신을 내어준다.



“희택 형제를 보면서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무슨···?”



그녀는 요한이 세상을 떠나고 슬픔과 아픔을 잊으려 술을 찾았다.

술에 취해 쏟아내던 슬픔은 어느새 자신 안에 무언가에 의해 분노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 분노는 그 동안 믿어왔던 존재에게로 향했다.

그런데 그렇게 분노가 치솟을 때마다

나에게서 연락이 왔었다고 한다.

나의 관심과 위로의 말들이 그녀에게는 많이 힘이 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그녀에게 희망이 되었던 것일까?

그녀는 스스로 신과 닿는 법을 몰랐다.



"희택 형제, 우리 다른 교회로 갈래요?"


"예?!"



그녀가 의지하고 맹신하던 것은 하나님이 아니었다.

그녀는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다.

사람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신에게 받으려고 했던 것 뿐이다.

하지만 그건 허울 좋은 핑계였을 뿐 결국 사람의 관심에 대한 집착을 보기 좋게 포장한 것 뿐이었다.

우리는 신과 닿기 위해 누군가를 통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닿기 위해 신을 이용하는 것이 아닐까?


신은 어디에도 있지만 우리는 어디에서만 찾는다.




구독과 좋아요는 저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작가의말

[email protected]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의 댓글과 좋아요는 저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평범한 남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0 160화. 떠나야 할 때 (시즌2-79) 22.09.12 42 3 11쪽
159 159화. 죄와 벌 (시즌2-78) 22.09.11 35 1 8쪽
158 158화. 빛과 어둠 (시즌2-77) 22.09.10 32 1 9쪽
157 157화. 사랑받고 사랑해야 한다. (시즌2-76) 22.09.09 38 1 8쪽
156 156화. 선과 악을 오고 가다. (시즌2-75) 22.09.07 34 0 8쪽
155 155화. 어린 왕자와 같은 마음으로 (시즌 2-74) 22.09.06 36 0 9쪽
154 154화. 현재를 위해 과거를 덮다 (시즌2-73) 22.09.05 38 0 8쪽
153 153화. 로봇은 로봇을 만들 뿐이다 (시즌2-72) 22.09.04 32 0 9쪽
152 152화. 그녀가 사라지다 (시즌2-71) 22.09.03 37 0 9쪽
151 151화. 아가페 사랑 (시즌2-70) 22.09.02 36 1 8쪽
150 150화. 사람이 먼저다 (시즌2-69) 22.09.01 40 0 9쪽
149 149화. 매 맞는 코끼리 (시즌2-68) 22.08.31 43 1 8쪽
148 148화. 순수한 관심 (시즌2-67) 22.08.30 45 0 7쪽
» 147화. 신과 닿기 위해 (시즌2-66) 22.08.29 45 1 8쪽
146 146화. 불편함 속 편안함 (시즌2-65) 22.08.28 47 1 9쪽
145 145화. 나쁜 예감 (시즌 2-64) 22.08.27 44 1 11쪽
144 144화. 같은 노동 다른 계급 (시즌2-63) 22.08.23 54 1 7쪽
143 143화. 식혜와 삶은 계란 (시즌2-62) 22.08.23 48 2 10쪽
142 142화. 순수함이란··· (시즌2-61) 22.08.22 46 1 10쪽
141 141화. 믿음 위에 뿌리내린다 (시즌2-60) 22.08.21 52 1 7쪽
140 140화. 불혹(不惑)은 불변(不變)의 다른말 (시즌5-59) 22.08.20 52 1 12쪽
139 139화. 입을 거쳐갈수록 말을 더해간다 (시즌2-58) 22.08.19 48 2 9쪽
138 138화. 격식없는 만남 (시즌2-57) 22.08.18 52 0 10쪽
137 137화. 성공(成功)과 성인(聖人)의 길 (시즌2-56) 22.08.17 58 0 11쪽
136 136화. 야근이 소중해진 이유 (시즌2-55) 22.08.16 55 1 9쪽
135 135화. 협력사가 해결사다 (시즌2-54) 22.08.15 53 0 9쪽
134 134화. 회사라는 울타리에 갇히다 (시즌2-53) 22.08.14 47 0 9쪽
133 133화. 눈을 치켜뜨다 (2-52) 22.08.13 53 2 9쪽
132 132화. 소명, 존재의 이유 (시즌2-51) 22.08.12 57 2 10쪽
131 131화. 신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시즌2-50) 22.08.11 63 2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