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남자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완결

글짓는목수
작품등록일 :
2022.05.12 08:11
최근연재일 :
2022.09.12 06:00
연재수 :
160 회
조회수 :
30,618
추천수 :
1,358
글자수 :
862,220

작성
22.08.19 06:00
조회
48
추천
2
글자
9쪽

139화. 입을 거쳐갈수록 말을 더해간다 (시즌2-58)

DUMMY

"유진씨! 완전 전문 페인터 같은데요"


"그런가효? 하하하!"


"그 멜빵바지에 묻은 얼룩들은 뭐예요?"


"아! 사실 저 취미로 그림 그리거든요, 화방에서 작업할 때 입는 옷이에요"


"오! 그림이라...”



그녀는 주말마다 화실에 나간다고 한다.

취미로 시작한 그림이 벌써 3년이 다되어간다고 한다.

화실에서도 알아주는 그림쟁이가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 자신이 소질이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집중을 하게 된다고 한다.

화실의 선생님의 추천으로 아마추어 작품전에도 몇 번 출품했다고 한다.



"와! 유진 씨 완전 예술가네요"


"에이 대리님도 참, 그 정도까진 아니구요 하하하"


"어쩐지 페인트 칠하는 붓 놀림이 예사롭지 않더라니 하하하"



그녀는 마치 양파 같다.

껍질을 벗기면 벗길수록 새로운 껍질이 나오는 신비한 그런 존재라고 해야 할까?

그녀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관심이 더 증폭된다.

신비감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된다.



"대리님은 취미가 뭐예요?"


"저요? 음... 글쎄... 야근?!"


"하하하 장난치지 마시구요"


"글쎄요··· 뭐가 있지? 아! 등산하는 거 좋아해요""


"오 등산이요? 산에 올라가는 거 힘들지 않아요?"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도 산은 정직해요 힘든 만큼 보여주니까요.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고 마치 우리의 인생과도 닮아있죠"


"음... 듣고 보니 맞는 말이네요, 삶이 시련의 연속 이라죠.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헤밍웨이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이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면서 되뇌는 말이에요 인간은 시련을 통해 승리하는 거라고..."


"음... 예술만 하는 게 아니라 철학도 하시네 고흐와 니체의 만남인가? 그럼 뭐 고체인가?! 하하하"


"푸하하하 대리님 넘 웃겨요 어어어~ 아~~"


"쿵!"



그녀는 작은 A자 사다리 위에서 페인트를 칠하다가 나의 농담에 배를 잡고 웃는다.

그녀는 균형을 잃고 사다리가 쓰러지며 함께 바닥으로 떨어진다.

떨어지면서 한 쪽발이 먼저 바닥에 닿았다.

무게 중심이 한 쪽으로 쏠리면서 발을 접질리고 말았다.

그녀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발목을 움켜쥔다.



"괜찮아요? 유진씨?"


"아~ 아무래도 발목을 삔 거 같아요"


"미안해요 저 때문에 괜한 농담을 해서"


"괜찮아요 인생이 시련의 연속인데요 뭐, 몸이 좀 파괴되긴 했지만···하하 아~야!”


“하하하 많이 아파요?”


“웃느라 아픈 줄도 모르겠다는···대리님 덕분에 오래간만에 배꼽 잡고 웃었네요 하하하"


"하하하"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발을 디뎌보지만 통증 때문에 일어서질 못한다.

발목이 불룩하게 부어오르기 시작한다.

나의 부축을 받고 일어서지만 발을 디딜 때마다 표정일 일그러지는 것으로 봐 발목을 심하게 다친 것 같다.



"안 되겠다! 자! 업혀요!"


"아녜요 괜찮아요!"


"어서 업혀요 몸이 다 파괴되기 전에, 지금은 패배하지 않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파괴되지 않는 게 더 중요한 거 같네요"


"피식! 대리님 참 한 말발 하시네요"



그녀는 양팔을 뻗어 살며시 나의 목을 감싸 안으며 나의 등에 몸을 포갠다.

등에서 그녀의 체온이 느껴진다.

열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며 평형을 이룬다.

체온을 나누는 것은 서로가 하나 됨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이와 살을 맞닿는 것은 서로가 하나 되는 지점을 찾아가는 위한 행위이다.

오래된 연인은 서로의 살 냄새를 기억한다.

그래서 살을 맞닿지 않는 연인은 오래갈 수 없다.

나는 그녀의 종아리와 허벅지 사이를 팔로 감싸 안아 그녀를 들어 올린다.

생각보다 묵직한 느낌에 순간 멈칫하다 다시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선다.



"무겁죠 대리님?"


"철학자는 아닌 거 같네..."


"예?! 무슨 말이에요"


"아... 아무것도 아녜요"



'배고픈 소크라테스는 아니구먼 하하하'



순간 떠오른 생각에 웃음을 터뜨릴 뻔 했다.

혼자 속으로 웃음을 삼킨다.

여자에게는 정직이나 솔직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칭찬과 배려이다.

솔직함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솔직함이 그렇게 유용하지 못하다.

솔직한 사람은 외롭다.

그래서 철학자나 예술가들은 항상 외로움과 함께 지낸다.

사람들 속에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사유하고 고민하는 시간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들에겐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회 속 사람들 사이에서 페르소나(Persona)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힘들어한다.


과거 그런 여자들의 심리를 잘 몰라 생각 없이 날렸던 팩트 섞인 농담들이 적대감만 만들었다.

당시에는 그 농담이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하지만 농담의 대상이 되었던 자들은 적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몰랐다.

상대방도 분위기상 대심한 척하며 같이 웃으며 넘어가는 모습을 보였지만 상대방은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기억된다.

그런 남자를 이성으로 받아들일 만큼 너그러운 여자는 없다.

그럼 그녀가 나에게 이성으로 다가온 것인가?



"발목 인대가 파열되었네요 깁스를 해야 될 거 같네요"



의사의 말을 들은 그녀의 표정이 굳어진다.

얼마 뒤 그녀가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진료실에서 걸어 나온다.

애써 웃으며 나를 쳐다보지만 마음이 편치 않음이 표정에 드러난다.



"큰일이네, 도서관 만들어야 하는데... 참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요"


"너무 걱정 말아요, 일단 페인트는 내가 마저 다 칠할게요"


"대리님이요? 어떻게 제가 대리님한테 다 떠맡겨요?"


"이렇게 다친 것도 다 내 탓인데..."



나는 그녀를 위해 페인터가 되었다.

주말 내내 칙칙하던 창고 벽을 밝고 화사한 페인트로 칠했다.

금전적 이익이나 명예가 아닌 단순히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한 노동이 즐겁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대리님 정말 다 칠하셨던데요]


[칠한다고 했잖아요 하하]


[오늘 출근할 때 잠시 들렸는데 완전 예쁘던데요 정말 감사합니다]


[뭘 그 정도 가지고, 참! 다리는 좀 어때요?]


[예, 걷는 게 좀 힘들 뿐이죠 덕분에 엘리베이터 타고 다녀요 하하하]


[헉! 진짜요? 엘리베이터를?]



월요일 아침 그녀가 사내 메신저로 말을 걸어온다.

그녀가 일하는 인사팀은 본사 건물 가장 위층인 5층에 위치해 있다.

그 곳에는 기획팀부터 재무팀 등 회사의 회사의 경영관리 관련 핵심 부서들이 모여있고 회장실과 사장실이 같이 위치해 있다.

회사 본관에는 엘리베이터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회장 전용이다. 일반 직원들은 이용할 수 없으며 특별한 귀빈이나 물건 운반 등의 특별한 사유로만 이용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3~5층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항상 계단으로 오르내리느라 불만이 많다.

특히 5층 직원들은 불만이 말이 아니다.

불만이 늘어날수록 다리의 근육량과 폐활량도 늘어난다.



“유진씨! 다리가 왜 그래요?”


“앗 사장님! 안녕하세요 발목을 접 질러서 금이 좀 갔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계단을 올라다닙니까?”


“괜찮습니다”


“이리 와서 엘리베이터 같이 타요”



그녀의 다리 부상을 목격한 사장의 배려로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는 특권을 얻게 되었다.

그녀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마다 쳐다보는 수많은 직원들의 시선에 때문에 이용하기가 부담스럽다고 얘기한다.

보통 직원들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회장이나 사장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엘리베이터 앞을 지날 때 문이 열리면 자동 반사적으로 목례를 한다.

그런데 회장이나 사장이 아닌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니 당황스럽다.



[유진씨, 이제 완전 유명인사 됐던데요, 사장님이랑 많이 친해졌어요? ㅋㅋ]


[아 ~ 왜 그러세요 대리님까지]


[우리 회사에서 그런 배려를 받은 직원은 유진씨가 아마 처음일껄요?]


[와 나도 엘리베이터 좀 타봤으면 좋겠네 ㅋㅋㅋ]


[이렇게 놀리기예요?]



나는 이제 업무시간에 틈만 나면 유진에게 사내 메신저를 보내며 친근감을 쌓아갔다.

유진은 엘리베이터 사건으로 본사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녀가 사장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이 여러 번 목격되었고

직원들 사이에서는 유진과 사장이 부적절한 관계가 아니냐는 근거 없는 루머까지 퍼지지 시작했다.

출처 없는 가십(gossip)은 변형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자극적인 형태로 탈바꿈한다.

입은 거칠수록 말을 더해간다.




구독과 좋아요는 저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작가의말

[email protected]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의 댓글과 좋아요는 저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평범한 남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0 160화. 떠나야 할 때 (시즌2-79) 22.09.12 42 3 11쪽
159 159화. 죄와 벌 (시즌2-78) 22.09.11 35 1 8쪽
158 158화. 빛과 어둠 (시즌2-77) 22.09.10 32 1 9쪽
157 157화. 사랑받고 사랑해야 한다. (시즌2-76) 22.09.09 38 1 8쪽
156 156화. 선과 악을 오고 가다. (시즌2-75) 22.09.07 34 0 8쪽
155 155화. 어린 왕자와 같은 마음으로 (시즌 2-74) 22.09.06 36 0 9쪽
154 154화. 현재를 위해 과거를 덮다 (시즌2-73) 22.09.05 38 0 8쪽
153 153화. 로봇은 로봇을 만들 뿐이다 (시즌2-72) 22.09.04 32 0 9쪽
152 152화. 그녀가 사라지다 (시즌2-71) 22.09.03 37 0 9쪽
151 151화. 아가페 사랑 (시즌2-70) 22.09.02 36 1 8쪽
150 150화. 사람이 먼저다 (시즌2-69) 22.09.01 40 0 9쪽
149 149화. 매 맞는 코끼리 (시즌2-68) 22.08.31 43 1 8쪽
148 148화. 순수한 관심 (시즌2-67) 22.08.30 45 0 7쪽
147 147화. 신과 닿기 위해 (시즌2-66) 22.08.29 45 1 8쪽
146 146화. 불편함 속 편안함 (시즌2-65) 22.08.28 47 1 9쪽
145 145화. 나쁜 예감 (시즌 2-64) 22.08.27 44 1 11쪽
144 144화. 같은 노동 다른 계급 (시즌2-63) 22.08.23 54 1 7쪽
143 143화. 식혜와 삶은 계란 (시즌2-62) 22.08.23 48 2 10쪽
142 142화. 순수함이란··· (시즌2-61) 22.08.22 47 1 10쪽
141 141화. 믿음 위에 뿌리내린다 (시즌2-60) 22.08.21 52 1 7쪽
140 140화. 불혹(不惑)은 불변(不變)의 다른말 (시즌5-59) 22.08.20 52 1 12쪽
» 139화. 입을 거쳐갈수록 말을 더해간다 (시즌2-58) 22.08.19 49 2 9쪽
138 138화. 격식없는 만남 (시즌2-57) 22.08.18 53 0 10쪽
137 137화. 성공(成功)과 성인(聖人)의 길 (시즌2-56) 22.08.17 58 0 11쪽
136 136화. 야근이 소중해진 이유 (시즌2-55) 22.08.16 55 1 9쪽
135 135화. 협력사가 해결사다 (시즌2-54) 22.08.15 53 0 9쪽
134 134화. 회사라는 울타리에 갇히다 (시즌2-53) 22.08.14 47 0 9쪽
133 133화. 눈을 치켜뜨다 (2-52) 22.08.13 53 2 9쪽
132 132화. 소명, 존재의 이유 (시즌2-51) 22.08.12 58 2 10쪽
131 131화. 신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시즌2-50) 22.08.11 63 2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