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검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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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2.07.03 19:15
최근연재일 :
2022.10.0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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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1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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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1화 .. 두모의 소원

DUMMY

오후의 햇살이 눈부시게 정영지의 수면위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물가에 쪼그리고 앉은 현연이 작은 물고기 떼 속으로 손가락을 찔러 넣고 물살을 만들며 노는일에 열중하느라, 운과 원이 가까이 다가오는지도 모른 채 까르륵 거리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운이 살살 다가가 두 손으로 어깨를 툭 치자, 놀란 현연이 중심을 잃고 여지없이 물속으로 엎어지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이런 순간이면, 원은 미리 준비라도 하고 있던 것처럼 급하지 않게 넘어가는 현연의 상체를 한손으로 끌어당겨 자신의 품속으로 담은 후, 다시 품에서 놓으며 반듯이 세워 주고는 하였다.


이전엔 그녀가 넘어지지 않게 두 손과 온몸으로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 당기며 시름하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그의 넓어진 가슴의 품으로 가볍게 당겼다 놓아주는 것이 이제는 어색하지 않은 일이 되어 있었다.


“ 다녀오셨어요? 자운 자원 전하!"


현연 역시 그녀가 물에 빠질뻔한 일에는 전혀 개의치 않은 채, 함박웃음을 지으며 둘을 맞이하였다.


그 와중에 주변을 둘러보던 자운이 걱정이 담긴 얼굴로 현연에게 물었다.


“ 현연언니, 두모 선인께서는 어디 가셨어? 얼마 전부터 잘 웃지도 않으시고, 저녁때쯤이 되면 해명연 옆에 앉아서 항상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고 계시던데.”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어색할 만큼 얼굴빛이 진지해진 현연이, 걱정스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둘에게 하소연 섞인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네 자운공주님, 사실 전하들께서 탄생 하신 이후에 상제께서는 두모 선인께 그동안 해명연을 살피느라 고생이 많으셨다며, 인간계에 내려가 역겁을 겪고 오면 상선으로 승급 하여 구중천에서 더 중요한 일을 맡을 수 있도록 해 주신다고 하셨거든요."


"그래? 그런 일이 있었던 거야? 그럼 두모 선인께서는 언제 인간계로 내려가시는데? 축하 해 드려야 하는 거잖아! 그런데, 두모 선인이 인간계에서 아기로 태어나면 좀 어색할 거... 같긴 하다. 그치?!"


자운의 말은 전혀 새겨들을 생각도 없는 듯이 여전히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현연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 그런데 두모 선인께서는 인간계에 내려가지도, 다른 일을 맡고 싶지도 않으시데요!"


현연의 말에 맹한 표정을 짓던 자운이 크고 맑은 눈을 꿈뻑거리고 있었다.


“왜 ? 보통 더 빨리 승급해서 상선과 상신이 되어서 구중천에서 영원히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아?”


현연 또한 그 말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라는 듯 입술을 옆으로 삐죽이 비틀며 어깨를 으쓱 거렸다.


언제나 옆에서 말없이 서서 듣기만 하던 자원도 이번엔 두 눈을 반짝이며 호기심을 드러내었다.


“두모 선인께서는 이전 생에서는 자라의 몸이셨는데, 동해바다에서 천년동안 수행하신 공덕이 있으셔서 소선일 때부터 지금까지 이백만년 동안이나 이곳 정영지를 돌보고 계셨대요.

그동안 상제께서 태어나시던 모습도 지켜보고 보살펴 주셨기 때문에, 상제께서도 두모 선인께는 각별하게 대하셨는데,

승급 시켜 드리고 싶어 해도 정작 두모 선인이 여기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으시니... 하품 선관으로 계속 머무르실 수 밖에 없는거죠."


이야기를 하는 동안 현연의 모습은, 정말 이상할만큼 장난기 라고는 하나도 없이 진중해 보였다.

드문 일이었지만 다른 이를 걱정하는 모습에서, 이제 성숙한 여인의 자태마저도 느껴지는 듯하였다.


현연의 옆에서 열심히 이야기를 듣던 자원의 얼굴빛이 발그레하게 물들고 있었다. 요즘 들어 현연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자원의 볼 살이 잘 익은 복숭아처럼 자주 분홍빛으로 물들었고 그 색이 이쁘다고 자운은 부러운 듯 동생의 볼 살을 꼬집어 대곤 했다.


“그런데 요즘 두모 선인이 혼잣말을 하듯 자주 그랬어요.

어릴 적 동해에서 친구들과 함께 뛰고 헤엄쳐 다니며 놀다가 하늘에서 시원스럽게 큰비가 내리는 날이면, 하늘 끝에서 동해바다 속까지 이어지는 아름답고 커다란 무지개를 볼 수 있었다고요.

그 모양을 친구들과 함께 환호하며 바라볼 때가 정말 행복 했었는데, 그때가 요즘 너무 그리워서, 커다란 무지개를 한번만 볼 수 있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고 종종 말씀 하셨거든요."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두모의 마음을 생각하는 자운의 표정에는 당혹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잠시 후 자운이 낮게 중얼거렸다.


“... 구중천에서는 그런 큰비가 오지 않잖아!

천제가 내리는 비는 영선강의 기운을 키우려 할 때 잠시 내리다 마는 정도고, 마존이 내리는 비는 망천강의 수위를 높이려 할 때 또 잠시 내릴 뿐이지... 그리고... 우리 아버진. 비를 내릴 이유가 딱히 없는 것 같고...!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비를 언제 내려줄지 알 수도 없잖아.

마냥 어떻게 기다려? 내가 태어난 이후로 딱 세 번, 잠시 비라는 것을 구경할 수 있었을 뿐인데, 물 몇 바가지 뒤집어 쓴 양만큼 아주 작았어. 그러면...우신, 우신이 내리는 비는... 아...!”


자운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눈에 빛을 띠며 현연에게 물었다.


“현연언니, 오늘 천유원에서 천계로 가는 혼은 벌써 다 출발하였을까?”


잠시 하늘 위를 올려 보더니, 또다시 자신 있다는 투로 현연이 또랑또랑하게 대답했다.


“지금 해가 중간쯤밖에 안 올라 왔어요. 천유원의 혼들은 밤사이에 모인 혼은 이른 아침에 옮기고 낮 동안에 모인 혼들은 해 저물녘쯤에 옮기니까, 낮에 모인 혼들은 아직 출발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혼들은, 갑자기 왜요?”


현연이 물었지만, 자운은 벌써 푸른빛의 연기가 되어 사라져 버린 뒤였다.




****




천유원의 입구에는 거추장한 갑옷을 입고 날이 시퍼렇게 선 칼과 커다란 못이 사납게 박힌 방망이를 든 덩치 큰 문지기 둘이, 커다란 눈을 부라리며 마치 지옥을 지키는 문지기와 같은 모양으로 서 있었다.


그들은 커다랗고 사납게 충혈 된 두 눈을 한 번도 깜빡이는 일이 없이, 마치 바닥에 뿌리라도 내린 것처럼 버티고 서서 근접하기 힘든 두려움을 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운이 입구로 들어서려하자. 눈은 내리깔지 않았지만 그중 하나가 먼저 두 손을 모아 인사하고 일어서면, 다른 하나가 이어서 인사를 하며 그들의 모양에서 발할 수 있는 최대한의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중천의 공주를 맞아주었다.


이들의 사나운 두 눈은 상제를 만날 때에만 아래로 내리뜨게 되어 있었다.


“공주 전하를 뵙습니다!"


주변의 공기가 다 울릴만큼 육중한 소리로 이들이 예를 올리자, 자운 또한 아주 친근한 표정으로 눈인사를 건넨후에 천유원 안으로 총총히 걸음을 옮겨 들어갔다.


바위벽으로 둘러싸인 좁은 길을 한참 걸어가자, 눈이 부실만큼 밝은 빛이 순식간에 넓게 펼쳐졌다.


푸르고 하얀 빛을 발하는 평온한 들판 위로는 작은 홀씨가 날리듯이, 오색빛깔의 둥근 먼지 같은 모양들이 급하지 않게 몽글 몽글한 모양새로 날아다니고 있었다.


여러 빛깔의 혼령구들은 그들이 역겁을 지내는 동안 쌓은 죗값과 덕행에 맞추어, 깃들 수 있는 공간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혼령구들이 떠다니는 들판위로 정돈되지 않은 모양으로 이리저리 흩어져 놓여있는 호리병들이 있었고, 그들에게 맞는 호리병들을 찾으면 혼령구들은 빨려 들 듯이 안으로 들어가게 되지만 그들에게 맞지 않는 호리병에는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이내 튕겨 나오듯이 밖으로 밀려 나오곤 하였다.


검은빛과 회갈색 빛의 호리병은 마계로 보내질 혼들이었고, 푸르고 하얀빛이 감도는 투명한 호리병은 중천의 인간계와 똑같이 만들어진 세상에서 잠시 머무르며 다시 환생할 준비를 하게 될 혼들이었다.


드문 드문 물기도 없는 안개더미가 깔린 곳에서 자라난 연분홍빛과 하얀빛과 옥색 빛의 연꽃이, 천유원의 들판을 생기 있는 화원으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오랜 시간의 역겁을 거치고 선기를 품을 수 있게 된 혼들은, 다음 생은 천계의 백성으로 태어나기 위해 이 연꽃잎에 깃들어 천계로 옮겨질 준비를 하였다.


마침 오늘 핀 연꽃 몇 송이를 따서 천계로 옮기기 위해 선녀 몇 명이서 조심스럽게 연꽃 송이를 바구니에 담고 있었고, 그 옆에서는 혼이 깃들어 잠들어있는 연꽃 바구니를 안전하게 운반할 중천의 여장들이 늠름해 보이지만 무표정하게 서서 바구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에 몰두하던 선녀들 사이로 자운이 가까이 다가와 인기척을 내자, 모두들 깜짝 놀라며 예를 표했다.


“ 언니들, 오늘 꽃이 정말 예쁘게 피었어요. 맑은 혼들이 많이 깃 들었나 봐요!"


하얀색의 갑옷을 입은 여장들도 자운에게 예를 표하고 있었지만, 특유의 무표정함은 여전했다.


바깥의 문지기들이나 호리병과 꽃을 운반하는 여장 들은, 하나같이 미소가 무엇인지도 모르도록 애초부터 길들여진 중천의 도구처럼 딱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이곳 천유원은 먼지처럼 작은 혼 하나라도 누락되거나 억울하게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상신이라도 함부로 드나 들어서는 안 되는 금역과 같은 곳이었다.


자운과 원이 어린 시절, 옥호는 아이들에게 이곳의 특별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서, 또 이 후에 이들이 중천에서 책임 져야 할 일들을 보여주기 위해서 줄곧 아이들을 이곳에 데리고 와서 함께 연꽃과 호리병을 보살피며 천유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었었다.


잠시 후 군장소리가 섞인 또박또박한 발걸음소리가 자운을 향해 다가와 멈췄다.


“공주님을 뵙습니다!"


반기는 기색도, 미소 한 톨도 없었지만, 충직함이 묻어나오는 낯익은 말투에 자운이 얼른 돌아서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유란 장군, 잘 지냈어? 요즘 원이와 함께. 인간계의 요괴랑 귀신 잡는 훈련을 좀 다니느라 여기도 참 오랜만에 들른 거 같아. 언제 와 봐도 여긴 정말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이야!"


천유원의 질서를 위해, 자운과 자원이 오더라도 이곳의 모든 선관들과 장수들은 예를 올리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떤 일에도 관심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상제의 규칙이 있었다.


단지 그들을 어릴 때부터 돌보아 온 유란 장군만이, 이곳에 가끔씩 들리는 자운과 자원을 보살펴 주도록 상제가 미리 명을 내려놓았다.


유란을 마주한 자운이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채 어디서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무엇인가 부탁할 때의 인간들의 몸짓을 흉내라도 내듯이, 한 손으로 머리를 긁적거리며 딴전을 피우는 척을 하고 있었다.


“ 공주 전하, 제가 도와드릴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환한 웃음과 함께 옳게 맞추었다는 몸짓으로 가볍게 손뼉을 몇 번 치던 자운이 유란을 향해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오늘 천궁에 중요한 일이 있어서 급하게 다녀와야 하는데, 초대 해줄 신선도 없고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천신부를 부탁드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안 될 거 같고 ... 해서 말이야.

잠시 후 여장 언니들이 천궁의 삼도원에 연꽃을 가져다주러 갈 때에 내가 함께 따라가도 될까?”


이전 호기심 많은 아이였을 적에는 천궁을 구경하고 싶은 생각에, 수시로 여장들을 졸졸 따라다니곤 하였었다.

하지만 호기심이 어느새 지루한 일상이 되자, 그 이후로는 함께 가자고 떼쓰는 일도 전혀 생기지 않았다.


누구보다 중천의 공주를 잘 알고 있는 유란 으로서는 자운의 부탁을 무턱대고 받아들이기도 난처한 노릇이었다.

운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 오래간만에 가려고 하시는데, 상제께 말씀을...”


하지만 오히려 비밀스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 자운이 먼저 대놓고 이야기를 꺼냈다.


“ 풍신과 우신을 만날 거야 ! 이곳 중천에서 그분들을 만나려면 아버님의 생신 때까지 기다리거나, 어쩌다 아버님과 술이 한잔 하고 싶어서 이곳에 직접 들르실 때까지 기다려야 하잖아. 그러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안 돼,

친구가 힘들어 해서 빨리 도와 줘야 하거든. 풍신과 우신께서 도와주실 수 있는 일이지...!"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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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역겁의 운명 22.08.10 36 5 15쪽
34 인간계의 겨울밤 +4 22.08.09 40 6 15쪽
33 신안의 눈으로 22.08.08 43 6 12쪽
32 그대와 함께 새해를 +2 22.08.07 36 5 11쪽
31 고육책 22.08.06 47 5 12쪽
30 상제의 거래 +2 22.08.05 47 6 12쪽
29 천제와 만난 아이들 +2 22.08.04 42 6 13쪽
28 황홀한 전신 +2 22.08.03 47 8 11쪽
27 천계의 태자 +2 22.08.02 43 5 12쪽
26 천계에서 만나자 +4 22.08.01 41 5 12쪽
25 당당이의 전생. 2 22.07.31 39 5 15쪽
24 당당이의 전생 .1 +2 22.07.30 44 5 11쪽
23 망천강의 재회 +2 22.07.29 48 6 14쪽
22 현연의 역겁 +2 22.07.28 37 6 13쪽
21 헤깔린 진실 +2 22.07.27 41 5 13쪽
20 나체귀의 여인 +2 22.07.26 47 5 11쪽
19 정심검의 여인 22.07.25 44 5 12쪽
18 마존의 비 22.07.24 57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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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6화 .. 운우의 역겁 +2 22.07.22 51 8 12쪽
15 15화 .. 구중천에 비가 내리다. 22.07.21 47 8 12쪽
14 14화 .. 당당의 수난 +2 22.07.20 49 8 15쪽
13 13화 .. 귀왕의 귀환 22.07.19 58 9 13쪽
12 12화 .. 우신을 찾아 +4 22.07.18 66 9 12쪽
» 11화 .. 두모의 소원 22.07.17 81 9 13쪽
10 10화 .. 봉인된 아이들 +2 22.07.16 79 9 14쪽
9 9화 .. 만 남 22.07.15 75 9 12쪽
8 8화 .. 해명연에서 태어난 아이들 22.07.14 91 9 12쪽
7 7화 .. 탄 생 +4 22.07.13 99 1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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