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검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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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2.07.03 19:15
최근연재일 :
2022.10.0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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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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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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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2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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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나체귀의 여인

DUMMY

여전히 떨고 있었지만, 그녀가 먼저 말을 꺼내었다.


“... 그러니까... 제가 죽은 건가요...? 그러면 당신은 누구죠? ”


두려운 혼들이 말하는, 그냥 흔하고 평범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나체귀는 의외로 그녀의 말에 어떤 대답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듯 했다.


화려한 몸뚱이가 어리버리한 표정으로 머뭇거리기만 하는 사이, 세오가 헛기침을 하면서 그들의 곁으로 다가왔다.


또 다른 존재에 적잖이 놀란 여인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한 후, 세오가 말을 이었다.


“당신은 무사히 이번 생의 겁을 잘 마쳤고, 이제 삼일후면 다시 중천으로 올라가게 될 겁니다.

마지막으로 이 생에서 삼 일간 가족들 곁에 머물면서,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 주어 질 것이오. 그 후에 다른 이가 와서 당신이 가야할 길을 도와줄 것이니, 그 때까지 너무 먼 곳으로 가서 길을 잃지 않도록 이 근처에서 머물러야 할 것이오.


세오가 여인에게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나체귀는 여전히 그녀의 눈빛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눈길을 계속 의식한 탓인지, 아니면 이제 어느 정도 안정된 그녀의 눈에 나체귀의 남다른 외모가 흥미롭게 인식 되었는지는 몰라도, 아까와는 다르게 여인이 나체귀를 향해 살짝 미소를 지어주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나체귀의 감정이 곤두서 있는 것을 본 세오가 시큰둥한 웃음을 짓더니, 그에게 혼의 전생을 보여주는 작은 거울 하나를 툭하고 던져 주었다.


다행히 거울을 놓치지 않고 받은 나체귀가, 세오에게 인사 한마디도 건넬 사이 없이 여인에게 실례한다는 짧은 한마디와 함께, .그녀의 이마 앞으로 거울을 비추었다.


거울의 빛이 여인의 이마 위를 감싸듯 내려앉자, 여인의 혼도 잠시 잠이든 것처럼 그대로 평온하게 눈을 감아 버렸다.


연이어 이마를 비추던 빛이 반사되어 허공위로 올라간 후, 그녀의 머리위로는 그녀가 소중히 간직했을지도 모를 전생의 기억들이 부분부분 펼쳐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상이 아니라 보는 이에게도 한생의 기억을 온전히 전해주는 능력의 거울이었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나체귀도 그녀가 간직한 모든 기억을 함께 경험해 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부분에서 나체귀가 여인의 기억을 거의 멈춰버릴 듯 아주 천천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천천히 지나가는 기억이, 허공위로 펼쳐 보이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젊고 아름다운 모습의 선남선녀가 화려한 옷을 입고 혼례를 올리며 행복해 하는 모습이 지나가고 있었다,


연이어 나타나는 장면에서는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 방문 밖에서 입술이 새파래진 채로 초조하게 서 있던 젊은이도 보였는데.

잠시 후 방안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첫울음소리를 듣고, 산파의 말도 듣기 전에 방안으로 뛰어 들어가 아이와 여인을 꼬옥 안으며 눈물 짓는 모습이 보여 지고 있었다.


한동안 그녀의 기억을 바라보던 나체귀의 한쪽 밖에 없는 눈동자에서는 그의 살결처럼 맑은 눈물방울이 주루룩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 이내 분노한 표정의 그가, 하얀 연기와 함께 자리를 박차고 사라져 버렸다.


급하게 나체귀를 따라온 세오와 함께, 그들은 깊고 어두운 그늘이 가득한 숲속 한 켠에 도착해 있었다.


아직도 마르지 않는 나체귀의 눈물 자국을 바라보며 세오가 먼저 나직이 말을 건넸다.


“무은, 그녀인가...?”


하지만 나체귀가 힘없이 떨구었던 얼굴을 다시 들어 올렸을 때에는, 반 밖에 보이지 않는 가면 밖으로 드러나는 얼굴빛이, 거의 터져버릴 것만 같은 분노로 상당히 험하고 흉흉한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도대체, 천계 놈들이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절대 그것들을 용서하지 않을 거야!"


... 세오도 그의 심정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때, 그녀가 꽃잎으로 흩어지며 사라져 갈 때, 신선들의 그늘 뒤에서 용서하기 힘든 마음으로 천제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던 때가 잊혀 지지 않았다.


어느새 그의 들썩이는 어깨를 온기 없는 손으로 가만히 다독여 주고 있었다.




해가 저물어 가는 인간계의 하늘아래 지평선 너머로 붉게 번져가던 노을색이 점점 풍성해지더니, 이제 조금씩 위로 타올라 가는 선명한 붉은빛은 세상을 온통 태워버릴 듯이 하늘 위까지 무섭게 번져가고 있었다.


숲의 널찍한 비탈면 위에서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앉아있던 하얗고 검은 사내 둘도, 노을빛에만 온통 신경을 집중한 채 좀 더 말없이 나란히 앉아 있기만 하였다.


어쩌면 이런 상황에서, 딱히 해야 할 말을 찾는다는 것이 어수선한 일일지도 몰랐다.


잠시 후, 세오가 나지막한 소리로 먼저 말문을 열었다.


“ 무은, 자네는 천계 수신의 제자였는데, 수신과 의논해서 자네가 사랑한 여인과의 인연을 부탁 드릴수도 있었지 않았나? 왜 이런 모습으로 숨어 지내는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나체귀가 코웃음을 튕기며 곱지 않은 투로 대답하였다.


“내가 수신의 제자였기 때문에, 겁을 겪기 위해 인간계에 왔을 때에는 나 또한 요절할 운명으로 생의 시간을 받았었지.

인간계에서 한번 맺는 인연에 대한 감정을, 천계 놈들은 한낱 과정과 셈으로만 여길 뿐이었어. 내가 일찍 죽어야 해서 그녀의 남은 생은 내가 함께 저질러 놓은 삶의 무게 때문에 몇 배나 힘들었을 거야!"


잠시 기억을 되짚는 듯 잔뜩 미간 사이를 찌푸리던 그가 급하지 않게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진즉에 그녀와의 인연과 감정에 대해서 수신께 이야기를 했었지. 하지만 수신은 내가 겁의 수행을 끝까지 마무리 하지 못할까봐, 그녀와의 인연이 비껴가도록 무진장 애를 쓰실 뿐이었어...

그녀가 한생을 마무리 하고 다른 혼들과 섞여 다음 생을 받아 나갈 때 까지, 그녀의 흔적조차 찾지 못하도록 나를 내려 보내지 않을 계획이셨지.”


말을 이어가던 나체귀가, 그의 표정처럼 무섭게 물든 허공을 째려보며 분노에 찬 기억을 씹고 있었다.


“수신이 잠시 자리를 비운 날, 몰래 인간계로 내려가 보았지.

그런데 어느새 그녀의 혼은 인간계를 떠나고 우리가 함께 낳은 아이가 벌써 할아버지가 되어서 제 어미와 일찍 요절한 나의 제사를 지내고 있더군.'


나체귀의 이야기에 빠지듯 세오도 열심히 들으며 수긍을 하고 있었다.


“ 이 후에 그녀를 다시 만나지 않고서는, 세상에서 나의 존재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걸 깨달았어. 하지만 이미 그녀의 온전한 혼은 이미 다른 혼과 섞여서 다음 생을 이어가고 있더군.

그래서...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그녀의 혼이 조금이라도 많이 담겨있는 육신을 찾아다니는 거였어.

그녀를 너무 보고 싶었고, 너무 안아보고 싶었거든...

오늘 그 여인의 전생에는,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일들과 함께 민아와 나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담겨 있었어 ...

그래서 너무 화가 났지. 어쩌면 우리의 이 기억들마저도 남에게 빼앗겨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


세오가 조용히 숨을 죽인 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한동안 그의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의아해진 세오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무은...”


나체귀가 아무 말도 잇지 못한 채, 노을빛을 받아 붉어진 가면 아래로 다시 기다란 눈물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수신의 제자였을 때의 그의 이름을 세오가 불렀지만, 그때의 이름과 지금의 그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듯이 나체귀는 눈빛하나 흔들림이 없었다.


잠시 후 작은 울림 같은 그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 가장 한심한 게 뭔지 아나... 규령선관...?"


하지만 세오의 대답을 들을 새도 없이 나체귀가 먼저 말을 꺼내었다.


“나는 그녀를 조금은 알아보겠는데, 혼이 쪼개어진 그녀는 나를 봐도 전혀 기억을 못한다는 거야. 그녀를 세상에서 완전히 잃어버린 거지... 아니, 사실은 길을 잃고 헤매는 그녀를 내가 아직 찾아내지 못하는 미안함에 매일 미칠 것 같은 기분이야!

섞여진 전생의 기억으로 나를 친근함 정도로만 받아들일 뿐, 그녀에게 나에 대한 더 이상의 의미는 이미 존재하지 않아. 하지만, 이건 ... 그녀의 의지가 아닌 거잖아!”


격앙된 소리로 그의 몸이 부르르 떨리자, 마치 백사 한 마리가 독을 품고 움츠러드는 듯한 요염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나의 배꼽 언저리에서 부터 아래로, 세 개의 윤회점이 붉은 빛깔로 선명하게 남아있지.

마치 요녀 같은 문양이라고, 그녀가 내게 놀리곤 했었어. 그래서 이건 내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그녀만이 알아 볼 수 있는 우리의 흔적인 것이지..."


'아, 그래서 이 녀석이 자신을 알아봐 줄 여인을 찾기 위해서, 이렇게 거의 벌거벗고 다녔던 거로군!"


나체귀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정말 그의 배꼽 언저리에서 사타구니 쪽으로 화전처럼 새겨진 붉은 점이 요염한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이런 모습이 애처롭게 보이기까지 하였다.



잠시 후 감정이 조금 누그러진 나체귀가, 눈길은 주지 않은 채 세오에게 말을 건넸다.


“규령 선관, 왜 여기에 앉아있나? ... 내가 들어줄만한 일이 있다는 말인가?"


그의 옆에 나란히 앉아있던 세오가 미소기가 있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놀랍도록 다정한 말투로 그의 말에 대꾸하였다.


“ 나도 같아. 네 마음과...!"


순간 나체귀가 놀란 눈으로 나란히 앉아있는 그를 쳐다보았다.


“뭐가 같아...?"


“ 상제도 나도, 천계의 신선놀음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지! 무엇 때문에 세상을 힘들게 하는지 알 수가 없어.

선이니 악이니... 그런 진실은 어디다 써먹으려고 구분하려고 애쓰는지! 천계가 선과 악의 경계를 강하게 그으니, 악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 아닌가?

... 세상에서 혼들이 선택하고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가도록 세상을 나눠주면 될 것을. 세상을 다 주무르고 싶어 하는 게 천계의 욕심이지!"


뜻밖의 말에 나체귀가 당황하는 눈치였으나, 이미 구중천의 존재라면 마계의 존재 말고는 모두 가식적인 것에 진저리가 나 있는 그로서는,

일개 중천의 선관의 마음 따위에는 자신이 관여 할 일이 아니라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잠시 후, 나체귀가 관심 없다는 듯 자리를 뜨기 위해 일어서자,

옆에서 앉아있던 세오가 급하지 않게 그에게 여전히 다정한 투로 말을 건넸다.


“ 어떻게 할 건데 ?”


“ 뭘?”


“네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이러고 다니는 이유 말이야!"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알 듯 했지만, 나체귀가 별로 동요하지 않는 듯 대꾸하였다.


“쓸어버릴 거야! 천계...”


“어떻게...?”


세오의 눈빛에 기대감이 차오르고 있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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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23.12.21 22:03
    No. 1

    다음화 빨리 넘어오느라 마존과 당당 커플 자주 보고 싶다는 말을 못했어요.ㅎㅎ
    나체귀도 슬픈 사연이 있었군요.ㅠ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4 해품글
    작성일
    23.12.22 02:04
    No. 2

    안녕하세요. 이웃별님!
    모두들 그러하시겠지만, 저도 만월검의 인물들에게 참 마음을 많이 실었었거든요.
    조용하게 사라져가는 존재들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있었는데,
    요즘 별님께서 이들을 다시 살려내 주시는 것 같아, 참 감사한 마음이에요.
    바쁜 일상들 속에서도 늘 챙겨주셔서 감사드려요. 이웃별님~~~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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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상제의 거래 +2 22.08.05 47 6 12쪽
29 천제와 만난 아이들 +2 22.08.04 42 6 13쪽
28 황홀한 전신 +2 22.08.03 47 8 11쪽
27 천계의 태자 +2 22.08.02 44 5 12쪽
26 천계에서 만나자 +4 22.08.01 42 5 12쪽
25 당당이의 전생. 2 22.07.31 39 5 15쪽
24 당당이의 전생 .1 +2 22.07.30 44 5 11쪽
23 망천강의 재회 +2 22.07.29 48 6 14쪽
22 현연의 역겁 +2 22.07.28 37 6 13쪽
21 헤깔린 진실 +2 22.07.27 41 5 13쪽
» 나체귀의 여인 +2 22.07.26 48 5 11쪽
19 정심검의 여인 22.07.25 45 5 12쪽
18 마존의 비 22.07.24 57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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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화 .. 당당의 수난 +2 22.07.20 49 8 15쪽
13 13화 .. 귀왕의 귀환 22.07.19 58 9 13쪽
12 12화 .. 우신을 찾아 +4 22.07.18 66 9 12쪽
11 11화 .. 두모의 소원 22.07.17 81 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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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화 .. 만 남 22.07.15 75 9 12쪽
8 8화 .. 해명연에서 태어난 아이들 22.07.14 91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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