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검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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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2.07.03 19:15
최근연재일 :
2022.10.09 17:30
연재수 :
9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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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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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31,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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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2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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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정심검의 여인

DUMMY

자운의 기대에 벅찬 환호 소리가, 벼랑 끝에서 동해바다 끝까지 들썩거리며 뻗어나가고 있었다.


환영처럼 거대하고 기다란 오색 무지개가 정말 하늘 끝에서 조금씩 자라나오더니, 이내 동해 바닷물 속으로 꽂히며 더 깊이 내려가고 있었다.


“ 됐어. 됐어!.”


폴짝거리며 그녀가 뛰어오르자, 잠시 잠잠해져 있던 소당이도 그녀의 함성소리를 따라 다시 폴짝 거리며 함께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저 아이가 정말 마계와 이어질 운명인 건지, 아니면 정심검이 저도 모르게 잠시 헷갈린 선택을 해 버린 건지 ... 알 수가 없구나!

만약에 정심검의 바뀔 수도 있는 선택이라면, 본존의 마음에 더 큰 상심이 자리 잡기 전에, 빨리 어떻게 좀 아니라고 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저 커다란 검은 개도 빨리 정신을 좀 차려야 할 것 같고..."


하늘 까지도 뒤 흔들어 버릴 것 같은 자운의 외침 속에서 자잘하게 중얼거리는 그의 말소리는, 어느 누구의 귓속으로도 들어가지 못한 채 맑게 갠 세상 속에서 그저 둥둥 떠다니고만 있었다.


그와 진소만 빼고는 아직도 모두들 즐거워만 하고 있는 중이었다. 뛰고, 돌고...


하지만, 정심검이 선택한 인연이 세상에 존재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제 그의 주군은 보천귀장의 엄청난 힘을 제대로 부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기에, 사실 진소 또한 이 순간이 너무 벅차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진소는, 마존과는 다르게 상대가 누구든 상관이 없었다.



****



마계에서도 유일하게 영선강물이 흐르는 곳이 있었다.


천계의 혈족이니 만큼, 그는 신성한 강물이 흐르는 이 기운이 참 평안했고, 강물이 흘러가는 마궁의 가장 깊고 조용한 곳에, 몇 겹의 대나무 숲을 둘러치고 은밀하게 그의 별채를 두고 있었다.


짙은 검은색으로 정갈하게 쓰여 진 '파한정' 이라는 현판 아래로, 넓지 않지만 인간계의 모양과 많이 닮은 소소한 터와 집채가 깨끗한 마당과 어울리는 모양으로 소담스럽게 놓여 있었다.


옆으로는 영선강물로 이루어진 작은 폭포수의 시원한 물줄기 소리가 그의 기분에 따라 들리기도 하고 잠잠하기도 하였고,

대나무 숲 안에서 일어난 바람소리가 숲 머리를 흩으며, 한번씩 '쏴아-' 하고 흘러 다니고 있었다.


마계의 주인인 그는 오늘도 파한정의 마당이 내려다보이는 기다란 대청마루에 기대어 앉아, 마당에서 뜀박질에 여념이 없는 당당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부터 마당에 떠다니는 작은 꽃잎을 잡아보겠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큰 입으로 허공을 물어뜯듯 입질할 때면 입안에 고여 있던 끈적한 침까지 붉은 혀를 타고 한줄기씩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한참동안 당당의 이런 모양을 바라보던 마존이, 쏟아지는 한숨과 함께 그에게 뭐라고 중얼 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 육중하고 험상궂게 생긴 지옥의 개는 지금 그의 눈앞을 자극하며 날아다니는 꽃잎을 막아서는 그 어떤 것에도, 마음을 줄 여력이 없어 보였다.


“당당아, 마당에 침 떨어진다. 그 소선 앞에서는 잘도 작아지더니만, 여기서도 좀 작아져서 놀아라. 귀여운 맛이 있어야지, 원...

요 며칠간 가만히 지켜보니, 당당이 너는 본존보다 그 싸움쟁이 소선을 더 좋아 하는 거 같아. 아무래도 그리 보내버리던지 해야겠어."


팔베개를 두르며 천장을 바라보던 마존이, 순간 어깨 아래로 느껴지는 끈적한 감촉에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 당당. 너 !”


어느새 그의 주인 옆으로 달려온 당당이, 마존의 옆에 버티고 서서 여전히 마르지 않은 침을 그의 팔뚝위로 뚝뚝 떨구고 있었다.


마존이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덩치 큰 검은 개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당당이와 함께 짧은 대화가 오고 갔다.


“뭐라고, 좋다고...? 중천으로 보내주는 거?"


마존을 바라보는 당당의 눈빛은 기대감에 반짝이며, 오히려 그의 말을 부추기는 듯이 앞발로 바닥을 탁탁 두드리기까지 하였다.


“한량이 !"


하지만 잠시 후, 가까이 다가온 당당에게 더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며 마존이 진지하게 말을 건넸다.


“어차피 네가 모시는 주인은 본존이니까, 우린 한 배를 탄 셈이지.

그 아이가 정말 정심검의 주인이라면, 네가 그 아이에게 관심을 받을수록 어쩌면 마계를 위해서는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상제의 딸이면서, 그녀의 몸에 현빙화의 원신이 발현되어 있는 거지? 당당, 넌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의 물음에, 당당이 내력을 이용해 마존에게 답을 보내기 시작했다.


‘청룡의 원신이 깃 들었을 지도 모른다고...? 오랜 세월전의 선대에선 청룡이 현무와 함께 마계의 원신 이었다고...? 죽음의 시작을 관여하는 현무와, 죽음이 끝난 후 생명의 시작에 관여하는 청룡...시작과 끝의 순환을 연결하는 두 원신...?’


“그런데 언제부터였지? 청룡의 원신이 마계를 떠난 것이...!"


마존이 당당의 말에 관심을 드러내며 진중하게 다시 물었다.


‘현무가 혼들의 죽음과 소멸에 너무 많은 사심을 드러내며 주화입마... 원신이 소멸하기 전, 스스로의 혼을 쪼개어 마계의 후손들에게 스며들었다고... 그래서, 그 이후로 마족은 잔인하고 어두운 존재들로 변화되었고, 청룡은 천계와 중천에 존재하는 다른 룡의 원신과 더불어 구중천을 지키기 위한 오룡 광진의 일부가 되기로 하였다고?’


많은 이야기를 전하는 과정에서 당당의 기력이 상당히 약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신수는 그들의 마음을 전하려 할 때에 그들이 쌓아온 내력을 소진하면서 마음을 대화로 변환시켜 전달할 수 있었다. 깜짝 놀란 마존이 당당의 눈을 두 손으로 얼른 가리며 목덜미를 안고 쓰다듬어 주었다.


“당당 그만 하거라! 충분하다. 어찌되었든 지금이 중요한 거지. 과거 따위가 대수냐!"


쓸어안던 목덜미를 놓아주며 당당이 흘리는 침에 무심한 듯, 마존이 웃음 지며 당당을 바라보았다.


“마계를 위해서 본존이 보천귀장을 온전하게 사용하려면 정심검을 다룰 인연이 필요하긴 하지. 더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인이 나타난다면야 더없이 감사할 일이겠지만...

너무 모습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 만난 인연이라도 더없이 감사해야 한다는 걸 어찌 모르겠느냐...!

하지만... 그녀를 봐서 알지 않으냐!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정심검을 받을수 있는 능력이, 정말 가능하기나 할지...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될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운명이라고 하더라도, 정심검을 받아들여야 할 이의 마음이 각성되지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마존이 당당을 바라보았다.


“ 지금 그녀의 성품으로 보면, 시간이 꽤 많이 걸릴 것 같아. 각성을 하는 날이 오기는 올까...?

그러니까, 당당이 네가 큰일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엇보다 먼저 중천의 공주와 가까워지려면, 우리가 그녀의 마음에 들게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겠지?”


당당이 쇠해가던 기력을 다스리느라,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린 채로 귀만 쫑긋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이 즐겁다는 듯, 무겁고 굵은 꼬리를 바닥에 닿이도록 탁탁- 소리를 내며 신이 나서 열심히 흔들고 있었다.




****




한 생 동안 많은 덕을 베풀던 노부인의 죽음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그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서 그녀의 집 마당을 메우고 대문 밖까지 성시를 이루며 슬픈 곡성으로 주변을 가득 에워싸고 있었다.


인간들이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공간에서는, 한참 전부터 이곳에 먼저 도착해 있던 나체귀가 혼의 이탈을 먼저 확인하기 위해, 주검주변을 서성이며 핏기 없이 쪼글해진 여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수려한 외모와는 다르게, 한 쪽 뿐인 눈매에서는 동공의 흔들림마저 느껴질 정도로 딱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오만 년 전 규령 선관과의 만남으로 소귀들에게 뜯겨진 상처는 귀왕의 도움으로 많은 부분이 소멸되지 않고 보존 될 수 있었지만, 감정이 모여 있는 얼굴부분은 완전히 회복이 되지 못한 채, 영원히 뚫려진 채로 남아 있어야 했다.


그렇게 얼마 후, 소멸되지 않고 남은 부분사이로 흉물스럽게 뚫려 진 부분을 가리기위해, 나체귀의 추종귀들은 그의 피부색과 어울리는 하얀색의 가면을 만들기 위해 몇 백 년의 달빛을 모으고 가두어 귀성으로 얽어맨 가면을 만들었고,

그의 몸매와 어울리는 달빛가면으로 덮여진 얼굴모양은 더욱 신비스럽고 요염한 자태마저 만들어 내고 있었다.


“여전히 주검 주위를 서성이고 있구만. 나체귀신!"


놀란 표정의 나체귀가 신경질적으로 돌아보자,

언제부터 그 곳에 서 있었는지, 세오가 벽 모퉁이에 서서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규령 선관, 웬 일 이신가? 늘 함께 다니던 지체 높으신 상선께서는 오래전에 구중천에서 쫓겨난 걸로 아는데, 요즘은 혼자 다니시는가?”


그와 마주한 세오의 두 주먹과 눈자위에 힘이 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힘들게 감정을 억누르는 모습을 보아하니, 그가 애써 참고 있는 이유가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나체귀가 여전히 세오의 감정 선을 부추기고 있는 사이에, 한편에서 망자를 안내하기 위해 도착한 규령 선관 둘이, 하얀 연기에 싸여 흐물흐물 나타나고 있었다.


동시에 나체귀가 벽장 옆으로 재주 좋게 몸을 붙이며 흔적도 없이 존재를 감추어 버리자, 세오를 보며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다가와 인사를 하는 규령 선관에게 세오가 먼저 말을 건넸다.


“ 지나는 길에 인간들이 하도 많이 모여 들 기에, 어떤 혼인지 궁금해서 들어와 보았네. 내가 조금 더 있다가, 저 혼이 각성하면 삼 일간 이곳에 머무르라고 얘기할 것이니, 지금은 갔다가 삼일 후에 다시 와서 마무리를 해 주게.”


상제의 오랜 벗이자 중천의 태자와 공주의 사부이기도 한 세오의 말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이 바로 사라져 버리자, 벽처럼 붙어 있던 나체귀가 다시 떨어져 나와 세오 앞으로 다가섰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처음부터 그의 신경은 늦가을 풀처럼 푸석하고 쪼글해진 모습으로 관속에 누워있는 여인에게로 온통 쏠려 있었다.


잠시 후 여인의 육체에서 약한 빛이 발현되는가 싶더니, 주검 속에 갇혀있던 여인의 혼이 몸 밖으로 당겨지듯이 느릿느릿 일어서는 것이 보였다.


몸 밖으로 나온 그녀는 서서히 젊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변한 후, 두려운 눈길로 주변을 둘러보며 잠시 온몸을 떨었다.

그리고는 여전히 두려움과 혼란이 가득한 눈빛으로 관속에 누워 있는 그녀의 육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녀가 하는 대로 잠시 바라보던 나체귀가 조심스럽게 그녀 앞으로 다가가더니, 애처로울 만큼 긴장한 모습으로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민아...”


하지만 갑작스런 존재에 놀란 여인의 혼은, 그에게서 조금씩 비켜나며 뒷걸음질만 몇 번을 칠 뿐이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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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역겁의 운명 22.08.10 36 5 15쪽
34 인간계의 겨울밤 +4 22.08.09 40 6 15쪽
33 신안의 눈으로 22.08.08 43 6 12쪽
32 그대와 함께 새해를 +2 22.08.07 36 5 11쪽
31 고육책 22.08.06 47 5 12쪽
30 상제의 거래 +2 22.08.05 47 6 12쪽
29 천제와 만난 아이들 +2 22.08.04 42 6 13쪽
28 황홀한 전신 +2 22.08.03 47 8 11쪽
27 천계의 태자 +2 22.08.02 43 5 12쪽
26 천계에서 만나자 +4 22.08.01 41 5 12쪽
25 당당이의 전생. 2 22.07.31 39 5 15쪽
24 당당이의 전생 .1 +2 22.07.30 44 5 11쪽
23 망천강의 재회 +2 22.07.29 48 6 14쪽
22 현연의 역겁 +2 22.07.28 37 6 13쪽
21 헤깔린 진실 +2 22.07.27 41 5 13쪽
20 나체귀의 여인 +2 22.07.26 47 5 11쪽
» 정심검의 여인 22.07.25 45 5 12쪽
18 마존의 비 22.07.24 57 5 13쪽
17 17화 .. 어쩌다 우정 +2 22.07.23 45 6 13쪽
16 16화 .. 운우의 역겁 +2 22.07.22 52 8 12쪽
15 15화 .. 구중천에 비가 내리다. 22.07.21 47 8 12쪽
14 14화 .. 당당의 수난 +2 22.07.20 49 8 15쪽
13 13화 .. 귀왕의 귀환 22.07.19 58 9 13쪽
12 12화 .. 우신을 찾아 +4 22.07.18 66 9 12쪽
11 11화 .. 두모의 소원 22.07.17 81 9 13쪽
10 10화 .. 봉인된 아이들 +2 22.07.16 79 9 14쪽
9 9화 .. 만 남 22.07.15 75 9 12쪽
8 8화 .. 해명연에서 태어난 아이들 22.07.14 91 9 12쪽
7 7화 .. 탄 생 +4 22.07.13 99 1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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