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월검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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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2.07.03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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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0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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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2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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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 운우의 역겁

DUMMY

자영이 옥호를 떠난 오만 년 가까이, 중천의 해선궁에서는 그 어떤 손님과 함께라도 옥호는 한번도 함께 술잔을 기울이거나 웃음꽃을 피워 본 적이 없었다.


중천을 찾아 온 손님들은 맑은 찻물과 단아한 간식을 함께 한 후에, 언제나 차분한 미소정도를 잃지 않는 옥호의 배웅을 받으며 중천 문턱을 나서는 정도의 대접을 받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날 찾아온 운우와 선풍 상신과 함께 옥호는 구름이 내려다보이는 수월청석 위에서 술잔을 두고, 이들과 다정하게 마주앉아 있었다.


이제 부쩍 늘어버린 주름살의 골이 더 짙어지도록, 옥호도 이 날 만큼은 주저 없이 술잔을 기울이며 큰 웃음소리를 구름위로 마음껏 흘려보내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사제지간으로 지내며 함께 해 온 시간 속에서는, 자영도 있었고 그도 천제도 그냥 풋내기 소선들의 모습이었다.

그때의 소선과 같은 해 맑은 웃음기를 띠며 한껏 상기된 목소리로 선풍이 큰 소리로 떠들어대고 있었다.


“옥호 사형, 천제께서는 소선이셨을 때부터 자영의 환심을 사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자영의 마음속엔 언제나 옥호사형밖에 없었는데 말이죠!"


작은 한마디에도 술잔을 앞에 둔 이들은 항상 웃어 줄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사형의 그림자가 저 만치라도 보일라치면, 영아는 어떤 순간이어도 모두 다 내팽개치고 사형에게 달려 갔었으니까요!"


이번엔 운우가 영선강 상류의 물로 빚은 옥주를 한 모금 마시며 주정처럼 기분 좋게 이야기 하였다.


“맞아, 그때 천제께서 직접 복사꽃 죽을 만들었다며, 화원에서 죽 그릇을 건네고 있을 때였지. 자영이 한입 떠먹으려고 하는 순간, 하필이면 옥호사형이 그 근처까지 날아온 연줄을 잡는다고 뛰어가고 있는 걸 보고 말았거든요.

그리고는 바로 죽 그릇을 천제의 두 손에 다시 쥐어준 채로, 영이는 옥호사형과 함께 소리 지르며 연줄을 잡으러 달려가고 말았었죠.

아... 그때. 뛰어가는 자영의 뒷모습만 망연히 바라보면서 죽 그릇을 들고 계시던 천제의 모습은, 정말... 그때는 자영이 너무한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선풍도 운우의 말을 거들며, 모두 즐겁게 옛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자영이 곁에 없는 이후로 옥호는 결코 큰 웃음을 짓지 않았다. 아니 웃음을 지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꽃의 정령이랍시고, 외롭게 세상을 떠돌며 이런 옛 기억들은 모두 잊은 채로 지내야 하는 그녀가 너무나 가슴 저렸기 때문 이었다.


오늘은, 그리고 내일은, 세상 어느 곳에서 어떤 꽃들에 깃들어 홀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지 ... 잠시도 그녀를 마음속에서 비우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하지만 옥호는 이제 다시 그녀를 위해서 웃는 연습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자영의 이야기에 어두워지는 옥호의 표정을 읽은 두 상신도 이제 옛 이야기는 두고, 술맛이 참 좋다는 말만 연발하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옥호가 방금 전까지와는 사뭇 다른 진중함이 가득한 얼굴로, 차분히 예를 갖추고 두 상신을 올려보았다.


“운우 상신. 이번에 인간계에 큰 비가 온 것이, 우리 운이가 두 분을 난처하게 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 얼마 전 유란 장군에게 사실을 전해 들었네.

이 일로 천제께 야단까지 맞고 인간계로 내려가는 겁운까지 받았다고 하던데, 자식을 잘 가르치지 못한 내 탓인 듯해서 정말 미안한 마음뿐이네!"


이 말에 운우가 반쯤 일어나 엉거주춤 앉은 모양으로, 옥호에게 격렬하게 두 손을 휘저었다.


"아니에요 옥호사형. 천제께서도 아마 요즘 제가 선풍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일을 하는 꼴이 하도 답답해 보이니까,

이 참에 선풍과 좀 떨어져서 저라도 세상의 흐름을 제대로 배우고 와서, 일 좀 똑바로 하라는 의미로 내려 보내시는 거죠!"


술기운이 기분 좋게 오른 선풍은 운우의 어떤 말에도 맹하게 웃으며 넉살좋은 표정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천제 앞에서도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네. 자영과 나의 아이라는 사실은 주원 상선과 자네들만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알고 있는 비밀이지. 끝까지 약속을 지켜 주어서 정말 고맙네!"


“사형께서 먼저 저희들을 믿고 이야기를 해 주신 터에 알게 된 일을, 어떻게 함부로 이야기를 꺼낼 수가 있나요! 그리고 이번에 마침 운이가 저희를 찾아온 직후에 내린 비여서 그런 것이지, 원래 그 지역에 내려야 할 비가 줄을 서고 있던 참이었어요.

어쩌면 이번의 이 사달은 선풍 상신이 옆에서 제 판단에 이상한 바람을 넣어서 그런 거죠..

... 선풍 상신은 겁운을 겪어도 왜 나아지는 게 없는지 모르겠어요!"


운우가 선풍의 옆구리까지 쿡쿡 찔러가며 얘기하자, 선풍이 허리를 옆으로 비틀어대며 대신 그녀가 없는 동안에 비바람을 함께 잘 다스릴 거라고 콧소리를 가득 담아 웅얼거리고 있었다.


“이번에 가면 한동안 만나지 못 하겠구나 운우...!"


유일한 벗을 또 떠나보내는 허전함은 옥호를 또다시 어두운 표정으로 몰아넣었다.


“ 저는 인간의 희노애락과 인연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날씨를 이해하기위해 가는 것이니, 인간이 고집이 생기기 시작하는 삼십대 이후의 삶은 생략한 채, 일곱 번의 세상을 윤회할거에요.

그러니까, 인간으로는 계속 요절 할 것이라는 거죠. 이곳의 하루가 인간계의 일 년이니 이백 여일 이후면 다시 돌아 올 테니까, 좋은 술이나 준비해서 맞아 주세요. 사형 !'


운우가 옥호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선대 우신께서 저를 가르치실 때 이야기 하곤 하셨어요.

같은 비라고 하더라도, 이 편에는 달게 마시는 감로수가 되어도 저 편에서는 그 물에 빠져죽을 수도 있으니, 한쪽이 기쁘면 한쪽이 슬픈 것도 돌고 도는 것이어서 모두가 이롭도록 하려는 것도 욕심일 수 있다고요.

세상에 완벽한 조화는 없으니 조화롭지 못한 조화를 깨달아야 해요. 그건 앉아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니, 직접 내려가서 배우고 와야 하겠죠...!"


운우의 광활하게 넓은 마음에 선풍이 감탄에 마지않는 표정으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래도 허전한 마음은 선풍이 더 했는지, 이내 돌아서 콧물까지 훌쩍이고 있었다.


“... 운우, 한 번의 생이 끝날 때마다 선인들은 망천강을 건너면서 전생의 삶을 각성하게 되지. 당신이 망천강을 건널 때면 내가 언제나 마중 나가서 기다리도록 하겠소!"


운우가 기특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선풍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



회마곡에서도 가장 음습한 기운이 가득 고여있는 곳에는, 땅 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나는 검 붉은빛의 용암천이 호수처럼 가득 고여진 채, 항상 풍요롭게 출렁거리고 있었다.


지옥의 불구덩이와도 같은 뜨거운 용천위로는 거대한 낡은 새장과도 같은 것이 드문드문 걸려있었고, 끊임없이 이어지던 비명소리가 끊어진 창살에서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육체들이 익어가며, 모락모락 김으로 피어오르는 곳도 있었다.


이 낡고 거대한 새장의 색이 원래부터 검은색인지 붉은색인지 알 수조차 없는 창살 속에서는 검 붉은색의 무언가가 끊임없이 눅눅하고 천천히 흘러 내리고 있었다.


이 모양을 멀리서 흡족하게 바라보던 이가, 그의 앞에서 무표정하게 서 있는 어린 소년을 뿌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녕아, 고생이 많았구나! 이 정도라면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많은 양의 선기가 금방 거둬 지겠어!"


흡족해 하는 그의 표정과는 다르게, 총명한 눈빛의 소년은 칭찬이 무색할 만큼 얼굴색 하나 변함이 없이 서서 그의 말에 대답했다.


“귀왕. 조금 전 소식에 의하면, 천계의 우신인 운우 상신이 곧 겁운을 겪기 위해 인간계로 내려온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간계에서 상신들은 일찍 생을 마칠 운명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빠른 시간 안에 상신의 흔적을 찾지 못하면 또다시 한 생을 시작할 시간을 기다려야하니, 점점 찾아낼 시간이 길어 질 것입니다."


그의 말에 귀왕의 눈빛에도 용천이 흐르는 것처럼, 뜨거운 사악함이 꿈틀 거리며 기어 다니는 듯하였다.


“아녕아, 자성의 별이 구중천에 가로놓이기 전에 우리의 일이 순조롭게 준비되어야 한다. 앞으로의 모든 일은 무조건 너의 계획대로 믿고 따르도록 할 테니, 차질 없이 잘 진행되도록 하여라!"


머리를 조아리며 소년이 감사하다는 말을 표하였다.


“천계 놈들에 의해 저의 형님께서 무진해의 감옥으로 끌려가시기 전에 남겨주신 천계의 신물 보명경이 있으니, 인간계에서 우신의 자취를 찾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래! 그래... 녀석, 참...!"


귀왕의 음습하고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회마곡 동굴 안을 한동안 휘젓고 다녔다.


천계의 망천강을 건너기 위해 도달하는 혼들 중에서는, 신선들의 맑은 혼을 보고 매혹된 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따라 올라온 떠돌이 혼들이, 적지 않게 섞여 있었다.


천계의 몇 되지 않는 상신들이야, 그들의 선기와 얼굴만 보아도 누군지 금방 알아보고 머리를 조아릴 수 있었지만,

일개 망천강의 선관이 구중천의 그 많은 선인들의 선기와 모습들마저도 다 기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선인이 아닌 혼들은 보명경을 통과하면서 망천강을 건너기 전에 걸러졌고, 걸러진 혼들은 따로 모아서 중천으로 보내어 다시 제자리를 찾게 해 주어야 했다.


만약 망천강지기 선관의 실수로 그냥 따라온 떠돌이 혼이 망천강을 선인과 함께 건너게 되면, 다시 역겁을 겪기 위해 인간계로 내려가는 선인들의 혼들에 섞여 그들이 역겁을 이루는데 심마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망천강의 선관으로 일을 하던 아이의 형은,

딸려온 떠돌이 혼의 유혹에 못 이기고, 걸러진 혼들을 모아둔 호리병안의 혼들을 섭취해 내력을 키운 죄로, 천계의 지옥인 무진해로 끌려가 버렸다.


잠시 후, 나직한 말투로 마왕이 소년에게 물었다.


“아녕아, 너의 소식통은 신기할 만큼 빠르고 정확하더구나! 본 왕이 놀랄 정도지. 어떻게 그게 가능한 것이냐?”


그의 물음에 이번에도 소년은 별거 아니라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하였다.


“인간계의 겁운을 거친 혼들은, 한번 맺어진 인연에 의한 감정으로 스스로에게 굴레를 만들어 버립니다.

절대 빨리 떼어내지 못하죠. 인간들의 감정은 강하고 드세지만, 그것 때문에 그들을 약하게 만듭니다.

겁운을 마치고 돌아가는 선계의 혼 들을 찾아, 그들의 마음을 자극 하기만 하면 ... "


꼿꼿하게 서서 또박또박 말을 잇고 있는, 이 꼬마악귀 같은 아이를 귀왕이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천계에도 이런 악독한 마성을 가진 녀석들이 있다니!! 하얀 옷을 걸치고 안으로 숨기고 있을 뿐이지. 마계처럼 겉으로 드러낼 용기도 없는 더 지독하고 음흉한 녀석들이야!'


"... 그래서 ..."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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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23.12.19 19:05
    No. 1

    그럼 두모 선인은 무지개를 못 보았을까요? 다른 곳에서 보았을 거라 믿어봅니다^^
    죽 그릇을 다시 건네주고 뛰어가는 자영을 보니 운이가 어릴 적 엄마를 꼭 닮은 것 같아요. 천진난만. 솔직. ^-^*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4 해품글
    작성일
    23.12.20 00:54
    No. 2

    안녕하세요. 이웃별님~
    다시 차가운 새벽이 시작되었습니다.
    덕분에 전 따뜻하게 앉아, 쑥스럽게 지난 글을 들추어보고 있구요.^^
    두모 선인은 무지개를 곧 보게 될 것이에요.
    운이가 해 내는 것이죠~
    오늘도 이웃별님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감사한 밤이 되었습니다.
    편한 밤 되세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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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검의 연인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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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엇갈린 마음 +2 22.08.11 49 5 14쪽
35 역겁의 운명 22.08.10 36 5 15쪽
34 인간계의 겨울밤 +4 22.08.09 40 6 15쪽
33 신안의 눈으로 22.08.08 43 6 12쪽
32 그대와 함께 새해를 +2 22.08.07 36 5 11쪽
31 고육책 22.08.06 47 5 12쪽
30 상제의 거래 +2 22.08.05 47 6 12쪽
29 천제와 만난 아이들 +2 22.08.04 42 6 13쪽
28 황홀한 전신 +2 22.08.03 47 8 11쪽
27 천계의 태자 +2 22.08.02 43 5 12쪽
26 천계에서 만나자 +4 22.08.01 41 5 12쪽
25 당당이의 전생. 2 22.07.31 39 5 15쪽
24 당당이의 전생 .1 +2 22.07.30 44 5 11쪽
23 망천강의 재회 +2 22.07.29 48 6 14쪽
22 현연의 역겁 +2 22.07.28 37 6 13쪽
21 헤깔린 진실 +2 22.07.27 41 5 13쪽
20 나체귀의 여인 +2 22.07.26 47 5 11쪽
19 정심검의 여인 22.07.25 44 5 12쪽
18 마존의 비 22.07.24 57 5 13쪽
17 17화 .. 어쩌다 우정 +2 22.07.23 45 6 13쪽
» 16화 .. 운우의 역겁 +2 22.07.22 52 8 12쪽
15 15화 .. 구중천에 비가 내리다. 22.07.21 47 8 12쪽
14 14화 .. 당당의 수난 +2 22.07.20 49 8 15쪽
13 13화 .. 귀왕의 귀환 22.07.19 58 9 13쪽
12 12화 .. 우신을 찾아 +4 22.07.18 66 9 12쪽
11 11화 .. 두모의 소원 22.07.17 81 9 13쪽
10 10화 .. 봉인된 아이들 +2 22.07.16 79 9 14쪽
9 9화 .. 만 남 22.07.15 75 9 12쪽
8 8화 .. 해명연에서 태어난 아이들 22.07.14 91 9 12쪽
7 7화 .. 탄 생 +4 22.07.13 99 1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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