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게임 속 나혼자 플레이어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이찬솔
작품등록일 :
2022.09.15 01:46
최근연재일 :
2024.04.20 20:15
연재수 :
122 회
조회수 :
53,868
추천수 :
1,137
글자수 :
928,341

작성
22.09.30 20:10
조회
887
추천
15
글자
19쪽

메인퀘스트

DUMMY

강한 플레이어가 사냥터에서 사냥 자리를 옮기는 경우는 자기가 그러고 싶은 경우뿐이다.

이제 여기가 싫으니 딴 데 가야지, 하는 경우가 아니면 강자는 사냥하는 그 자리에서 쭉 사냥을 하는 것이다.


남에 의해서 자리를 옮기는 이는 약한 자였다.


사냥터가 아무리 드넓다고 한들 몬스터 젠이 잘 되는 곳, 아이템 드랍이 잘 되는 것 같은 곳, 내 마음에 드는 곳은 한정되어 있었다.

사냥하고 싶은 포인트가 저마다 있는 법이고 포인트를 옮겨야 하는 건 대개 타의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보통 약한 자가 사냥터 자리를 옮기게 되는 건 죽어서 옮기게 되지.


동훈은 문신남을 잠시 노려보다가 그쪽을 향해 손짓해 주의를 끌었다.

자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문신남이 누가 손짓하는 방향, 동훈 쪽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동훈은 그를 불렀다.


“어이, 거기.”


동훈의 돌발 행동에 창식은 깜짝 놀라 옆에서 속삭였다.


“야, 야. 뭐해. 저 새끼 뒤 없는 양아치야. 쟤는 깜빵 예정이라고. 괜히 엮이면 피곤해져.”


동훈을 발견한 문신남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드르륵! 콰당!


의자가 밀려나다 뒤로 넘어져 큰 소리가 났다.

동훈을 알아본 문신남은 동훈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외마디 비명처럼 소리쳤다.


“씨발, 너, 너 낮에 피씨방!”


젊은이 셋. 문신남과 빼빼 마른 양아치 멸치남,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화장을 덕지덕지 칠한 여자 양아치까지.

의자에 발을 올리고, 유독 쓰레기가 많고, 종업원을 함부로 대하고, 많은 사람 앞에서 소리높여 욕을 내지르는 행태들은 외적인 게 아니라 내적으로 그들이 양아치임을 보여줬다.


‘빡치네. 저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양아치들이.’


동훈은 그들이 양아치라서 분노하는 게 아니었다.


친구의 일터에서 소란을 피웠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횡액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기분이라 꼭 그 복수를 해주고 싶었다.


동훈은 저벅저벅 걸어 문신남의 테이블을 향해 걸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호기롭게 소리쳤던 문신남의 눈동자에 두려움이 어렸다.


“예, 우리 또 뵙죠? 피씨방에서도 시끄러우시더니 술집에서도 시끄러우시네. 들어보니 도서관에서도 시끄러우시다고?”


동훈의 툭툭 던지는 듯한 불손한 존댓말은 듣기에 따라 섬뜩한 느낌을 줬다.


“그게, 그게 너랑 뭔 상관인데? 씨발, 피씨방에선 내가 당황해서 물러났는데 너 잘 만났다. 다시 떠! 다시 뜨자고!”


친구들이 옆에 있다. 어린 양아치에게 그 사실은 허세를 부릴 충분한 이유였다.


문신남은 낮에 배웠던 교훈은 다 잊어버린 건지 동훈을 향해 억세게 뻗댔다.

동훈으로서는 오히려 좋았다. 놈이 도망가버리는 게 동훈이 걱정하던 상황이었다.


“잠깐 나가실까요? 사람 많으니 나가서 얘기 좀 하고 오시죠?”


동훈의 말에 놀란 건 문신남뿐만이 아니었다. 옆에 있던 창식은 동훈의 말에 놀라 그의 소매를 잡고 작게 속삭일 정도였다.


“야... 동훈아, 너 왜 그래.”


동훈은 소매를 잡은 창식의 손을 떼어내며 말했다.


“창식아, 잠깐만 기다려라. 얼른 쇼부 보고 올라니까. 뭘 멀리까지 가서 술 마시려 그래. 기왕 여기 온 거 여기서 마시면 좋지 않겠냐.”


사냥터 자리는 강자의 것이야, 약자 때문에 사냥터 자리를 피한다는 건 세상 거꾸로 가는 거 아니겠냐?

동훈은 창식을 안심시키는 미소를 짓자 창식 역시 한발 물러섰다.


“아니, 자리 옮겨도 돼. 진짜 너 곤란해지는 거 싫어서 그래.”


창식의 마지막 권유에 동훈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괜찮아. 얼른 다녀올게. 앉아서 뭐 좀 시켜놔라. 배고프네.”


동훈은 양아치 일행을 이끌고 계단을 내려갔다.


‘낮에는 운 좋아서 손목 잡았던 거지, 먼저 패면 그만이야. 선빵필승. 개새끼, 넌 죽었어.’

‘우리 형님이 고등학교 때부터 주먹으로 전국구셨는데 저 꼰대는 뭐야? 사람 하나 존나 패겠구나. 나도 껴서 스트레스나 풀어야지.’

‘저 꼰대 지갑에는 돈 좀 있으려나? 생로랑 신상 지갑 사고 싶었는데 잘됐다.’


낮에는 당황해서 힘을 못 쓴 것뿐이라고 자기 암시하며 자못 당당한 걸음걸이로 동훈과 함께 가게에서 나와 골목으로 들어간 문신남과 그의 일행.


잠시 뒤 가게 옆 골목에선,


짜악! 짜악! 짜악!


“아악! 악! 악!”


어느새 뺨이 퉁퉁 분 양아치는 부어오른 뺨 사이로 땀처럼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비명만 질렀다.


얼마나 맞았지? 언제까지 맞는 거지?


문신남은 호기롭게 나온 것과는 다르게 동훈을 한 대도 때리지 못했다. 게임 모드를 킨 동훈은 문신남의 공격을 맞아주지 않았다.

마치 AC가 높으면 공격을 맞지 않는 더 벨룸의 법칙처럼 문신남의 공격은 동훈에게 전혀 닿지 않았다.


여지껏 맞는 문신남과 이미 충분히 맞고 양손 머리 위로 든 채 벌서는 그의 일행은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에서 처량하게 떨었다. 밤의 추위보다 두려움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문신남의 온몸을 골고루 때리며 현실에서도 전투 감각을 몸에 익히던 동훈은 그의 몸이 정신을 잃으려 이완될 때쯤 때리는 걸 멈췄다.

게임 모드로 말미암은 전투 감각은 실전을 통해 천천히 동훈의 몸에 자리 잡았다.


“잠시 쉴까요, 우리?”


동훈은 하도 맞아서 말도 못 하는 문신남을 위해 잠시 기다려줬다. 쉬는 시간을 통해 그가 회복할 수 있도록.


기껏 이렇게 흠씬 주물러줬는데 정작 동훈이 하고 싶은 말을 못 알아들으면 그만한 손해가 없지 않은가.

잠시 시간이 흘러 적어도 입 벌려 말할 수 있는 정도, 귀가 열려 들을 준비가 된 정도에 이르러서 동훈은 문신남의 덜미를 잡아챘다.


그만 맞는다는 안도감에 물렁해진 문신남의 몸이 긴장으로 바짝 굳었다. 그는 손까지 모아 싹싹 빌며 애원했다.


“죄, 죄송합니다. 그게 아니라. 오햅니다, 오해. 죄송합니다, 형님. 제발.”


죄송이고 나발이고 동훈은 그런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니었다. 이 친구를 완전히 굴복시켰다는 만족감도,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우월감도 동훈의 목적이 아니었다.

이깟 동네 양아치를 이겼다고 뭐가 그리 좋겠나. 동훈은 더 벨룸, 세계의 왕을 꿈꾸는 사람인데.


동훈은 문신남의 귀에 대고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그가 잊어버리지 않도록.


“아니긴. 오해고 뭐고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딱 하납니다. 이 동네 구립도서관에 출입하지 마세요. 예, 제가 전세 낸 것도 아니고 제 것도 아닙니다. 근데 당신이 와서 소란 피우는 건 허락할 수 없네요. 또 맞고 싶지 않으면 그렇게 하는 걸로 하시죠.”


동훈의 협박은 문신남의 귀로 들어가 뇌리에 박혔다.


도서관, 가지 말 것.


문신남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예. 그럼요. 구립도서관 근처도 얼씬거리지 않겠습니다.”


“볼일 다 보셨으면 계산하고 가시죠. 식사들 다 하셨잖아요?”


동훈의 말에 문신남과 그 일행은 맞다고, 지당하신 말씀이라고 동조하며 후다닥 달려갔다.


동훈은 그들이 1층에서 계산하고 도망가는 걸 다 보고 나서야 천천히 올라갔다.


식전 운동치고는 꽤 요란했다.


***


동훈과 문신남 일행 사이의 소란은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어디서나 싸우고 불나고 그런 건 구경거리 되기에 십상이지 않은가.

어디서 싸움 났대, 불났대 하는 건 한 번쯤 기웃거리고 싶어지게 만드는 상황이었다.


사람들은 분명 백키로는 나갈 것 같은 뚱뚱한 20대 남자와 평범한 30대 남자가 나간 것을 보았다.

싸움이 붙었으니 결과를 궁금해하는 것도 인지상정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가게 2층으로 올라오는 이에게 집중됐다.


‘어? 왜 저 남자가 올라오지?’

‘엄청 덩치 큰 남자랑 싸운 거 아니었나?’


사람들은 뚱뚱한 남자는 어디 가고 혼자 올라오는 동훈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뚱뚱한 남자가 이기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어도 척 보기에 올라올 것 같은 사람은 안 올라오고 못 올라올 것 같은 사람이 올라오지 않는가.


게다가 상처 하나 없는 모습으로! 그 망나니들이 말로 해결 봤을 리는 없고 분명 주먹이 오갈 게 분명한 상황이었는데 그만 멀쩡히 올라오다니?


“저 사람이 이긴 거야? 셋이었는데?”

“격투기 선수 아냐?”

“팔에 근육이 없는데? 귀도 봐봐. 만두귀도 아니잖아.”

“복싱 선수일 수도 있지. 근데 근육 없는 건 이상하긴 하네.”

“경찰 왔거나 말로 해결했겠지. 걔네 중 하나는 저 남자랑 몸무게가 두 배는 차이나 보이던데.”

“그럼 그 양아치들은? 안 올라오잖아. 고기도 남았어.”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하게 나뉘었다.

동훈이 그들을 두들겨 팼으리라는 추측은 주류의 의견이 되지 못했다, 정의는 승리한다는 낭만주의자들의 의견에 그쳤다.


빠르게 달아오른 관심은 빠르게 식는 법이라 사람들은 동훈에게서 답을 구하지 않고 다들 시비 사건을 술자리 안줏거리 삼아 떠들기 시작했다.

사건의 결말이 알고 싶은 호기심 많은 몇몇만 동훈에게 미련 섞인 시선을 던질 뿐이었다.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생각이 없는 동훈은 그들의 시선을 뒤로하며 창식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동훈이 돌아오자 창식이 물었다.


“괜찮냐?”


창식의 물음에 동훈은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안 괜찮아 보이냐?”


동훈의 대답이 괜찮아 보였는지 창식은 그제야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 새꺄. 안 괜찮아 보인다. 너 원래 안 이랬잖아. 괜찮은 거 맞아?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야, 내가 돈은 잘 못 벌어도 조금은 도와줄 수 있어.”


창식은 동훈이 뭐가 잘못돼서 막 나가는 줄 알고 마지막에는 걱정하는 말을 덧붙였다.


동훈은 창식의 걱정을 웃어넘겼다.

형편 풀려가는 마당에 무슨 일? 동훈에게 일이 있다면 더 벨룸이 밤에 겪는 또 다른 현실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이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고.


“무슨 일은. 그냥 대학 때랑은 마음가짐이 달라진 거지. 그리고 걔는 얘기 잘 해서 돌려보냈어. 도서관 가서 사람 괴롭히고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동훈의 말에 창식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얘기 잘 해서 돌려보냈다고? 걔가 얘기가 통하던가? 아무래도 나는 말을 잘 못하나 보다. 그 새끼 지지리도 말 안 통했는데 넌 통한다니.”


창식의 의심에도 동훈은 넉살 좋게 받아쳤다.


“어디서든 진심은 통하는 법이지.”


동훈의 대답에 창식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어휴, 네가 잘 해결됐다면 해결된 거겠지. 대학생 때부터 그랬잖냐. 넌 말은 잘 안 해도 한 번 하면 그건 꼭 지켰으니까. 한잔하자.”


쪼르륵


몇 차례 순배가 돌고 근황에 관해 떠들었다.

동훈은 회사에 입사해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 창식이가 도서관 사서로 취직한 이야기를 지나 둘의 대화는 점점 과거로 향했다.


도서관에 먼저 입사한 선배 주임이 다분히 싸가지 없이 행동한다는 걸 험담하다 보니 마찬가지로 싸가지 없던 대학 선배가 떠올랐고 그가 찝쩍거렸던 대학 동기 얘기까지 이야기가 흘렀다.


“민지가 그 형 엄청 극혐했잖아. 다가오는 것도 싫다고 그랬는데.”


“민지는 창식이 너 좋아한 거 아니었냐? 술자리에서 몇 번 그래 보이던데.”


동훈과 창식의 동창 민지는 귀여운 외모에 붙임성 있는 성격으로 사람들의 호감을 살 줄 아는 애였다. 창식이를 좋아했던 애 중 하나고.


창식이는 호탕하게 웃으며 자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 우리 학과에서 나 안 좋아한 사람도 있었냐? 내가 좀 생겼잖냐. 내가 날 좋아하는 것까지 막을 순 없으니까.”


부정할 순 없다. 쟤 잘생긴 건 딱 보면 아니까. 부정할 수 없으니까 더 재수 없는 거다. 동훈은 술을 들이켜며 중얼거렸다.


“재수 없는 새끼.”


“크크크, 아, 나 안 좋아하고 너 좋아하던 애 있었는데. 재희가 너 좋아했잖아. 걔도 취향 참 특이해.”


창식의 뜬금없는 말에 동훈은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 치고 대답했다.


“재희? 걔가 날 왜 좋아해?”


신재희. 07학번 문정과 여신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손꼽히는 학생이었다. 서남대 문정과 남자라면 한 번씩 이상형으로 꼽았을걸?

조용한 성격에 술자리도 꺼려서 학과 생활을 잘 안 했다뿐이지 학과를 넘어 대학 안에서까지 미모로 명성이 자자했다.


오죽하면 대학 내 커뮤니티에 문정과 신재희는 남자친구가 있냐는 질문글이 일주일 걸러 한 번씩 올라올 정도였으니.


“모르지. 너의 그 우수에 젖은 눈빛에 반한 걸까? 아니면 네 묵직한 태도를 동경한 걸지도 몰라. 과묵한 모습에서 믿음을 본 걸지도?”


그렇게 말하며 낄낄거리는 창식의 모습은 다분히 장난기 넘쳤다.


이 새끼가 나 놀리려고.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기 전에 동훈은 창식의 장난을 잘라냈다.


“됐어, 새꺄. 싸부 아이디나 알려줘.”


동훈의 요구에 창식은 휴대폰을 흔들었다. 아직 장난기가 묻어나는 표정은 이야기를 쉽게 끝내지 않겠다는 의지가 드러났다.


“흐흐, 문자로 이미 보내놨지. 재희가 너 좋아한 건 진짜야. 언제였더라? 1학년 방학 전이었나? 나한테 와서 물어보더라니까? 네 번호 아냐고. 당연히 안다고 줬지. 재희 걔가 다른 사람 번호 물어보는 거 봤어? 난 못 봤다.”


동훈은 문자에 적힌 창식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확인하며 딴지를 걸었다.


“에이, 그거 가지고 뭘 좋아해. 그리고 걔한테 연락 온 적 한 번도 없다. 좋은 밥 먹고 쉰 소리 하지 마, 새꺄.”


창식은 그런 동훈이 답답했는지 자리에서 한 치는 떠오르도록 펄쩍 뛰고는 술잔과 술병을 들이밀었다.


“그것만 있는 줄 알아? 에효, 됐다. 백번 설명해 뭐하냐. 술이나 마셔.”


동훈은 내미는 술병을 받아들고 창식의 빈 술잔에 술을 채웠다.


“싸부 얘기나 해봐. 예전에는 못해서 안달이더니 왜 딴 얘기야?”


창식은 머리를 긁적이며 다 알면서 뭘 묻냐는 듯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대학 때는 그렇게 얘기해도 질리지 않고 또 말해주던 놈이 이젠 질렸나 보다.


“싸부 캐릭터가 뭐? 얘기해준 게 다지. 허수아비 한 달이나 쳐서 5렙 만들고 초보자 마을 밖에서 PK하고 다녔다니까. 딱 4렙 찍고 나오는 초보들이랑 영혼의 맞다이를 떴지. 대개는 내가 이겼고 렙 높은 지인 불러와서 나 잡으러 오는 사람도 있었고. 그래서 몇 번 죽고 죽이고 하다가 다른 캐릭터로 넘어간 거야.”


아니, 그런 거 말고! 현실 서버에 투영된 싸부 캐릭터가 어떻게 존재하게 된 건지, 그에 대한 단서가 있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동훈은 이걸 단도직입적으로 물을 수도 없으니 냉가슴을 앓으며 돌려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런 거 말고. 싸부 캐릭터 만들 때 뭐, 별다른 징조나 신기한 경험 같은 건 없었어?”


창식은 별 이상한 걸 다 묻는다는 표정으로 동훈을 쳐다보더니 턱을 붙잡고 곰곰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징조나 신기한 경험? 야, 무슨 게임 캐릭터 만드는데 그런 게 어딨어? 개꿈이라도 꾸고 만들어야 하냐? 흠, 아! 그때 더 벨룸이 정액제 하고 있을 때잖아. 한달 정액을 끊어야 하는데 돈이 없는 거야. 그래서 삼촌한테 졸라서 돈 조금 타내고 아빠 지갑 슬쩍해서 3만원을 채웠을 거야. 근데 알지. 결제를 전화비나 계좌이체를 하라대?”


20년 전 더 벨룸은 그랬다. 더 벨룸이 처음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채택한 BM은 바로 한 달 정액제였다.

한 달에 한 번씩 게임의 정액권을 구매해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서비스하는 방식으로 안정적인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장점이 있는 BM이었다. 지금에야 어떤 게임도 정액제 방식을 채용하진 않지만 옛날에는 꽤 대중적인 방식이었지.


더 벨룸의 옛날 모습을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대개 현재의 극악한 부분유료화의 BM을 규탄하고 정액제 시절의 낭만을 이야기했다.


동훈 역시 게임 처음 시작하고 초반은 정액제 시절을 보냈었다. 부분 유료화 업데이트가 더 벨룸 2 중간에 진행되었으니.

동훈 또한 그 시절이 생각났는지 피식 웃으며 동의했다.


“아, 그렇지. 티에이징 본사 찾아가서 현금 내밀 것도 아니니까.”


창식 또한 이야기하다 자기가 몰입했는지 그 시절의 당황스러움을 표현하는 듯 열변을 토했다.


“그니까! 근데 어린 나는 몰랐잖아. 그래서 아빠 주민증이랑 해서 전화비로 결제 선택한 다음에 본인 인증도 목소리 변조해가면서 겨우 했었지. 얼마나 쫄렸는지 알아? 그날 밤에 나 바로 악몽 꿨어.”


이제 초현실적인 그런 경험이 나오는 건가? 악몽? 무슨 꿈이었는데?


동훈은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다급하게 물었다.


“악몽? 무슨 악몽?”


창식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악몽은 무슨 악몽이야. 아빠가 알고 나 두들겨 맞는 꿈, 게임비 끊기고 평생 게임 못하는 꿈이었지. 그땐 그거 말고 무서운 게 있었냐?”


에라이, 화상아.

동훈은 실망감에 한숨이 나오는 것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그런 초현실적인 경험이나 징조를 창식이 느낄 거였으면 창식이 현실 서버 더 벨룸에 접속하게 됐겠지 왜 자신이 접속할 기회를 얻었겠나.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때 처음 [내가니싸부] 캐릭터를 만들었을 땐 내가 가장 의욕에 차고 꿈과 희망이 넘치던 때였다는 거야. 그때로 돌아가라면, 돌아갈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렇게 창식의 말을 끝으로 동훈은 그에게서 초현실적인 단서를 찾으려는 시도를 관뒀다.

친구 만나서 술 한 잔 기울이며 옛날 이야기 떠드는 것보다 중요한 게 어딨겠어.


동훈은 창식과 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


===

메인 퀘스트!

[메인] 마을의 보물


마을의 비밀을 풀어보라는 촌장 아들의 선언을 들었다. 그가 요구하는 마법약을 가져오자.


클리어 보상 : 증명의 상자(시작의 증표)

===


“마법약이라.”


마지노가 준 퀘스트를 들고 반다르가 기다리는 아델라의 집으로 돌아온 동훈은 아델라가 내어준 손님방 겸 헛간 겸 빈방에 푹신한 짚단을 깔고 누워 퀘스트를 살폈다.


반대편 구석에 누운 반다르는 벌써 코를 골아가며 잤고 그의 개 또한 주인의 코골이에 맞춰 이중주로 코를 골아댔다.


드르렁 고로롱 드르렁 고로롱


반다르와 개의 기묘한 이중주를 반주 삼아 동훈은 다리를 떨어대다 이내 멈춰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메인퀘스트 첫 번째 스텝은 다크엘프 꺼다. 다크엘프로 플레이하던 때랑 완전히 일치해. 이걸 촌장이 아니라 마지노가 줬다는 것만 다르지. 스토리 진행에 있어서 내가 아는 게 없어질 거라는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


동훈은 생각의 정리를 마쳤다.


더 벨룸에는 레벨 높은 NPC도, 강력한 몬스터도 지천에 깔렸다. 비명횡사하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조심해야 했다.


우선 첫 번째 메인퀘스트부터 깨야지.


동훈은 마침 마법약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하나 알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전쟁 게임 속 나혼자 플레이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2 컬렉션 22.10.18 536 16 20쪽
31 행운(2) 22.10.17 519 16 17쪽
30 행운(1) 22.10.16 530 8 16쪽
29 각 잡고 뽑기 22.10.14 554 15 21쪽
28 퇴사각(2) 22.10.13 552 18 20쪽
27 퇴사각 22.10.12 547 13 14쪽
26 함 뜰까? +1 22.10.11 576 12 17쪽
25 반왕 22.10.10 626 12 20쪽
24 손동훈의 혈맹 22.10.10 629 13 12쪽
23 PK유저의 수수께끼 22.10.09 657 11 12쪽
22 PK 유명인 +1 22.10.08 656 13 17쪽
21 과감하게 가자 쫄지 말고 22.10.06 659 15 16쪽
20 안녕, 다엘촌 22.10.06 722 11 18쪽
19 [내가니싸부] 22.10.05 765 11 19쪽
18 퀘스트 완료 22.10.03 818 11 18쪽
17 너, 마녀잖아 +1 22.10.01 859 12 22쪽
» 메인퀘스트 22.09.30 888 15 19쪽
15 자리 22.09.29 901 18 18쪽
14 공공장소에서는 큰소리를 삼가세요 +1 22.09.28 920 15 13쪽
13 게임과 현실 22.09.27 935 14 14쪽
12 Show me the money! +1 22.09.27 1,032 17 18쪽
11 LEVEL UP! 22.09.26 1,101 18 16쪽
10 또다른 플레이어? +1 22.09.25 1,173 17 14쪽
9 다엘촌으로 22.09.24 1,238 18 19쪽
8 마녀 구하기 +2 22.09.23 1,275 18 12쪽
7 퀘스트, 할 수 있으니까 22.09.22 1,336 22 17쪽
6 좆소 기업에 어서 오세요 22.09.21 1,389 26 19쪽
5 인생역전의 기회 22.09.20 1,438 23 14쪽
4 로그아웃? 국룰? +1 22.09.19 1,559 25 17쪽
3 꿈꾸는 더 벨룸 22.09.18 1,702 26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