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게임 속 나혼자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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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솔
작품등록일 :
2022.09.15 01:46
최근연재일 :
2024.04.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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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1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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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컬렉션

DUMMY

더 벨룸은 전쟁 게임이라고 불렸다.


전쟁은 돈과 사람으로 한다. 더 벨룸에서 중요한 건 개개인의 무력이었다.


더 벨룸에서 게임사는 스펙을 팔고, 유저들은 그 스펙을 구매해서 개인의 무력을 갖췄다.


다양한 스펙업 요소가 존재했다. 게임이 업데이트될수록,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스펙업을 위해 준비된 창은 많아졌고 복잡해졌다.


레벨이 낮으면 열 수 없는 인터페이스도 있었고 확장되지 않는 슬롯도 존재했다.


동훈은 쪼렙이었고 당연히 그렇기에 동훈에게 익숙한 컬렉션창이니 돌 깎는 창이 뜨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거 업데이트가 아직 안 된 것 같은 모양새네. 레벨을 올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업데이트가 진행되는 형식으로 봐야 하나?’


업데이트 공지 같은 건 없었다.

그저 타임라인에 맞춰 스펙업 요소 같은 것이 추가되는 느낌? 그게 아니라면 조건을 달성하면 스펙업 요소가 열리는 느낌?


하지만 공지 따위가 없어도 괜찮았다.


동훈은 더 벨룸만 15년을 했다.


업데이트되고 있는 추이만 살펴도 그것의 타임라인을 알아챌 수 있었다. 조건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지금 업데이트된 시스템이 컬렉션창. 이건 원래 1레벨부터 열리는 시스템이야. 근데 지금 열린 걸 보면 업데이트라고 봐야지? 조건이라고 하면 첫 번째 패키지 전부 구매 이후이려나. 컬렉 다음 업뎃이 뭐였지?’


동훈은 다음 업데이트를 떠올리며 컬렉션창을 열었다.


「고금을 통틀어 아는 것은 힘이었습니다. 더 벨룸의 신비롭고 강력한 아이템과 별처럼 빛나는 영성은 그것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당신에게 강력한 힘을 부여할 겁니다. 모든 수집품을 채워 왕의 자리를 쟁취하세요!」


처음 컬렉션창을 열자 뜨는 안내 문구에는 컬렉션창에 대한 그럴싸한 포장 메시지가 들어있었다.


아는 것이 힘이고, 그걸 다 모아보라고?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닌 걸 알면서 그러네. 그리고 쉽게 만들어놓지도 않아놓고.


요, 요 컬렉션 시스템이 진짜 지독한 거거든.


수집품을 보관하는 장식장을 상상해보라. 그곳에는 그것이 있음을 알리는 이름표뿐 아니라 그것의 실물이 필요했다.

시스템도 마찬가지였다. 아이템을 직접 등록해 수집품을 활성화시키는 과정이 꼭 필요했다.


수집품, 유저들은 컬렉션창 혹은 컬렉창이라고 부르는 창에 아이템과 영성을 집어넣어 추가 스텟을 얻는 방식이었다.

도감에 넣는 아이템은 소실되어 추가 스텟으로 환원되는 시스템이므로 단순히 그것을 아는 것이 힘으로 연결되진 않는다는 점에서 거짓말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 컬렉션은 뽑기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었는데 컬렉션 시스템이야말로 사람들이 계속 뽑기를 하도록 만드는 강력한 동기였다.


{기초 오크 전사 세트} - 최대 HP +10

오크 전사의 전쟁 도끼, 오크의 무거운 흉갑, 오크의 낡은 샌들


{슌페이 공방의 자존심} - 명중 +1

슌페이 공방산 양손검, 슌페이 공방산 사슬흉갑, 슌페이 공방산 솜각반

.

.

.


보너스 스텟이 작은 일반 등급의 컬렉션부터 눈으로 훑었다. 가장 낮은 흰색부터 녹색, 파란색으로 이어지는 컬렉션은 눈이 돌아갈 정도로 방대했다.


.

.

.

{검은 용의 비늘} - 데미지리덕션 +1

블랙드래곤의 영성


{의형제} - 스턴 내성 +1%

순수왕 이레스의 투구, 피바람 슐츠공의 투구

.

.

.


더 좋은 스텟이 달린 전설 등급의 컬렉션까지 눈으로 훑어내기까지 시간이 꽤 걸릴 정도였다. 스크롤만 쭉 내리는데도.


‘신화 등급은, 아직 없네. 업데이트가 안 된 거 같은데. 게다가 컬렉션 개수도, 너무 적어. 이 정도면 진짜 초창기 같은데? 더 벨룸1? 아니면 그보다 전인 베타 서비스 때?’


컬렉션 시스템은 참 신기한 시스템이었다.


뽑기 시스템은 뽑으면 그걸 가지게 되는, 전설 등급 장비를 뽑으면 그 효과를 온전히 누리는, 완전히 단발성으로 그치는 스펙업 시스템이었다.


이런 뽑기 시스템이 컬렉션 시스템과 만나면?


악명 높은 컴플리트 가챠로 변모했다.


컴플리트 가챠.

원래의 가챠 시스템에 빙고 형식을 추가한 것으로, 하나의 세트로 완성되는 모든 것을 뽑을 때까지 다른 요소들은 의미가 거의 퇴색되는 극악의 BM.

일본에서는 법으로 금지까지 되어있는 훌륭한 과금모델이었다.


‘핵과금러들에게는 구멍 숭숭 뚫린 컬렉션창을 보는 것만큼 마음이 공허해지는 것도 없다고 했지?’


동훈은 자신의 컬렉션 현황을 확인했다.


컬렉션 진행 상황,

장비 수집품 56가지(18.6%), 스킬 수집품 21가지(10.5%), 영성 수집품 34가지(22.6%).


수집품이 가장 적은 영성 수집품이 퍼센트로는 가장 많이 채워졌다. 종류와 숫자가 가장 많던 장비 수집품이 양으로는 많이 채웠으나 퍼센트는 부진하게 채워졌다.


채운 컬렉션을 다 합하면 총 111개.


중복이 많아 쓴 돈에 비해 생각보다 적은 컬렉션을 채웠다.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계속 뽑다 보면 언젠가 채워질 공란이었으니까.


이전에 게임을 하던 동훈이라면 생각도 못 할 태도였다.

옥탑방에서 컴퓨터로 캐릭을 굴리던 동훈에게 컬렉션은 논외의 스펙업 시스템이었다. 어쩌다 맞추면 좋고 못 맞추면 아쉬운, 그런 정도의 스펙업 시스템.


지금의 태도는 완연히 핵과금러의 태도였다. 그것도 보통 수준의 핵과금러가 아닌 돈을 아까워하지 않는 미친 핵과금러의 태도!


컬렉션으로 얻을 수 있는 스텟은 매우 적지만 양이 많기에 모이면 모일수록 커다란 숫자가 되었다.

지금 모은 스텟은 앞으로 모일 것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 하지만 지금은 이 정도로도 큰 힘이 되었다.


“스텟 상승폭이 가장 큰 때는 새로운 스펙업 수단이 열렸을 때지.”


동훈은 확연히 강해진 자신의 힘을 확인했다.


꽉 쥔 주먹에서 짱돌도 깨버릴 것만 같은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상태창을 켜서 실수치를 확인했다.


===

LVL : 5

HP : 560

MP : 400

STR : 90

DEX : 50

CON : 51

INT : 32

WIS : 32

CHA : 15

===


5레벨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수치의 스텟이었다.


언젠가 동훈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다 어떤 익명 유저의 더 벨룸 관련 키보드배틀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10레벨 캐릭터가 가질 수 있는 최대 공격력 수치에 관한 토론에 불과했는데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의견을 주고받다 으레 인터넷 커뮤니티발 키배가 그러하듯 부모의 안부까지 묻는 인신공격에까지 이르렀다.


한 익명의 유저가 주장하는 10레벨 캐릭터의 공격 수치가 말도 안 되게 높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약이 잔뜩 오른 익명의 유저는 자신의 주장은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했다며 자신의 계정을 인증하기에 이르렀는데, 그의 상태창을 보았을 때 동훈은 사진에 조작이라도 한 줄 알았다.


당시 익명의 유저는 81레벨 군주 캐릭을 키우고 있었는데 자신이 1레벨, 10레벨, 20레벨 때의 성장기를 모두 기록해왔다고 했다.

그가 올린 건 1레벨, 10레벨, 20레벨, 마지막으로 현재의 캐릭터 상태창을 캡쳐해서 올렸다.


1레벨 때는 별달리 특별할 것도 없었다.


동훈이 놀란 건 10레벨 때부터였다.

남들이 20레벨에나 찍을 수 있는 스텟을 보유한 상태였다. 동훈은 거기서 이 사람은 대단한 과금러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20레벨, 여기서부터는 믿을 수 없는 스텟이었다.


마지막 현재의 상태창?

20레벨 상태창도 믿을 수 없었는데 81레벨에 이른 상태는 그야말로 눈요기 수준이었다. 그가 캐릭터 닉네임 공개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 게임사에서 테스트용으로 만들어놓은 계정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태우장군, 그 사람이었을 줄이야. 말하는 걸 보니 나이도 좀 있고 게임을 무식하게 하는 경향이 있더라니.’


‘태우장군’은 더 벨룸 네임드 중 하나로 리마스터 버전부터 시작한 인물이었는데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단숨에 서버의 라인 세력으로 부상한 희대의 풍운아였다.

그가 더 벨룸에만 얼마를 썼는지는 의견이 분분했으나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그가 최소 60억 이상을 썼다는 사실이었다.


하여간 60억을 썼다는 태우장군 캐릭터의 스텟은 어마어마했다.


물론 그가 1레벨 게임 시작했을 때부터 60억을 다 박고 시작하진 않았겠지. 계속 게임을 해나가면서 계속 쓰다 보니 60억 이상이 됐겠지만 동훈의 캐릭터가 그런 수준의 핵과금러 캐릭터처럼 커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이게, 이게 게임이지!’


동훈은 더 벨룸의 P2W 시스템에 환멸을 느끼던 과거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 이 재미 때문에 더 벨룸을 못 끊었지, 하는 생각만 들었다.


돈을 쓰면 강해진다. 만인 위에 설 수 있다. 이 직관적인 법칙은 더 벨룸의 매력이었다.


쎄졌으면 그걸 휘둘러 봐야 했다. 몸도 풀고 내 힘을 직접 눈으로 봐야 보람이 있는 것 아니겠나.


핵고래 형님들이 꼭 돈 쓰고 스텟 오르면 한 번씩 대련이랍시고 서로를 향해 칼을 휘둘러 보며 ‘오, 저번보다 피가 많이 닳는데요?’ ‘형님 많이 탱키해지셨네요.’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달까.


동훈의 상념은 거기까지 이어지다 끊어졌다.


쿵쿵!


“디오르!”


기다리다 못한 반다르가 문 두들기는 소리를 들었다.


***


세마엘이 얻어준 방은 2인실이었다. 반다르와 동훈이 함께 쓸 2인실.

반다르는 문을 열고 들어오면 될 걸 들어오기가 귀찮아 문을 두들겨 동훈을 방 밖으로 이끌어냈다.


세마엘이 아니었다면 돈을 내야 했을 것이고, 돈도 없었다면 1층 용병이고 일꾼들이고 돈 없는 이들이 한데 엉켜 새우잠을 자는 창고 같은 방에서 자야 했을 것이다.


동훈이 문을 열고 나오자 반다르는 조금은 가쁜 숨을 내쉬며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사야 할 건 자네 몫의 건량과 물주머니, 자네는 기사니 배낭은 필요없겠군. 하지만 옷을 보니 두꺼운 로브도 하나 사는 게 좋을 것 같네. 어떤가. 사올 수 있겠지?”


그 말을 들은 동훈은 얼빠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에, 쇼핑은 같이하는 게 아니었습니까?”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반다르는 사정을 설명했다. 어쩐지 반다르는 조금 변명하는 기색이었다. 장난감을 같이 못 사주고 일하러 나가야 하는 아버지처럼.


“펠리페 성에 내 옛 동료가 하나 있다더군. 다른 친구가 말이야. 그 친구를 찾아봐야겠어. 미안하네.”


미안할 것까지야. 이게 말이 동행이지 지금까지 거의 중세식 여행 초짜인 동훈을 케어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마치 아빠처럼 잠자리도 봐줘, 밥도 나눠 먹어, 길 안내도 해줘, 아무튼 그런 반다르는 지금 반쯤은 동훈의 후견인이었다.


둘은 그럴 이유도, 그런 배려를 받을 이유도 없다는 것을 서로 알았지만 시간이 지나 익숙해진 나머지 서로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게 됐다고 해야 할 것이다.

동훈은 고인물에게 인도받는 뉴비의 마음으로, 반다르는 뉴비를 불쌍히 여기는 고인물의 마음으로 서로를 생각하고 있었다.


‘물건 정도야 혼자 살 수 있지. 반다르 씨도 날 너무 아무것도 모르는 외지인처럼 생각한다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여관을 떠난지 한 시간 뒤, 15년차 뉴비 동훈은 여관 1층의 펍으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젠장, 길도 모르겠고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모르겠어. 건량은 어디서 사고, 물주머니? 그건 또 어디서 사야 하는 거야.”


계속 돌아다니다 하도 답답해서 아무 건물이나 들어갔다가 공동주택이라 경비병에게 쫓겨 다닐 뻔했다.


이건 동훈이 게임으로만 이 세상을 접해서 생긴 불상사였다.


동훈이 게임을 하면서 두꺼운 로브니, 가죽으로 된 물주머니, 건량 같은 걸 언제 사보겠나. 소모품이래도 포션 같은 아이템만 사는 게 게임이지 않은가.

어떤 게임도 마을에서 사냥터를 가는데 물이며 식량이며 신발이며 바리바리 싸들고 가지 않는다.


그건 쓸데없는 현실성이었으니까.

누구도 게임에서 쓸데없는 현실성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건 게임의 편의성을 해치는 방해물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여긴 진짜 현실이었다!


그런 방해물이 산재하고 오히려 편의성보다 훨씬 중요시됐다.


여기서는 어딜 갈래도 정말 마음먹고 여정을 떠나야 하며, 굶주리고 목마른 야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히 그에 대비하기 위해 여행을 가려면 많은 물품을 싸들고 다녀야 했다.


그러니 분명 펠리페 성 같이 큰 마을에서는 그런 물품들을 판매하는 곳이 있을 텐데 어디 중세식 판타지에 요즘처럼 ‘물주머니 팝니다’, ‘건량 팝니다’ 하는 식으로 간판을 대자로 붙이고 있겠는가.

호그스헤드라 하면 고기나 술을 파는 곳일 테고 쿵덕쿵덕하는 곳은 방앗간일 것이며 요정의 노래라고 하면 하루 묵고 갈 수 있는 여관일 것이다.


그런 암묵적이고 시적인 간판을 즉각적으로 받아들일 배경지식이 없는 동훈으로서는 간판도 알아먹지 못하고 헤맬 뿐이었다.


‘내가 더 벨룸 고인물이지 중세 고인물은 아니잖아. 난 역사학자 같은 게 아니라고.’


홀로 펍에 앉은 동훈은 목이나 축일 요량으로 바테이블로 가 맥주를 하나 주문했다. 술이라도 마셔야지 속 터져서 정말.


판자로 만들어진 바테이블에는 여관주인이 턱을 괴고 술꾼들을 감시하며 무료하게 앉아있었다.

동훈이 맥주를 시키자 큰 잔 하나를 들고 거기에 맥주를 채워와 동훈 앞에 내놓았다.


동훈은 주인장이 가져다준 맥주를 홀짝이며 펍을 둘러보았다. 어디 길 안내라도 해줄 길잡이라도 있을까 해서.


펍 내부는 시끄러웠다.

펠리페 성은 남부 변경에서도 꽤 큰 마을이었고 그만큼 물동량과 사람이 많았다. 그러니 여관 겸 운영하는 펍 또한 사람이 북적이는 게 당연했다.


이렇게 사람이 많으면 풍족하고 활기 있는 마을이 되지만 문제는 언제나 소란 또한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으하하! 내가 땄다! 다 가져와! 이게 다 얼마야!”

“에라이. 젠장, 텄네 텄어.”

“이게, 이게 맞아? 패가 왜 이래.”


테이블 한쪽에서 도박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소란이 일었다.

다섯이 둘러앉은 테이블에 도박꾼들은 대부분 후줄근하게 입은 동네 놈팡이들이었으나 그중 둘이 용병의 복색을 하고 있었다.


동네 도박꾼들 사이에 외지에서 온 용병 둘이 낀 것 같은 느낌.


살쾡이처럼 날카로운 눈매의 용병는 가죽으로 된 갑옷을 입었으며 옆에 앉은 순둥한 인상의 용병 역시 중요 부위에 쇠를 덧댄 천갑옷을 입고 있었다.


둘은 이 도박판에서 큰돈을 딴 듯 앞에 동전을 쌓아두고 있었는데 근처에 있는 동네 놈팡이들은 실의에 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건 사기야, 사기라고! 어떻게 좋은 패만 너희에게 가는 거야!”


“흐흐, 우리에게 좋은 패가 오는 이유가 뭔지 알아? 저기 봐봐.”


날카로운 눈매의 용병이 어느 한쪽을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가 보면 이 여관 펍에 딱 하나뿐인 웨이트리스가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이 있었다.


동네 아저씨 중 하나가 웨이트리스를 알아보고 되물었다.

어차피 펠리페 성 남쪽 구역에 사는 이들이니 얼굴쯤은 아는 이가 나오기도 했다. 게다가 여기서 도박을 벌이는 이들은 펍에 출근도장을 찍는 이들이니 웨이트리스를 잘 아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제이미? 제이미가 왜?”


용병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저 여자의 어깨를 한 번씩 만지고 오라고. 도박판에서 웨이트리스의 어깨는 행운의 상징이야! 우리는 진작 만지고 와서 패가 잘 붙는 거라고. 혹시 알아? 만지고 오면 여기서 돈을 따서 돌아갈지?”


날카로운 눈매의 용병은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며 시시덕거리는 표정으로 동전을 쓸어 담았다.


동훈은 척 보고 저 용병 둘이 짜고 뭔가 사기도박을 벌였구나, 하는 촉이 딱 왔다.


순둥한 얼굴의 용병은 자꾸 뭘 치우는 듯 분주했고 날카로운 눈매의 용병은 시끄럽게 굴며 시선을 모았다.


순둥한 얼굴의 용병이 손을 움직이는 속도는 기민했으니 척 봐도 저쪽이 타짜로서 손기술을 벌였을 것이고, 입 터는 솜씨가 괜찮은 수준인 날카로운 눈매의 용병은 시선을 끌고 바람을 잡아댔을 것이다.


딱 그림 그려지잖아. 외지에서 온 용병 둘이 테이블을 다 털어먹는다니.


음담패설에 사기도박, 술집에서 시끄럽게 영업 방해까지 하는 걸 보면 저들은 훌륭한 양아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일련의 소란 속에 한 청년이 튀어나왔다.


“내, 내 돈 돌려줘. 그건 우리 어머니 약값이야. 내가 미쳤었나 봐. 폐병을 앓고 계신 어머니께서 기다리고 계셔.”


돈을 잃은 놈팡이 중 유독 어려 보이는 청년이 용병에게 애원했다. 순박하게 생긴 청년은 손까지 덜덜 떨고 있었는데 돈을 잃은 충격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네 돈? 여기에 네 돈이 어딨는데? 어머니 약값이면 돈을 들고 약초상에게 가야지 왜 펍에 들어와 도박판에 끼어있어?”


날카로운 눈매의 용병이 청년에게 말을 던졌다.


저게 정론이긴 했다. 결국 욕심에 못 이겨 도박판에 낀 건 낀 사람의 잘못이니까. 물론 그렇다고 저들이 사기도박을 한 게 잘한 건 아니지만.


뭔가 다 틀린 짓만 골라 하는 놈이 한 번 맞는 말 하니까 괜히 약오르는 느낌이라 해야 하나.


경우란 경우는 다 어기면서 사는 놈이 남한테는 경우 지키면서 살라고 충고하는 꼴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청년은 발악하듯 용병들을 향해 악을 썼다.


“너희가, 너희가 그랬잖아. 여관 밖까지 나와서 소리쳤잖아. 돈을 불려줄 수 있다고. 어머니 약값 걱정 없게 해줄 수 있다고!”


청년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는 용병은 손가락을 까딱대며 혀를 찼다. 훈계라도 하는 자세였다.


“쯔쯔, 그 말을 믿어? 우리는 도박판에 사람 좀 모아보려고 그런 소리를 한 거고. 꼭 너한테 한 소리는 아니야. 그리고 거짓말한 건 아니잖아. 네가 이겼으면 돈을 불렸겠지. 게다가 테이블에 앉은 건 너 아닌가. 누가 칼 들고 협박한 것도 아닌데.”


용병의 가차 없는 통보에 청년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눈에는 분기가 어렸지만 청년에게는 그것을 폭발시킬 담력도, 여유도 없었다.


“약, 우리 어머니 약값만이라도 돌려줘. 제발!”


청년은 마지막 동아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용병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용병은 오랫동안 전장에서 굴러먹던 이였다. 칼밥만 몇 년인데 달려드는 일반인 하나 상대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팔을 벌리고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청년을 붙잡아 옆으로 휙 내동댕이쳤다.


와당탕!


청년은 테이블과 의자 위로 나동그라졌고 그 충격에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청년을 붙잡은 손을 짜증스럽게 턴 용병은 비웃음을 가득 담아 조롱했다.


“괜히 어른들 힘쓰게 하지 말고 돌아가라. 별 거지 같은 게 기분 잡치게 하지 말고. 옛다. 가서 너희 어머니 단 거나 챙겨드려라. 기침하실 때 고통스럽지 않게 말이야, 하하하!”


탱그랑.


대개 용병은 무뢰배와 동의어다.


칼로 벌어먹는 용병은 자연히 기질이 거칠어지기 마련이었다. 수시로 사선을 넘나들고 객지를 떠돌며 굶주림과 갈증에 시달리다 보면 사람이 성말라지기에 십상이었다.


동전 하나를 청년 위로 던진 날카로운 눈매의 용병은 그 성마른 성미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감히 자신에게 덤벼든 청년을 손봐주겠다는 듯 아직도 넘어져 있는 청년을 향해 점점 다가가는 용병.


“이, 이봐! 왜 그러는 거야. 그만하면 됐잖아!”


사람들은 험악하게 나오는 용병을 향해 제지하듯 나섰지만 누구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는 없었다.

이를테면 이들은 인생 막장에 빨간 줄까지 몇 줄 그은 흉악범을 제지하지 못하는 민간인인 것이다.

살인과 폭력을 밥 먹듯이 하는 용병의 살벌한 기세를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사자와 맞서지 못하는 가젤떼처럼.


용병이 그들을 향해 흉하게 웃자 모두 우수수 뒤로 물러나기에 바빴다.


청년은 결국 싸워야 하는 제 운명을 직감한 건지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는 몸으로 어설프게 주먹을 쥐었다.


‘사기도박도 결국 테이블에 앉아야 당하는 거야. 저 청년이 아무리 죄 없다 해도 도박하고 싶다고 테이블에 앉는 순간 잘못 한 거지. 누가 도박하래?’


오랜만에 쌈구경하겠네, 하면서 맥주를 홀짝이는 동훈 밑에서 무언가가 툭툭 건드리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내려 바테이블 아래를 내려봤다가 동훈은 화들짝 놀랐다.


어우 씨, 깜짝이야.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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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게임 속 나혼자 플레이어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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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컬렉션 22.10.18 537 16 20쪽
31 행운(2) 22.10.17 519 16 17쪽
30 행운(1) 22.10.16 530 8 16쪽
29 각 잡고 뽑기 22.10.14 554 15 21쪽
28 퇴사각(2) 22.10.13 552 18 20쪽
27 퇴사각 22.10.12 548 13 14쪽
26 함 뜰까? +1 22.10.11 576 12 17쪽
25 반왕 22.10.10 626 12 20쪽
24 손동훈의 혈맹 22.10.10 629 13 12쪽
23 PK유저의 수수께끼 22.10.09 657 11 12쪽
22 PK 유명인 +1 22.10.08 656 13 17쪽
21 과감하게 가자 쫄지 말고 22.10.06 659 15 16쪽
20 안녕, 다엘촌 22.10.06 722 11 18쪽
19 [내가니싸부] 22.10.05 765 11 19쪽
18 퀘스트 완료 22.10.03 818 11 18쪽
17 너, 마녀잖아 +1 22.10.01 859 12 22쪽
16 메인퀘스트 22.09.30 888 15 19쪽
15 자리 22.09.29 901 18 18쪽
14 공공장소에서는 큰소리를 삼가세요 +1 22.09.28 920 15 13쪽
13 게임과 현실 22.09.27 935 14 14쪽
12 Show me the money! +1 22.09.27 1,032 17 18쪽
11 LEVEL UP! 22.09.26 1,102 18 16쪽
10 또다른 플레이어? +1 22.09.25 1,173 17 14쪽
9 다엘촌으로 22.09.24 1,238 18 19쪽
8 마녀 구하기 +2 22.09.23 1,275 18 12쪽
7 퀘스트, 할 수 있으니까 22.09.22 1,336 22 17쪽
6 좆소 기업에 어서 오세요 22.09.21 1,389 26 19쪽
5 인생역전의 기회 22.09.20 1,438 23 14쪽
4 로그아웃? 국룰? +1 22.09.19 1,559 25 17쪽
3 꿈꾸는 더 벨룸 22.09.18 1,702 2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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