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게임 속 나혼자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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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솔
작품등록일 :
2022.09.15 01:46
최근연재일 :
2024.04.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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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5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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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니싸부]

DUMMY

“야, 창식, 아니 마지노야. 정말 이걸 또 쳐야겠니?”


동훈은 일전에 마지노와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해가 지기 시작하는 오후와 저녁 사이 허수아비 앞에 다시 섰다.

마지노와 함께.


옆에 마지노는 그새 술이 깨서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는 동훈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 내 보물도 깨뜨렸으면서! 네 그 움직임을 다시 한번 보여줘! 그 무감각하고 피가 차가운듯한, 악마 같은 움직임을 보여달라고!”


이미 4레벨을 달성한 동훈에게 허수아비를 더 치는 건 큰 의미가 없었다. 변태 창식이처럼 허수아비 치기로 5레벨을 찍을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니겠지. 아무리 창식이의 캐릭터라지만 허수아비 치기로 5레벨 찍기를 바라진 않을 거야.


그리고 저렇게 기대하는 눈인데 안 쳐? 저 눈을 보면 왠지 창식이가 떠올라서 매몰차게 굴 수가 없단 말이야.


동훈은 게임 모드를 켜 시야가 넓어지고 스스로에게서 한 발 멀어진 상태가 됐다.


‘무감각하고 악마 같은 움직임이라. 게임 모드를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네. 이 괴리된 상태는 무감정하고 객관적이야. 신과 같은 시선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관조적인 동훈의 정신과 육체가 구분된 것은 아니었다. 둘은 하나였고 동훈은 여전히 육신 안에 존재했다.


동훈이 천천히 팔을 들어 허수아비를 내리쳤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는 횡베기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마지노가 무감각하고 악마적인 움직임이라고 표현한 것은 정확했다.

먹잇감을 노리고 떨어져 내리는 동훈의 칼날은 맹수의 그것처럼 저돌적이면서 냉철했다.


콰직!


이게 쪼개질 수 있는 거였나?

아니, 저번에 치면서 4렙 만들었을 때는? 그땐 안 쪼개지고 잘만 쳤잖아.


‘게다가 허수아비를 죽였다는 말은 못 들어본 것 같은데.’


세로로 쪼개져 속을 드러낸 허수아비는 나무도, 짚단도 아닌 재질이었다. 머리카락 같기도 하고 질긴 힘줄 같기도 한 그것은 쪼개진 나무의 결처럼 섬유질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과연 마지노는 입을 닫는 것도 잊은 채, 동훈과 허수아비를 번갈아 쳐다봤다.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마지노는 이렇게 놀라본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더 벨룸을 15년 한 동훈도, 이 세상에서 60년을 살아온 마지노도 들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초월적인 허수아비가 작살난 날, 전무후무한 위업을 이룬 동훈은 걱정했다.


“이거 복구되나? 부숴먹었다고 나한테 물어내라고 하진 않겠지? 이런 허수아비는 어디서 엮는 거지?”


누가 봐도 아무리 때려도 부서지지 않는 허수아비를 그냥 만들었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 손으로 엮은 허수아비가 어찌 두들기는데 부서지지 않겠나?


동훈은 허수아비니 그것을 만드는 법이니 아는 바가 없었다.


아마 물어내라고 하면 돈으로 지불하는 게 동훈에게는 최선이었다. 다크엘프들은 돈을 쓰지 않으니 직접 허수아비를 엮으라고 한다면, 동훈에게는 가장 큰 벌이 되겠지.


동훈은 나름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마지노는 그런 동훈을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봤다.


“그게, 그게 네 감상이냐? 넌 허수아비를 부쉈다고! 이게 어떤 물건인 줄이나 알아?”


“훈련용 허수아비지, 뭐야. 나도 이게 죽는 걸 본 적은 없어. 이게 체력 수치가 있는 오브젝트인 건가? 내 힘 수치가 이걸 친 사람 중에서 제일 높은 건 아닐 텐데.”


아무리 초보 마을에 있는 허수아비라지만 무시무시한 핵과금 고렙 유저들도 한 번씩 툭툭 치고 가는 게 이 허수아비였다.

동훈도 과금러지만 그들에 비해 레벨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STR 수치가 제일 높다고 말할 수 없었다.


동훈의 담백한 반응에 흥분한 건 마지노였다.


“오브, 뭐? 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이 허수아비는 부서질 수 없는 물건이라고. 저 허수아비들은 추락한 신의 유해를 엮어 만든 물건이야. 인간과 다크엘프, 요정들이 각각 아홉 개씩 가졌다고 하지.”


오호. 동훈은 게임사 홈페이지에도 나와 있지 않은 비사를 게임 속 인물에게 들으니 자신이 새로운 세계에 접어들었음을 실감했다.


100레벨에 가까운 초고렙들이 쳐도 허수아비가 죽지지 않았던 건 저런 뒷설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가?


그럼 아무리 스텟이 뻥튀기된 상태라지만 동훈이 허수아비를 부순 건?


동훈이 아무리 돈을 써서 강해졌다지만 이전에 허수아비를 때려본 고수들에 비교하면 손색이 있었다.


‘그 양반들도 돈 한두푼 쓴 거 아니었으니까. 그 사람들이 돈 써가며 저렙 구간을 겪을 때와 나의 상태는 비슷하지.’


아직 성장하는 동훈이 보다 상위호환의 핵과금러도 부수지 못한 허수아비를 부순 건 동훈이 강해서라기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쪽이 옳으리라.


원주민은 아려나? 동훈이 물었다.


“그럼 이건 왜 부서진 건데?”


“모르지! 넌 어떻게 한 건데! 저게 부서질 수 있는 건지도 몰랐어 나는! 젠장! 허수아비가 부서지다니!”


마지노와 동훈은 같이 발을 동동 굴렀다.


사실 마지노라면 이 대단한 위업에 감탄하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음에 놀라워해야 맞을 텐데 그 당사자인 동훈이 물어낼 것을 걱정하니 자연스럽게 생각이 그쪽으로 흘렀다.


동훈은 이걸 물어내야 하는 건가, 물어내면 어떻게 물어낼까, 하는 걱정에 발을 굴렀고 마지노는 이 대단한 현상에 자신의 아버지인 촌장이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 발을 굴렀다.


‘튀어야 하나?’


동훈의 속마음은 그러했다.

그런 마음을 가진 동훈이 부끄럽게도 마지노는 의연하게 말했다.


“이, 이건 마을의 문제야. 촌장님의 아들인 내가 해결한다. 외부인은 신경 쓸 거 없어.”


마지노의 말에 동훈은 멋쩍게 물었다.


“내가 부순 건데?”


마지노는 애써 가슴을 펴며 자기자신을 가리키면서 외쳤다. 그라고 그의 아버지가 안 무섭겠나. 하지만 마지노는 동훈을 위해 기꺼이 용기를 냈다.


“내가! 내가 치라고 했다! 이 마지노가 쳐보라고 했으니, 이 마지노가 허수아비의 관리자니 책임지겠어.”


동훈은 마지노의 자신감을 위장하는 모습에 코밑을 슥 닦았다.

새끼, 이러면 감동할 줄 알고? 동훈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쪽이 짜르르한 느낌을 외면했다.


마지노가 씩 웃으며 동훈을 향해 말했다.


“너를 보면 누군가가 떠올라. 너처럼 대단한 재능을 가진 녀석이 하나 있었지, 우리 마을에도. 그놈이 허수아비를 부쉈다는 건 아니고.”


“허수아비 정도는 부숴줘야 재능 있는 거 아니겠어?”


동훈은 쑥스러운 나머지 괜히 장난스런 허세를 부리며 말꼬리를 잡았다.


마지노는 그런 동훈의 허세를 들어넘기며 말을 이었다. 마지노의 표정은 진지한 얘기하는데 장난을 치냐는 듯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그의 이름은 ‘이카루스’, 우리 마을의 최강자이자 우리 마을에서 전설로만 내려오는 ‘죽음의 기사’라는 경지에 이를 거라고 이야기되던 놈이지.”


죽음의 기사, 일명 죽기. 착용 제한 레벨 50에 달하는 전설 등급의 영성 변신.

앞으로 나올 영성 시스템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영성 변신, 혹은 영성의 형상은 더 벨룸 BM의 핵심 파트를 맡고 있었다.


‘좋은 영성 뽑겠다고 수억 날리는 사람도 있었지. 그래도 최고 등급의 영성 형상은 모든 더 벨룸 유저들이 선망하는 대상이었어. 진정한 핵과금러의 표상이기도 하니까.’


아직 레벨 4에 불과한 동훈이 바라보기에는 조금 먼 이야기였다.

영성 뽑기는 5레벨에나 시도하려던 참이었다. 아직 시작도 못 한 시스템이니 생각도 안 했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이카루스라는 다크엘프는 죽기 레벨인 50레벨 도달 가능성이 큰 자라는 소리겠고.


“이카루스는 마을을 떠나 훨훨 날아갔지. 어딘가에서 칼솜씨로 이름을 날리고 있을 거야. 분명 그렇겠지. 그 녀석의 칼질은 유명해지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마지노의 어조는 뭔가 아련했다.


“너는, 너는 마을 밖으로 나가 이름을 날릴 생각 없어? 언제까지 마을 최강의 전사만 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


동훈의 질문에 마지노는 못 참겠다는 듯 들고 있는 술병에 입을 가져다 댔다. 분명 아까까진 없었던 것 같은데 용케도 어디서 나오네.


술을 마신 마지노는 낮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흐흐, 나? 난 꺾였지. 꺾인 놈은 어딜 가서도 이름 날릴 수 없어. 사람들은 그걸 알아보기 마련이거든.”


마지노가 아직도 다엘촌을 방황하는 이유, 한량이라고 멸시받으면서 마을의 허수아비를 지키고 서 있는 이유, 술을 마시면서 작금 자신의 모습을 잊으려는 이유.


마지노는 마을 최고의 전사를 자처하며 마을에 눌러앉게 된 자세한 이유는 뭘까.


동훈은 그게 궁금했다.


“누가 널 꺾었는데? 이카루스란 놈이?”


“아니. 이카루스가 날 어떻게 꺾겠어? 그놈은 나에게 매일 두들겨 맞던 놈이라고. 커가면서 나를 이겼대도 날 꺾을 순 없지. 내게 얻어터지고 눈물 콧물 흘리며 집으로 돌아가던 모습이 기억에 선한데 그놈이 나를? 내게 이카루스는 매일 같이 얻어터지던 허수아비 같은 놈이라고.”


마지노가 과거를 회상하는 듯 어렴풋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에게 과거는 족쇄임과 동시에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마지노가 과거를 대하는 이중적인 의미는 그가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지금을 설명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동훈이 물었다.


“그럼 누구에게 꺾인 건데?”


마지노의 손가락이 자신의 가슴팍을 가리켰다.


“나에게. 나 마지노에게 나 마지노가 꺾였다고.”


마지노의 회한이 섞인 한탄을 듣자 그 속에서 동훈은 기묘한 경험을 했다.


마치 마지노의 기억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경험을.


---

[업적]인연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


어린 마지노의 환영이 스쳐 지나간다. 아주 밝고 재기 넘치는 다크엘프 소년의 모습이.

자신만만하고 재기발랄해서 언제나 목검을 휘두르는 모습에는 활기가 넘치고 다른 이들과 자신은 다르다는 오만한 자신감이 넘실댔을 것이다.


소년은 허수아비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이리저리 목검을 휘둘러 제 칼질을 뭇 사람들에게 자랑했으리라.

자신이 이렇게나 잘하고 훌륭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 나이대의 소년들이 가지는 인정욕구란 그러했다.


하지만 이내 소년의 환영은 허수아비 앞에서 무릎 꿇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소년 스스로의 재능에 의심을 품기 시작한 것은.


분노하는 소년은 자신의 오갈 데 없는 분노를 온갖 군데에 쏟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 분노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며 무엇을 향하는지 모르는 소년은 엉엉 울고, 화내고, 슬퍼했으리라.

마을 어른들은 그런 소년을 골칫덩이라고 부르고 손가락질했다. 소년은 갈피를 못 잡고 방황했고 지금, 공터에 주저앉았다.


그날, 진정으로 재능있는 소년은 죽었을 것이다. 재능이 있다고 믿었던 소년은 죽었을 것이다.

남은 것은 후회와 허망함으로 점철된 청년뿐.


“이런, 시네마틱은 처음 보는데. 머릿속에서 영상이 진행되는 기분이야. 이게 마지노가 겪어온 인생인가?”


동훈은 마지노가 영원히 꺾여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싫은 건 죽어도 쳐다보지 않는 그가 아직도 허수아비 관리인을 자처하는 건 허수아비를 치며 꿈을 키웠던 마지노 자신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동훈이 마을을 떠나기 전 칼을 내리치는 자세 한번을 보려고 떼를 쓴 건 동훈에게서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 아니던가.


동훈은 그 모든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어쩌면 마지노가 창식이의 캐릭터이기 때문에 더 공감되는 걸지도 몰랐다.


“그냥 그런 거야. 세상이 자기 껀 줄만 안 애송이가 현실을 깨닫고 주저앉은게지. 이게 바로 이르게 핀 꽃이 맞이하는 최후 아니겠어?”


동훈은 일련의 환영이 끝난 뒤 고개를 끄덕여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마지노를 창식이의 분신으로 보았다면 그의 서사를 보고 나니 단순히 창식이의 분신이라고만 볼 수 없다는 것을.


‘이 미워할 수 없는 청년 같으니라고.’


동훈은 안타까운 마음에 탄식처럼 물었다.


“이 친구야,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으면서 왜 포기한 척 살아가는 거야?”


또 술을 들이켜던 마지노는 친구 소리에 반응했다.


“친구? 그래. 친구 좋지. 근데 너 몇 살인데? 나 60살. 인간은 원래 일찍 죽지 않던가?”


마지노와 대화하며 동훈은 처음으로 당황했다. 다크엘프 또한 장생종이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청년이 60살? 환갑이라고? 어머니뻘이네.


“나, 나이가 뭐가 중요해? 마음이 맞으면 친구지.”


다행히 마지노는 나이에 민감하지 않은 듯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훈과 눈을 마주치곤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는 듯.


“그건 그렇지. 그래, 친구. 인간 친구가 생길 줄이야.”


동훈과 마지노는 밤을 지새웠다.

동훈이 창식과 술잔을 나누며 밤새 떠들었듯 마지노와도 힘들이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다. 창식이와 같은 듯하면서도 다른 마지노는 이세계에서의 첫 친구였다.


게임하다 생기는 친구들은 대개 같은 취미라는 공통점으로 급속도로 친해지곤 했다. 같은 혈맹, 어쩌다 만난 맘씨 좋은 유저, 친절하게 겜 속 거래를 한 사람같이 가까워질 구실은 차고 넘쳤다.

하지만 그들 중에 정말 오래 남을 인연을 맺을 사람은 누구일까?


인연이 오래 갈 사람은 정말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동훈의 첫 번째 혈의 군주가 그러했고 같은 혈원이었던 멍군이가 그러했고 지금은 마지노가 그러했다.


“정말 마시지 않을 테야? 다크엘프의 과실주는 최고야. 최고라고.”

“됐어. 다 마셔놓고 뭘 주겠다는 거야? 다 동났다고.”


마지노가 가져온 술병은 이미 비운지 오래였다. 빈 술병을 권하는 마지노를 일으켜세운 동훈은 이미 캄캄해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대학 때가 생각난다.


창식이가 술을 분수에 넘치게 달리다 꽐라가 돼서 그를 부축해 그의 자취방으로 데려다주던 때가.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기 시작하는 마지노를 배웅하고 동훈 또한 돌아가려는데,


===

퀘스트 완료!

[업적]인연-마지노 우피엔툼


보상 : 스킬 ‘근성’(C), 축복받은 엘릭서

===


스킬 ‘근성’(C)

같은 행동을 반복할 시 STR+1, DEX+1


심플한 스킬 설명과 모호한 조건.

같은 행동을 얼마나 반복해야 하고, 행동의 범주는 어디까지 포함되는지 등. 당장 떠올려봐도 몇 가지나 되는 의문점은 더 벨룸의 스킬 설명이 가지는 특징이었다.


어차피 낮은 등급의 패시브 스킬은 게임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혀갈 수 있었다. 스킬이 주는 어드밴티지 자체가 등급에 걸맞게 적을 것이라 목숨 걸고 탐구할 이유가 없었다.


동훈의 시선은 다음 보상으로 넘어갔다.


‘축복받은 엘릭서’


레벨이 오르면 추가 스텟 1을 주는 것처럼 축복받은 엘릭서를 마신다면 추가 스텟 1을 부여받았다. 사실상 레벨 1짜리 소모품이었다.

‘축복받은 엘릭서’는 얻는 조건도 까다로운 데다 섭취 상한이 있어 한계가 분명한 스펙업 수단이지만 초반에는 이보다 좋은 스펙업 수단이 없었다.


낮은 등급이지만 공짜로 스킬을 주고 축복받은 엘릭서까지 주는 건 퀘스트 하나로 얻기 힘든 보상이었다.


‘새로운 업적 퀘스트. 게임에서는 없던 퀘스트야. 이곳에 존재하는 플레이어의 캐릭터를 만나면 클리어할 수 있는 퀘스트인 것 같네.’


처음에는 일반적인 누적 기록에 맞춰 보상을 주는 업적퀘스트만 있었는데 숨겨져 있던 ‘인연’ 퀘스트는 하나를 클리어하자 자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첫 번째 인연퀘스트의 주인공은 단연 ‘마지노 우피엔툼’, [내가니싸부] 창식이의 캐릭터였다.

두 번째부터 주르륵 이어진 목록에는 이름들이 전부 물음표로 숨겨져 있었다.


인연-마지노 우피엔툼[내가니싸부]

인연-???

인연-???

인연-???


물음표로 숨겨진 퀘스트는 눌러봐도 열리지 않았다. 동훈이 열 수 있는 건 이미 클리어한 첫 번째 인연 퀘스트뿐이었다.


동훈은 클리어한 퀘스트를 눌러 업적퀘스트인 인연 퀘스트의 클리어 조건을 확인했다.

보통 업적퀘스트는 이름을 같이하면 클리어 조건 또한 비슷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첫 번째로 캐릭터를 만날 것, 두 번째는 캐릭터의 소유자 또한 만날 것, 마지막으로 캐릭터와의 관계를 맺을 것.


“마지노, 우리의 인연은 여기서 끝날 것 같지가 않은데.”


동훈의 중얼거림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완료된 업적 퀘스트의 아이콘이 보상을 받으라고 깜빡일 뿐이었다.


***


이슬과 풀잎 향기가 아스라이 풍겨오는 아침이 밝고 어디서 뭐한지 모를 반다르와 조인한 동훈은 마을을 떠날 채비를 했다.


마을을 떠나며


“그녀는 결국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더군. 내 개도 아무런 냄새를 맡지 못했어.”


컹컹!


반다르의 개가 동의하듯 짖었다. 이 개, 가끔 보면 사람 말을 알아듣는 것 같기도 해.


“그렇더군요. 그래도 우리가 목숨을 구해줬으니 경거망동하지 않은 게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내 동료인 툴레도는 역시 마을로 돌아오지 못했더군. 성실한 녀석이니 무슨 일이 없었다면 마을로 돌아왔을 거야. 약초꾼 아가씨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더군.”


반다르는 집에서 나는 짙은 약초의 냄새로 그녀가 약초꾼일 거라는 추측을 완성했나 보다. 답을 이미 정해놓고 추론을 끼워 맞춘 동훈과는 확실히 다른 결과를 내놨다.


그런데, 툴레도인가 뭔가 하는 동료가 성실하다고? 야바위하다 어디 처박혀 있을 거라는 말은 거짓말이었던 거야?


“그, 툴레도 씨는 도박하다가 마을에 안 왔을 수도 있었다면서요? 거짓말이었던 거예요?”


아니 이 아저씨가, 그때는 아델라를 의심도 하기 전이면서 그 전부터 유도신문을 시도했다는 거야?

지독한 인간 같으니라고.


“평화 이전에 전쟁을 생각하라. 대비는 많을수록 좋은 걸세.”


반다르의 천연덕스러운 대꾸에 동훈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생각해보면 반다르는 더 벨룸에 너무나 최적화된 인재였다. 평화로울 때도 전쟁을 준비한다니. 군주가 될 동훈으로서 반다르는 탐이 나는 인재였다.

참모진에 유능한 전쟁광을 데리고 있는 건 여러모로 좋았다.


쟁 얘기를 할 때 준비성 철저하게 전략 수립부터 시행을 도맡아 하는 간부가 하나 있으면 그 혈은 서버에서 백번 이기지는 못해도 백번 지지 않는 혈맹은 될 수 있을 것이다.


“대단하시네요.”


동훈은 여러 의미를 담아 칭찬했다. 아마 같은 플레이어였다면 나중에 혈맹을 창설하면 혈맹 가입을 권유할 수 있었을 텐데. 동훈은 반다르가 NPC라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늙은이의 잔재주지. 자네는 볼일을 다 봤나? 어이쿠, 한가하게 한담이나 나눌 때가 아니었군. 뛰세나.”


반다르는 문득 뒤를 돌아보더니 짐가방을 고쳐매더니 달리기 시작했다.


동훈은 영문도 모른 채 반다르의 뒤를 따라 뛰다가 뒤를 돌아봤다.


마을에서부터 쏟아져나오는 다크엘프들. 하나 같이 농기구며 무기를 들고 이쪽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달려오고 있었다.


동훈은 그 안에 마지노는 없음을 확인하고 반다르에게 물었다.


“저, 저건 뭡니까? 왜들 저렇게 화가 났어요? 지금 우리 쫓아오는 거 맞죠?”


반다르 씨, 따로 다니면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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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함 뜰까? +1 22.10.11 576 12 17쪽
25 반왕 22.10.10 626 12 20쪽
24 손동훈의 혈맹 22.10.10 629 13 12쪽
23 PK유저의 수수께끼 22.10.09 657 11 12쪽
22 PK 유명인 +1 22.10.08 656 13 17쪽
21 과감하게 가자 쫄지 말고 22.10.06 659 15 16쪽
20 안녕, 다엘촌 22.10.06 722 11 18쪽
» [내가니싸부] 22.10.05 766 11 19쪽
18 퀘스트 완료 22.10.03 818 1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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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메인퀘스트 22.09.30 888 15 19쪽
15 자리 22.09.29 901 18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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