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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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01.15 15:52
최근연재일 :
2024.03.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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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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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장편> 죄의 탑 - 10

DUMMY

불길한 느낌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불현 듯 떠오르는 능력 「개행운과 초불행」. 비명 같은 외침이 저절로 나왔다. 그것도 완벽한 무의식 속에서.


“개행운? 초불행? 그게 뭔가?”


당연히 이 능력을 알 리 없던 해골인간은,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하지만 현과장은 아무런 대답도 입에 담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것뿐이었다.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이 거지같은 행운이 현 상황의 모든 사건 보다 중요했기 때문에.


“정말! 이럴 때!”


현과장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상자 쪽으로 걸어갔다. 영롱한 빛을 완전히 잃고 검게 변해 버린 상자.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마주보고 있자니 더 끔찍했다. 번개를 1234567890번 연속으로 맞을 확률이라고 했던가? 완전히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을 뚫고 손에 들어온 형상인데, 이렇게 께름칙하게 느껴지다니. 뭔가 잘못되었다. 불가능에 가까운 꽝이라니. 불가능에 가까운 꽝에 걸리다니!


“정말... 극악의 확률을 뚫다니... 내 인생을 평생 갈아 넣으며 박스를 돌렸지만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는데. 단 3번? 고작 단 3번?”


해골인간은 박스로 다가가는 현과장을 바라보며 묵직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러나, 어째서 그 목소리가 조롱처럼 들리는 것일까. 왜 비아냥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그는 상자를 열기 전, 잠깐 고개를 돌려 해골인간을 바라보았다.


“저기, 이 극악의 확률에 걸리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더는 랜덤 박스를 못 돌리지.”


랜덤 박스를 못 돌린다는 사실은 이미 박스를 추천받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지금 현과장이 듣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가 아닌, 바로 형상에 관한 이야기. 과연 극악의 확률로 숨겨 놓은 형상은 어떤 모습일까.


“아니, 아니. 그 극악의 확률은 어떤 모양이에요?”

“랜덤 박스 설명에는 경이롭고 환상적인 전설급 스킨이라고만 적혀 있던데.”


경이롭고 환상적인 전설급 스킨이라. 그의 말을 들은 현과장은, 다시금 눈빛에 기대감을 담았다. 그래, 아직 좌절하기엔 이르다. 지금 눈앞의 저 검은 상자는 슈뢰딩거의 상자 그 자체. 그 안에 기적이 일어났는지, 아니면 비극이 일어났는지는 아직 모른다. 열어보기 전까지는.


“엽니다! 열어요!”


현과장은 실낱같은 희망을 부둥켜안고 상자의 문을 열었다.

검고 또 어두운 상자 안. 우선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결코 작은 물건이 아니었다. 적어도 단검 이상, 아니, 중식도 이상의 크기의 물건. 현과장은 그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시름 놓았다. 그래도 단검은 아니잖아, 단검은.


“단검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단검은!”


현과장은 살짝 밝은 목소리로 모두를 향해 외쳤다. 자신감 없는 목소리였지만, 그래도 그 목소리에 기대감 가득한 눈빛을 보내는 리코와 키토. 막 잠에서 깬 루프도 분위기에 휩쓸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현과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응원에 힘입어서 일까. 현과장은 자신감을 가지고 상자 안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검고 깊은 어둠 사이로, 살며시 모습을 보이는 기다란 손잡이. 그 모습은 일반적인 단검의 손잡이는 아니었다. 그 모습을 보자, 현과장의 마음에 확신이 자리 잡았다. 절대로 단검은 아니다. 단검만은 아니다. 그의 눈에 들어온 칼자루는, 장검 이상 양손검 정도의 길이. 족히 칼자루만 40cm 정도 되는 듯한 모습이었으니까.


“칼자루가 두 뺨 정도의 길이라면...”

“양손검이지. 그것도 꽤 큰 양손검.”


단검이 아니라는 확신이, 이제는 양손검이라는 확신으로 바뀌어 갔다. 결코 꽝이 아니었다. 그가 원했던 완벽한 형상변환. 감격의 눈물이 시야를 가렸다. 이 얼마나 판타지 세계의 주인공이 쓸 만한 무기란 말인가. 그래, 이 세계로 떨어졌으면, 이런 무기를 써야지. 단검, 아니 식칼이 뭐냐, 식칼이! 도대체 어떤 인간이, 식칼로 세상을 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한 건지. 현과장은 도무지 탄식이 멈추지 않았다. 뭐, 자신이 세상을 구하는 용자는 아니긴 했지만.

잠시 마음에 쌓였던 울분을 그대로 되짚어 봤던 현과장은, 그 분노를 날리려는 듯, 상자 속 칼자루를 힘껏 쥐었다. 손바닥 전체로 느껴지는 차가운 금속의 촉감.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 현과장은 쉬고 있던 왼손을 동원해 칼자루를 더욱 힘껏 쥐었다.


“으라차차!!”


힘찬 외침과 함께, 현과장은 칼자루를 들어 머리 위로 올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볍다. 보통 양손검이 이렇게 가벼운 걸까. 은화에 비해 조금, 아주 조금 무거워진 느낌이 들었다.


“오오...! 그것은!”


현과장이 머리 위로 올린 양손검을 바라보며 감탄을 멈추지 못하는 해골인간. 그는 현과장이 든 그 양손검의 정체를 방 안의 누구보다 잘 아는 모양이었다.


“저기, 이게 무슨 칼인데요?”

“브로큰 하트! 적의 사기를 꺾어버리는 최고의 무기이자, 최고의 단검이지!”


현과장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단검? 지금 단검이라고 했나? 심하게 흔들리는 현과장의 동공. 그는 해골인간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칼자루가 양손검의 칼자루인데, 무슨 단검타령인 걸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단검이라니, 칼자루가 양손검 칼자루인데!”

“그러니까 브로큰 하트라고! 브로큰 하트!”


그 순간, 현과장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박혀버린 단어, Broken - 브로큰. 그 단어를 들은 현과장의 마음도 부서질 것만 같았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강하게 부정하며, 머리 위에서 칼자루를 내린 현과장은 눈앞에 펼쳐진 현실에 경악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정한 경악이었다. 너튜브 썸네일이나 인터넷 기사 제목에 붙어있는 그런 경악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것은 인간이 만든 재난 그 자체.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양손검의 모습에, 현과장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칼자루의 길이가 약 40cm. 그러나 도신이 딱 그 절반인 20cm. 단검이다. 그냥 칼자루만 긴 단검. 현과장이 상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렇게 상심감이 하늘을 찌를 무렵, 그의 눈에 들어온 작은 쪽지.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걸 보아하니, 브로큰 하트와 관련된 무언가란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과장은 재빨리 종이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글자들. 그 글자들을 본 순간, 현과장은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전설급 스킨, 브로큰 하트. 누군가가 일부러 도신을 잘라 놓은 듯합니다. 마치 단검에 어울리게. 그런 그렇고, 어머나, 단검이 그렇게 싫으셨어요? 그래서 단검 대신, 귀여운 단검mk2로 드렸답니다~ 데빌 위딘에서 목숨까지 구해준 은화인데. 나 같으면 정말 서운하겠다.】


「시간의 생명」이 발동될 때마다 나타났던 바로 그 글자. 그래, 내가 보내는 현과장을 행한 메시지였다. 그러니까, 왜 굳이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어. 왜 마(魔)개조를 하려고해. 개조의 끝은 순정인 거 몰라?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좋아해야지. 그렇게 뜯어 고친다고 단검이 장검 될 거 같아? 다이아몬드에 붉은색 칠을 해봤자, 루비는 되지 않아. 그래도 다이아몬드라고.


“아니, 이런 유물을 뽑아 놓고 상심을 하다니, 자네 어떻게 된 거 아닌가?”


해골인간 묵직한 목소리에서 황당함이 느껴졌다. 하긴,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이런 유니크 아이템을 손에 넣은 동시 방방 뛰며 좋아하는 것이 당연지사. 하지만, 눈앞의 인물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현과장. 신급 능력의 보유자다 이 말이야.

뭐, 내 실수로 준 능력이긴 하지만.


“전설이면 뭐하고, 유니크면 뭐해요. 어차피 단검인데.”

“어허! 섭섭한 소리! 그냥 단검이 아니야! 이 형상에는 고귀한 능력이 있다고!”


해골인간은 묵직한 목소리를 높여가며 열변을 토했다.

그런데, 분명 이 해골인간, 자신은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 왜 이렇게 자세하게 아는 걸까. 마치, 한번 정도 뽑아 본 사람처럼.


“잠깐, 스탑! 어이, 해골. 당신 이거 한번 뽑아 봤지?”


그의 질문이 너무나 날카로웠던 것일까. 해골인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원상복구 시켜 놔, 빨리.”

“이미 당첨 되어서 그럴 순 없는데...”


섬뜩한 현과장의 눈빛에, 후다닥 주머니에서 지우개를 꺼낸 해골인간. 이내 그는 브로큰 하트, 아니 은화를 향해 지우개를 내밀었다.


“이걸로 지우시게.”


지우개를 받아든 현과장은, 서둘러 브로큰 하트 스킨을 지워내기 시작했다. 지우개 똥과 함께 떨어져나가는 브로큰 하트의 파편. 어느새 현과장의 손에는 부러진 양손검이 아닌, 찬란하고 영롱한 보랏빛 도신의 중식도가 자리잡고 있었다.


“사람 속여서 이상한 것만 시키고!”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현과장의 윽박에, 잠시 머뭇거리는 해골인간. 과연 그는 무슨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것일까.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까지 그가 말한 모든 것이 거짓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도대체 그의 진정한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교육을 향한 열망? 자신이 만든 형상 변환술의 자랑? 아니면, 진정한 죽음?


“자네, 무기의 강화에는 관심이 좀 있나?”


이젠 다른 주제를 꺼내 늘어놓는다. 마치 시간을 질질 끄는 듯이.


“없는데요. 나 이제 가도 되죠?”

“어? 어... 그래...”


그의 목소리에서 당혹감은 느껴졌지만, 아쉬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이 그리워서 현과장과 일행들을 붙잡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자신의 물건들을 보여주며 시간을 끌고 있었던 것일까. 분명 다른 이유가 있었다. 현과장이 모르는 다른 이유가.


“그럼 이제 작별하죠.”


현과장은 은화를 쥔 손 그대로, 해골인간을 향해 내밀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앞으로 쏟아져 나가는 은빛 화염. 그 화염은 해골인간 뿐만 아니라, 교실 전체를 감싸고도 남았다.


“이야기 감사했습니다.”

“잠깐, 잠깐, 잠깐! 생각해 보니까 나 죽고 싶지 않아! 나 죽고 싶지 않다고!”


처음 만났을 때와 다르게 많이 경망스러워진 해골인간. 하긴 처음부터 정상은 아니었다. 애당초 죽음을 실험할 정도의 인간이었으니까.


“미드나잇 클럽, 밀착!”


현과장의 말에, 현과장에게 딱 달라붙는 리코와 키토 그리고 루프. 해골인간은 어렴풋이 이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교실에 들어오기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으니까.


“나도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그렇게 딱 달라붙으면 불에 안 타는 거지?! 그렇지?”


해골인간도 현과장을 향해 무작정 달려왔다. 거대한 불덩어리들을 온 몸에 휘감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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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144. 법정 호떡 공방 - 1 23.07.23 2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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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142. 마약빵 근절 캠페인! 호떡왕 현과장! - 3 23.07.21 33 3 12쪽
141 141. 마약빵 근절 캠페인! 호떡왕 현과장! - 2 23.07.20 23 3 11쪽
140 140. 마약빵 근절 캠페인! 호떡왕 현과장! - 1 23.07.19 26 3 12쪽
139 139. 완벽한 거래 23.07.18 25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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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137. 마약빵 - 1 23.07.16 27 3 11쪽
136 136. 폭풍이 지나간 자리. 23.07.15 31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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