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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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01.15 15:52
최근연재일 :
2024.03.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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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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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9. 도움의 대가는... 붕어빵 중독?

DUMMY

그래도 준비해 준 성의가 있는데, 그냥 버릴 수만은 없었던 여왕은 현과장이 준비해 놓은 커피와 붕어빵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당에 도착한 여왕. 거대한 식탁 위에 놓인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잔과 노릇노릇 구워진 붕어빵 3개가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냥 붕어빵인데. 그냥 커피인데. 왜 이렇게 눈이 떨어지지 않는 것일까. 게다가 이 괴상한 조합은 뭐란 말인가. 그럼에도, 그녀의 시선은 오로지 식탁 위만을 향했다. 마치 본능에 이끌리듯이.

여왕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이윽고 커피와 붕어빵 앞에 앉게 된 여왕. 그녀는 인내심 없이 그냥, 커피잔을 집어 입술 위로 가지고 갔다. 향긋히 퍼져오는 커피의 진한 향. 그녀는 멈출 수가 없었다. 아니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본능은 이미 커피에게 빼앗겨 버린 지 오래였으니까.

커피가 입안으로 서서히 흘러들어가자, 그녀의 입속에서는 신세계가 펼쳐졌다. 그야말로 맛의 신세계. 달콤한 첫 느낌 뒤로 살며시 찾아오는 커피의 쌉싸름한 향. 혀끝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우유 거품은,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예술. 어떤 미사여구도 필요 없는 예술 그 자체였다.


“아니... 이게 무슨...”


여왕은 멍하니 자신의 커피잔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동이 난 그녀의 커피잔. 분명 한 모금만 마신 거 같았는데. 족히 300ml가 넘게 담겼었던 커피가 금세 사라지고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커피에 무슨 짓을 한 것일까. 그렇다고 의심하기엔 정신이 너무 또렷하다. 여왕은 머리를 감싸 안았다. 도대체 현과장은 무슨 짓을 한 것일까.

그렇게 고뇌를 감싸 안 던 찰나.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세 마리의 붕어빵. 여왕은 아무런 생각 없이 붕어빵을 집어서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그녀의 번뇌를 단번에 날려버리는 천상의 맛. 그녀의 손에 쥐어진 그 붕어빵은 단순한 붕어빵이 아닌, 마치 신이 만든 듯한 붕어빵이었다. 바삭한 겉면을 농락하듯 크리미한 팥 앙금. 팥 앙금은 부드러운 슈크림과 어우러져 더욱 진하고 깊은 단맛을 이끌어 냈다. 그리고 간간히 씹히는 쫀득한 찹쌀떡. 그녀가 붕어빵을 한입씩 베어 물 때 마다 그녀의 동공이 흔들렸다. 괜스레 화가 났다. 점점 사라지는 붕어빵을 보니 이유 없이 화가 났다.


“붕어빵, 아니 커피 남은 게 없습니까?”


완전히 깔끔해진 식탁 위를 보더니, 그녀는 급하게 주변을 향해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헐레벌떡 달려오는 시중들. 이상한 것은 한 명만 오면 되는 상황에, 열 명 넘는 인원이 우르르 몰려왔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던 여왕. 그녀는 시중들을 바라보며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남은 붕어빵은? 남은 커피는?”

“없습니다, 여왕님.”


제일 앞에 선 남자 시중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를 따라 천천히 고개를 흔드는 시중들. 하지만, 여왕의 눈은 속일 수 없는 법. 여왕은 남자 시중의 입을 유심히 관찰했다. 입 주변에 갈색 빛의 얼룩덜룩한 자국. 그리고 검붉은 빛의 얼룩도 보였다. 빼도 박도 못한 증거였다. 그들이 커피와 붕어빵을 탐했다는 증거. 순간, 식당 안에 얼음보다 차가운 냉기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감히, 내 붕어빵과 커피에 손을 대? 감히?!”


여왕의 분노가득한 시선이 시중들을 싸악 훑었다. 그녀는 용서해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고작 붕어빵과 커피인데도 말이다.


“전부 죽여버릴...”


더욱 강한 냉기를 내뿜으려고 하던 그때, 그녀의 시선이 시중들에게서 멈췄다. 왜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온 것일까. 한 명만 와도 될 상황인데. 그 순간, 여왕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들이 이렇게 줄줄이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말이다.

그녀는 냉기를 멈추고 곧바로 식당을 나섰다. 그러자, 갑자기 그녀의 앞을 막아서는 시중들, 아마도 그녀의 생각이 적중한 모양이었다.


“감히, 있는데 없다고 해? 그러다가 죽습니다만?”

“안됩니다, 여왕님! 붕어빵은 절대 사수할 겁니다! 커피는 저희의 목숨보다 중요합니다!”


목숨보다 붕어빵을 선택한 사람들.

인생보다 커피를 선택한 사람들.

고작 붕어빵과 커피인데, 이럴 가치가 있을까?


“내 커피고 내 붕어빵입니다만. 절대 넘겨주지 않을 겁니다만!”


가치가 있는 모양이다. 여왕의 눈동자에 진심이 가득한 것을 보면.

일순간의 분노로 모두를 꼼짝 못하게 얼려버린 여왕은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 그런 그녀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단 한 잔의 커피와 단 한 개의 붕어빵. 그 순간, 여왕의 입가에 미소가 싸악 번졌다.


***


한편, 집으로 돌아온 현과장과 일행들은, 거실에 자리를 깔고 앉아 고된 몸을 쉬게 했다.


“젠장! 여왕에게 붕어빵을 만들어 줬다고? 커피를 대접했다고?! 젠장! 제정신이야? 제정신이냐고!”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갓패치였다. 그것도 엄청나게 상기된 목소리로 말이다.


“그럼 불을 꺼줬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그럼 그냥 12개짜리 도넛을 사서 주세요, 현과장님! 내 붕어빵을 주지 마시고!”


갓패치의 얼굴 가득한 짜증과 분노. 여왕이 붕어빵을 먹게 된 사실에 무척 화가 난 건 분명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제정신이야? 난 안 좋아! 난 안 좋다고!”


갓패치는 거실에 벌러덩 누워서 깽판을 부리기 시작했다. 장난감 가게 앞에서 대(大)자로 드러누운 아이처럼 온몸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는 갓패치. 이런 그를 진정시키는 방법은 딱 한 가지뿐이었다.


“붕어빵 먹을 사람?”

“나요! 나요!”


언제 그랬냐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해맑은 미소로 현과장을 바라보는 갓패치. 몸이 고단한 채야와 어흥선생 그리고 여왕도 살며시 손을 들었다.

잠깐, 여왕이라고? 현과장은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여왕이 여길 왜 와?


“지금 몇 명이지?”

“나 그리고 채야, 갓패치, 키토님 그리고 여왕. 이렇게 5명이다냥.”

“아니지, 아니지 뭔가 잘못 됐잖아, 어흥선생.”


현과장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린 어흥선생. 그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심각한 표정으로 현과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미안 내 실수였다냥. 현과장 포함 6명이다냥.”

“그게 아니잖아! 여왕님이 왜 여기 있냐고!”


현과장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세 사람과 한 마리. 그 중 제일 놀란 얼굴은 다름 아닌 키토의 얼굴이었다. 키토가 왜 놀란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붕어빵을 먹으려고 왔습니다만.”

“이미 많이 만들고 왔는데.”


현과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여왕을 바라봤지만, 여왕은 요지부동. 그녀의 얼굴에서는 집에 갈 생각이 1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왜 붕어빵을 만들어 줘서. 입이 하나 늘었잖아! 내 붕어빵이 줄어들었잖아! 제정신이야?”

“갓패치, 당신도 제정신은 아닙니다만. 이런 걸 혼자만 먹으려고 하다니.”

“혼자 아니거든! 우리 가족끼리만 먹는 거거든!”


갓패치와 여왕은 서로를 바라보며 쓸데없는 신경전을 펼쳤다. 그래, 쓸데없는 신경전. 아무리 노려보고 서로를 욕한다고 해도 붕어빵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것도 아닌데. 정말이지 별 쓰잘데기 없는 곳에 힘을 쓴다, 써.


“우선 손님이니까, 조금은 대접해야지.”

“제정신이야? 얘는 지네 집에 왔을 때 뭐 내 줬어?”

“내 집이 아니라, 갓패치의 집이었습니다만!”


단 한번을 안 지고, 서로 잘났다고 떠드는 갓패치와 여왕. 어흥선생과 채야는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연신 저었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원수라는 것일까. 서로 으르렁거리는 두 사람을 본 현과장도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사이가 좋으면 붕어빵 하나로 둘이 나눠먹으면 되겠네.”


현과장의 폭판 발언에 사색이 된 갓패치와 여왕. 그 이야기를 들은 어흥선생과 채야는 되레 미소를 지었다.


“그거 좋은 생각이다냥.”

“나쁘지 않다랄까나.”


어흥선생과 채야의 발언에 더욱 짙게 깔리는 얼굴 위 그림자. 여왕과 갓패치는 느낌적으로 알 수 있었다. 현과장이 단순히 장난으로 말한 게 아니란 것을.


“사이좋게 있어요, 다들. 안 그러면 붕어빵이 반쪽이 된답니다~”

“넵! 제정신으로 있겠습니다!”

“저는 언제나 얌전합니다만.”


갓패치가 착한 어린이마냥 행동하자, 여왕 자신도 멋모르고 따라서 입을 열었다. 그러자, 그 순간 자신의 언행에 너무나 놀라버리고 만 여왕. 언제나 권위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그녀였기에 더욱더 지금의 자신이 충격적이고 부끄러웠다. 단지 붕어빵 때문에, 그놈의 붕어빵 때문에 이렇게 거실 바닥에 앉아 얌전한 척을 해야만 하다니. 수치심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붕어빵 나갑니다.”


그녀가 그렇게 자괴감에 빠져있는 사이. 어느새 거실로 붕어빵을 가지고 나온 현과장. 물론 붕어빵 옆에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커피도 함께였다.


“역시 잘 알아! 현과장이 잘 알아! 딱 이렇게 커피도 같이 가지고 왔잖아.”


갓패치는 엄지손가락까지 치켜세우며 현과장을 칭찬했다. 이 또한 여왕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언제나 물어뜯기 바빴던 갓패치가 칭찬을 한다고? 신경질적이었던 그 갓패치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고? 도무지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그만, 여왕은 눈앞의 붕어빵을 집었다.

그런데 보통 이런 상황이 펼쳐지면 자리에서 일어나야 정상이 아닌가? 그러나 그녀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 붕어빵과 커피는 소중하니까.


그렇게 현과장과 그 패밀리 사이에 껴서 배부르게 붕어빵을 섭취한 여왕. 그녀는 현관을 나서며, 못내 아쉬운 마음을 달래야만 했다.


“하나만 더 주면 정말 성에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여왕이 애절하게 애원했지만, 현과장은 매몰차게 고개를 저었다. 현과장의 머리 위에 있던 키토도 고개를 젓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거 하나 사라진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습니다만!”

“세상은 안 바뀌지만, 여왕님 몸매는 바뀐다고. 지금 배에 꽉 찬 거 그거 전부 붕어빵이야, 그거.”


현과장과 키토의 시선이 여왕의 배로 향했다. 그러자, 쑥스러운 듯 서둘러 배를 감추는 여왕. 그녀의 붉은 드레스의 배 부분이 터질 것만 같이 뿔룩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얼마나 먹었으면 배 부분이 붉은색이 아니라 핑크색이 다 됐네.”

“그거 성추행입니다만.”


여왕은 인상을 쓰며 현과장을 노려보았다. 도대체 무엇이 어느 부분이 성추행인지 알 수 없지만, 아마 그녀는 이렇게 말하면 붕어빵을 하나 더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성추행이고 나발이고. 난 못 줘. 여왕님 그러다가 미드나잇 클럽에 가입할 정도가 될 거 같단 말이야.”


미드나잇 클럽이란 말에, 크게 공감하듯 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 미드나잇 클럽이란 단어에 머리를 굴리기 시작하는 여왕. 뽈록 튀어 나온 자신의 배와 한밤중이란 단어를 연관시켜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자신만의 결론을 내렸다. 한밤중에 모이는 뚱뚱한 사람들, 즉 야심한 밤에 모여 야식을 먹는 사람들. 그녀는 자신의 멋대로 이렇게 해석하고야 말았다.

갑자기 여왕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졌다. 야식, 아니 붕어빵에 대한 미련이 그녀를 이렇게 만들고 만 것일까. 그녀는 그렇게 절대 꺼내면 안 될 말들을 꺼내고 마는데...


“나도 미드나잇 클럽에 가입하고 싶습니다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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