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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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01.15 15:52
최근연재일 :
2024.03.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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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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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코스프레 대회 - 2

DUMMY

드디어 다가온 대결의 날.

성밖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피로(披露)하리라고 예상했던 현과장이었지만, 그의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싸우는 상대가 어흥선생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한 현과장. 지금 그와 채야는 익숙한 장소에 서 있었다.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안녕하세요! 아나운서 나마래입니다!”


흥겨운 목소리의 아나운서, 나마래. 두 번 다시 등장하지 않을 줄 알고, 이름조차 부르지 않았던 캐릭터지만, 이렇게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왔다. 출입국관리소에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켰던 창포와는 다르게.


“오늘의 빅 이벤트! 바로 어르신들의 변장 대결입니다!”


재등장이 기쁜 것인지, 아니면 마을의 인기남 어흥선생을 만나는 것이 행복한 것인지, 얼굴 한가득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나마래.

그건 그렇고, 왜 무대 위에는 나마래, 현과장, 그리고 채야 이 세 사람뿐인 걸까. 현과장은 눈을 씻고 주변을 둘러봤지만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인 당사자 어흥선생과 자신의 능력치 DLC 갓패치가 전혀 보이질 않았다.


“채야, 왜 우리만 이렇게 나와 있는 거야?”

“나도 잘 모르겠다랄까나.”


현과장과 채야는 살며시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나마래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꿔다 놓은 보릿자루도 아니고, 눈길조차 주지 않는 그녀. 그들은 얼굴 서서히 몰려오는 당혹감을 억지로 억누른 채로 그저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언제나 주인공은 늦게 등장하는 법이죠! 그럼 오늘의 주인공 두 어르신 만나보겠습니다.”


나마래의 말이 끝나자, 무대를 비추던 조명이 꺼지고. 스포트라이트가 무대 정 중앙을 비췄다. 그러자, 스포트라이트 불빛 안으로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두 남자. 바로 어흥선생과 갓패치였다.

화려하지도 않았다. 딱히 멋있지도 않았다.

도대체 이런 등장은 누가 생각한 걸까. 차라리 무대 뒤편에서 대기하다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천천히 걸어 나온 편이 훨씬 더 멋있었겠다.


“등장이다냥!”

“제정신이야?! 내가 말하기로 했잖아!”


첫 등장부터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 어흥선생과 갓패치. 이런 사람들이 주인공이라고?

현과장은 납득이 되질 않았다. 그러나 현과장의 이런 생각과는 다르게, 방청객의 모든 시선은 오직 두 사람만을 바라봤다. 주인공이라고 불리는 그 두 사람만을.


“오늘 어떤 변장을 보여주실 건가요, 갓패치 어르신.”


자연스럽게 둘 사이에 끼어들며 진행을 이어가는 나마래. 마이크를 내미는 그녀의 곤이 살며시 떨리고 있었지만, 역시 프로는 프로인 모양이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무서움이나 두려움같은 감정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미소만 있을 뿐.


“제정신이야? 그걸 여기서 말하라고?”


그런 그녀를 향해, 갓패치는 서슴없이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러자, 더는 공포를 견딜 수 없던 모양인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고 마는 나마래.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방청객들의 얼굴에도 두려움이 자리를 잡았다.

어쩌면 잘된 일인 지도 모르겠다. 이 상태가 유지만 된다면, 방청객들의 호응을 채야 쪽으로 끌어올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윽박을 지르면 안 된다냥.”


어흥선생은 다급히 갓패치를 말렸다. 그러더니, 서둘러 나마래를 자리에서 일으켜 세우는 어흥선생. 순간, 나마래를 바라보는 여성 방청객들의 눈빛에서 두려움은 사라지고 부러움이 가득 피어났다.

젠장, 역시 얼굴은 얼굴이다.

이렇게 방청객들의 환심을 빼앗길 수만은 없었던 현과장. 그는 남은 남성 방청객들의 시선이라도 잡아채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아야!”


현과장은 발목을 부여잡고, 그대로 무대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는 살며시 채야를 바라보는 현과장. 그는 눈빛으로 빠르게 외쳤다. 빨리 일으켜 세워달라고. 하지만,


“발목이 아프면 미리 깁스를 하고 와야 한다랄까나. 이건 방송 매너가 아니랄까나.”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채야. 심지어 그녀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현과장을 바라보았다.

아, 망했다. 망했어. 이 여자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다. 일찍이 센스와 눈치를 밥 말아 먹었다는 것을 알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그런데 그때,


“우오오오!! 날 가져요! 누나!”

“제발 저에게 그 버러지 보는 듯한 눈빛 좀!!”

“언니, 여기에요! 여기!”

“포상이다! 포상이야!!”


방청석 여기저기서 터지는 폭발적인 반응. 남성들뿐만 아니라, 여성들까지 미친 듯이 환호했다.


“갓패치, 오늘 방청객이 누구냥?”

“음... 트수와 트순이?”


어흥선생은 갓패치의 대답에 자신의 관자놀이를 꾸욱 눌렀다.

트수와 트순이. 인터넷 방송 트잉치TV의 시청자들을 지칭하는 용어.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가진 그들은, 보는 시선이나 관점이 조금 남달랐다. 바로 지금처럼.


“난 커서 채야님이 될래요!”

“제발 이쪽으로 포상 좀!!”

“갓채킹야! 갓채킹야!”


마치 채팅장을 도배하듯이 그들의 목소리가 스튜디오를 가득 메웠다.

이거, 생각보다 먹힐지도.

승산을 확인한 현과장의 머리가 다시금 움직였다.


“네! 현장의 열기가 이렇게 뜨겁습니다!”


나마래가 서둘러 채야의 앞에 나서며 분위기를 진정시켰다. 그녀가 채야를 가리자,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분노의 눈빛. 그러나 역시 프로는 프로다.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이 진행을 이어갔다.


“승부는 단판승부입니다. 서로의 변장을 피로하고, 여기 방청객분들로부터 그 평가를 채점받는 형식입니다.”


방청객 채점이란 말에, 현과장의 입가에 미소가 슬며시 자리를 잡았다.

실수만 없으면, 이번 경합은 반드시 이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확신했다. 하지만 이런 근거 없는 확신은 언제나 금물. 모두 매일같이 느끼겠지만 인생은 생각한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


방송용 오프닝이 끝나자, 변장의 시간이 찾아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스튜디오에서 후공을 양보 받은 현과장과 채야. 채야는 의상 점검과 소품을 확인할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에 감사했다. 물론, 현과장은 달랐지만.


“채야, 잘 들어. 이런 경합은 후공이 중요해. 10%는 먹고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고!”

“무슨 소리일까나?”


채야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것인지, 그저 그녀의 큰 눈을 끔뻑이며 현과장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방청객들에게 임팩트만 크게 주면, 갓패치가 뭘 입든, 어흥선생이 잘 생겼든, 이런 사실과 상관없이 우리가 이긴다고.”

“아... 뭔지 알 거 같다랄까나.”


채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끄덕이는 고개가 무색하게 미세하게 흔들리는 그녀의 동공. 채야,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됐고! 그 여왕은 어떤 사람이야?”

“매섭고, 날카로고, 똑 부러진 사람이랄까나.”


매섭고 날카롭고 똑 부러진 사람. 채야와는 정반대다. 현과장의 얼굴에 그늘이 내려앉았다.


“그건 왜 물어본 걸까나?”

“완벽하게 연기를 해야 하니까.”


현과장은 두려웠다. 자신의 작전도 잘 이해 못 하는 채야가 과연 똑 부러진 사람을 연기할 수 있을까. 그는 착잡한 마음을 가지고, 그저 벽에 걸린 붉은 드레스를 바라보았다.


***


“붉은색은 제 색깔입니다만.”


알현실의 분위기가 갑자기 싸해졌다. 천천히 왕좌에서 일어나는 여왕. 그녀는 왕좌에서 내려오더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신하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야 하겠습니다만.”


여왕의 분노 섞인 목소리가 알현실에 울려 퍼졌다.


“며칠 전, 마녀 채야가 붉은 실을 주문했다는 제보입니다.”

“내 색깔을 감히 내 허락 없이?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여왕은 표독한 눈빛으로 눈앞의 신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눈치를 보던 신하가 입을 열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이미 붉은 색은 여왕님의 색이 아니...”

“닥쳐! 붉은 색은 내 색깔이야!”


여왕은 더욱 역정을 냈다. 앳된 얼굴에 가득히 퍼지는 주름. 도무지 화를 삭힐 수 없었던 그녀는, 그대로 알현실을 빠져나와 밖으로 향했다.

성큼성큼 복도를 지나, 화려한 문 앞에 서 여왕. 그녀가 문 앞에 당도하자, 문 앞에 서 있던 시녀들이 문을 열어 그녀의 진입을 도왔다.


“가서 제일 화려한 드레스로!”

“네, 여왕님.”


여왕의 한 마디에, 여기저기로 펴져나가는 시녀들. 이윽고 여왕의 앞에는 한 벌의 붉은 드레스가 놓여 있었다.


“드레스 룸에서 이게 제일 화려해?”

“지금은 그렇습니다, 여왕님.”


제일 나이가 있어 보이는 시녀가, 그녀의 말에 나직이 답했다. 그러자, 천천히 옷을 살피는 여왕. 화려한 자수, 아름다운 붉은 빛깔. 그러나 뭔가 부족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옷을 만들 수는 없는 일. 그녀는 성에 차지는 않았지만, 눈앞의 드레스를 손에 쥐었다.


“이거 입을 동안, 채야의 위치를 알아 놔.”


말을 끝냄과 동시에 망설임 없이 입고 있던 옷을 벗는 여왕. 그녀의 눈동자에는 분노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복잡한 감정이 꿈틀대고 있었다.


***


“그런데 이 정도면 돼? 너무 수수하지 않아?”


현과장은 벽에 걸린 드레스를 보며 입을 열었다. 딱 보기에도 너무나 소박한 드레스. 은은하게 빛나는 붉은 색만 아니면, 크게 특별하게 보일 부분이 없었다.


“여왕은 원래 수수한 사람이었다랄까나.”

“수수한 사람이었다? 그럼 지금은?”


채야는 대답하지 않은 채, 자신이 가져온 장신구들을 확인했다.


“지금은 말할 가치도 없다는 거네.”


역시나 대답하지 않은 채, 묵묵히 장신구를 점검하는 채야. 점검이 끝나면, 다시 또 장신구를 만지고, 확인이 끝나면 또 다시 장신구를 만졌다.

대답할 마음이 없다는 걸 확인한 현과장은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TV를 바라봤다. TV 속에는 한창 촬영 중인 스튜디오의 모습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변장의 달인들 답게 무척이나 잘 만든 어흥선생과 갓패치의 의상. 어흥선생은 주막의 주방장 하룡으로, 갓패치는 마녀 채야로 변장한 듯했다. 찰떡같은 하룡변장에 비해 우스꽝스러운 채야변장. 잠깐, 채야라고? 채야로 변장했다고?


“채야, 혹시 말이야. 갓패치한테 색깔을 써도 된다고 말한 적 있어?”

“어제 말했다랄까나.”


채야의 해맑은 대답에, 현과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단순히 그녀가 색깔을 허락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이건 완전히 계획된 덫에 스스로 걸어들어 간 꼴이었다.


“젠장!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그들이 후공을 양보한 이유가 어렴풋이 느껴졌다. 무대 위에서 채야의 이미지를 우습게 만들려는 작전. 방청객들에게 선입관을 심어놓을 생각으로 갓패치가 채야로 변장한 것이었다.


“역시 두 사람이랄까나. 잘 변장 했다랄까나.”


채야는 TV를 보더니 활짝 웃었다. 그 순박한 미소에, 열불이 터지고 억장이 무너지는 현과장. 이거, 키토나 채야나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이거 어떻게 이기지...”

[똑똑]


현과장이 한숨을 내쉬던 그 때, 갑자기 들려오는 노크 소리. 이어서 문을 열고 한 여자가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어르신, 준비 부탁드립니다.”

“알았다랄까나.”


그녀의 말에 경쾌하게 대답하는 채야. 현과장의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내던지고 도망칠 수도 없는 상황. 현과장은 어쩔 수 없이, 채야의 환복을 위해 잠시 자리를 피해주려고 대기실 밖으로 몸을 옮겼다.

바로 그가 대기실 복도로 나오는 순간, 그의 앞을 휘리릭 지나가는 붉은색 드레스.

도대체 뭐가 지나간 거지? 붉은색 뭔가가 지나간 거 같은데. 현과장은 고개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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