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역학 제 1법칙은 에너지 보존의 법칙 - 에너지는 다른 형태로 변형 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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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뜬금없는 질문에 그는 뭘 잘못 들은건가 싶었다.
회사? 나는 회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사람이라면 딱 질색이다. 사람은... 본질은 악마니까...
“아, 그... 제가 그냥 직원 나부랭이이긴 한데요 그냥 직원은 아니거든요"
“...... 그럼 어떤 직원인데요?”
“후... 있어요 그런게. 아무튼... 우리 회사 공채는 이미 끝났어요. 그런데, 연수 받다가 도망간 신입들이 좀 있어서 티오가 생겼거든요. 아, 회사가 막 못쓰겠다 이런건 아니에요! 다 자기 살길 찾아 가는거죠. 아무튼, 그래서 수시채용을 하고 있어요. 지원해 봐요. 저한테 연락 주면 제가 채용 링크 드릴게요. 지인 추천 하면 직원들 돈받는게 있어서 추천할 사람한테 링크 줄 수 있거든요. 아, 제가 막 돈이 필요하다 이런건 절대 아니에요. 저 돈 엄청 많아요! 엄-청.”
그녀는 양 팔을 위로 들어 이리저리 휘적였다.
“그쪽의 능력이 어디까지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회사에 들어온다면 그쪽 재능,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예요.”
“...”
“아! 대학은 나왔죠? 이거 대졸 수시라... 혹시 음... 다른 회사 다니고 있어요? 아 그럼 좀 곤란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괜찮아요. 이직하면 되고, 입사일은 조정하면 되니까. 인사팀도 그런건 익숙할 거고. 제가 말도 잘 해놓을... 아, 아니에요 이건!”
그녀는 자신의 말에 당황한 듯 횡설수설 했다.
“대학... 나왔어요. 대학은 다행히 혼자 다닐 수가 있더라고요, 사람들이랑 어울리지 않고도. 그리고 회사는... 다녀본 적 없어요.”
“아, 다행이네요! 그럼 첫 회사로 저희 회사 추천, 완전 추천! 좋은 사람들도 많고 다들 잘 가르쳐 줄 거예요. 그쪽 능력을 잘 입증해 봐요. 추천 채용이면 자소서 같은 것 보다는 면접이 더 중요하니까 면접 연습 많이 하고요! 그리고 어...”
“면접... 면접 한 번도 봐 본 적이 없는데...”
“그쪽 말 은근 잘할 거 같아요! 저한테도 막 뭐라고 말 했잖아요. 그리고 어... 그... 수염이랑 머리는 좀... 어떻게 좀 해보고요...”
그녀의 말에 백훈은 자신의 수염을 만져 보았다. 수염을 마지막으로 민게 언제였더라. 이런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집에 있던 면도기도 다 버렸다. 머리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아 미용실도 안간지 오래였다. 미용실에 가면 미용사가 자꾸 말을 거는 통해 질색을 하는 그였다.
“이게 그렇게... 이상해요...?”
“아... 제가 거짓말은 잘 못해요... 네... 이상해요...”
“그렇구나... 생각도 못해 봤네요... 이 회사 가면 그쪽도... 만날 수 있나요?”
“저요? 그럼요! 거기 써있잖아요 지아름 선임, 제가 이래봬도 선임이라 회사에서 입지가 좀 있어요. 일을 좀 잘 하는 편이거든요."
“아... 다행이다...”
“...... 뭐가요?”
백훈은 고개를 저었다.
‘당신에게서는 분자 구조가 보이지 않아요'라는 말까지 했다가는 이상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오해를 할것이다.
그는 말을 아끼기로 했다. 나중에 알려줘야겠다. 이 회사에서 지아름, 이 여자를 만나게 되었을 때.
이 회사에 가면 이 여자가 있다. 평생 그를 괴롭혔던 분자 구조가 보이지 않는 이 낯선 여자, 지아름이 말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을까. 사람과 대화를 하지 않고 살아온지 오래였다. 눈에 보이는 것을 안보이는 척 하면서 살 수 있을 지도 자신이 없었다. 사람들과 내가 어울릴 수 있을까, 그것도 회사라는 공간 안에서 그들과 하루 종일 동고동락 하면서 말이다.
“내가... 할 수 있을까요...”
“마지막... 마지막 한 번만 스스로에게 기회를 줘 봐요. 이렇게 태어난 목숨, 아깝잖아요. 아무것도 못해보고, 아무것도 못이뤄 보고 이대로 가면... 그쪽 재능이 너무 아까울 것 같아요. 적어도 제 눈에는 그래 보여요.”
백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자신은 없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틀린게 하나 없었다.
여태껏 그에게 이런 말을 해준 사람도 없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그녀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눈 딱 감고 믿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혹시 나는, 누군가 나를 붙잡아 주기를 바란 것은 아닐까.
“거기, 뭐하세요 거기서?”
그 때, 멀리서 경찰 유니폼을 입은 남자 두 명이 그들을 향해 달려왔다. 버스에서 그들을 본 누군가 신고라도 한 걸까. 난간 앞에 서 있는 그들이 위험해 보였나 보다.
“선생님들, 무슨 일 있으신 겁니까?”
“아, 아니에요 일은 무슨! 산책하고 있었는데 제가 넘어져서 잠깐 여기 서있던 거예요. 걱정 마세요!”
그녀의 대답에 경찰관들의 눈은 그녀에게서 백훈에게로 옮겨 갔다. 백훈의 몰골이 일반인의 것은 아니다 보니, 그들의 눈빛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두 분, 아는 사이십니까?”
“네! 얘는 제 친구예요. 아, 이 친구가 연기하는 친구라 수염이랑 머리를 이렇게 길러가지고. 좀 이상하죠? 그런데 이상한 애는 아니에요."
그녀의 대답이 경찰관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 받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심히 귀가 하십시오."
경찰관들은 그들에게서 등을 돌린 뒤 왔던 길을 되돌아 갔다.
“휴, 역시 이런 데서 이러고 있으면 눈에 띄긴 하나 보네요. 아무튼, 기다릴게요 회사에서. 아 참, 그런데 그쪽 이름이 뭐예요?”
“차... 백훈이요"
“음, 차백훈씨... 만나서 반가웠어요. 꼭 지원해요, 알았죠?”
그녀는 백훈에게 악수를 청하며 손을 내밀었다.
겁도 없다, 내가 뭘 하는 놈일 줄 알고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대해 주는 것인지. 어쩌면 한강물에 떨어지려는 나를 구하기 위해 아무 말이나 내뱉은 걸 지도 모르겠다. 내 눈 앞에서 죽지는 말아달라고 말이다.
백훈은 그녀의 눈을 바라 보았다. 짙게 내리 깔린 어둠 속에서 주변을 비추는 형광등 조명. 조명에 비친 그녀의 눈이 반짝 거렸다.
사람의 눈이 이렇게 생긴 거였구나. 분자 구조가 보이지 않는 사람을 보는 것이 난생 처음인 그였다. 그는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사람을 제대로 보게 된 기분이었다.
붉은 입술, 하얀 피부...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서로를 이런 눈으로 보고 있었겠구나.
그는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동시에, 이런 사람들을 볼 수 있다면 그래도 세상은 살아볼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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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들 모이셨나요? 인원 체크 한 번 하겠습니다.”
양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버스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통로를 걸어 다니며 버스 안에 앉은 이들의 머리 수를 세어 보고 있었다.
“아, 언제가냐... 지겨워 죽겠네.”
오늘, 2개월 동안 진행된 나우그룹 신입사원 연수가 끝났다. 연수는 하반기 신입 공채 합격자와 수시 합격자를 대상으로 진행 되었다.
직무를 배정 받은 50명의 신입사원들은 다음주 월요일부터 정식으로 출근을 한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자신이 배정 받은 직무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이 백훈, 너는 연구소 배정이냐? 당연하겠지, 연수 성적이 전체 일 등이니까?”
백훈의 옆에 앉은 동기 우민호가 그에게 물었다. 사내 커플이 되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밝힌 그에게서 진한 향수 냄새가 났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들의 주변으로는 탄소가 18개나 달린 갈락소라이드(galaxolide)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갈락소라이드가 있다는 말은 그가 뿌린 향수가 머스크 향이라는 뜻이다.
백훈은 그들 사이를 떠다니는 물질을 쳐다 보느라 우민호가 하는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야, 너 내 말 안들리냐?”
“아, 어... 뭐라 그랬어?”
“됐다, 됐어. 네가 공장으로 떨어진 내 마음을 알기나 하겠냐"
대략 3개월 전, 백훈은 한강 다리에서 떨어져 생을 마감할 결심을 했었다. 그리고 그 날, 그는 지아름이라는 여자를 만났고, 그 여자가 추천한 회사 ‘나우 화학'에 당당히 합격했다. 그녀 덕분에 그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그의 머릿속은 어서 가서 그녀를 만날 생각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연수 과정이 녹록치만은 않았다. 예상했던 바였다.
수업 내내 동기들과 한 공간에 있어야 했고 밥도 같이 먹어야 했다. 가끔은 팀을 짜서 미션 같은 것도 수행해야 했고, 동기들끼리 단합하는 자리가 마련되기도 했다.
백훈은 연수 기간 내내 사람들과는 떨어져 공부에만 집중했다. 팀 미션이 주어지면 그는 되도록 그들과 멀찍이 떨어졌다. 그는 대화는 최소화 하고 피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만 행동했다.
다행히, 그를 괴롭히는 사람은 없었다. 동기들은 모두 서로에게 잘 보이기 바빴다. 회사라는 곳은 학교와는 사뭇 다른 곳이었다. 회사는 타인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여야 하는, 그런 공간이었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사회 초년생인 그들은 어른이 된 것 마냥 행동했다.
백훈에게는 달가운 변화였다.
그런 그에게 먼저 다가와 준 것이 지금 그의 옆 자리에 앉아 있는 우민호였다.
그 날은 짝을 이뤄 서로를 알아가 보는 시간이었다. 서로의 MBTI를 소개한 뒤 얼굴도 그려주고, 응원의 메시지도 적어주는... 뭐 그런 시덥잖은 시간이었다.
우민호는 화공과 출신으로, 이 회사에 들어오기 위해 2년을 준비했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백훈은 대화를 최소화 하기 위해 짧은 문장으로만 말했다. 하지만 우민호는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끊임 없이 말하는 수다쟁이였다.
우민호는 백훈이 그의 말을 잘 들어준다고 생각했는지 그 날 이후 그를 졸졸 쫓아 다녔다. 백훈에게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우민호에게서 더러운 물질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말이 많아도 손도 잘 씻고 양치도 잘 하는 듯 했다. 그 덕분에 백훈은 우민호를 딱히 경계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와 친해질 수 있었다.
우민호는 인사팀과의 배치 면담 때 자신을 중앙 연구소에 배치 시켜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는 울산 공장으로 배정을 받았다. 생각지도 못한 결과였다.
그는 연수 내내 백훈에게 학교 선배들을 통해 나우 중앙 연구소에 대해 모은 정보를 알려 주었었다. 그에 따르면, 중앙 연구소는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 곳이었다. 중앙 연구소는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에 위치해 있으며 칼퇴근이 보장 되는 곳이었다. 똑똑한 사람들이 많고, 무엇보다 나우 화학의 회장님이 중앙 연구소를 나우 화학의 핵심으로 생각했다. 그 덕에 연구소는 특혜를 받는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공장의 상황은 달랐다. 공장은 연구소와는 달리 사무직과 생산직이 공존하는 곳인데, 생산직들은 말과 행동이 거칠다. 뿐만 아니라, 새벽에 불량 나면 본인이 해결할 수 있는 일에도 관리자를 호출하는 통에 관리자들은 잠을 이룰 수 없는 날들이 많았다.
신입들한테 술은 어찌나 많이 먹이는지 공장으로 배정 받아 오는 신입들이 죽어 나가기 일쑤였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근무 시간은 기본으로 1시간을 초과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민호는 죽을상을 하고 있었다.
“야, 연구소 가면 너네 팀장님한테 내 얘기좀 잘 해줘라"
“...... 내가 너에 대해 말하면 아실까?”
“...... 미친 새끼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휴. 아 그런데 너 무슨 팀이랬지?"
우민호는 백훈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민호는 곧이 곧대로 말하는, 융통성 없는 그의 동기 차백훈이 걱정 됐다.
사회성 없는 이 놈이 연구소에 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나? 수용성 수지 연구팀"
“진짜? 와, 너 좀 힘들어 지겠는데"
“...... 왜?”
“거기 선임, 과고랑 학부 조기졸업까지 해서 나이는 어린데, 성격이 좀 지랄맞은가 봐. 그 팀이 일을 개빡세게 한대."
“지랄맞은 거랑 빡센거랑 무슨 관련이 있어?”
“관련이 많지 왜 없어. 신입 공부를 엄청 시킨다 이거야. 논문 여러개 뽑아와서 다 읽어 오라 그러고, 테스트 하고. 실험 결과 정리 제대로 안돼있으면 졸라 쿠사리 주고."
“음...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인데, 그 정도는 시켜야 하지 않을까"
“와, 너 미친놈인 줄은 알았지만 진짜 도라이구나?”
그 순간, 버스가 쿠르릉 소리를 내며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버스는 경기도 이천의 연수원에서 강남역을 향해 출발했다.
백훈은 창 밖을 내다 보았다. ‘NOW 그룹 연수원'이라고 적힌 글자가 천천히 그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드디어, 나우 중앙 연구소로 간다. 그곳에 가면 지아름 선임을 만날 수 있다. 그의 가슴이 두근 거리기 시작했다.
- 작가의말
열역학 제 1법칙(에너지 보존 법칙): 에너지는 다른 형태로 바뀔 수는 있지만 생성 또는 소멸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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